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50)
r 250 – 과거의 편린 – 5
ㅡ키이이이익!
내가 왼손에 흑염을 끌어모았다가 머리 위에 쏟아붓자, 놈이 수많은 다리를 빠직거리며 발광했다. 거대한 몸체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흑염이 꺼질 무렵, 놈의 몸 중앙에 자그마한 붉은 점이 보였다. 흡혈 충동 룬의 효과였다. 놈의 다리를 밟고 머리 위로 훌쩍 도약했다.
손바닥에 닿는 역겨운 감촉을 애써 무시하며 놈의 뒤통수에 자리를 잡았다. 길다란 검은색 머리카락을 쥐어 뜯어버리고, 뒤통수를 붙잡아 놈의 목에 칼을 푹 찔러넣었다.
수십 개의 다리가 파르르 떨리며 최후의 경련을 시작한 사이, 칼을 밀어넣은 채 반시계 방향으로 떨어져 목을 반토막내면서 착지했다. 타이밍 좋게 날개 잃은 악몽의 흑염이 꺼졌다.
목이 2/3 가량 잘려나간 머리는 몸통에 그대로 붙어있는가 싶더니, 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아래로 푹 꺾였다. 철퍽, 머리가 독늪에 박혔다.
머리 잃은 몸통은 옆으로 픽 무너져선 다리를 굽히고 징그럽게 파르르 떨어댔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가락을 튕겨 흑염을 일으켰다. 검은 불꽃이 놈의 시체를 갑피 하나 남기지 않고 몽땅 태워버렸다. 타들어가는 갑피에서 역겨운 냄새가 났다.
‘끔찍하네.’
놈의 머리카락과 맞닿았던 손을 바싹 탄 나무에 문질러 닦았다. 손바닥에 거무튀튀한 잿가루가 묻어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차라리 잿가루가 묻는 편이 훨씬 더 낫다.
주위에 더 이상 움직이는 게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나무 구멍에 숨어있는 닉스에게로 돌아갔다.
“호에엥엑…….”
닉스는 입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커다란 가슴 탓에 무릎을 굽히다 만 어정쩡한 자세로 눈을 꼭 감고선 귀를 가린 채 나무 구멍 안에서 움츠려 벌벌 떨고 있었다.
“닉스? 괜찮아?”
“히이이익! 히익! 호에에엑!”
내가 그러면서 어깨를 톡 건드리자마자, 닉스는 벼락이라도 맞은 듯 펄쩍 뛰며 발광했다. 보라색과 초록색이 반씩 섞인 머리가 바싹 타들어간 나무를 부수고 튀어나왔다.
가뜩이나 산발이던 머리에 나무 파편과 잿가루가 뒤섞이고, 머리카락에 달라붙지 못한 것들이 어깨와 가슴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아?”
그리고는, 시선이 마주치자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눈을 몇 번 끔뻑거리더니,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달아오른 피부는 이내 귓바퀴까지 물들였다.
브닼 3에서 불사 지네까지 만났던 여자가 왜 이리 벌레를 무서워하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런 기억들은 전부 다른 닉스가 가져갔었다. 그러니 내성이 없어진 거겠지.
“괜찮아. 다 죽였으니까. 진정해, 닉스.”
“흐으으으으으…….”
얼굴 전체가 터질 듯이 새빨개진 닉스를 품에 안아 끄집어냈다. 몸은 물론 와이셔츠까지 곳곳에 검댕과 잿가루가 묻어 있었다. 그걸 손으로 툭툭 털었다.
얼굴을 닦아준 뒤, 마지막으로 상체에 묻은 잿가루를 털어주려다가, 아주 당연하게도 가슴골과 윗가슴에서 땀과 뒤섞인 모습을 보고 잠깐 멈칫 했다.
닉스는 방금 전에 발광했던 게 아직도 부끄러운지 양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가슴골에 손을 넣지 않는 선에서 근처를 닦아냈다.
검게 물든 땀방울 몇 줄기가 가슴골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저것까지는 내가 어떻게 해줄 영역이 아니었다.
“이제 좀 진정됐어?”
끄덕끄덕. 닉스는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가, 부끄러워하면서도 어설프게 입을 열어 질문했다.
“그으…… 저기이…… 기억은, 되찾으셨나요?”
“어떨 거 같은데?”
“헤헤…… 성공하셨을 것 같아요…… 틀린 말씀을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요…….”
“제대로 봤네. 어느 정도는 성공했어.”
