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52)
r 252 – 불사 지네 – 2
ㅡ끼이이이이익!
놈의 얼굴 반쪽을 붙잡자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래턱이 서로 맞부딪히며 내 손을 물어뜯으려 발광했다. 손목을 꺾어 놈의 목을 90도로 비틀었다.
기괴한 각도로 비틀린 목이 머리와 몸통의 연결부위를 드러냈다. 드러난 목에 날개 잃은 악몽을 찔러넣었다. 칼날이 깔끔하게 안쪽으로 파고들어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갑피가 꿰뚫린 자리에서 초록색 피가 왈칵 솟구치는 걸 확인하고, 칼을 돌리면서 머리를 통째로 뜯어냈다. 연결부위를 잃은 머리는 손쉽게 뽑혔다.
뜯어낸 머리를 바닥에 내던진 다음 힘껏 짓밟았다. 콰직, 발 밑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 머리가 존재하던 자리에는 불사 지네가 꾸물거리고 있었다. 지네가 마디를 징그럽게 꼬아댔다. 짤막한 다리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몸통을 발로 걷어찼다. 머리 잃은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다리 4개가 허공을 허우적거리기도 잠시, 위로 떠올랐다 내려오는 그 짧은 순간에 재생을 끝내고선 가뿐히 내려앉았다.
‘이것도 실패.’
나는 미련없이 다음 방법을 생각했다.
브닼 3에 나왔던 진혼의 모션을 최대한 기억나는대로 따라해보고 있는데, 저놈이 아직 멀쩡하다 못해 기운이 넘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별 소득은 없었다.
놈은 제자리에서 아래턱으로 딱딱 소리를 내며 기회를 노리는 중이었다. 나한테 무작정 덤벼들어봤자 두들겨 맞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을 학습한 듯했다.
자기가 두들겨맞든 말든, 그냥 작정하고 개싸움으로 밀어붙이면 대충 일주일 쯤 뒤에 승리할 수 있을텐데도.
그렇게까지 오래 싸움을 벌여댈 인내심은 없는 모양이었다.
ㅡ키르르륵! 키륵!
대치는 오래 가지 않았다. 놈이 등짝에 달린 갑피로 무언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처음 보는 모습에 내가 그 의도를 파악하려 멈칫거리는 사이, 그에 화답하듯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사각사각, 하는 메아리였다.
‘잠깐. 저거…….’
어딘가 굉장히 익숙하게 들렸기에, 저놈이 덤벼들어도 곧장 반응할 수 있는 선에서 몸을 틀어 뒤를 쳐다보았다.
‘……역시나.’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던전에 득시글거리던 벌레들이 보스룸으로 향하는 통로 하나를 꽉 채우며 달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숫자가 얼마나 많은 건지 통로 전체에 빈 공간이 거의 없었다. 바닥, 벽, 천장은 물론, 자기들끼리 짓밟고 짓밟히며 엄청난 두께로 쌓아올려지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파도처럼 쏟아진다, 는 표현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 1대1은 승산이 없어보였다 이거지?’
이를 악물었다. 바깥에 널리고 널린 것이 불사 지네의 숙주가 거느리는 부하들이었고, 게임에서처럼 보스룸을 흰 안개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가능하긴 했다.
설마 불사 지네가 자기 숙주의 부하를 불러모으리라곤 예상 못 해서 그렇지.
‘통로에서 덤벼들었으면 해볼만 했는데.’
사실 벌레들이 몰려오는 것 자체는 별 문제가 안 됐다.
예전이었다면 힘들었겠지만, 지금은 신성 주문을 사용할 수도 있고 룬으로 체력을 채워가며 흑마법을 무한히 쓸 수도 있다. 광역 공격 수단은 충분했다.
어디까지나 좁은 통로에서라면 말이다. 내가 입구를 미처 봉쇄하기도 전에 쏟아져나온 벌레들이 보스룸 바닥을 메우기 시작했다. 저게 문제였다.
신성 촉매를 꺼내들었다. 저것들이 얼마니 밀려올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집중력 싸움이다.
내가 먼저 삐끗해서 실수를 하느냐, 아니면 저쪽의 물량이 먼저 떨어지느냐.
‘유리한 건 저쪽이겠지만.’
