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59)
r 259 – 다른 세계의 마법 – 3
“아이야, 저 여자를 어떤 이유로 이곳에 불렀는지 모르는 건 아니란다. 허나…….”
미네르바는 떨떠름한 감정을 지우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위기로 내가 하려는 말을 곧장 유추해낸 모양이었다. 사실 미네르바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못 알아차리는 것이 더 이상하다.
부탁으로 들어줄 게 있다더니 닉스를 데려왔고, 자신은 예전에 닉스와 불편한 관계임을 내 앞에서 몸소 드러냈었다. 그러니 추측하기도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미네르바의 반응이 의아하게 느껴진 듯, 파르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둘, 저번에 만났을 때도 그랬잖아. 무슨 일 있었어?”
“엄청 예전의 일이에요. 한 이백 년 정도요. 약간의 오해가 가미된 다툼이었죠.”
“이백 년? 아, 일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스키엔티아 님이 저렇게 화내는 거구나. 이해했어.”
“…….”
이백 년 전의 일을 며칠 전 일처럼 취급하다니, 역시 드래곤 다웠다. 몇백 년 단위로 살아온 미네르바나 닉스에게도 200년은 결코 작은 시간이 아닐 텐데 말이다.
마인드가 저러니까 미네르바의 조수 역할을 가볍게 수락할 수 있었던거겠지만. 확실히 300년짜리 조수 계약은 어지간한 시간 관념으론 못할 짓이었다.
“뭐, 미네르바 님이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결국 미네르바 님이 닉스한테 악감정을 가지게 되신 건 새로운 마법을 가르쳐주겠다는 거짓말 때문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되겠구나.”
“그렇다면 이제는 더 이상 화를 내실 이유도 없겠죠. 예전에야 할 게 없으셨지, 지금은 아니니까요. 당장 연구할 거리만 해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텐데요?”
미네르바가 슬며시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내 말대로, 과거에는 할 것이 없어서 무료해 미치기 일보 직전이던 미네르바였지만 지금은 절대로 그렇지 않았다.
당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러 스크롤을 연구하는 중이었고, 나머지 고대의 스크롤도 내가 찾아줄 수 있다. 그걸로도 모자라 심지어는 다른 세계의 마법을 연구할 기회까지 나타났다.
더 이상 쌓을 지식이 없어 지루해 죽을 지경인 상황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진 것이다. 그러니 악감정을 쌓아둘 이유도 없었다.
미네르바가 화를 낸 이유에는 닉스가 ‘거짓말을 해서’도 있지만, 그것보단 ‘새로운 마법이 있다는’ 거짓말을 해서가 훨씬 더 컸으니 말이다.
“알겠단다. 아이가 화해를 원한다면 당연히 따라주어야겠지. 아이의 말대로 지금에 와서는 화를 낼 이유가 사라졌기도 하고. 아주 먼 옛날의 앙금을 잊는 일이 무슨 대수겠니.”
“하나 더 있습니다. 그 일은 닉스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거든요. 닉스는 그냥 여신님의 말을 따른 것 뿐이라서요.”
내가 여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자, 깜짝 놀란 닉스가 내 옷깃을 붙잡았다. 나는 괜찮다는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오해는 완전히 풀고 넘어가야 한다.
여기까지만 말하고 끝낸다면 미네르바가 닉스를 일방적으로 용서하고 화해한 것처럼 보이게 되니까. 애초부터 닉스는 잘못이 없는데도.
미네르바와 닉스가 싸우게 된 것은 이클립스의 궁여지책이었다. 둘이 싸우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세계를 먹는 자가 여기로 찾아오게 된다는데 별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인 용서와 화해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는 쪽으로 가는 것이 옳다.
“여신님? 성국의 신을 말하는 거니, 아이야?”
“예. 그렇습니다.”
내 긍정에 미네르바의 얼굴이 알쏭달쏭하게 변했다. 나는 닉스의 진짜 정체와 세계를 먹는 자에 관한 것을 빼고 나머지 일을 설명해주었다.
