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53)
r 253 – 불사 지네 – 3
“윽…….”
불멸을 쥐자마자 격렬한 두통이 밀어닥쳤다.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며 한쪽 무릎을 꿇기까지 했을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아팠다.
닉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으로 내 머리를 상냥히 끌어안았다. 머리가 부드러운 두 지방덩어리에 푹 파묻혔다.
가슴이 뺨과 이마를 받쳐주었다. 맞닿은 피부에서 온기가 젼해져왔다. 그리고, 아주 약간의 심장 박동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 있어요. 아무 곳에도 가지 않겠습니다.”
내 머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이 들어갔다. 코가 따뜻하면서도 살짝 습기어린 가슴골 사이로 쏙 들어갔다. 달콤한 우유 냄새같은 특유의 살내음이 풍겼다.
무척이나 작은 손바닥이 머리를 토닥였다. 비강으로 닉스의 향기가 잔뜩 밀려들었다. 신기하게도, 이러고 있으니 두통이 점차 약해졌다.
그리고, 두통이 사라진 자리를 기억이 메웠다.
브닼 3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 영혼 수호녀와의 관계, 마지막으로 영혼 상태에서 여신과 나누었던 대화까지. 그 모든 기억이 머리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가슴에 파묻혀 온기를 만끽한지 얼마나 흘렀을까, 기억이 전부 돌아왔다. 고통으로 움찔거리던 몸이 안정을 되찾았다. 머릿속이 다시 말끔해졌다.
움찔거림이 잦아든 다음에도, 닉스는 나를 끌어안은 채 상냥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계속해서 머리를 토닥였다.
“이제 괜찮아. 머리 아픈 게 가셨거든.”
“아니요. 이대로 조금만 더 있죠. 증상은 확실하게 가라앉혀야 합니다.”
닉스는 오히려 팔에 힘을 주어 내 머리를 한층 더 힘껏 끌어안았다. 물론 힘이 들어갔다 한들 내가 작정하고 떨쳐내려 한다면 가볍게 그럴 수 있을만큼 연약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닉스가 원하는대로 하도록 놔두고 싶었다.
시간은 다시 한참을 흘렀다. 마침내 머리를 누르던 압력이 사라졌다. 고개를 들었다. 방금 전까지 얼굴을 문지르고 있던, 거대한 가슴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대체 얼마나 세게 끌어안고 있었던 건지, 윗가슴에 새빨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닉스는 그 빨간 자국이 무슨 증표라도 되는 것마냥 발그스름한 얼굴로 자국을 쓰다듬었다.
“됐습니다.”
“그래. 고마워, 닉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 감사 인사는 필요 없습니다. 정신은 좀 드셨습니까?”
“응. 기억도 되돌아왔어. 너랑 같이 다녔던 시간대의 기억은 전부 다.”
“그거 다행이네요.”
닉스가 가볍게 웃었다. 반말 쪽 인격처럼 음침하다거나 존댓말 쪽 인격처럼 순박한 웃음이 아닌, 인격이 분리되어 있던 시절이라면 결코 지을 수 없었을 느낌의 미소였다.
“자, 기억이 돌아왔다니 시험을 해 봐야죠. 제가 누구입니까? 기억이 돌아왔다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도 알 수 있을 겁니다.”
“닉스잖아.”
투닥투닥, 자그마한 주먹이 내 어깨를 두들겼다. 힘은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거 말고요. 제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또 닉스라고 답하면 또 때릴 겁니다. 그리고 까먹었다고 말하면 열 배로 때릴 겁니다.”
뚱한 표정의 칠흑색 눈동자가 날 향했다. 웃으며 무릎을 폈다. 자연스레 닉스가 나를 올려다보는 구도로 흘러갔다.
“안 까먹었으니까 걱정하지 마, 플로르.”
“간신히 들었네요. 잘하셨습니다. 당신이 이름 불러주는 거 들으려고 대체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했는지 아마 절대로 모르실걸요.”
툴툴대는 표정이 웃는 얼굴로 변했다.
닉스의 영혼 수호녀 시절 이름이 플로르였다는 건 게임에선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마도 이클립스가 일부러 제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내가 불멸을 이용해 자살한 뒤, 죽어가는 내 귀에 작별 인사로 속삭이듯 말해준 것이니까. 우리 둘만의 추억으로 남겨두려 한 거겠지.
“아니, 알아.”
닉스를 품에 끌어안았다.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에 당황이 서렸다.
“수고했어, 플로르. 여기까지 나 찾아오느라. 그리고, 이제껏 기다려주느라.”
“…….”
칠흑색 동공이 한껏 커졌다. 뺨을 붉힌 닉스가 고개를 숙이더니 궁시렁거렸다.
“이런 건 생각 못했는데…… 하여튼 이런 쪽 실력만 잔뜩 늘어선…….”
