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51)
r 251 – 불사 지네 – 1
“저게 왜 여기…….”
내가 멍하니 선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나를 발견한 불사 지네는 즉시 숙주의 몸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지네의 몸뚱아리가 갑피를 찢으며 공간을 만들었다.
지네의 마디가 사라질 때마다 원래 이곳의 보스여야 했던 곤충은 팔다리를 경련했고, 마침내 불사 지네의 제일 아래쪽 마디까지 파고들자 우뚝 동작을 멈췄다.
파리와 개미를 반씩 섞어놓은 듯한 얼굴이 내게 고정됐다. 새빨간 동공이 물리적으로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했고, 아래턱과 위턱이 시끄럽게 딱딱거렸다.
콰직, 놈의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이 방에 있는 알들을 보호하듯 최대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어야 하건만, 알을 보호하기는커녕 자기가 먼저 짓밟아 부수고 있었다. 알 껍질이 터지며 초록색 액체가 줄줄 흘렀다.
저런 식으로 숙주가 불사 지네의 뜻대로 움직이는 모습은 브닼 3를 플레이 할 때 충분히 봐왔었다. 더 이상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정말 지겹도록 묘사됐었으니까.
‘온다.’
놈이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관절이 한계까지 비틀리다 못해 반대로 꺾여버리고, 가는 길에 놓인 알덩어리가 짓밟혀 버적버적 소리를 냈다.
날개 잃은 악몽에 흑염을 일으켜 머리를 후려갈겼다. 머리가 180도 가까이 돌아갔다. 균형을 잃은 몸이 왼쪽으로 홱 쏠리며 돌진하던 관성을 담아 땅바닥에 처박혔다.
놈은 바닥을 갈아엎으며 몇 미터쯤 밀려났다. 재빨리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저것은 알 껍질과 액체를 잔뜩 뒤집어 쓰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시 일어섰다. 녹아내린 얼굴과 완전히 작살났던 목이 몇 초도 되지 않아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 이런 걸로는 안 되나.’
놈이 다시 돌진했다. 날개 잃은 악몽을 겨누고 기다렸다가, 먼저 뛰쳐나가면서 머리에 꽂아넣었다. 놈은 머리 정중앙에 칼이 꽂혔음에도 그대로 밀고들어왔다.
숙주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 불사 지네 입장에서는 숙주를 험하게 굴리지 않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어차피 숙주의 고통이 본체에게 전달되는 것도 아니고, 설령 숙주가 박살나더라도 수복하면 된다. 그러니 숙주가 부서지건 말건 무작정 달려드는 것이다.
그런 특징은 지겹도록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놈의 앞다리가 휘둘러지기 직전에 손바닥을 뻗어 폭발을 일으켰다. 머리가 뜯겨나가고, 머리 잃은 몸이 붕 떠올랐다.
철퍽, 그 몸이 알무더기 위에 떨어졌다. 그리고 1초도 안 돼서 다시 일어났다. 뜯겨나갔던 머리는 그 짧은 시간만에 절반도 넘게 재생된 상태였다.
‘특징을 안다 한들…….’
재생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게임에선 진혼이나 특수 무기가 없더라도 HP를 다 깎을 순 있었는데, 저건 체력이 아예 깎이지도 않는 듯했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건만, 그 하나가 문제였다.
날개 잃은 악몽을 내려다보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진혼’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다른 보스를 잡을 때도 몇 번이고 시도해봤었는데 전부 다 실패로 돌아갔다.
세계를 먹는 자와 대치했을 때는 정말 죽기 직전이라 잠시 각성이라도 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실 하나만은 명백했다.
지금의 나한테는 저 불사 지네를 잡을 수단이 없다는 것.
‘잠시 후퇴해야 하나?’
보스전 클리어 이후에 알이 터져나가면서 숏컷이 나타날 부분을 흘끗 살폈다. 지금 있는 수단으로도 저 알무더기를 불태우기는 충분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단 빠져나간 다음에 방법을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ㅡ콰아앙!
몸을 잠시 멈추기가 무섭게 앞다리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를 내리찍었다. 옆으로 굴러 피하며 놈의 아래턱을 쳐올렸다.
놈은 수직으로 쪼개진 머리를 1초도 채 되지 않아 수복하고선 곧장 덤벼왔다.
‘머리가 반으로 쪼개졌는데 멈칫거리지도 않는다고?’
헛웃음을 흘리며 앞다리를 쳐냈다. 공방이 이어졌다. 불사 지네는 숙주의 몸을 움직일 수 있는 물리적인 한계까지 밀어붙이며 달려들었다.
놈이 바닥을 내리찍는 걸 확인하고 옆으로 굴러 피했다. 바닥을 후려갈긴 앞다리가 빠직, 하는 소리를 냈다. 바닥과 부딪힌 충격을 견디지 못해 박살난 것이다.
내 머리가 있던 자리를 놈의 입이 깨물었다. 윗턱과 아래턱이 맞닿자 아래턱이 작살났다. 너덜너덜해진 아래턱은 내가 자세를 바로잡는 그 잠깐 사이에 말끔히 재생되어 있었다.
이래서야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해봐야겠어.’
날개 잃은 악몽을 쥐고, 세계를 먹는 자에게 복부가 꿰뚫렸던 당시의 느낌을 되살렸다. 느릿느릿 생각하고 있을 시간은 없으니 최대한 빨리.
최대한 비슷하게 팔을 휘둘렀다. 날개 잃은 악몽이 놈의 상반신을 깔끔하게 자르고 지나가며 절단면을 흑염으로 지졌다.
“……씁.”
