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75)
종막 – 2
“저것은…….”
닉스와 미네르바는 거미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대륙 낲쪽 독늪 지대에 서식하는 벌레 종류 중 하나였다.
그런데, 뭔가 좀 많이 이상했다.
놈들은 매일 서로 잡아먹고 싸워대느라 특별하게 강력한 몇몇 개체를 제외하면 건물보다 더 큰 크기까지 성장할 일도 없었고, 이런 장소까지 올라와 인간에게 덤빌 일은 더더욱 없었다.
즉, 황궁에서 거미 마물과 싸울 일은 상식적으로 있어선 안 됐다는 뜻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나타났죠?”
분명 그랬어야 했건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 광경은 대체 뭐란 말인가?
정원을 내려다 본 2명의 생각이 복잡해지는 동안, 기사들은 거미 마물을 한 명이 한 마리씩 착실히 제압해나가고 있었다. 아무리 당황했더라도 은빛 여명 기사단은 제국의 최정예 병력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놈들이 연달아 나타나며 이쪽이 역으로 밀리기 시작했다. 황궁을 둘러싼 벽을 넘어 거미 몇 마리가 스멀스멀 기어오는 중이었다.
“……가 보아야 겠구나.”
이대로 가다간 한 명이 한 마리가 아니라 네다섯 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야 할 판이다. 기사들이 점차 밀리는 모습을 본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말리진 않겠습니다. 저쪽도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니까요. 진혼은 어떡하시겠습니까?”
“그 아이는 우리가 죽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으니, 이대로 포기하는 것이 아이의 의도에 따라주는 일이 되겠지. 걱정은 접어두려무나. 만약 저것들을 처리하고 시간이 남는다면 그때 다시 찾아오겠단다.”
미네르바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무슨…… 커흑, 무슨 일이 터진 것이냐, 쿨럭…… 미네르바……?”
소파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던 카이킬리아가 헛구역질을 억지로 삼키며 질문했다.
닉스와 미네르바의 표정이 심상치 않으니 뭔가 일이 터진 건 확실한데, 대화만 들어서는 어떤 상황인지가 정확히 짐작되지 않아서 묻는 말이겠지.
막 기억 공유에서 깨어난 반동으로 인해 아직까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플로레타와 루나를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도 전부 비슷한 반응이었다.
“우리도 확실하게 대답해주지는 못하겠구나. 자세한 이야기는 직접 들어보아야 알 수 있을 듯하니.”
“……알아서 하거라.”
잠시 미네르바를 쳐다보던 카이킬리아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다른 사람들은 미네르바를 도와야 할지, 아니면 하던 일을 계속해야 할지 주춤주춤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다 같이 여기 있으려무나. 저것들은 내가 막겠단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할 일을 해야지.”
미네르바는 혼자 나서겠다고 단단히 못을 박고, 손에 든 지팡이로 바닥을 살짝 두드려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목적지는 황궁 정원이었다.
정원에 도착하자,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장소에 건물 3층 높이와 맞먹는 크기의 거미가 기사들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미네르바는 지팡이를 휘둘러 기사들을 자신의 뒤로 옮겨놓았다.
갑자기 증발해버린 목표에 어리둥절해하던 거미들은, 수십 쌍의 겹눈으로 주위를 살피다 미네르바를 발견하고 냅다 달려들었다. 8개의 다리가 땅을 힘껏 박찼다.
“이것 참 이상한 일이지 않니.”
미네르바는 선두에서 다가오는 거미의 몸을 풍선처럼 터뜨려버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동료가 단숨에 터져나갔음에도 다른 거미들이 전혀 개의치 않고 있어서였다.
지금 미네르바의 몸에서는 어지간한 상급 마물조차 꼬리를 말고 도망칠만큼 흉흉한 마나가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문제는, 저것들이 겁을 먹기는커녕 반응조차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벌레라지만 상황을 판단할 최소한의 지능은 있는 놈들이다. 덤벼도 못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상대를 만나면 도망칠 정도의 지능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자기가 죽든 말든, 동료가 죽든 말든 오직 눈앞의 인간을 물어뜯기 위해 덤벼든다는 느낌이었다.
“어딜 그 역거운 얼굴을 들이밀고 있을까?”
생각은 짧았다. 미네르바는 나머지 거미들도 모조리 다 터뜨려버렸다. 물론 터지고 남은 체액이 주변에 퍼지지 않도록 방어막으로 막은 뒤 불태워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황이 종료되자 뒤에 물러나 있던 기사들이 다가왔다. 거미들을 손짓 한 번으로 터뜨려버리는 모습에 마음 깊이 차오른 경외감은 덤이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원의 마법사시여!”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란다. 인사는 접어두렴. 그것보다, 어떻게 된 일인지를 먼저 듣고 싶구나. 혹시 저것들이 나타난 이유를 알고 있니?”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황궁 바깥도 저런 꼴이라서요.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다들 나가서 막고는 있는데, 천만다행으로 사상자는 아직 없지만 경과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바깥도 저렇다고 했을까?”