“다 들리거든. 이런 쪽 실력이 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닉스는 어영부영 말을 돌렸다. 나는 그냥 못 들은 척 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를만큼 멍청이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 일단 놔 주시죠. 아직 할 일이 남았잖아요.”
“아니, 이대로 조금만 더 있자.”
방금 전에 들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며 닉스를 더 힘껏 끌어안았다. 닉스는 잠시 멈칫거리는가 싶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헤실거리는 얼굴로 내 허리에 팔을 감아왔다.
몸 사이에서 압도적인 크기를 과시하고 있는 가슴 탓에 자세가 좀 어정쩡하긴 했지만, 우리 둘 다 전혀 개의치 않았다. 포옹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엮였던 팔을 풀자, 상당한 수준으로 달아오른 닉스의 얼굴이 보였다. 연신 손부채질을 하던 닉스가 분위기를 흑염 폭포를 가리켰다.
“저건 어떡하실 거예요?”
“걱정 마. 충분히 처리할 수 있으니까.”
“그렇긴 합니다. 예전에 저것들을 수십 마리씩 잡아 죽이셨는데 한 놈 쯤이야 준비 운동도 안 되겠죠.”
닉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흑염 폭포가 허공으로 흩어지듯 사라졌다. 그 밑에 깔려 발버둥치던 불사 지네가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아래턱이 신경질적으로 딱딱거렸다.
불사 지네는 잔뜩 약이 오른 몸짓으로 날 향해 덤벼들려다가, 내 왼손에 쥐어진 검을 보고 우뚝 동작을 멈췄다.
그러고보니 손을 안 바꿨다. 나는 날개 잃은 악몽을 검집에 집어넣고 불멸을 오른손에 쥐었다. 나는 쌍검충이 아니니까 말이다.
놈은 내 손에 들린 검이 자기를 완전히 죽일 수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극도로 호전적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멀찍이 떨어져선 거리를 유지하기만 했다.
심지어 내가 다가가는만큼 뒤로 물러나기까지 할 정도였다.
“그래. 마음대로 해. 내가 가면 되니까.”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몸을 왼쪽으로 살짝 비틀며 오른팔을 왼쪽 옆구리에 가져갔다. 언제든 휘두를 수 있게끔 자세도 낮췄다.
불멸에 썰렸다간 재생할 수 없어진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놈은 뒤로 물러나며 도망치려 시도했다.
당연히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불멸이 베고 지나간 자리에 잔상이 남았다. 그 잔상을 따라 한 발 늦게 칠흑색의 검기가 그려졌다.
검기는 앞을 향해 두꺼워졌고, 옆에서 봤을 때 초승달처럼 생긴 궤적을 그렸다. 검기가 스쳐지나간 자리에는 놈의 하반신이 있었다.
칠흑색 기운에 휘말린 하반신이 통째로 잘려나갔다.
“께에에에에엑!”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었지만, 놈은 이전처럼 상처를 회복하지 못했다. 2개밖에 남지 않은 다리로 발버둥 칠 뿐이었다.
나는 다리를 움직여 필사적으로 땅을 기어가는 상반신은 내버려두고, 하반신으로 먼저 다가갔다. 그 안에서 불사 지네의 잘려나간 마디를 꺼내 푹 찔렀다.
반으로 토막나고도 꿈틀거려대던 움직임이 완전히 멎었다.
하나를 끝냈으니 남은 건 하나였다. 앞다리를 버둥거리며 도망치는 놈에게 다가가 머리를 짓밟았다. 혹시 방해되지 않도록 다리도 마저 잘라냈다.
상반신만 남아서는 마치 구더기처럼 제자리에서 꿈틀대는 모습을 잠시 감상했다. 이렇게 보면 정말로 별 것 아닌 놈이었다. 브닼 3 시절의 기억을 찾았으니 더더욱 그랬다.
‘이런 걸 수십 마리나 썰어버렸었으니까.’
보고 있자니 불쾌해졌다. 지네의 몸통을 붙잡아 끄집어냈다. 불사 지네는 마지막까지 끌려나가지 않으려 발악했다.
덕분에 애꿎은 숙주의 몸통이 지네 다리에 긁히고 찢겨 헤집어지며 안에 있던 내용물을 밖으로 토해냈다. 초록색 액체가 바닥에 흘러넘쳤다.
“어딜.”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이윽고 불사 지네가 완전히 끌려나왔다. 머리를 발로 짓밟아 고정시키고, 절단면을 왼손으로 붙잡았다.
오른손으로 불멸을 겨누었다. 검신이 칠흑색으로 빛나며 작게 떨렸다. ‘진혼’을 발동할 준비가 끝났다는 의미였다.