미네르바는 여신이 닉스에게 계시를 내렸다는 말을 듣고 성국의 교황도 아닌데 계시를? 하는 의문을 가진 듯 했지만,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었다.
당장 여신을 직접 만났고, 여신의 옆에서 싸우기까지 하고, 성국에서 살아있는 성자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이 나다. 그런 내가 여신이 직접 계시를 내렸다 말하니 안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성국의 신이 나와 반목하도록 계시를 내렸다니,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헤헤, 사과는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그때는 충분히 화내실 만 했으니까요. 저도 이유를 듣기 전에는 신님을 원망했었는데요.”
당시의 닉스는 사기꾼이나 다름없었으니 충분히 화를 낼 만한 행동이긴 했지만, 그래도 설마 성국의 신이 연관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었는지 미네르바는 무척이나 복잡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저 일로 이클립스를 탓하기도 애매했다. 만약 계획을 미리 알려줬더라면 미네르바가 닉스의 연기를 간파했을거라고 하니까. 이클립스의 입장에선 나름의 최선이었던 셈이다.
오해를 완전히 푼 뒤, 다시 내 옆으로 돌아온 닉스가 귀에 대고 조곤조곤 속삭였다.
“여신님이 말씀하신 방법은 안 쓰시나요?”
“일 잘 풀렸잖아. 쓸 이유가 없지.”
“하지만 여신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저 나름대로 각오하고 왔는데…… 헤헤.”
“계시는 원래 해석 나름이었어. 그런 각오 필요 없으니까 다시 넣어둬.”
굳이 셋이서, 를 강조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오해가 풀린 것 같으니 내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여기서 더 화해할 게 어디 있다고.
나는 눈에 띄게 시무룩해진 닉스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시무룩한 표정은 곧바로 풀렸다. 내 눈치를 보는 모습이 없어진 대신, 그만큼 애완동물같은 면모가 많아진 느낌이었다.
“델타, 여신이 말한 방법이라는 게 뭐야?”
닉스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던 와중에 파르나리의 기습적인 질문이 들어왔다.
“……그걸 들으셨나요?”
일단 헤실거리는 닉스를 몸 앞으로 데려와 양손으로 뺨을 주물렀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반말 닉스나 플로르라면 모르겠지만, 존댓말 닉스는 살짝 불안했다.
“드래곤이니까. 인간 모습이어도 귀는 밝아. 들으려고 했던 건 아닌데 들렸거든. 불쾌했다면 미안해.”
“불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실행에 옮기기가 좀 애매한 방법이라서요.”
“그래? 알았어. 그러면 더 안 물어볼게.”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파르나리는 얌전히 물러났다. 미네르바가 파르나리와 교대하듯 다가왔다. 닉스의 뺨을 조물거리던 손을 뗐다.
“이제 오해가 풀리셨습니까?”
“그렇단다. 성국의 신이 의도한 일이었다니 약간 충격이구나. 만약 닉스가 내게 붙잡히기라도 했다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를 뻔 했던 셈이잖니.”
“그것까지 다 예지하고 내려진 계시였습니다. 그러니 미네르바 님이 아무리 날고 기셨더라도 닉스를 잡을 순 없으셨겠죠.”
미네르바를 달래주고 지팡이를 쥐었다. 게임에서 지능 보정치가 제일 높게 찍히는 지팡이였다. 한손검 최종 세팅이 날개 잃은 악몽이라면, 마법사 최종 세팅은 이거인 느낌.
혹시 구할 수 있겠냐고 하니까 마탑 창고에 있던 걸 받았다. 날개 잃은 악몽을 구하러 갔을 때도 그렇고, 정말 별의 별 물건이 다 있구나 싶었다.
이제 성직자 최종 세팅 중 하나인 ‘태양과 달의 신성 촉매’만 얻으면 적어도 장비 문제로 발목잡힐 일은 없다고 봐도 좋다. 근접 무기, 지팡이, 신성 촉매까지 다 챙겼으니까 말이다.