“예. 지금 황궁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아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바깥을 더 돕고 싶어하시는 것 같지만, 여기서 병력을 더 보냈다간 도리어 황궁이 위험할 수 있어서 그러진 못했습니다.”
제국 전체가 이렇다면 심각한 상황도 이런 심각한 상황이 없다. 미네르바는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마나 파장을 퍼뜨렸다. 제일 가까이 있던 마법사 3명이 곧장 날아왔다.
“스키엔티아 님!”
“미네르바 님, 지금ㅡ”
“탐지 마법을 사용해 본 사람은 있니? 상황 보고하렴.”
미네르바는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마법사들의 말을 칼같이 끊어냈다. 셋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황제 폐하의 말씀에 따르면 여기만 이런 것이 아니라 제국 전체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마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흉폭한 데다 크기가 몇 배로 커졌다는 사실까지 모두 일치하고요.”
“신성력 탓에 성국 쪽까지 확인하진 못했는데, 마물들이 성국 방향으로도 걸어가고 있다는 국경 지대의 보고로 짐작컨대 성국 측도 비슷한 상황일 것 같습니다.”
“알았단다. 수고했구나. 이제 뒤로 물러나렴. 가까이 오지 말고.”
짤막하게 노고를 치하한 미네르바가 전신에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저만하면 정보는 충분하다. 자세한 건 일단 놈들을 처리하고 생각해도 된다. 1분 1초가 아까운 상황이었다.
은백색 머리카락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사방으로 나풀거리는 모습에, 마법사들은 기사들을 데리고 멀찍이 물러났다.
저건 미네르바가 정말 작정하고 마법을 사용하겠단 사실을 의미하는 행동이었다. 괜히 근처에 있다간 마나에 휩쓸려 형체조차 남기지 못한 모습으로 녹아내릴지도 모른다.
은백색 동공의 초점이 희미해졌다. 그 몸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공중으로 떠오른 몸은 발 끝이 사람의 눈높이에 닿을 정도가 된 후에야 멈췄다.
“저기 봐! 하늘이!”
기사들 중 한 명이 깜짝 놀라 외쳤다. 하늘에 미네르바의 눈동자처럼 은백색을 띠는 거대한 눈동자가 떠올라 있어서였다.
하늘에 떠오른 거대한 눈동자가 휙휙 움직이며 지상을 살피는 광경은 무척이나 기괴하게 느껴졌다.
“……윽!”
누군가 짤막한 비명을 내질렀다. 미네르바의 몸 주변에 한층 더 짙은 농도의 마나가 피어올랐다.
분명 충분히 멀리 떨어졌음에도 피부로 느껴지는 오싹한 감각에, 마법사 중 한 명이 다급히 외쳤다.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되겠어! 사람들 더 뒤로 물려! 빨리!”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지셨잖아?! 이게 가능해?!”
“입 움직일 시간 있으면 발부터 움직여! 아직 배울 마법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여기서 죽으면 마법 더 못 배운다고!”
마법사들은 당황하며 거리를 훨씬 더 벌렸다. 미네르바의 발 아래 땅은 녹아내리듯 증발하고 있었다. 그 반경 10미터가 무엇 하나 존재할 수 없는 죽음의 지대로 변한 상태였다.
눈동자는 계속해서 생겨났다. 제국의 모든 장소가 그 시야에 들어올 때까지. 그 숫자는 무려 수만 개에 달했다.
제국의 하늘을 뒤덮은 은백색 눈동자가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지상의 사람들 역시 하늘에 떠오른 눈동자를 올려다보았다.
원래라면 하늘에 수만 개의 눈동자를 띄워서 제국 전체를 한꺼번에 감시하는 일은 설령 미네르바라 할지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미네르바에게조차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고대의 스크롤을 두 개나 얻었고, 심지어는 다른 세계의 마법까지 배울 기회를 가졌다.
비록 시간이 부족하여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미네르바의 천재적인 두뇌는 기어코 그 짤막한 순간에서마저 새로운 마법을 구축해냈다.
수십만 개에 달하는 은백색 눈동자가 미네르바의 의지를 받들었다. 그 동공에서 옅은 자줏빛이 터져나왔다. 온 제국민이 그 눈동자를 무언가에 홀린 듯 응시했다.
“하아…….”
마나로 이루어진 폭풍에 휘감긴 미네르바가 푸른 숨결을 내뱉으며 왼손을 천천히 앞으로 들어올렸다. 하늘에 떠오른 수십만 개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제국 전역에서 날뛰던 마물들이 일거에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무수한 숫자의 마물이 팔다리를 버둥거리고 포효를 내질렀다.
눈이 있는 자라면 볼 수 있었다. 수십만, 아니, 어쩌면 수백만에 달할지도 모를 숫자의 마물들이 모조리 하늘로 떠오르는 광경을 말이다.
마음이 있는 자라면 경외할 수 있었다. 저런 기적이나 다름없는 마법을 가능하도록 만든 사람이 바로 제국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것이…… 스키엔티아 님의…….”