기억이 완전히 되돌아왔으니 무기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원한다면 세계를 먹는 자와 마주쳤을 때처럼 날개 잃은 악몽으로 발동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놈을 죽이는 건 역시 불멸에 맡기고 싶었다.
칼 끝을 머리 바로 밑에 푹 찔러넣었다. 그 간단한 동작만으로 보스룸의 지반이 거미줄처럼 쪼개졌다. 갈라진 틈 사이로 미약한 칠흑색 빛이 새어나왔다.
ㅡ!!!!!!
영혼을 찔린 불사 지네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몸을 파르르 떨어댔다. 나는 팔을 움직여 머리 바로 밑부터 시작해 몸뚱아리 전체를 반으로 찢어버렸다.
푸확! 하고, 잔뜩 녹슨 칼날이 몸통을 반토막내며 옆으로 빠져나왔다. 꿈틀거림이 뚝 멎었다. 머리에서 발을 뗐다. 내게 밟혔던 부분의 갑피가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다.
“드디어 죽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닉스가 내 옆에 섰다. 나는 불사 지네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건드려대는 닉스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그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갑자기 뭐예요?”
“닉스가 머리 쓰다듬어주는 거 좋아했어서. 플로르도 좋아하는지 시험해보려고.”
“왜 둘을 다른 사람처럼 말하죠? 닉스도 저고 플로르도 저인데?”
“농담이야. 그래서, 싫어? 그만둘까?”
“……싫다고는 한 마디도 안했지 않습니까. 그대로 놔두셔도 됩니다.”
닉스는 이게 내 나름의 장난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새초롬한 눈치로 나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손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려주자 점점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닉스를 한참동안 귀여워해주던 나는, 표정이 헤실헤실하게 바뀐 것을 확인하고 손을 뗐다. 정신을 차린 닉스의 표정이 다시 새초롬해졌다.
“그래서, 기억을 되찾은 소감은 어떠신데요?”
“글쎄. 뭔가 극적으로 바뀌고 그런 건 없네. 평소랑 똑같은 기분이야.”
브닼 3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는 건 온갖 방법으로 죽어나갔던 기억까지 같이 떠올랐다는 의미다. 심지어는 몸에 불사 지네가 꿈틀거리며 기생하고 있던 감각까지도 말이다.
얼핏 듣기에는 끔찍한 일 같지만, 지금은 그저 먼 과거의 일에 불과했다. 과거에 내가 온갖 방법으로 수백 번을 죽어나갔다 해도 이제와서 그걸 떠올리고 벌벌 떨 일은 절대로 없었다.
“당신은 예전부터 그랬었죠. 그 수많은 죽음을 겪고 나서도, 언제나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툭툭 털고 일어나셨으니까요.”
“예전에 겪어봤으니까. 너랑 만나기 훨씬 전 시간대에서.”
특히 브닼 1 시절에는 숨쉬듯 죽어나갔을 거다.
당장 불사 능력 하나만 덜렁 받고서 개판이 되어가는 세계에 던져졌으니, 엔딩을 볼 수 있었을 정도로 강해질 때까지 대체 몇 번이나 죽어야 했겠는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1’이라는 게임으로써 플레이 할때도 어렵다는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 짓거리를 직접 몸으로 해야 했다면 족히 수천 번씩 죽었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내 걱정은 됐어. 지금 걱정받아야 할 사람은 너니까. 몸 상태는 좀 어때? 일시적으로 합친 거라며?”
“아마 앞으로 몇 시간이면 다시 나뉠 거예요.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탁?”
“네. 제 인격이 다시 분리되고 나면, 아무 말 말고 그냥 꼭 안고 있어 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영혼이 분리되는 반동은 상당 부분 완화될 거거든요.”
무슨 부탁인가 했는데,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나는 예전에 반말 쪽 닉스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겨우 안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 정말?”
닉스는 멈칫 하더니,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선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러면 진도 더 나가든지 마시든지…….”
문장 끝으로 갈수록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선, 이후로는 아예 웅얼거림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일단 여기서 나가죠. 이런 더러운 공간에 계속 있기도 그러니까요.”
간산히 표정을 되돌린 닉스가 나를 끌어안았다. 바닥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우리들은 어느덧 즉석에서 만들어낸 오두막 안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람 두 명은 넉넉히 눕고도 남을 크기의 침대에 걸터앉은 닉스가 나를 올려다보았다.
“아직 인격 나뉘려면 조금 남았는데, 혹시 나한테 궁금한 거 있어요? 있으면 말해봐요. 인격이 도로 나눠지면 제 영혼에 불멸을 봉인했던 것처럼 기억 못하는 일도 생겨날테니까.”
“궁금한 거라…… 아, 하나 있어.”
“뭔데요?”
“미네르바랑은 사이가 왜 그렇게 안 좋은 거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