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76)
종막 – 3
“흐읍!”
마르가리타는 기합을 넣어 철퇴를 휘둘렀다. 신성력을 가득 담은 철퇴가 휘둘러지자, 무게추에 맞은 마물의 머리가 산산조각으로 터져나가며 피와 살점을 흩뿌렸다.
순백색 갑옷에 더러운 체액과 살점이 덕지덕지 묻어나왔다. 하지만 마르가리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피를 원한다는 듯 한층 더 미쳐 날뛰었다.
꼭 마르가리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성국의 모든 사람들이 마물을 자신의 손으로 하나라도 더 쳐죽이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중이었다.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 도리어 마물보다 인간이 더 흉폭해 보일 지경이었다.
“성자께서 우릴 지켜보고 계신다! 태양을 위하여! 달을 위하여!”
마르가리타의 격려와 함께 수많은 마물들이 썰리고 터지고 베이며 그 명을 달리했다.
전장 곳곳에 시체가 산처럼 쌓여갔으나, 그 시체들 중에서 인간의 것은 사실상 찾아볼 수 없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성자께서 신앙을 증명하라 하셨는데, 죽어버리면 그럴 수가 없어지니까. 그렇기에 절대 목숨을 등한시하면서까지 싸우진 않는 것이다.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이송된 사람들은 빠르게 치료를 받은 다음 곧장 전투로 복귀했다. 성국의 인구에서 전투원을 뺀 나머지 모두가 치료사의 역할을 맡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히려 부상자에 비해 치료사가 너무 많은 나머지 서로 고쳐주겠다고 경쟁이 일어날 정도였다. 비전투원들이 신앙을 증명할 방법은 그것뿐이었으므로.
“빛이 약하다! 너희들의 신앙과 믿음은 그 수준밖에 안 되었더냐!”
마르가리타의 목소리가 전장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 말을 들은 전투 수녀와 성기사들의 몸에서 한층 더 밝고 순수한 신성력이 터져나왔다.
성국이 더더욱 광신적으로 변한 이유가 이것 때문이기도 했다.
델타가 핏빛 하늘에 태양과 달이 떠오르는 기적을 일으킨 이후로, 모든 성국 신민들의 신성력이 최소 한 단계씩은 더 강화된 것이다.
믿음이 순수해지고, 신앙이 확고해지고, 신성력이 강해지는 기적을 눈앞에서 목도한 데다 실시간으로 그 기적의 여파를 체감하는 중이었으니 감동에 젖어 날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실상은 델타가 아니라 이클립스 덕분이었지만, 성국의 그 누구도 진실을 알지 못했다.
“어딜 다치셨습니까?”
“팔이 부러졌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마물을 청소하다 잠시 후방으로 이송된 마르가리타는 태연히 자신의 한쪽 팔을 들어보였다.
마물의 공격을 왼팔에 낀 방패로 막았는데,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방패로 막고도 충격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해 뼈가 부러져버렸다.
“알겠습니다.”
수녀 둘이 달라붙어 능숙하게 건틀릿을 벗겼다. 그러자 부러진 뼈가 살을 찢고 밖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근처는 피로 범벅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눈살을 찌푸릴 광경이었지만, 이곳의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부러진 뼈 따위에 놀라기에는 상처를 너무 많이 봐왔다.
마르가리타는 태연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다음 기도를 시작했다. 그에 맞춰 수녀가 부러진 뼈에 대고 신성 주문을 읊었다. 황금색 빛이 부러진 팔을 감쌌다.
수백 년을 지옥에 갇혀 있다 돌아왔지만, 마르가리타는 지금의 성국에 상당히 빠르게 적응했다.
그 실력을 인정받아 성기사단에서 제법 높은 직위까지 올라갔을 정도로, 예전의 실력도 온전히는 아니지만 제법 많이 되찾았다.
‘날 구해주신 그분이 성자셨다니…… 어쩌면 내가 지옥에 있던 것도 그분의 성전을 도우라는 태양의 큰 뜻이었을지 모른다.’
아주 성대한 착각과 함께 말이다.
델타가 카이킬리아와 지옥으로 끌려갔던 일은 사람들의 입을 거치고 또 거치며 어느새 지옥을 정화하기 위해 성검의 보유자를 데리고 성전을 떠났다는 것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마르가리타는 성자가 직접 구원해준 데다 그 은총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되기까지 했다.
지옥에서 살아왔던 수백 년의 세월 역시 성자님을 돕기 위한 태양과 달의 혜안으로 여겨지게 된 지 오래였다.
