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65)
r 265 – 깨어나는 혼돈 – 5
‘아주 작정이라도 한 건가?’
철퇴에 몇 번을 으깨지든 원상복구되는 특유의 재생력이라거나, 지네를 닮은 겉모습은 분명 불사 지네가 맞았다. 그런데 세세한 부분이 내가 알던 것과는 조금 많이 달랐다.
불사 지네를 둘러싼 전투 수녀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날 확인한 전투 수녀들이 양 옆으로 길을 텄다. 등 뒤에서 불멸을 꺼내들자 놈의 이목이 곧바로 내게 집중됐다.
‘안 떠네?’
이 세계에서 만났던 불사 지네들은 불멸을 보기만 해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거나 제자리에 서서 주춤거려댔었는데, 저놈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아래턱을 딱딱거리며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꼭 얼마 전에 왔던 지네 무리가 흉포해진 모습 같았다.
놈이 징그럽게 많은 다리로 지면을 박차며 훌쩍 도약했다. 아래턱이 좌우로 크게 벌어졌다. 나는 불멸을 든 반대쪽 손으로 놈의 머리에서 한두칸 떨어진 마디를 잡아챘다.
ㅡ콰직!
평범한 불사 지네보다 족히 2배는 두꺼운 아래턱이 허공을 짓씹었다. 놈의 턱은 내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그게 못내 아쉬운 듯, 놈이 신경질적으로 아래턱을 딱딱거렸다.
그러더니 꼬리쪽 마디로 내 몸을 휘감으려 시도했다. 사람 몸통만한 두께의 지네 마디가 주위를 감쌌다.
“데, 델타 님!”
“위험ㅡ”
관계가 명확해져서 그런지, 어느샌가 델타 님으로 호칭을 바꾼 교황 자매가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태연하게 불멸을 휘둘러 날 휘감기 직전의 지네 몸통을 토막냈다. 잘려나간 몸통이 바닥으로 철퍽 떨어지고, 절단면에서 초록색 피가 줄줄 흘러나왔다.
플로레타와 루나의 걱정스런 목소리가 뚝 멎었다.
“둘 다 진정해. 그쪽이 생각하는 일은 절대로 안 일어날 테니까.”
음침하게 키득거리며 교황들을 진정시킨 닉스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나는 불멸을 땅에 꽂아두고 움직임이 완전히 멎은 불사 지네의 시체를 이리저리 살폈다.
“이거…… 눈 맞지?”
“맞는 것 같은데, 키히힛.”
머리 앞부분에 달려 있는, 세로로 찢어진 붉은색 눈동자가 멍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몸의 윗쪽 절반을 뒤덮은 갑피도 마치 드래곤의 비늘처럼 바뀐 상태였다. 손으로 갑피를 꾸욱 눌러보았다. 내 기억 속의 갑피보다 훨씬 단단했다.
불사 지네가 왜 이런 모습이 됐는지 추측하기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플로레타, 루나. 잠시 와줄 수 있어?”
순간적으로 이제는 플로레타와 루나가 아니라 에반젤리나와 세라피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그건 나중에 고민해보기로 했다.
“예, 델타 님.”
“말씀하시지요.”
둘이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시스루를 걸친 교황들의 모습에 전투 수녀들이 단체로 헛숨을 들이켰다가, 그 상대가 나라는 걸 알아차리고선 간단히 납득한 듯 곧바로 잠잠해졌다.
“잠시 어디 좀 다녀올 테니까, 이것들에 관해서는 너희가 설명해줘. 할 수 있지?”
상황이 생각보다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이클립스를 만나봐야 했다.
“예, 알겠습니다.”
“말씀 받들겠습니다, 델타 님.”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다고 말했을 뿐이지만, 교황들은 내 목적지를 알아차린 듯 미소가 만연한 표정으로 머리를 살짝 숙였다. 나는 닉스에게도 당부를 해 두었다.
“닉스, 나 없는 동안 교황들이 진혼을 배울 수 있나 없나 시도해 봐. 되면 좋고 안 돼도 손해볼 건 없으니까.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키히힛, 알았어. 여신님 만나러 가는 거야?”
“그래야지.”
“이클립스? 여신님?”