나는 닉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고작 마법 몇 개밖에 안 떠오른 반쪽짜리 성공이지만, 핵심은 최대한 브닼 1~3과 비슷하게 느껴지는 풍경을 찾아다니던 내 계획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것이다.
“추, 축하드려요. 헤헤…… 그러면 이제…….”
닉스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기억을 되찾는 데도 성공했겠다, 독늪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계속 가야지.”
“……네?”
기대를 걷어차버려서 미안하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았다. 내 대답을 들은 닉스의 표정이 눈에 띄게 침울해졌다.
“아직 보스가 한 마리 남아있어서. 그놈은 잡고 가려고.”
“…….”
“나 혼자 갔다와도 충분하니까, 이번에야말로 고지대에서 잠깐 쉬고 있어. 순간이동이 없더라도 걸어서 20분 정도면 충분할 거야. 될 수 있으면 빨리 갔다 올게.”
물론 독늪에서 도보로 20분이니 약간 불쾌한 경험이 되긴 하겠지만, 그래도 닉스가 벌벌 떨면서 나를 따라오게 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벌레랑 곤충을 이렇게까지 싫어하는데, 독늪의 액기스 중에서도 액기스만 모아놓은 그 던전에 데려갈 순 없었다. 아무리 본인이 원한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닉스는 도리질을 쳤다.
“아, 아니에요…… 헤헤…… 기억 되찾는 거 중요하시잖아요…… 저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게 하실 수는…….”
“이 다음에 갈 곳은 방금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징그러운데?”
“없…….”
닉스는 하려던 말을 미처 끝내지도 못하고 숨을 삼켰다. 딸꾹, 앙증맞게 다물어진 입술 사이로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저것보다 훨씬 더 끔찍한 벌레들이 사방에 득실거리고, 던전 바닥부터 천장, 벽까지 온갖 곳에 알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알들 사이에 불어터진 인간 시체도 엄청나게 매달려 있고…….”
내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그걸 듣는 닉스의 얼굴이 점차 새파래지기 시작했다. 딸꾹질 소리도 점점 더 심해졌다.
일부러 겁을 잔뜩 준 나는, 닉스를 한참이나 어르고 달랜 끝에 결국 얌전히 기다리고 있겠다는 확답을 받아낼 수 있었다.
‘혼자 두는 건 미안하지만, 벌레를 저렇게까지 싫어하는데 데리고 갈 수는 없으니까.’
적당히 무서워하는 수준이었다면 원하는 대로 데려가줬을 것이다. 하지만 닉스의 혐오도는 적당히와 거리가 멀었다. 저렇게까지 싫어한다면 억지로라도 떼놓는 편이 맞았다.
가는 길이 불편한 건 내가 조금 참으면 그만이다.
“다, 다녀오세요…… 그리고, 같이 못 가드려서 죄송해요…….”
“아니, 괜찮아. 금방 갔다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헤헤, 네…….”
포옹으로 인사를 끝낸 닉스가 마법으로 간단한 오두막을 하나 만들더니 그 안에 틀어박혔다. 그리고는 창문 밖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나를 쳐다보았다.
던전을 클리어하고 나오면 하늘 위로 마법을 쏘아올릴 테니 그걸 보고 데리러 와달라고 말했기에,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나는 닉스의 배웅을 받으며 독늪으로 다시 들어갔다. 지형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험해졌다. 늪은 무릎까지 차올랐고, 덤벼오는 벌레의 숫자도 늘어났다.
미리 독 내성과 저항, 면역을 챙겨두지 않았더라면 반도 못 가고 중독으로 쓰러졌겠지.
중간중간 덤벼드는 벌레를 죄다 불태우며 걸어간 지 얼마나 흘렀을까, 바로 앞에 수직으로 뚫린 거대한 구멍이 보였다.
‘저기다.’
던전의 입구였다.
근처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기억 속 모습과 일치한다는 걸 확인한 뒤, 액체가 흐르는 방향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커다란 알무더기가 발에 짓밟혀 끔찍한 소리를 퍼뜨렸다.
‘빌어먹을 알무더기도 여전하고.’
던전 내부의 모습은 닉스에게 설명해줬던 그대로였다. 정신 건강은 물론이고 눈 건강에도 좋지 않을 듯한 풍경이었다. 다 태워버리고 싶어서 손이 근질근질했다.
ㅡ사사사사삭!
