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67)
r 267 – 깨어나는 혼돈 – 7
“제 기억을 공유하면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이클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닉스라 부르는 그 아이가 어떻게 진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지 기억하시나요?”
“수많은 영혼을 받아들이면서 그 죽음을 읽어들인 덕분에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했었죠.”
닉스가 플로르로 불렸던 시절은, 말 그대로 세계 자체가 망하기 직전이었던 탓에 수많은 생명이 눈 깜빡할 새에 죽어나가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플로르에게 다가오는 영혼도 드글드글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는 달리 불사의 사명조차 없던 닉스가 진혼을 이해하게 되었을 만큼.
“같은 의미에ㅇ예요. 지금껏 수많은 죽음을 겪어온 당신의 기억을 공유한다면, 받아들인 영혼의 죽음을 읽어들였던 그 아이의 행동과 다를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접근이었다. 하나의 죽음을 겪은 수많은 영혼과, 수많은 죽음을 겪은 하나의 영혼은 결국 질이냐 양이냐의 차이에 불과하다는 의미였으니까.
닉스가 가능했으니 다른 사람들 역시 가능하다. 저 말의 핵심이었다.
“허나, 이 방법 또한 크나큰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클립스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을 공유한다는 의미는 곧, 당신께서 겪으셨던 그 수많은 죽음들을 마치 자기가 겪었던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건 위험이 상당히 큰 행동이에요. 죽음을 견디지 못한 인간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었는지는 당신도 아시잖아요.”
“……아주 잘 알죠.”
“신체의 능력과 정신의 능력은 완전히 별개입니다.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당신이 불사의 사명을 버텨내셨고, 마찬가지로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던 닉스가 영혼 수호녀라 불릴 수 있었던 것처럼요.”
닉스의 정신력도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는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영혼 상태로 세계를 넘어온 것도 그렇고, 내게 걸 마법의 반동을 감당하기 위해 인격을 둘로 나눈 것도 그렇고. 하나같이 맨정신으로는 못 할 행동뿐이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여기로 넘어오면서 겉모습이 정신력과는 거리가 멀게 바뀌긴 했지만.
어쩌면 맨정신으로 그런 육체를 고른 것도 정신력이 강해서일지 모른다. 옷차림이야 이클립스가 만든 여자들은 죄다 그런 마인드니 넘어가고.
“만약 당신의 기억을 공유받은 아이들이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면ㅡ”
“마음이 꺾인다 이 소리십니까?”
길게 뻗은 흑발이 위아래로 작게 흔들렸다. 긍정의 의미였다.
반복되는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이 꺾인 불사자들은 예전에 몇 번이나 봤다. 브닼 1 시절에는 아마 지겹도록 상대해봤을 테고, 브닼 2 시절에도 몇명이 남아서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알던 사람들이 그런 몰골로 변한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내가 어떻게 죽었더라?’
잠시 예전에 겪었던 죽음들을 돌이켜보았다.
머리가 부서지거나 심장이 꿰뚫려서 나름대로 깔끔하게 죽은 경우도 있고, 어지간한 슬래셔 영화는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잔인하게 토막쳐지거나 발끝부터 갈려나간 경우도 있다.
‘…….’
척 느끼기에도 그런 쪽으로 내성이 없다면 1~2번 보는 걸로 그날 먹은 메뉴를 확인할 수 있을 듯한 구성이었다.
그나마 나름대로 힘과 능력을 갖췄던 브닼 2와 3 시절조차 그 정도였는데, 아무것도 없이 불사 하나만 달랑 받고 던져졌던 브닼 1 시절에는 대체 얼마나 참혹하게 죽어나갔겠는가.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하면 영혼이 망가진다니? 나는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여신님. 이건 제가 멋대로 결정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으니 잠시 보류하도록 하죠. 다른 주의사항은 없습니까?”
“네. 그 점만 주의하시면 돼요. 당신의 죽음을 버틸 수 있다면, 이후는 간단할 거예요.”
말을 끝낸 이클립스는 침대 위에서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내 눈치를 살폈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꽃밭에 발을 디디며 말했다.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여신님?”
“혹시…… 저한테 벌을 주지는 않으실 건가요?”
“벌? 무슨 벌이요?”
내가 어리둥절하게 되묻자, 이클립스가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였다.
