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47)
r 247 – 과거의 편린 – 2
“어…… 어……?”
클라우디아는 말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할 만큼 당황했는지 입술을 쉴 새 없이 뻐끔거려댔다. 대련을 지켜보던 아이리스와 리제, 에리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리 저 셋이라 해도 방금 전의 나와 똑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함부로 시도했다간 대검을 잡긴커녕 상반신이 통째로 잘려나갈 짓이었다.
나는 땅에 박아놓은 대검을 한 손으로 가볍게 빼들어 허공에서 90도 돌렸다. 하늘을 향해있던 칼자루가 클라우디아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내려왔다.
“여기, 네 대검.”
팔을 뻗자 칼자루가 클라우디아의 바로 앞까지 들이밀어졌다. 한 손으로 대검을 무슨 지팡이 돌리듯 돌려대는 것도 쉽게는 못 할 행동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클라우디아는 내밀어진 칼자루를 쥘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내가 진짜 어지간하면 잘 안 놀라는데…… 이건…… 뭐라 할 말이 없네…….”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대검의 손잡이와, 그걸 손가락 힘만으로 붙잡고선 수평에 가깝게 들어올리고 있는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더듬었다.
“대련 시작하기 전에 말했잖아. 놀래켜준다고.”
“……그, 아니, 이건 놀라고 자시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 않나……?”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손잡이를 받아든 클라우디아가 그걸 붕붕 휘둘러댔다. 저만한 크기의 대검을 한 손으로 잡고 휘두르는데도 바람 소리가 들렸다.
“……무게는 변한 거 없는데.”
“갑자기 웬 무게 타령?”
“너 요즘에 스키엔티아 님이랑 자주 붙어다녔잖아. 혹시 마법 배워서 써먹은 건가 했지.”
“퍽이나 그랬겠다.”
“알아, 알아. 그냥 하도 안 믿겨서 농담 한번 해본 거야. 네가 마법 썼으면 진작에 알아차렸을걸?”
클라우디아가 연신 감탄을 해대는 동안 저만치에서 같이 놀라고 있던 아이리스와 리제, 에리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셋 모두 놀란 기색을 감추치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세세한 감정은 조금씩 달랐다. 아이리스는 의문, 에리카는 경악, 리제는 흥분이 놀란 기색 안에 조금씩 섞여들어가 있었다.
“뭘 한 거지, 델타?”
“뭘 했냐니, 그냥 보는 대로지 뭐. 클라우디아가 휘두르는 거 힘으로 붙잡아서, 짜잔.”
“힘으로 붙잡아……? 잠깐만요. 그러면 언니가 델타 씨한테 붙잡혀 있던 것도 연기가 아니라 진짜였어요?”
“대련 시작하기 전에 못 들었어? 전력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 제법 썼다고 말했었는데.”
“…….”
아이리스와 에리카가 입을 떡 벌렸다. 너무 놀란 나머지 제자리에 굳어버린 이 둘과는 반대로, 잔뜩 흥분한 기색의 리제가 폴짝폴짝 뛰며 내게 달려들었다.
리제는 내 허리에 다리를 단단히 휘감고 매달려선 귀여워 죽겠다는 듯 키스를 퍼부어댔다. 키스 세례는 입맞춤이 수십 번씩 이어진 후에야 끝이 났다.
“굉장해, 델타! 어떻게 된거야? 뭘 했길래 이만큼이나 세졌어?”
“뭐…… 별건 아니야. 여신님이랑 대면하고 나서부터 기억이 돌아오기 시작했거든.”
“……정말로?”
미소로 가득하던 리제의 얼굴이 대번에 진지해졌다. 아이리스와 에리카, 클라우디아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지금은 너무 옛날의 일이 되어버렸긴 했지만, 은빛 여명 기사단을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이 저거였으니까.
마녀의 저주에 당해서 모든 신체 능력이 밑바닥까지 퇴화한 데다 기억마저 잃어버렸다고 말이다. 버려진 자의 설정에 적당히 끼워맞춘 변명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전부 다 진실이 되어버렸다.
닉스가 나한테 일종의 저주를 건 것도 맞고, 신체 능력을 밑바닥까지 퇴화시킨 것도 맞고, 심지어는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까지도 전부 다 맞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아직 다 돌아오진 않았고, 일부 정도만. 그래도 기억이 돌아오면서 능력도 같이 돌아오고 있어. 방금도 그래서 가능했던 거야.”