침입자를 죽이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사방에 널린 인간 시체처럼 알을 위한 양분으로 삼기 위해서인지. 저만치에서부터 다가오는 벌레 소리가 들렸다.
단순히 몇 놈 다가온다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벌레로 이루어진 파도가 생겨난 듯했다. 바닥, 벽, 천장. 어디 하나 할 것 없이 벌레로 꽉 차 있었다.
달려드는 몇 놈만 잡으면서 숏컷으로 직행할 예정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저래서야 이 자리에서 앞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갈 것 같았으니까.
‘일단 장판기부터 하나 던지고 시작하면 되겠지.’
그리고, 잡몹 여러 마리가 등장하는 상황만큼 흡혈 충동 룬과 생명력 전환 룬의 효율이 극대화되는 상황도 없었다. 나는 왼손에 커다란 검은 불꽃을 만들었다.
머릿속으로 소모값을 계산하며 팔을 휘둘렀다.
벌레형과 곤충형 적들의 제일 큰 약점이 바로 화염 계열 공격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흑염에 닿은 벌레들은 단 하나의 예외조차 없이 펄쩍펄쩍 뛰어댔다.
그 앞에서 왼손을 뻗어 흑염을 방사했다. 바닥에 깔린 화염 장판과 손바닥에서 뿜어져나오는 화염이 합쳐지자, 놈들은 내 근처로 오지도 못하고 녹아버렸다.
ㅡ키이이이이익!
여태껏 수없이 들었던 소리와 함께, 놈들의 갑피와 속살이 타들어가며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흑염 사이사이로 붉은색 점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붉은색 점을 무시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7초…… 8초…… 지금.’
마법을 시전한 지 8초가 막 지났을 무렵, 마법을 중단하고 화염 장판으로 다가가 제일 앞에 있는 놈의 머리를 따버렸다. 깎여나갔던 생명력이 단숨에 차올랐다.
화염 장판을 깔고, 화염을 내뿜고, 생명력이 모자라면 가까이 다가가 체력을 흡수하고. 이 과정을 서너 번쯤 반복하니 다가오는 벌레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놈들의 공세가 잠시 잦아든 틈을 타 옆의 통로를 향해 뛰어들어갔다. 던전이니만큼 원래라면 보스룸으로 가기 위해 내부를 한참이나 탐험해야 한다.
온 사방에 놈들의 알과 불어터진 시체가 깔리고, 오만 군데서 덤벼드는 벌레들의 습격을 뿌리치면서 말이다.
하지만 초회차가 아닌 다회차라면, 그래서 보스룸으로 이어지는 숏컷을 알고 있다면 보스룸으로 직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초회차에서도 가능은 한데, 어지간히 온갖 걸 다 건드려보는 변태가 아니고서야 사실상 못 찾는다고 봐도 좋았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왼쪽, 그리고 다음 모퉁이에서 오른쪽. 그 앞에 보이는 방에서 세 번째.’
머릿속에 떠올린 대로 세 번째 방에 뛰어들어갔다. 다른 장소보다 알이 훨씬 더 빽빽하게 돋아난 장소였다.
흑염을 일으켜 방 입구 정면의 알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화마에 휩쓸린 알이 퍽퍽 터져나가고, 그 사이에 묻혀 있던 자그마한 길이 드러났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아터진 길. 나는 망설임 없이 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벌레들이 내 뒤를 따라 차례차례 들어왔다가 정확히 들어온 순서대로 죽어나갔다.
체력을 끝까지 채운 다음 보스룸 안까지 뛰어들어갔다. 그러자마자 파도처럼 몰려왔던 벌레들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어디보자, 보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찾으려 한 거였는데, 어째 이 드넓은 공간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뭐지?’
분명 플레이어가 안에 들어오자마자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나타나야 하는데.
내가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 저만치에서 철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이 짓밟히는 소리였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나타난 것이 던전의 보스는 맞았다. 하지만, 외형이 내 기억과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플레이어 캐릭터의 네다섯 배는 되어보이던 크기가 내 키와 비슷할 정도까지 줄었고, 곤충의 다리가 아니라 사족 보행을 했다.
무엇보다, 몸에 지네가 휘감겨 있었다.
등 부분은 검은색이고 배 부분은 회색인 몸뚱아리, 절지동물 특유의 갑각과 백 쌍도 넘어보이는 짜리몽땅한 다리. 지네의 모습을 한 길다란 생물이 보스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저게 왜 여기…….”
불사 지네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