아무리 힘껏 소리쳐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기에,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저번처럼 집 안에 틀어박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달빛을 받아 은색으로 빛나는 숲을 돌아다녀도 봤고, 태양빛 아래에서 화사하게 피어난 꽃밭을 돌아다녀도 봤는데 이클립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혹시 다른 일을 처리하고 있기라도 한 건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내가 돌아갈지 말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무렵이었다. 바닥이 뒤집어지는 소리와 함께, 땅을 헤집으며 불사 지네가 튀어나왔다.
“이게 뭔ㅡ”
나는 그 즉시 불멸을 소환해 휘둘렀다. 녹슨 칼날이 놈의 몸통을 깔끔하게 자르고 지나갔다. 불사 지네는 달려들던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저 멀리까지 날아가 초록색 피를 흩뿌렸다.
아랫부분이 통째로 잘려나가고도 아직 살아서 꿈틀대는 머리를 집어 관찰했다. 붉은색의 세로 동공과 비늘에 가까운 갑피. 성국에 나타났던 놈과 똑같았다.
‘불사 지네가 여기까지 나타났다고?’
좋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시체를 내팽개치며 어떻게든 이클립스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는 찰나, 손에 들린 불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불멸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나는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불사 지네가 나타날 낌새는 없었다. 바닥도 여전히 잠잠했다.
그런데도 불멸은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원인을 찾던 내 눈에, 밤하늘이 보였다.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밤하늘이.
‘저 근처만 별이 보이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별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주변의 하늘과는 달리, 어느 한 곳의 하늘은 완벽한 암흑이었다. 동작을 멈추고 그 자리를 뚫어져라 관찰했다.
암흑이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잠깐.’
하늘이 원래 저렇게 꾸물거렸던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뜬 나는, 진실을 알아차리고 경악했다. 저건 애초부터 밤하늘이 아니었다.
셀 수도 없는 숫자의 불사 지네가 뭉쳐 있었기에 밤하늘처럼 보였던 것이다.
저 정도 크기에 저만한 밀도라면, 정말 최소로 잡아도 수십만 마리는 된다. 불멸을 쥔 손잡이에 힘이 들어갔다. 저것들이 어떻게 이클립스의 세계까지 들어온 거지?
“당신?! 여길 어떻게?!”
저만한 무리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으려니, 근처에서 깜짝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곧바로 땅에 내려앉았다.
약간 거칠어진 숨소리와 피부로 느껴지는 온기가 여태껏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를 설명해주었다.
“불사 지네가 나타났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러 왔는데…… 여길 보니까 안 물어봐도 되겠네요. 왜 그런지 알 것 같습니다.”
밑쪽 세계에 불사 지네가 나타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이클립스의 세계에서 나타난 것들이 넘쳐 흐르다 못해 밑쪽 세계까지 넘어오기 시작한 거였다.
“불사 지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요?”
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가 휘둥그레졌다.
“당장 나타났던 것들은 다 죽여놨으니 괜찮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죠.”
“죄, 죄송해요, 당신. 제가 저것들을 제대로 못 막아서…….”
“숫자가 저렇게 많은데 몇백 마리 정도는 새어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물어보고 싶은 건 다른 쪽이에요. 어떻게 된 상황이길래 불사 지네가 저렇게 많이 나타난 겁니까?”
이클립스의 얼굴이 침통하게 변했다.
“당신도 아시겠지만, 저것들은 뒤틀린 균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지금 ‘뒤틀리지 않은’ 세계는 하나밖에 없죠.”
“……그 도마뱀한테 집어삼켜진 세계들이 죄다 불사 지네 생산지로 변해버렸다 이 소리인가요?”
“네. 그것이 아마 수를 쓴 것 같아요. 여태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거든요. 뒤틀린 것과 그것한테 집어삼켜진 것은 엄연히 다른데…….”
환장할만한 말이었다. 그놈이 삼킨 세계가 셀 수 없이 많을 텐데, 그게 죄다 불사 지네 생산지로 변했다니. 이렇게 되면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한 건 우리 쪽이었다.
“외형이 저렇게 바뀐 건 그놈의 영향을 받아서겠네요.”
“네. 이 세계 밖의 존재라곤 그것뿐이니까요. 죄송해요, 당신. 제가 힘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겠죠.”
“여신님이 죄송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 잘 막아주고 있었던 거예요. 혹시 여태껏 몇 마리나 죽였는지 기억하십니까?”
