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71)
r 271 – 파국 – 1
“확실하십니까, 여신님?”
“네. 몇백 번이나 확인해봤습니다. 바깥의 망가진 차원이 특정 구역만 뒤틀리고 있는데, 그 뒤틀림이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다가오는 중이에요. 그게 의미하는 건 하나뿐이죠. 이 세계 밖에 존재하는 건 불사 지네와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황궁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며 이를 악물었다. 아주 좋지 않은 징조였다. 내가 그놈을 찾아가는 것과 그놈이 나를 찾아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니까 말이다.
그때는 이클립스의 세계에서 싸웠으니 나 하나 다치는 선에서 끝난 거다. 세계를 먹는 자가 여기로 찾아온다면 승패를 걱정하기 전에 대륙이 작살날 걸 먼저 걱정해야 했다.
“놈이 여기로 찾아온다는 건 상처의 회복이 끝났다는 의미겠죠. 아무리 복수심에 불타는 중이라 해도 두 번은 안 당하려 할 테니까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내 옆에서 작게 떠다니는 빛무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계속 태양과 달의 형상으로 떠다닐 수는 없어서 그런지, 크기가 몇십분의 일 수준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향하고 계신 건가요, 당신?”
“마탑입니다.”
“마탑이요? 그곳에는 왜…….”
“왜긴요. 여신님이 브닼 4에 넣어놓으셨던 기믹, 기억 안 나십니까?”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서 세계를 먹는 자 보스전을 치르기 위해 파훼해야 하는 기믹은 총 2가지였다.
하나는 그놈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무적 에센셜을 꺼뜨리기 위해 파훼해야 하는 기믹이고, 다른 하나는 그놈의 비행을 봉쇄하기 위해 파훼해야 하는 기믹이었다.
하지만 이제 전자는 필요 없었다. 그놈이 게임처럼 이 세계에 자기 약점을 놓아두지는 않았을 테고, 설령 일방적인 무기로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한들 진혼을 사용하면 되니까.
세계를 먹는 자가 진혼에 내성을 가지게 됐거나 아예 먹히지 않게 됐을 경우의 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된다면 어차피 가망이 없다.
‘용언을 사용하는 방법도 살짝 애매하고.’
두 번째 기믹 역시, 방법을 고안한 나조차도 아직 확신을 갖지 못했다. 이 세계의 창조신을 정면에서 압도하는 놈이 고작해야 세계의 법칙 따위에 구속될지 의문이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
통하든 말든, 그건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쓸 수 있는 것은 다 써야 한다.
특히 그놈이 예전처럼 자만과 방심에 찌들어 있는 게 아니라 분노로 가득 들어차서 전력을 다해 나를 죽이려 드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파르나리 씨! 파르나리 씨 안에 있나요?”
나는 마탑에 들어오자마자 이클립스의 힘으로 마법사들의 인식을 모조리 지워버린 다음 파르나리를 찾아갔다. 파르나리의 방은 미네르바의 방 바로 아래였으니 찾기도 쉬웠다.
책상에 앉아서 끙끙대고 있던 파르나리가 날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가 날 먼저 찾아오다니, 의외네.”
“뭐 하고 계셨습니까?”
나는 파르나리의 책상 위에 놓인 노트를 흘끗 살폈다. 얼핏 보기에도 굉장히 복잡한 수식들이 적혀 있었다.
“아, 이거? 별 거 아니야. 머리도 식힐 겸 해서 하는 마법 공부. 시간 날 때마다 하는 거니까 방해했다는 생각은 안 해도 돼. 무슨 일로 왔어?”
공부를 하면서 머리를 식힌다니, 나로서는 도통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이 마탑에서 공부로 머리를 식히는 정도면 무척 정상적인 범주였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용언이 어디까지 진척됐나 물어보러 왔습니다. 이제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그게.”
내 말에, 파르나리가 우물쭈물거렸다.
“거의 다 완성되긴 했는데, 문제가 좀 있어.”
“어떤 문제 말이죠?”
“마지막 한 단어가 부족해.”
“마지막 한 단어라면……?”
“음, 이건 직접 보여주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이쪽으로 와.”
성큼성큼 자신의 공방 문을 열어젖힌 파르나리가 그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파르나리의 공방은 미네르바의 것과 비교해도 별로 밀리지 않을만큼 컸지만, 대신 훨씬 더 단촐했다.
파르나리는 공방 한쪽 벽에 줄지어 세워진 과녁판 중에서 하나를 들고오더니 근처에 놓았다.
“네가 부탁한대로, 세계의 법칙을 창조하고 네 의지에 따라 강제할 수 있는 용언이야. 잘 봐.”