보스는 목숨이 무한에, 잡몹들은 숫자가 대체 어느정도인지 상상조차 못할 지경이니까.
벌레 무리는 어느덧 보스룸을 절반 넘게 메우고 있었다. 숫자를 대충 가늠해보았다. 최소로 잡아도 천 마리 이상은 될 것 같았다.
‘사방으로 포위되지 않으려면…… 벽에 붙어야 하나?’
만약 등 뒤까지 둘러싸인다면 상황이 아주 많이 불리해진다. 나는 슬금슬금 좌우로 범위를 넓혀가는 벌레 무리를 확인했다. 저쪽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게 분명해 보였다.
ㅡ키르르르르륵!
놈의 등판이 떨리고, 벌레로 이루어진 파도가 그걸 신호삼아 쏟아져 들어왔다. 우선은 제일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왼손에 쥔 신성 촉매를 우에서 좌로 휘둘렀다. 바닥에 은빛 장판이 깔렸다. 벌레들은 신성력 장판에 발이 닿는 즉시 몸을 뒤집고선 다리를 오므리며 즉사했다.
그러나, 장판의 효과는 오래 가지 않았다. 벌레들은 죽고, 죽고, 또 죽으며 자신의 시체로 일종의 카펫을 만들었다. 벌레들이 그 카펫을 넘어 접근해왔다.
신성력이 시체를 계속해서 녹이고 있었지만, 새 시체가 쌓이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왼손에 황금색 빛무리로 이루어진 검을 만들고, 그걸 수평으로 휘둘렀다. 제일 앞에서 다가오던 벌레들이 상반신째 토막나선 바닥을 굴렀다. 그 뒤에 있던 놈들이 즉시 빈자리를 메꿨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며 한번 더 휘둘렀다. 칼질 2번만에 벌레 수십 마리가 썰려나갔으나, 숫자가 줄었다는 티조차 나지 않았다.
‘온다.’
여럿이서 덤비려는 듯, 불사 지네가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은 벌레를 마구잡이로 밟아 으깨며 벌레로 이루어진 파도 위를 성큼성큼 걸어왔다.
벌레들은 나를 향해 포위망을 좁히기만 할 뿐, 일정 거리 이상은 다가오지 않았다. 척 보기에도 목적이 뻔했다.
그런 짓을 쉽게 허락해줄 생각은 없었기에, 신성 폭발을 일으켜 움직일 공간을 확보했다. 토막난 벌레들의 시체가 어지럽게 허공을 날아다니고, 알 위로 초록색 피가 흩뿌려졌다.
신성 촉매를 휘둘러 빛의 창으로 전방을 휩쓸어버린 다음, 근처에서 비틀거리는 한 놈을 붙잡아 흡혈 충동을 발동했다. 곧이어 은빛 장판과 흑염이 동시에 깔렸다.
작은 벌레들은 모조리 녹아 사라졌지만, 불사 지네만큼은 실시간으로 녹아내렸다 회복했다를 반복해가며 끝끝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앞다리가 내밀어졌다.
그 앞다리를 썰어버리고, 머리를 반으로 가른 다음 몸통을 토막내 분리시켰다. 수직으로 반토막난 몸뚱아리가 신성력 장판 위로 추락했다.
놈의 몸은 장판에 녹아내리면서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쯧.’
나는 거리를 벌리며 혀를 찼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부터라도 숏컷을 확보해야ㅡ
“델타!”
“……?”
여기 있어서는 안 될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로 저편이었다. 내가 몸을 멈칫거림과 동시에 불사 지네도 머리를 틀었다. 또 다른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혼란스러운 듯했다.
벌레 무리가 쏟아지던 통로에서, 내가 시전한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될 크기의 흑염이 터져나왔다. 그 흑염에 휩쓸린 벌레들은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못하고 바스라졌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흑염을 헤치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닉스?”
닉스였다.
보스룸에 진입하자마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날 찾던 닉스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향을 섬세하게 조절해 다시 흑염을 일으켰다. 무시무시한 크기의 화마가 보스룸 전체를 집어삼켰다.
바닥에 마치 카펫처럼 깔려있던 시체들과, 그 위를 걸어다니던 아직 살아있는 벌레들, 온갖 곳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알, 마지막으로 불사 지네의 숙주까지 모두.