“잘 모르겠어요. 처음 몇 시간 동안 억 단위를 넘어가고부터는 제대로 셀 틈도 없었어서…….”
처음 몇 시간 동안 억 단위를 넘겼다, 라. 정말 지독하게 많은 숫자였다. 나는 검붉은 빛을 내며 벌벌 떨려대는 불멸을 두 손으로 꽉 쥐었다.
칠흑색 밤하늘이 아까보다 훨씬 더 넓어져 있었다.
“여신님.”
“네, 네?”
“저놈들 다 죽이고 나면, 최대한 빨리 그 도마뱀이 있는 장소를 알아내주세요. 최대한 빠르게 결착을 지어야겠습니다.”
원래는 그놈이 상처를 회복하는 동안 나도 최대한의 준비를 하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상황으로 봐선 더 미루면 안될 것 같았다.
내가 기억을 모두 찾게 되는 날보다 이 세계가 불사 지네로 뒤덮일 날이 훨씬 더 빠를 지경이었으니까.
“아, 알겠어요. 당신.”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파르나리에게 용언의 준비를 최대한 앞당겨달라는 부탁도 해야 하고, 어떻게든 경험치를 끌어모아서 스탯도 최대한으로 올려둬야 한다.
그 용언이 세계를 먹는 자에게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없는 것보단 낫겠지.
“뭐, 그래도 저것들 상대하게 돼서 좋은 점은 한 가지 있네요.”
밑쪽 세계에 불사 지네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이클립스가 눈에 띄게 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었기에, 나는 긴장을 풀여주려 슬쩍 입을 열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당신?”
“저것들 다 죽이면 경험치는 쏠쏠하게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레벨업도 빨리 되겠죠. 레벨이랑 경험치가 내 몸이 옛날의 기억을 얼마나 떠올렸는지를 나타낸 수치라면서요? 어쨌든 기억을 찾는 과정이니 좋다는 겁니다.”
“……그렇겠네요. 아주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었나봐요.”
불안을 덜어주려는 내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이클립스가 살짝 웃었다. 그러는 동안 밤하늘이 점차 아래로 내려왔다. 지네 수십만 마리가 한데 뒤엉킨 모습이 점차 또렷하게 보였다.
“이클립스.”
“말씀하세요, 당신.”
“아직 너한테 벌도 상도 안 줬으니까, 이런 곳에서 꺾이지 마. 이거 끝나면 네가 받을 상이랑 벌이 뭔지 하나씩 차근차근 알려줄게.”
불사 지네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이클립스의 목소리는 그 무엇보다 또렷이 들렸다.
“네, 당신.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후우.”
“어떻게든 막아낸 것 같네요. 정말로 수고하셨어요, 당신.”
이클립스가 내 목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상냥하게 닦아주었다. 불멸을 땅에 수직으로 세웠다. 솔직히 이 정도로 지친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힘을 제대로 되찾아가기 시작하고나서부터는 예전처럼 구르고 튕겨낼 필요 없이 스탯빨로 찍어누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이클립스는 과장 하나 안 보태고 산처럼 쌓인 불사 지네들의 시체를 모조리 끌어모아 하얀 공간으로 던져버렸다. 세계를 먹는 자에게 잡아먹히고 산산히 조각난 공간 중 하나라던가.
“이만하면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아요. 그것이 남아있는 한 불사 지네는 무한히 쏟아질 테니, 정말로 잠시뿐이겠지만요.”
“그래, 그렇겠ㅡ 윽?!”
그 말에 대답해주려던 나는, 순간적으로 밀어닥치는 어마어마한 두통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한쪽 무릎이 푹 꺾이며 바닥에 깔린 꽃잎과 맞닿았다.
“왜, 왜 그래요? 당신?!”
화들짝 놀란 이클립스가 내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어쩔 줄 몰라 발을 동동 구르다가, 두통의 원인을 알아차린 건지 나를 상냥하게 끌어안았다.
“정말 당신의 말대로였네요. 몸이 옛날의 감각을 되찾으면서 기억도 같이 돌아오고 있어요. 걱정 말아요, 당신. 그저 스쳐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에요.”
‘……아니, 그냥 농담 좀 해본…… 거였는데…….’
이게 진짜 되네. 나는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기분과 함께 이클립스의 품 안에 쓰러졌다.
가슴 사이에 파묻힌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는 손길이 의식을 잃기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느낀 감각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