황궁의 마법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집중해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마법에 조예가 없는 사람들이 저걸 보고 느끼는 감상은 그저 ‘대단하다’ 정도에 불과하지만, 마법사들은 저런 짓을 하려면 대체 얼마나 큰 마나와 마력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으니까.
꽈악, 미네르바가 왼손을 쥐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수백만 개의 파란색 창이 내려와 수백만 마리의 마물을 하나씩 꿰뚫어버렸다.
크기가 작은 놈들은 창에 꿰뚫린 즉시 죽어버렸지만, 대부분은 몸이 정통으로 꿰뚫리고도 멀쩡히 살아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몸이 워낙에 컸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몸을 관통한 푸른색 창이 어마어마한 마나를 내뿜었다. 그 마나를 고스란히 뒤집어 쓴 마물들은 살점 하나, 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말끔히 증발했다.
“…….”
일거에 제국 전역의 마물을 멸절시켜버린 미네르바가 바닥으로 내려왔다. 타들어갔던 정원과 근처 건물은 어느새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잔디 위에 발을 디딘 미네르바는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며 거센 숨을 몰아쉬었다. 주륵, 왼쪽 눈에서 피가 눈물처럼 흘러나왔다. 콜록거리는 기침에도 검붉은 피가 섞였다.
“……역시, 이렇게 되는구나.”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방금은 소모가 너무 컸다. 마치 눈물처럼 흘러내리는 피를 닦고, 기침에 새어나온 피를 소매로 훔쳤다.
“스키엔티아 님!”
미네르바는 이쪽으로 도도도 달려오는 마법사들을 보고 재빨리 각혈의 흔적을 지웠다. 적어도 지금은 꺾이면 안 된다. 아직은 반드시 건재함을 보여야만 했다.
지금의 미네르바란 그런 존재였다.
“굉장해요! 어떻게 하신 거예요?!”
“무슨 마법을 사용하신 건가요?!”
“너희들에겐 아직 무리란다. 어쩌면 평생 무리일지도 모르지. 그리고, 피곤하니 잠시 떨어져주겠니?”
“앗, 네! 죄송합니다!”
마법사들이 호닥닥 멀어졌다. 미네르바는 정말 최소한의 마나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사용해 허공에 푸른 덩어리를 만들었다.
푸른 마나의 덩어리가 수십 개로 쪼개지고, 인간의 형상을 갖췄다.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길다란 은백색 머리에, 은백색 눈동자. 그리고 몸을 가린 칠흑색 가운.
미네르바의 모습이었다.
“이건……?”
마법사들이 어리둥절해햐는 사이, ‘만들어지자마자’ 곧바로 자신의 목적을 이해한 각각의 미네르바들이 입을 열었다.
“따라오려무나. 해야 할 일이 있단다.”
목소리마저도 원본과 똑같았다.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는 마법사들을 향해, 미네르바가 손짓을 했다. 그 손짓을 이해한 각자가 무리를 이루어 흩어졌다.
한 번 만들어두면 마나가 모두 떨어질 때까지 추가적인 관리는 필요 없으니, 힘을 회복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미네르바는 피맛 가득한 숨을 들이쉬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으로 간단한 소파를 만들어낸 미네르바가 그 위에 축 늘어지며 입을 열었다.
“그 아이들은 어쩌고 여기로 왔니?”
“만약 영혼이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옆에 있어도 딱히 해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까요. 제가 있든 말든 똑같아요. 지금은 다들 새 기억을 받아들이는 중이고요. 끝나면 저 부르라고 마법진도 하나 준비해놓고 왔으니 괜찮을 겁니다.”
“경과는?”
“카이킬리아랑 교황 성하들은 받아들이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아마 진짜 기억 공유까지 30분도 안 걸릴 것 같은데요.”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미네르바가 다시 소파에 축 늘어졌다. 방금 좀 무리하긴 했지만, 어차피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이대로 조금만 쉬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될 것이다.
아직 습득하지 못한 지식이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설마 여기서 목숨까지 바쳤겠는가. 그러기엔 아직 얻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방금 만드셨던 분신들은 뭡니까?”
“예전에 개량해둔 마법이란다. 전투력도 적당히 갖췄고, 나랑 시야를 공유할 수도 있지.”
“편리하겠네요. 만드신 이유는 뭐죠?”
“혹시 성국 측에 도움이 필요할 수도 있지 않니. 그쪽을 감시하라고…… 잠깐.”
성국에 제일 먼저 도착한 분신과 시야를 공유하던 미네르바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순간 반동이 찾아와 비틀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왜 그러세요?”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빠르겠구나. 그러겠니?”
“거절하진 않을게요.”
그 요청을 태연히 수락한 닉스가 미네르바의 도움을 받아 분신과 시야를 공유했다. 왼쪽 눈에 마물과 싸우고 있는 성국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마물에 지지 않을 만큼 악에 받친 표정으로, 놈들을 하나라도 더 죽이기 위해 발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
저긴 왜 단체로 광신도가 됐지, 하는 생각이 닉스의 머리를 스쳤다.
“성자께서 구원을 약속하셨다! 이 불경한 것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신앙을 증명해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