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44)
r 244 –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 2
“그것은…….”
우물쭈물하는 이클립스를 향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대답을 재촉했다. 대리석과 맞닿은 손톱이 청아한 소리를 낼 때마다 이클립스의 몸도 같이 움찔거렸다.
“제, 제가 당신 차원에서 영혼을 데려올 때 같이 묻어왔던 부산물 중 하나였어요.”
“부산물 중 하나였다니,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잘 모르겠는데요.”
“당신께서도 아시겠지만, 저는 뒤틀린 것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다른 차원의 영혼을 마구잡이로 끌고왔습니다.”
방금 전까지 들었던 내용이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던 탓에, 영혼을 데려오는 과정에서 영혼에 덧대어져 있는 개념의 일부까지 같이 넘어오게 되었어요. 당신께서 말씀하신 것 또한 그 같이 넘어온 개념들 중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그 빌어먹을 파란색 증기기관차가 넘어온 것은 여신이 의도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말씀해주신 부분까지는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그게 이쪽 세계에 남아있던 이유는요?”
“지금은 힘의 격차가 명백하기에 그럴 필요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그것 역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저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개념을 알게 되었고, 그걸 기괴하게 비틀어 제 세계에 던져놓은 거예요.”
“여신님이 죽이실 수는 없었습니까?”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죽였습니다. 이 세계가 더럽혀지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몇 번을 죽이든 보란 듯이 다시 일어서더군요.”
이클립스가 이를 악물었다.
“그 놈 하나 죽이겠다고 발을 뺄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저는 그걸 땅 속에 파묻고 던전을 생성해 안에 처박아두는 걸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결국 또 세계를 먹는 자가 원인이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다가 문득 떠오른 가능성에 되물었다.
“예전에 저도 그걸 죽여놨었는데, 혹시 되살아났을 가능성은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클립스는 날 쳐다보며 쐐기를 박았다.
“스스로의 힘으로 되살아났던 게 아니니까요. 그것이 지속적으로 부활시켰기 때문이죠. 제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고 집중력을 흩뜨려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이제는 힘의 격차가 압도적이니 굳이 그런 짓을 할 이유가 없을 테고요.”
“정확히 보셨습니다.”
혹시 그걸 또 상대해야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렇다니 다행이다. 솔직히 두 번 하고싶지는 않은 경험이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알겠습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죠.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 말입니다. 그 게임은 대체 뭐고, 저를 여기에 두 번째로 데려오신 이유는 또 뭡니까?”
내 입에서 나온 횟수는 4번이 아니라 2번이었다. 오해가 완전히 풀렸으니 당연했다. 아예 처음부터 한 세계에 쭉 있었다는데 그걸 여러번 끌고 왔다고 표현할 수는 없으니까.
“당신께서 말씀하신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이야기는 모두, 미래에 대한 예지를 통해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예지라면, 그 도마뱀이랑 싸울 때 제가 추락할거라고 했던 말과 비슷한 종류 말씀이시죠?”
결론만 말하면 여신이 말한대로 됐다. 나는 말 그대로 아래를 향해 추락했으니까. 죽는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지금도 멀쩡히 살아서 여신이랑 대화 중이고.
“맞아요. 저는 당신께서 선택하실지도 모를 수많은 가능성을 예지하였고, 그걸 모두 취합하여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 ‘엔딩’이라는 개념으로 넣어두었습니다.”
“그 말은 브닼 4의 엔딩처럼 제가 모든 생명을 몰살한다거나 하는 세계가 있을 수도ㅡ”
“절대 아니에요.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었을뿐이고, 당신께서 다른 길을 걸어가기 시작한 시점에 이미 흔적도 없이 지워졌습니다.”
이클립스는 내 우려를 단호하게 부정했다.
“제가 보는 가능성이란 당신의 세계에 존재하는 ‘평행 세계’와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당신께서 어떤 가능성을 선택하시면, 나머지는 모두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니 안심이었다.
만약 브닼 4의 엔딩들이 모두 평행 세계였다면, 내가 생명 절멸 루트를 고른 세계가 다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찜찜함을 계속 안고가야했을테니까.
