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48)
r 248 – 과거의 편린 – 3
내성굴림. 카이킬리아가 주겠다고 한 룬의 이름이다.
이름만 봐서는 무슨 효과인지 애매해 보이지만, 간단히 말해 룬을 착용한 상태에서 죽으면 캐릭터가 부활할 수 있도록 해주는 효과였다.
일단 죽는 순간 현재 경험치바의 절반이 날아가고, 소지금도 절반씩이나 깎아버리니 효과만 본다면 필수적으로 착용해야 하는 룬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효과가 확률 발동이라서 그렇지.’
내성굴림 룬의 부활은 확정 발동이 아니라 확률 발동이었다.
확률이더라도 수치가 제법 높다면 또 모르겠는데, 그 이름답게 주사위를 2개 던져서 2개 다 1의 눈이 나오면 부활이다. 즉, 1/36이니 퍼센트로는 3%조차 안 됐다.
사실 10%나 20%만 됐어도 가챠겜보다 혜자 아닌가? 하면서 미친척 넣고 다니는 컨셉충들이 많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2.78%는 혜자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런 숫자였다.
심지어 닼라 모드로 넘어오면서, 그러니까 현실로 넘어오면서는 1/36으로도 모자랐는지 확률 주사위 하나를 더 추가해놓았다.
‘1/216 확률인 룬을 대체 누가 쓰는데?’
가뜩이나 룬 슬롯은 4개밖에 안 되는데 말이다.
아마 내성굴림 자체의 효과 때문이 아니라 저 룬과 조합해서 사용하는 또 다른 룬 때문에 확률에 너프를 먹인 것 같긴 한데, 너프가 너무 심각해서 아무도 안 썼다.
이클립스도 저런 걸 대체 왜 만들어놨는지 의문이었다.
“칠흑 성야 기사단장. 그대는 룬 비석을 발견하면 황궁에 의무적으로 보고해야 한다는 법령에 대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예, 폐하.”
“그것이 현재는 유명무실한 의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게 유명무실한 의무였기에 카산드라가 자기네 영지에 있던 룬을 꿀꺽하려다 실패하고 날 부를 수 있었겠지. 거기서 빌어먹을 파란색 증기기관차랑 만나기도 했고.
“해당 법령이 지정되었던 이유도, 지금은 유명무실해진 이유도 모두 이 룬 때문이니라.”
“……이 룬을 얻기 위한 법령이었습니까?”
“정확히 보았다.”
카이킬리아가 비석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졌다. 혹시 잘못해서 자기가 룬을 건드릴까 불안했던 듯했다. 손을 갖다대는 순간 소유권이 인정될 테니 말이다.
“착용한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나도록 해주는 룬이 있다면, 그건 마땅히 황가의 소유여야 하지 않겠느냐.”
내막을 모른다면 확실히 탐을 낼만 한 물건이긴 했다.
“리바누스 황조는 대대로 이 룬의 비석을 찾는 것에 심혈을 기울여왔노라. 여가 언급한 법령은 이것이 혹여라도 제 의무를 다하고 순환할 때를 대비하여 만든 것이다.”
“찾고 나서는 빽빽하게 적용할 필요가 없을 테고 말이죠.”
이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만약 내성굴림을 소유하고 있던 황제가 죽는다면 룬이 순환을 시작할 거고, 대륙 전체를 뒤져가며 다시 찾아다 보물고에 갖다놓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먼저 발견하고 낼름 먹어치우는 일을 막기 위해 그랬겠지.
“비록 죽음으로부터 되살아날 기회는 한 번뿐이나…… 그 한 번만으로도 범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을 터.”
‘응? 한 번?’
게임에서는 내성굴림의 효과로 부활해도 죽은 이후에 다시 쓸 수 있었어서 뭔가 싶었다가, 여기는 ‘휴식’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룬의 쿨타임이 초기화되지 않을 테니, 일회성이라고 생각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황가의 피를 잇지 않은 사람에게 이 룬의 정보를 알리는 것조차 아이테르눔 제국의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하물며 이것을 건네주는 일은 어떻겠느냐. 허나, 여는 이미 결정을 내렸노라.”
“……제게 이걸 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폐하?”
“너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황금빛 동공이 나를 또렷이 응시했다.
“네가 상처입어 쓰러진 모습을 보았고, 네가 의식을 잃은 모습을 보았고, 네가 죽음에 가까워져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한 발짝. 카이킬리아가 내게 다가왔다.
“또한, 나의 감정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발짝. 처음부터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기에, 우리 둘은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네가 상처입어 쓰러졌을 때 밀려왔던 감정이 슬픔임을 알았고, 네가 죽은 줄 알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비통임을 알았고, 네가 눈을 떴을 때 차올랐던 감정이 환희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카이킬리아는 내 바로 앞에서 멈췄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지고, 카이킬리아의 가슴 끄트머리가 내 흉부에 살짝씩 스칠 정도였다.
“여가 네게 그러한 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네가 죽는 것을 원치 않기에 이러는 것이다.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하느냐?”
“……아닙니다, 폐하.”
나는 확률 발동이라 어차피 받아봤자 쓸모 없다는 생각을 머리 한 구석으로 치워버렸다. 카이킬리아가 저렇게까지 말하고 있는데 쓸모 없다는 생각을 떠올리면 그건 미친놈이다.
팔을 뻗어 카이킬리아를 끌어안았다. 카이킬리아는 일말의 저항조차 없이 품 안에 안겼다. 가녀린 손이 슬금슬금 내 등을 타고 올라왔다.