선홍색 입술이 달싹였다. 호흡과 함께 발성 기관의 진동으로 생성된 파동이 흘러나왔다. 파동은 힘이 담긴 단어가 되고, 힘이 담긴 단어는 용언이 되어 과녁판을 집어삼켰다.
용언에 휩쓸린 과녁판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공중으로 떠오르라고 세계의 법칙을 창조한 다음, 그걸 과녁판에 강제로 덧씌운 거야. 여기까지는 성공했어.”
“그러면 이미 완성된 것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허공에 둥실둥실 떠 있던 과녁판이 바닥으로 픽 떨어졌다.
“보다시피, 유지되는 시간이 너무 짧아.”
파르나리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용언이었다면 여기서 만족했을 거야. 그런데 아니잖아. 엄청나게 큰 드래곤한테 쓸 용언이라며?”
“……그렇죠.”
“작은 산 정도 크기랬으니까, 이 정도 유지시간으로는 그놈한테 아무런 의미도 없을 확률이 커. 그리고 드래곤이 한 번 맞은 용언에 두 번 당하지도 않을 테고. 최악의 경우에는…….”
“따라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죠?”
“정확해. 이걸 해결하려면 아무리 못해도 한달은 넘게 잡아야 할 것 같은데…… 아까 시간이 없다고 그랬지?”
“네. 그놈이 코앞까지 찾아왔습니다. 이 세계에 도착하기 직전이에요.”
“역시 그렇구나.”
파르나리의 입에서 한숨이 푹 새어나왔다.
“상황이 안 좋다는 건 알겠어. 다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라는 것도 알겠고. 하지만 나도 이 이상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세계의 법칙을 창조하고 강제한다는 개념의 용언은 나도 처음 만들어 보거든.”
“정확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정답과 오답을 구분할 기준이 너무 부족해. 모든 영역을 나 혼자서 개척해야 하는데, 그 개척한 영역이 맞는지 판단하는 것도 나 혼자니까.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서 용언을 개량해봐도, 그게 맞는 방향인지 틀린 방향인지를 모르잖아.”
ㅡ그것이라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문득, 공방에 태양과 달이 떠올랐다. 하늘의 천체가 고스란히 내려앉은 듯한 광경을 본 파르나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뜬금없이 왜 지금 모습을 드러냈는지 의문이었으나, 조용히 있기로 했다. 분명 뭔가 생각이 있어서 나타난 거겠지.
ㅡ가장 오랜 시간을 살아온 드래곤이여, 대답을 원합니다. 만약 세계의 법칙이 창조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면, 이 자를 위한 용언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까?
이클립스의 목소리는 마치 동굴 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은은하게 메아리치며 울려퍼지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신성함이 넘쳐 흐르는 여신 같았다.
‘뭐, 일단 여신이 맞긴 하니까.’
내가 봐온 이클립스는 대체로 신성함이랑은 거리가 먼 여자였던지라, 저런 모습보다는 나사가 두어개 정도 빠진 것 같이 실없는 모습 쪽이 더 익숙했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 어, 어? 그, 그렇, 지, 아니, 죠? 명확한 기준이 있다면 옮고 그름을 판별할 수 있으니까…… 요.”
압도적인 광량과 신성함 탓에 자꾸 본능적으로 존댓말이 튀어나오는 듯, 파르나리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더듬더듬 말했다.
ㅡ그렇다면, 목도하십시오.
태양과 달이 환히 빛났다. 그러자 파르나리의 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인간의 모습으로 공중에 떠오른 적은 처음인 듯, 파르나리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ㅡ당신을 위해 세계의 법칙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이해가 가시겠습니까?
“이, 이해 갔어요! 갔으니까 이제ㅡ”
그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두 발이 바닥에 닿았다. 잠시 휘청거리다던 파르나리는 간신히 균형을 잡고 헥헥대며 숨을 골랐다.
공방을 환히 비출 정도로 강렬하게 빛났던 태양과 달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파르나리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으, 응. 아마도……?”
“조금 많이 놀라신 것 같은데, 대체 어떤 기분이었길래 그러십니까?”
“바닥에 닿으려면 바닥을 향해 ‘날아야’한다는 느낌이었어. 아니, 그것보다 훨씬 더 복잡했는데……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용언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파르나리는 내 손을 붙잡고 허리를 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금 나타났던 태양과 달을 찾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이클립스는 이미 내 어깨 근처에 자리 잡은 뒤였다.
“저기, 있잖아. 방금 뭐였어?”
“성국의 신입니다.”
“신?! 신이 내 앞에 나타났던 거야?!”