하지만 저 말은 내가 이클립스와 손을 잡고 지금처럼 세계를 먹는 자에게 대항하는 길을 선택한 순간 다른 모든 엔딩 분기는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일이 된다는 의미다.
브닼 4의 그 수많은 멀티 엔딩들이 전부 다.
“여신님이 미래를 볼 수 있으시다면 제가 이런 선택지를 고를 것도 아셨을텐데요. 왜 그렇게 초조해하셨던 거죠?”
“제가 하는 것은 예언이 아니라 그저 가능성을 보는 행위에 불과하니까요. 그렇기에, 제 입장에서 모든 미래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동시에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선택은 오롯이 당신의 몫이었어요.”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며 앉아있던 나는, 생각이 어느정도 정리되자 다시 입을 열었다.
“제 행적을 게임으로 제작하신 이유가 뭡니까?”
제일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의 주인공이 나라면, 왜 그걸 게임으로 제작해야 했는가. 대체 내 과거 이야기를 게임으로 만들어서 뭘 하려 했길래.
“그것은…….”
이클립스는 그 말을 듣고선 뺨을 살짝 붉히며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당신께서 제게 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네?”
“비록 지금은 이렇게 돌아가지만, 날 이렇게까지 고생시켰으니 되갚아주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고요. 그러니, 언젠가 그놈이랑 맞서 싸울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여기로 불러달라 하셨습니다.”
옛날의 나는 대체 뭐하는 놈이었던 거지. 구르고 구르고 또 굴러서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희생해가며 간신히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됐는데, 복수하고 싶으니 다시 불러달라고?
뭐, 그 말을 한 게 과거의 나라서 그런지 이해가 아주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환생하고 죽어라 굴렀던 이유가 그놈이 만들어낸 뒤틀린 존재 때문이라면 이를 갈고 있을만 하니까.
오히려 성격 파탄자 안 되고 복수하겠는 다짐을 하는 선에서 그쳐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저는 당신의 부탁을 받들어, 기억을 잃고 계신 동안에도 몸 만큼은 녹슬지 않으실 수 있도록 당신의 과거와 가능성을 모두 읽어들여 일종의 시뮬레이터를 제작하였습니다.”
“……그 시뮬레이터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고요.”
내가 브닼 4를 죽어라 파고들며 플레이하고 있었던 건 아마 일종의 복수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먹는 자에게 한 방 먹여주겠다는 복수심.
물론 당연히 재미가 있어서이기도 했고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왜 내가 브닼 1과 2를 거의 안했는지도 납득이 갔다. 브닼 1과 2 시점에서 겪었던 고생을 몸이 기억하고 있기에 반사적으로 거부감을 느꼈던 것이다.
브닼 3에 이르러서는 영혼 수호녀, 즉 닉스와 같이 다녔던지라 그나마 거부감이 덜했겠지.
내가 이 세계에 끌려오자마자 게임 속 캐릭터의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따라하고, 사람을 죽여도 멀쩡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래서였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를 플레이하며 머리가 아닌 몸으로 예전의 감각을 되살리고 있었을테니까.
그것도 10년 씩이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기껏 정리했던 머리가 다시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린데다 온갖 생각이 마구잡이로 떠올라 더럽게 복잡했다.
‘어쩐지 5편이 안나오더라니.’
1편부터 4편까지는 그럭저럭 납득할만한 발매텀을 갖고 있던 제작사 놈들이 10년째 5편을 안 내놓는다 했더만, 그게 전부 다 데이터가 없어서였나.
“……그러면, 모드는요?”
문득 모드에 생각이 미쳤다. 브닼 4를 10년이나 플레이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던 모드. 닼라 모드는 여신이 만든거랬는데, 나머지는?
“이 세계는 당신의 차원에서 ‘모드’라 불리던 개념으로 인해 바뀐 것이 아닙니다.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죠.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으니까요.”
이클립스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즉, 빙의 당시에 깔린 모드가 적용되며 세계의 상식과 개념을 뒤바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였다는 뜻이다.