끝까지 자존심을 세우던 예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자연스레 카이킬리아의 뒤에 있던 아우로라와 눈이 마주쳤다. 아우로라가 입술을 뻐끔거리며 뭔가를 소리 없이 말했다.
내가 알았다는 뜻으로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아우로라는 어디 지켜보겠다는 듯 가슴 밑에서 팔짱을 꼈다.
“칠흑 성야 기사단장. 아니, 델타.”
내게 가만히 안겨 있던 카이킬리아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가 살아있는 한 이 세상을 떠나지 마라. 아이테르눔 제국의 황제로서 내리는 명령이자, 너의 여자로서 하는 부탁이니라.”
“알겠습니다, 카이킬리아.”
“그래, 그거면 되었다.”
나는 팔을 풀고 그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카이킬리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뒤에서 아우로라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는 중이었다.
입술을 뗐다. 카이킬리아의 얼굴은 그 짧은 시간 만에 제법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숨소리도 조금 거칠었다.
“델타.”
“예, 폐하.”
“여신에게 답을 구하겠다던 사항은 어찌 되었느냐?”
아.
“……오셨습니까, 단장님.”
“왜 얼굴이 반쪽이 됐어? 뭔 일 있었어?”
나중에 다 모였을 때 설명해주겠다는 말로 카이킬리아의 추궁을 넘어간 뒤, 아우로라와 함께 제법 오랜만에 성으로 복귀했다. 그러자 수척하게 변한 라크시아가 나를 맞이해주었다.
카이킬리아는 내가 말한 ‘다 모였을 때’의 정체를 대충 예상했는지 눈살을 살짝 찌푸렸으나, 내게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며 넘어가주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조금 힘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별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길래?”
“……단장님 때문이잖습니까.”
뜬금없는 내 탓에, 나는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나? 내가 뭐?”
“소식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들을 수밖에 없었죠. 라파엘라 성국에서 살아있는 성자로 추대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
일단 절대 축하하는 눈은 아니긴 한데.
저 얘기가 여기까지 퍼진 걸 보아하니 뭐 때문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이 여기까지 찾아와선 이곳에 성당을 설립하겠다며 난리입니다. 영주 권한 대행과 제가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는 있는데, 절대 안 물러설 기세더군요. 돈이라면 아이테르눔 제국 전체의 한 해 예산만큼 낼 수도 있으니 허락만 해달라며 버티고 있습니다.”
예상한 그대로였다. 어쩐지 플로레타와 루나가 날 따라오는 걸 너무 쉽게 포기한다 했더만, 다 계획이 있어서였나.
나는 저 광신도들한테 죽어라 시달렸을 라크시아와 라나에게 속으로 애도를 표했다. 설마 이 정도로 발빠르게 행동을 개시할 줄은 몰랐다.
“이단심판관이랑 이단심문관이라고 했지? 그 둘, 지금 어디 있어?”
“영지 밖의 산에 있습니다. 단장님이 주무시던 방을 향해 하루 종일 기도를 올리는 중이라고 합니다.”
스텔라와 셀레네는 내가 호출하자마자 달려왔고, 괜히 여기서 이러지 말고 돌아가라는 말에 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이 그렇게 했다.
조만간 성국에 들를 테니 교황들에게 자기 할 일을 하라고 전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플로레타와 루나를 계속 데리고 다닐 수는 없지만, 너무 방치해둘 수도 없으니까.
내 말 몇마디로 상황이 말끔히 해결된 것을 본 라크시아와 라나는 현자 타임이 제대로 온 표정을 했다. 아우로라가 그 옆에서 깔깔 웃어대며 라나를 놀려먹었다.
“……이건 반칙입니다.”
“그렇게 해결할 수 있었으면 좀 더 일찍 오지 그러셨습니까.”
둘의 푸념을 들으며 곧장 닉스에게로 향했다. 여기 찾아온 이유부터가 닉스를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닉스는 자기 방에서 잠에 빠져 있었다. 자기 키만한 크기의 안는 베개를 반쯤 끌어안고, 세상 모른 채 잠든 얼굴을 보고 있자니 제법 귀여웠다.
물론 옷차림이랑 가슴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으응…….”
기척을 알아차린 듯 닉스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침대 근처에 있는 날 보더니 히죽 웃었다.
“여신님은 잘 만나고 왔어, 델타?”
반말 쪽이었다.
“그래. 내가 뭐였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부 들었지.”
“대충 눈치챘어. 나한테 걸린 제약이 사라졌거든. 여신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말해주신 것 같네.”
평소의 그 키히힛거리는 이상한 웃음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영혼 수호녀의 성격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제약도 풀렸겠다, 굳이 닉스의 다른 인격 연기를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나는 왜 찾아온 거야? 할 말이라도 있어?”
“할 말이 있기도 하고, 기억을 좀 더 빠르게 찾을 필요가 생겨서.”
세계를 먹는 자는 분명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것도 화가 잔뜩 난 채로 말이다.
자만심에 너무 찌들어버린 나머지 우리를 바로 안 죽이고 온갖 헛짓거리나 해대다가 꼴사납게 도망쳐버렸으니, 그놈 성격상 화가 안 나는 게 더 이상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저번처럼 방심하지도 않을 거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기억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닉스랑 둘이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기도 하고.
“알았어. 어디로 가면 돼?”
침대에서 빠져나온 닉스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얇디 얇은 와이셔츠 한 장으로 감싸인 가슴이 크게 출렁였다.
“일단 보스부터 전부 때려잡고 생각해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