“소, 손목을 풀어드릴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제, 제가 당신의 몸을 멋대로 만진 것도 사실이니…… 그, 그거에 대한 벌이요…….”
날 향한 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에는 약간의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엉덩이가 조금씩 들썩였다. 저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벌이라는 게 무엇을 뜻할지는 뻔했다.
이 세계 여자들의 전체적인 성향을 떠올렸다. 리제, 교황 자매, 카이킬리아, 아우로라, 마지막으로 닉스. 하나같이 이클립스처럼 자발적으로 리드당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평소의 성격과는 관계 없이 말이다.
여신이 본인의 외형과 모습을 본따 여자를 창조했다 했으니, 고의였든 실수였든 간에 이클립스의 은밀한 취향마저 닮게 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카이킬리아는 살짝 애매하긴 한데.’
카이킬리아는 초반부터 너무 가버려서 머리가 반쯤 훼까닥 한 상태였으니까. 멀쩡한 상태에서 어떤 취향일지는 아직 모른다.
나는 침대 한 켠에 얌전히 기대어져 있는 날개 잃은 악몽을 허리춤에 차고선 침대 위를 돌아보았다. 이클립스는 무릎꿇은 자세로 얌전히 앉아 있었다.
“벌이라…… 그렇네요. 잠시 가까이 와보시겠습니까, 여신님?”
무릎걸음으로 다가온 이클립스가 침대 가장자리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검지와 중지로 턱을 쥐고 조심스레 들어올렸다.
“하나는 뭘로 할지 막 정했습니다. 그 잠깐을 못 기다리고 절 재촉하는 성질 급한 여신님한테 딱 맞는 벌일 겁니다.”
기대감 때문인지, 뺨을 물들인 홍조가 한층 짙어졌다.
“나중에, 이 모든 게 다 끝난 뒤에 평화로워지고 나면…… 제가 여신님의 이름을 부르는 즉시 3초 안에 절정할 수 있도록 연습해두세요.”
“사, 삼 초요……?”
“언제든, 어디서든, 여신님이 뭘 하고 계셨든, 어떤 상황이든, 제가 ‘이클립스’라고 말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 3초 안에 절정할 수 있도록. 아시겠습니까?”
언제 어디서든 내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3초 안에 절정할 수 있도록 연습해두라니, 제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그게 가능하냐고 펄쩍 뛸 소리였다.
“네, 당신…… 반드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할게요…….”
하지만, 눈앞의 여신은 제정신도 아니었고 사람도 아니었다.
이클립스는 눈동자에 하트라도 띄울 기세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옆구리부터 엉덩이, 허벅지로 이어지는 유려한 곡선이 부르르 떨리고, 허벅지가 슬금슬금 비벼졌다.
“자, 여신님. 제가 말씀드린 ‘벌’을 연습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뭘 해야 할까요?”
“당신이 그것을 죽이실 수 있게끔…… 그것이 있는 위치를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들어오려는 것들을 막아야 해요…….”
“정확히 짚으셨습니다. 이번에는 상을 드리죠.”
나는 턱을 쥐고 있던 검지와 중지를 그대로 입 안에 밀어넣었다. 앙증맞은 입이 기다렸다는 듯 활짝 벌어졌다.
“커흑…… 우웁…….”
손가락을 목젖 근처까지 밀어넣었다. 이클립스는 연신 헛구역질을 하고 미처 삼키지 못한 침을 입 밖으로 질질 흘려대면서도 필사적으로 손가락을 핥았다.
마디 사이의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을 핥던 혀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우고 힘껏 눌렀다. 이클립스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찌걱찌걱 소리를 내며 목구멍 안쪽을 쑤시던 손가락을 천천히 뽑았다. 타액으로 범벅이 된 검지와 중지 끝에서 투명한 실이 거미줄처럼 길게 늘어졌다.
이클립스는 자기 침으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보더니, 가슴을 붙잡아 좌우로 활짝 벌리고 그 안에 내 오른손을 끼웠다. 부드러운 지방 덩어리가 위아래로 교차하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동안 가슴으로 내 손을 문지르며 타액을 모두 닦아낸 이클립스는, 오른손이 빠져나가자 무릎을 꿇은 자세 그대로 침대에 두 손을 짚고선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톡, 이마가 침대와 맞닿았다.