닉스는 레벨과 스탯이라는 개념이 내가 예전의 힘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말했었다. 즉, 힘만 되찾는다면 브닼 1부터 3까지의 게임 시스템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에 이미 겪어봤으니까.
3부터는 많이 나아졌지만, 좋게 말하면 개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만듦새가 엉성했던 게임이 브닼 1과 2다. 작정하고 활용한다면 밸런스를 작살내버리는 것들이 제법 많았다.
얻는 순간 게임 전체를 날먹해버릴 수 있을만큼 사기적인 마법도 있고, 방금 전처럼 무기를 이용한 공격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확정적으로 붙들어버리는 기술도 있다.
게임을 직접 해보지는 않았지만, 브닼 4의 전작들이다보니 관련된 정보는 제법 많이 찾아봤었기에 당장 떠오르는 것만 꼽기에도 한 손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아마 기억만 돌아온다면 써먹을 수 있을 테지.’
“……델타. 그러면 네가 옛날에 누구였는지도 기억 나?”
어느샌가 땅으로 내려온 리제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나는 대답하기가 애매한 나머지 그냥 웃기만 했다.
최초의 불사자. 사명을 이어받은 자. 저주를 억누른 자. 그 3명이 전부 다 나였는데, 그걸 대놓고 말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내 웃음을 뭐라고 받아들였는지 기사단장들이 투덜대는 사이, 누군가 연무장에 내려앉더니 순식간에 이쪽으로 다가왔다. 발소리는커녕 흙먼지조차 일지 않는 모습이었다.
“델타 기사단장님.”
예전부터 카이킬리아의 명령을 전하던 메이드였다.
“무슨 일이지?”
“황제 폐하께서 기사단장님께 즉시 지정한 장소로 움직이라는 명을 내리셨습니다.”
“알았어. 어디로 가면 되는데?”
무감정한 눈동자가 날 향했다.
“황궁의 보물고 앞입니다.”
‘황궁 보물고라,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됐네.’
원래는 페치에게서 황금 열쇠를 받은 다음, 미네르바에게 적당히 말해두고 황금 열쇠를 이용해 들어갔다 나올 생각이었다.
게임에서도 고대의 스크롤을 3개 이상 건네주면 황궁 보물고에 멋대로 들어갔다 나와도 제국과 적대 상태가 되지 않는다. 영원의 마법사가 황제를 설득해서 그렇다는 설정이었다.
‘이제는 그게 아니더라도 카이킬리아한테 부탁만 하면 열어줄 것 같긴 한데…….’
지옥에 갔다온 이후로 카이킬리아와의 관계가 굉장히 급격하게 가까워졌으니 말이다. 이렇게 되면, 황금 열쇠의 사용처를 다시 고민해야 할 듯했다.
“델타! 이쪽이야!”
보물고 앞에서는 카이킬리아와 아우로라가 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둘이 나란히 선 모습을 보고 있자니 카이킬리아 어머니의 유전자가 정말 어마무시하게 강력했구나 싶었다.
한쪽이 조금 더 어려보인다는 점을 제외하면 고모와 조카 관계가 아니라 쌍둥이 자매라고 해도 믿을 지경이었다.
예전에는 저게 모델링 돌려쓰기의 결과물인 줄 알았는데, 진실은 그냥 유전자의 힘 덕분이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폐하.”
“여가 너를 구태여 이곳까지 불러낸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 결국 여의 입으로 직접 말하게 할 셈이로구나. 이 능글맞은 것아.”
의도를 뻔히 알면서도 모르겠다며 잡아떼는 내 태도에 카이킬리아가 인상을 잔뜩 찌푸렸으나, 예전과 같은 살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전의 카이킬리아가 정말 수틀리면 목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의 느낌이라면, 지금의 카이킬리아는 전혀 달랐다.
아무리 고압적인 척 자존심을 세워봤자 앙탈이라는 느낌밖에 안 들었다.
“고모님한테 설명 들었어. 괜찮아, 델타?”
아우로라가 걱정을 듬뿍 담은 시선으로 날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여신님이 직접 고쳐주셨거든요.”
“다행이네. 혹시 잘못됐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어. 아, 그리고 성국에서 한바탕 저지르고 왔다며? 하긴, 그 정도는 돼야 여신님이랑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거겠네.”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누구랑 같이 있었는지 까먹었어? 교황 성하가 너 따라서 황궁까지 찾아왔다는 거 전해듣고 고모가 바로 교황 성하들 부르시던데.”
“…….”