“그렇게 호들갑 떠실 필요 없습니다, 파르나리 씨. 실제로 보면 딱히 신성하다는 느낌은 없거든요. 오히려 약간 허접하기까지 하다는 느낌이죠. 그거 다 눈속임이에요.”
“…….”
이클립스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고.
신을 허접하다고 설명하는 내 모습에,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파르나리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어. 방금 걸로 기준이 세워졌으니까 다시 해볼게.”
혼란은 짧았다. 눈을 감은 파르나리가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알아듣기 힘든, 모순적이고 기묘한 말이었다.
나는 파르나리의 중얼거림을 해석하려 시도하는 대신 이클립스에게 슬쩍 질문을 던졌다.
“방금 뭐 하신 겁니까?”
“당신께서 그것에게 하시려는 것과 똑같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이 세계의 법칙을 창조한 것은 저이니, 국소적인 범위에서라면 당연히 그 법칙을 뒤바꿀 수도 있지요.”
“그러면 제가 용언을 사용할 게 아니라 여신님께서 그놈이 날지 못하도록 하실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이미 몇 번이고 시도해봤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클립스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졌다.
“그래도 당신께서 사용하시는 용언은 다를지 모릅니다. 저는 실패하였으나, 당신께서는 그것의 본질에 상처를 입히셨듯이요.”
“…….”
목소리의 크기를 보아하니, 정작 저 말을 하는 본인도 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세계를 먹는 자와 연관된 일이라면 예지를 할 수 없다고 했으니 당연하겠지.
“끝났어. 용언.”
파르나리는 얼마 안 가 눈을 떴다.
“이렇게 빨리요?”
“응. 맞고 틀린 걸 구분할 수 있으니까 쉬웠어. 대신 마지막 하나는 네 도움이 필요해. 괜찮지?”
“괜찮지 않을 리가요. 뭡니까?”
“지금은 용언의 마지막 한 획만 남은 상태야. 네가 원하는 법칙을 담는 일이지. 그 한 획을 긋는 것, 그러니까 용언에 세계의 법칙을 담는 일은 네가 해야 돼.”
“어떻게 말이죠?”
나는 조용히 마탑을 나섰다. 마탑의 마법사들은 끝까지 내가 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성공할 수 있으실 것 같으신가요, 당신?”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번은 진짜 모르겠다. 과거에야 어차피 목숨도 무한이겠다 그냥 죽어가면서 꾸역꾸역 밀어붙였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되니까 말이다.
“괜찮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으니까요. 언제나 절망 속에서 희망을 건져내던 당신을,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셨던 당신을 믿으니, 이번에도 분명 그러실 것입니다.”
“뭐, 그건 두고 봐야 알겠죠. 그놈이 도착하기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망가진 세계에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서 딱 잘라 말하긴 힘들어요. 그래도 뒤틀림이 다가오는 속도를 계산해보면…… 아마 앞으로 1시간도 채 남지 않았을 거예요. 어쩌면 더 빠르거나 더 느릴 수도 있고요.”
“그게 저희한테 마지막으로 남은 시간이다 이 소리네요.”
입맛이 살짝 썼다. 아직 브닼 1 시절의 기억을 되찾지 못해서였다. 나는 풀 컨디션이 아닌데, 저쪽은 풀 컨디션에 추가로 복수심까지 빵빵하게 탑재하고 있다.
저번에는 세계를 먹는 자가 교만에 찌든 상태였으니 그 틈을 타서 허를 찔렀다 쳐도, 이번에는?
“시간이 좀 남았다니 잘 됐습니다. 놈이 찾아오기 전에 알현실로 돌아가서ㅡ”
말을 하는 와중에, 주위가 빨간색으로 뒤덮였다. 마치 붉은색 필터라도 씌운 듯 눈 닿는 모든 곳이 온통 시뻘갰다. 나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그리고 조용히 경악했다.
세계를 먹는 자의 눈처럼 새빨간 붉은색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저건 절대로 지금 나타나선 안 되는 색깔이었다. 왜냐하면, 그놈이 나타날 때까지는 아직 1시간 가량이 남아있다고 했으니까.
“……하늘이 저렇게 된 이유 말인데요,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이유 때문이 맞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분명 한 시간은 남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랬었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이클립스는 거의 울기 직전인 목소리로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이클립스를 달래주며 불멸을 꺼내들었다. 에상보다 앞당겨지긴 했지만, 어쨌든 결국에는 찾아왔어야 할 결과니까.
붉게 물든 하늘.
브닼 4에서 세계를 먹는 자와의 보스전이 치러질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