물론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잘려나간 상반신은 아래로 기우뚱 쓰러지기도 전에 서로 달라붙었다. 이렇게 된 이상, 대책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신성 촉매를 꺼내들어 왼손에 쥐고, 그걸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가 내리찍듯 휘둘러 촉매에서 터져나온 황금빛을 놈의 몸통에 냅다 꽂아버렸다.
빛의 창이 놈의 몸통과 바닥을 동시에 꿰뚫었다. 4개나 되는 팔다리가 창을 빼내려 발버둥쳤다. 그 틈을 타 거리를 벌리고 대책을 고민했다.
이대로 물러나서 충분한 시간동안 대책을 고민해야 할지, 아니면 계속 싸우며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는 확률에 걸어야 할지.
“…….”
어쩌면,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ㅡ콰드드득!
아무리 발버둥쳐도 창을 빼낼 수 없었던 듯, 놈은 아예 자기 상반신을 찢어 탈출했다. 제 할 일을 끝낸 빛의 창이 점차 희미해지며 사라졌다.
덕분에 지네의 몸뚱아리가 밖으로 드러났으나, 얼마 안 가 하반신이 달라붙으며 다시 자취를 감췄다.
‘그래.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몰라.’
브닼 3 시절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기회.
아무리 브닼 4의 세계에서 그 세계의 것과 비슷한 놈들을 찾아다닌다 한들, 진짜를 상대하는 것만큼 효과가 좋지는 않을테니까.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뻔했다. 날개 잃은 악몽을 쥐었다. 여태껏 내가 제일 잘 해왔고, 많이 해왔던 짓을 할 시간이었다.
될 때까지 하기.
“헤헤헤헤헤…….”
닉스는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비록 모양새 빠지는 이유였긴 하지만, 델타에게 어르고 달래졌던 일이 자꾸 떠올라서였다.
그러면서도 델타가 사라졌던 방향을 주시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하늘로 마법이 쏘아올려지는 그 즉시 순간이동을 사용해야 하니까.
“언제 돌아오시려나…….”
여기 덩그러니 남아 있으면서 벌레를 안 보는 건 좋은데, 그와 비례해 지루함도 올라갔다. 다른 인격이 기억 공유를 꺼놓았던 반동으로 잠들어 있으니 대화를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 해서 이 장소를 벗어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저 밑에 있는 징그럽고 불결한 것들에 대한 혐오가 훨씬 더 컸기 때문이었다. 당장 여기 남겨진 이유부터가 그것 때문이지 않은가.
닉스를 여기 두고 혼자 움직인 것이 델타 나름의 배려였다는 걸 알았기에 슬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벌레쯤을 못 버티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 훨씬 더 컸다.
솔직히, 델타가 설명해 준 모습을 직접 보면서 기절 안 할 자신이 없기도 했고 말이다.
이쯤 되니 곤히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인격이 부럽기까지 했다. 당장은 기억 공유도 안 되는 덕분에 저런 모습을 안 봐도 되니까.
“으응……?”
그렇게 델타를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닉스는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몹시 기괴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마음 한 켠이 불쾌해지는 듯한 느낌.
닉스는 조심스레 오두막을 나섰다. 치밀어오르는 불안감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불쾌한 감정이 느껴지는 방향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법까지 사용해가며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늪지대에 널리고 널린 기괴한 벌레들의 움직임만이 감지될 뿐이었다.
하지만 불쾌한 느낌은 여전히ㅡ
“어, 어?!”
그 순간, 다른 인격이 튀어나왔다.
“뭐야? 저것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닉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닉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같은 동작이었지만 이유는 달랐다.
한 명은 이 불쾌한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눈치챘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 명은 아직 잠들어 있어야 할 다른 인격이 벌써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놀라서였다.
“이건 분명…… 그래서는 안 되는데…….”
닉스가 손톱을 깨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육체가 바뀌었다 한들 닉스의 본질은 여전히 영혼 수호녀였다. 영혼에 관해서라면 그 누구보다 민감하다고 자신할 수 있었다.
영혼과 기억이 둘로 나뉘었어도 닉스라는 본질은 유지되었기에, 또 다른 인격조차 본능적으로 이질적인 영혼을 감지한 것이다.
‘불사 지네…….’
이 세계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의 영혼이자, 다른 세계에서 지겹도록 봐 왔었고, 이제 다시 볼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의 영혼.
앞니 사이에서 잘근잘근 깨물던 손톱 끝이 뚝 잘려나갔다. 불사 지네가 어떻게 이 세계까지 왔다는 말인가?
‘세계의 뒤틀림이 여기까지 번진 건가? 다른 세계가 다 사라졌으니까?’
하나는 산산이 부서졌고, 다른 세계는 모두 잡아먹혔고, 오직 하나만이 남았으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무척이나 좋지 않은 징조였다.
“저, 닉스? 그게 다 무슨 소리야? 불사 지네랑 뒤틀림? 그리고, 어떻게 나온 거야? 말투는 또 왜 그렇고?”
다른 인격의 목소리에, 닉스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불사 지네의 영혼을 감지하고 너무 놀란 나머지 반사적으로 튀어나와버렸다.
지금 떠올리는 생각은 다른 닉스도 공유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어쩔 수 없나.’
델타에게 넌지시 말해주었듯, 이제 슬슬 인격을 도로 합치는 걸 고려해야 할 시간이긴 했다. 인격을 둘로 나누었던 목적은 진작 달성했으니까.
단지 그 타이밍이 예상보다 좀 더 앞당겨졌을 뿐이다. 한번 의문이 생겨난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어봐야 닉스만 더 혼란스러워진다.
“닉스, 할 말이 있어.”
“할 말……?”
“우리 과거에 관한 이야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