여태까지는 모드의 결과물인줄로만 알았던 이 세계의 외형이 사실은 진짜였다. 바닐라 브닼 4의 NPC 외형들은 전부 다 가짜였고.
뭔가 상식이 부정당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 와서 상식을 찾으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그냥 그런 기분이었다.
“제 세계의 물건들도……?”
“예. 당신께서 언젠가 오셨을 때 최대한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자마자 어처구니가 없었던 에어컨이나 선풍기, 현대적인 침대와 방 구조 등등. 이런 것들까지도 모드의 산물이 아니었다. 날 위한 여신의 배려였지.
“제가 드릴 말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판단은…… 당신이 내려주세요.”
말을 끝낸 이클립스가 차분히 눈을 감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납득하겠다는 듯 의연한 표정이었음에도, 두려움에 눈가가 살짝 떨리는 것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결국 나한테 피해온 건 뭐 없지 않나?’
하지만, 나는 이클립스를 추궁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을 예정이었다. 설명대로라면 딱히 나한테 잘못한 게 없었으니까.
나를 4번이나 불러와서 굴렸다는 건 거짓말에 가깝고, 내 영혼을 멋대로 납치한 것도 진작 죽었던 놈한테 2번째 기회를 준 일에 불과하다.
게다가 여기로 다시 데려온 건 내 요청 때문이었다고 하니, 이클립스의 잘못이라고는 사실상 세계를 먹는 자의 탄생을 방치한 것 뿐인 셈이다.
‘화 안 내길 잘했네.’
만약 거기서 대뜸 화부터 냈더라면 오해가 다 풀린 뒤에 굉장히 미안했을텐데 말이다.
“여신님.”
“……예.”
이클립스가 눈을 뜨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인간이 여신한테 명령을 내리는 상황임에도, 이클립스는 뺨을 붉히기만 할 뿐 일말의 망설임이나 불쾌감조차 없는 표정으로 날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는, 내 발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단순히 오라고만 했지 무릎을 꿇으라고는 안 했기에 일어서라고 할까 하다가, 이클립스의 표정을 보고 그만뒀다. 굉장히 익숙한 표정이라서였다.
교황들이 뭔가 노리는 게 있을 때 얼굴에 떠오르는, 무언가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는 걸 대놓고 드러내는 표정. 그것이 이클립스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나는 발 앞에 무릎꿇은 이클립스를 내려다보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꼈던거지만, 옷차림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유두를 가린 천은 밤바람을 받아 흔들렸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엉덩이가 발뒤꿈치에 짓눌려 양 옆으로 살짝 부풀었다.
허벅지와 종아리는 서로가 서로를 짓누르며 탄력과 말랑말랑함을 동시에 과시했다. 단촐하게 오므린 허벅지 사이는 후 불면 날아갈 듯한 얇디 얇은 천 하나가 전부였다.
“여신님.”
“……예, 당신.”
“제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 무슨 말을 남겼다고 하셨었죠?”
“날 이렇게까지 고생시켰으니 되갚아주지 않고서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 고 하셨어요.”
“그렇죠.”
이클립스의 왼뺨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움찔, 그 몸이 작게 떨렸다.
“그런데 있잖아요, 여신님. 제가 그런 고생을 하게 된 원인에 어떻게 보면 여신님의 지분도 제법 있는 것 아닙니까? 여신님이 절 여기로 데려오셨으니까요.”
뺨을 손바닥으로 감싸안았다. 엄지로 입술을 살살 쓰다듬어주며 눈을 마주했다. 이클립스는 입술이 훑어질 때마다 파르르 떨어댔다. 입술 사이로 달뜬 숨결이 새어나왔다.
눈에 담긴 애정과 뺨에 떠오른 홍조가 한층 짙어졌다.
“네, 네에…… 있습니다…….”
“여신님의 잘못도 있으시다면, 여신님한테도 벌을 줘야 하는 게 맞죠?”
“…….”
이클립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니 묻겠습니다.”
뺨에서 손을 떼고, 방금 전까지 만지고 있던 탓에 드문드문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귀 뒤로 넘겨주었다.
“제가 여신님한테 무슨 벌을 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