나는 마법을 준비하며 미네르바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기절하시면 안 됩니다, 미네르바 님. 저번에 미네르바 님이 거품 물고 쓰러지신 거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아십니까?”
“……임계치 이상의 충격으로 인한 일시적 과다 흥분 상태의 부정적인 증상 중 하나라고 생각해주려무나.”
복숭아빛이던 뺨이 조금 붉어졌다.
고대의 스크롤을 찾을 때마다 레몬향을 풍겨대고, 그걸 운반한답시고 마법사들의 등을 짓밟으면서 나아갔던 미네르바였건만, 이번만큼은 자기도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부끄럽다는 걸 알고 있어서 더 놀랐다. 여태껏 보여준 반응을 떠올려본다면 당당하게 그럴 수 있다고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번에는 혹시 몰라서 파르나리 씨까지 데려왔으니 괜찮을 겁니다. 닉스도 있고요. 저번처럼 마탑 전체가 난리 나지는 않겠죠.”
“……나, 여기서 용언을 그런 용도로 쓰게 될 줄은 몰랐어. 여기 사람들 엄청 이상해.”
단체로 광기에 들어차선 날 찾으러 다가오던 마법사들을 용언으로 진정시킨 일이 생각났는지, 파르나리가 넌더리를 쳤다. 미네르바가 큼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는 닉스는 머리에 물음표만을 띄울 뿐이었다.
“시작하겠습니다.”
지팡이 끄트머리에서 자줏빛 마나가 새어나왔다. 그걸 본 미네르바의 표정이 다시 흐물흐물해졌다.
하나로 뭉친 자줏빛 마나가 완벽한 구형으로 바뀌고, 팔을 흔들자 앞으로 발사됐다.
발사된 구체는 하늘을 제멋대로 부유하다가, 우리 쪽으로 다가오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방향을 홱 틀고선 내가 목표로 생각한 과녁에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로 인해 자줏빛 파장이 퍼져나갔다. 파장이 닿은 자리에 장판이 깔렸다. 그 위의 과녁들이 보라색 불꽃에 휘감겨 불타기 시작했다.
브닼 1에서 OP라고 불렸던 주문들 중 하나인 ‘보랏빛 물보라’였다. 떠오른 마법 중에 운 좋게 섞여 있었다.
‘저게 물보라랑 뭔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물이 아니라 마나 구체를 쏘는 마법이고, 물이 터지듯 터지지도 않고, 장판은 물이 아니라 불이다. 이름에서 맞는 거라곤 보랏빛이라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냥 장판 유도탄, 같은 이름으로 불려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아아…….”
미네르바가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반쯤 풀려버린 눈동자는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안 했지만, 그나마 저번처럼 입에 거품 물고 쓰러지는 일은 없어서 다행이었다.
짝짝, 근처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닉스였다. 나는 닉스의 아래턱을 살짝 간질여주고 입을 열었다.
“미네르바님.”
“으, 응?!”
은백색 동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화들짝 놀란 몸이 움찔거렸다.
“방금 제가 보여드렸던 마법, 따라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미네르바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다른 세계의 마법을 보며 황홀한 표정으로 몸을 떨던 이상성욕자는 어디로 가고, 날카로운 모습밖에 남지 않았다.
굉장히 심도 깊게 고민하던 미네르바가 입을 열었다.
“한 번, 아니 두 번만 더 보여줄 수 있겠니?”
“알겠습니다.”
나는 마법을 2번 더 사용했고, 마나가 딱 맞춰 동났다. 내가 보랏빛 물보라를 시전하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미네르바가 진지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미네르바는 은백색 동공을 눈꺼풀 뒤에 감춘 채 한참을 집중했다. 시간이 지나, 그 눈이 천천히 떠졌다.
“아이야.”
“네, 미네르바님.”
“잠시 가까이 와주려무나. 부탁이란다.”
나는 머리에 의문을 띄우며 미네르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쉿, 조용히…….”
머리가 가슴 사이에 파묻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