둘이서 무슨 말을 해댔을지 예상한 내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카이킬리아는 이런 나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이 미련한 것아. 신을 위한 일이라면 자기 팔다리를 잘라 바치래도 기꺼이 그럴 광신도로 이루어진 나라가 성국이거늘,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겁도 없이 성국 한복판에 강림하였단 말이냐.”
“……의도한 건 정말로 아니었습니다.”
“의도하였든 하지 않았든, 지금부터 너의 말 한마디는 물론이고 행동 한 번과 시선 하나까지 그 광신도들이 벌이는 숭배와 찬양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인 일이니라.”
저 표현에 일말의 과장조차 섞이지 않았다는 걸 얼마 전까지 몸소 경험하고 왔던지라 더 무섭게 들리는 말이었다. 카이킬리아는 내 질색하는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덤덤히 말을 덧붙였다.
“그것이 싫다면, 평생 황궁에 거주하며 여의 곁을 벗어나지 않는 방법도 있으니 잘 생각하여 보거라.”
“…….”
내가 지옥의 이지선다에 갈등하는 사이, 카이킬리아는 중앙 홀의 출입구보다 크기는 작지만 몇 배나 더 화려한 문에 손을 얹었다.
전체가 황금으로 이루어졌고, 표면에 붙은 보석만 떼다 팔아도 평생을 먹고살 수 있을법한 그런 문이었다.
손이 올려지고 3초 가량이 흐르자 문이 양 옆으로 열렸다. 카이킬리아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우로라가 두 번째, 내가 마지막이었다.
문은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저절로 닫혔다.
“우와아…….”
계단의 모습을 본 아우로라가 감탄사를 흘렸다.
눈 닿는 모든 곳이 황금에, 보석의 종류와 개수는 세는 것을 포기해야 할 만큼 널리고 널려 있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보석 결정이 툭툭 채일 정도였다.
보석을 최대한 안 밟으려고 조심스레 걷는 아우로라의 기척을 감지했는지, 카이킬리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충고를 건넸다.
“보물고 전체가 미네르바의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다, 아우로라. 네 힘 따위로는 아무리 짓밟아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테니 평범하게 걷거라.”
그 말을 들은 아우로라는 머쓱한 얼굴로 날 한번 돌아보고선 평범하게 걷기 시작했다.
계단을 따라 얼마나 내려갔을까, 또다른 문이 보였다. 바깥의 것에 꿀리지 않을, 어쩌면 더 화려할지도 모를 외형이었다.
카이킬리아가 그 앞에 섰다. 바닥에 깔린 마법진이 빛나며 허공에 푸른색의 사각기둥이 나타났다. 카이킬리아가 그 위에 손을 얹었다.
‘……이거, 황금 열쇠로 못 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저쯤 되면 사실상 지문인식이나 다를 바 없지 않나.
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열렸다. 틈 사이로 내부의 풍경이 드러났다. 아우로라는 카이킬리아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마자 그 자리에 멈춘 채 굳어버렸다.
안쪽에는 단어 그대로 황금의 산이 있었다.
높이만 족히 수십 미터는 되어보였는데, 그런 황금의 산이 수십 개나 됐다. 산을 반쯤 뒤덮은 보석의 향연과 중간중간에 꽂힌 온갖 무기들은 덤이었다.
게임에선 먹을 수 있도록 배치된 아이템 몇 개 빼고는 전부 장식이었지만.
그래픽으로 봤던 풍경이라 그럭저럭 놀라는 선에서 그친 나와는 달리, 뻣뻣이 굳어버린 아우로라는 움직일 생각을 하질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등을 떠밀며 앞으로 움직였다.
카이킬리아는 황금 사이를 지나 거침없이 중앙으로 들어갔고, 한참을 더 움직인 후에야 발을 멈췄다.
“이 룬이 무엇인지 알겠느냐, 칠흑 성야 기사단장.”
발을 멈춘 자리에는 룬 비석이 있었다.
“예, 폐하.”
“여는 이것을 네게 주고자 한다.”
“그 룬을…… 말씀이십니까?”
“그렇노라.”
카이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원래 황제한테 게임 끝까지 충성을 바쳐야 최종 보상으로 주어지는 룬이었다. 얻는 방법에 걸맞게 효과도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그래, 발동만 되면 좋은 효과지. 발동만 되면…….’
“고모님, 저 룬이 뭔데요?”
내가 저 룬의 사용 조건에 속으로 쓴웃음을 삼키는 사이, 아우로라가 질문했다. 카이킬리아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도록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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