닉스가 일으킨 흑염은 보스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공평하게 휩쓸었다.
오직 나만 빼고 말이다.
“델타!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가겠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스룸을 일소한 닉스가 내 옆으로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그리고는 회복을 끝냈는지 다시 덤벼들려던 불사 지네를 보스룸 구석탱이로 처박아버렸다.
손짓 한 번에 벌레를 쏟아내던 통로가 흑염으로 틀어막혔다. 그 너머에서 벌레들이 흑염에 몸을 던져 잿더미로 변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여긴 어떻게 왔어? 내 위치는 또 어떻게 알았고?”
처음으로 든 감정은 당황이었다. 분명 벌레를 그렇게도 무서워하던 닉스였는데, 여기를 어떻게 찾아올 수 있었는지 말이다.
독늪 바깥에서는 순간이동으로 움직였다 쳐도, 던전 안에서는 두 발로 직접 움직이며 길을 찾아다녀야 했을 텐데.
“당신의 영혼을 따라왔습니다만, 그걸 신경쓸 때가 아닙니다. 저것, 불사 지네잖습니까.”
“너, 말투가…….”
나는 이제 와서야 닉스의 말투가 바뀌었음을 알아차렸다. 반말 닉스한테서도, 존댓말 닉스한테서도 들어본 적 없는 말투. 굳이 따지자면, 브닼 3에서 영혼 수호녀가 말하던 것처럼ㅡ
“잠깐. 너 설마ㅡ”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당신이 제대로 생각했다면요. 지금은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니 서둘러야 합니다.”
닉스는 흑염으로 이루어진 폭포를 만들더니, 그 아래에 불사 지네를 처박았다. 화염이 끊임없이 쏟아져내리며 불사 지네를 바닥에 꽁꽁 묶어두었다.
불사 지네는 어떻게든 그 안에서 빠져나오려 발버둥쳤으나, 저건 단순히 몸을 찢고 나오는 것만으론 탈출할 수 없는 함정이었다.
놈이 발버둥치는 사이, 닉스가 나를 마주보고 섰다.
“얼마 전에 아직까지는 영혼을 합칠 때가 아니라고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불사 지네가 나타나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습니다. ‘제’가 비밀을 알아버렸으니 더는 숨길 수 없게 된 것도 있고요.”
“반동은? 영혼을 합치면 반동이 찾아온다면서?”
“잠깐이라면 괜찮습니다. 몇 시간이면 다시 둘로 분리될 거예요. 제가 했던 말처럼, 저희는 아직 반동을 견딜 수 없을테니까 말이죠.”
닉스는 무언가를 빠르게 중얼거리더니 양손으로 자기 밑가슴을 받쳤다. 그러고선 가슴을 위로 살짝 들어올렸다. 머리와 비슷한 무게의 두 지방덩어리가 한껏 강조됐다.
“손 넣으세요.”
“뭐?”
“시간 없습니다. 이 사이에 손 넣으시라고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설마 이런 상황에 그런 의미로 가슴을 쥐라고 한 것은 아닐테니 말이다. 손을 뻗어 가슴으로 가져갔다.
내 손이 미처 가슴골을 건드리기도 전에, 그 사이에서 칠흑색 빛이 새어나왔다. 빛무리 사이로 무언가 투박한 것이 고개를 내밀었다.
칼의 손잡이였다.
놀랄 틈은 없었다. 닉스가 어서 쥐라는 듯 눈짓을 했다. 가슴 사이로 반쯤 튀어나온 손잡이를 쥐고, 천천히 빼냈다. 길다란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검을 완전히 뽑아들자, 닉스도 가슴을 모으고 있던 손을 내렸다. 가슴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해 아래로 살짝 흘러내렸다.
“이건…….”
나는 뽑혀나온 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이 감도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것처럼 녹슬고 무뎌진 칼이었다.
그리고, 예전에 본 적이 있던 칼이기도 했다.
“당신께서 쓰셨던 무기입니다. 저희 둘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영혼이 합쳐지면서 떠올렸어요. 이 세계로 넘어올 때, 그 검을 반씩 나누어 저희들의 영혼에 보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요.”
진혼과 함께 불사 지네를 소멸시킬 수 있는 유이한 방법이자, 내가 자살을 위해 사용했던 검.
‘불멸’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