“제, 제게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
허벅지와 맞닿으며 짓눌린 가슴이 옆으로 한껏 삐져나왔다. 백옥같이 새하얀 등은 아랫배 앞의 십자가 모양을 지탱하는 끈 한 줄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이 말끔했다.
‘이 미친 여신이 진짜…….’
나는 그 앞에서 조용히 욕망을 억눌렀다. 솔직히 여기서 하반신에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동상 하나쯤은 세워질 위업일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클립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는 반쯤 풀려 있었다.
“지상으로 내려가시기 전에, 감히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까요……?”
“어떤 부탁입니까?”
“당신의 목소리로 제 이름을 한번만 속삭여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귓가에 입술을 가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이클립스는 몸을 파르르 떨다 침대에 푹 엎어졌다.
“헤헤, 오셨어요, 당신?”
달의 대성당에 도착하자, 어느새 인격을 존댓말 쪽으로 바꾼 닉스가 나를 향해 가슴을 출렁이며 도도도 달려왔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보이지 않았다.
“플로레타랑 루나는?”
“교황들은 이대로 실패하면 당신한테 도움이 못 된다고 아직도 연습중이에요. 제가 실패하는 게 당연한 거라고 위로했는데, 별 도움은 안 됐어요.”
“안 되는게 당연한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말하고 갔었잖아?”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긴 하셨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게 딱 잘라 결정할 수 있지는 않으니까요.”
아무래도 이 대화만 끝나면 교황들을 위로해주러 가야 할 듯했다. 나는 품에 엉겨붙은 닉스의 턱을 살살 간질여주면서 운을 똈다.
“여신한테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진혼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물어봤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라더라.”
닉스는 고롱거리다 말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았다.
“어, 어떻게요?”
“너랑 똑같이 하면 돼. 대신 영혼들의 기억을 읽는 게 아니라 내 기억을 공유하는 방식이야.”
내 기억을 공유한다는 말에, 닉스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제 입으로 이런 말씀을 드려서 죄송해요. 하지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건 알고 계시죠? 일반적인 죽음도 충격이 클 텐데, 하물며 당신의 죽음들이라면…….”
“알아. 여신님도 그러셨거든. 만약 버티지 못한다면 망가질 거라고. 그런 사람들은 옛날에 지겹도록 봐왔어. 본인이 하겠다고 해서 무작정 시도하지는 않을 거야.”
이건 판돈으로 목숨이 걸린 도박이고, 그런 도박을 무작정 시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주변 사람을 그런 불확실한 확률에 맡기는 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우선은 전부 한 자리에 불러모아야겠지.”
“그 다음은요?”
“…….”
아이리스와 리제, 에리카와 클라우디아는 근처 벽에 일렬로 늘어선 채 차렷 자세를 하고 조용히 굳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 있는 한명 한명이 제국과 성국의 핵심이자 중추였으니까.
아이테르눔 제국의 황제, 카이킬리아 리바누스.
영원의 마법사, 미네르바 스키엔티아.
태양의 교황, 플로레타 에반젤리나.
달의 교황, 루나 세라피카.
한 명만 나타나더라도 근처 사람들을 무릎꿇리고 칭송받기에 충분한 존재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고작해야 일개 기사단장 따위가 편하게 있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특히 카이킬리아가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표출해댔기에 더더욱 그랬다. 검지로 소파를 두드리는 톡톡 소리의 간격이 점점 더 짧아지는 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나마 반대편 벽에 서 있는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은 무릎을 꿇고 기도라도 올릴 수 있으니 더 나을지 몰랐다.
아우로라는 워낙에 강심장이어서 그런 건지 표정이 약간 굳어있다는 것만 빼면 태연했고 말이다.
‘델타…… 여기 우리만 던져놓고 네가 안 오면 어떡해!’
리제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정작 이 사람들을 여기에 불러모은, 이 모든 여자들과 유일하게 접점을 가진 남자가 아직 오지 않아서였다.
그나마 델타가 있었다면 카이킬리아가 저런 살벌한 기운을 풍겨댈 리도 없을 테니, 기사단장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제발 빨리 와달라고 간절하게 빌었다.
기도는 얼마 안 가 통했다. 알현실의 문이 일말의 소리조차 없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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