물론 정말로 지옥을 정화하러 갔다기에는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나, 마르가리타는 이미 훌륭하게 믿음을 회복했으므로 그런 ‘사소한’ 위화감 따위는 전부 무시했다.
“끝났습니다.”
수녀가 빛을 거두어들였다. 상처가 말끔히 나은 팔을 몇 번 움직여 본 마르가리타가 다시 갑옷을 갖춰 입고 몸을 일으켰다.
“어째서 놈들의 숫자가 그대로인가! 너희신앙은 고작 그것 뿐이었단 말이냐!”
“아닙니다!”
그리고 우렁차게 외치며 다시 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성국의 모습을, 한 쌍의 은백색 눈동자가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닉스는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시야 공유를 중단했다. 미네르바도 분신들에게 성국은 됐으니 제국을 좀 더 꼼꼼히 살피라고 명령한 다음 시야 공유를 끊었다.
“혹시 지원이 필요할까 했는데, 쓸모없는 걱정이었구나.”
“굳이 안 도와줘도 알아서 대륙 끝까지 밀어붙일 기세였으니까요.”
“……그 아이는 대체 어떤 짓을 한 걸까.”
미네르바는 자신도 모르게 일으켰던 몸을 다시 등받이에 기댔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어차피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질문이 아니라 그냥 가까웠다.
대체 뭘 했길래 그 차분하고 온화하던 성국 사람들이 저런 모습으로 바뀐 건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아이야, 혹시 마물이 저렇게 변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있니?”
“짐작가는 이유는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요.”
“추측이라도 좋단다. 들려주렴.”
“아마 그 드래곤 때문일 겁니다. 여신님께서 방에 직접 강림하실 정도로 다급하게 온다는 소식을 알리셨던 그놈이요.”
그것 말고 딱히 다른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마물을 변이시킨 게 그놈이라고 친다면 시간상으로도 놀랄 만큼 잘 들어맞기까지 한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니, 무엇이?”
“정말로 이런 짓을 벌인 게 그놈이라면, 단순히 마물을 변이시키는 선에서 끝낼 리가 없는데 말이죠.”
세계를 먹는 자에 대해서는 육체를 재구성하는 동안 여신에게 들은 바가 몇 개 있었다. 그 들은 바를 종합해보면 놈은 절대 마물만 강화시키고 끝낼 성격이 아니었다.
눈살을 찌푸린 미네르바가 무언가를 질문하려는데, 닉스의 눈앞에 검은 구체가 떠올랐다.
“전 황제의 호출입니다. 벌써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되셨나봐요. 저보다 훨씬 더 빠르다니, 진짜 말도 안 되는 속도에요.”
닉스가 혀를 내둘렀다. 기억에 적응하는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무척 긍정적인 현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어째 진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델타 씨를 최대한 빨리 도와야 하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미네르바 님은요?”
“나는 여기 남아있겠단다.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아이가 이상하다 했으니 제국을 조금 더 감시해야겠지.”
“알겠습니다.”
곧장 방으로 돌아간 닉스는 제일 먼저 카이킬리아와 교황 자매의 상태를 살폈다.
카이킬리아는 소파에 기대어 숨을 고르는 중이었고, 교황 자매도 서로 깍지를 꼈단 것만 빼면 카이킬리아와 비슷했다. 나머지는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벌써 회복하셨어요? 대단하시네요.”
“……시끄럽다. 어서 다음으로 넘어가기나 하거라.”
“다음이라…….”
닉스는 잠시 고민했다. 카이킬리아라면 이런 맛보기 말고 진짜 기억 공유를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지금 시작하더라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고민하고 있구나, 단신 여자.”
이런 닉스의 마음을, 카이킬리아는 정확히 읽어들였다. 황금빛 동공이 스산하게 빛났다. 황제의 자리를 내려놓았어도 카이킬리아는 여전히 카이킬리아였다.
“내가 진혼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없는지 고민하고 있어.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새 기억을 주입하였을 터. 내 말이 틀렸느냐?”
“……맞아요.”
닉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들켜버린 이상 숨기는 건 무의미했다.
“그쪽 적응 속도가 제 상상 이상이에요. 솔직히 지금 시작해도 성공할 확률이 제법 있다고 봐요. 물론 목숨이 첫 번째니 판단은 신중해야겠지만ㅡ”
“그렇다면 하여라. 지금 당장.”
카이킬리아가 성큼 걸어와 눈을 마주했다. 키 차이가 상당했기에, 자연스레 카이킬리아가 내려다보고 닉스가 올려다보는 구도였다.
“그러한 고민이 이루어진다는 것 자체가 나의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라. 델타는 지금도 그것과 싸우고 있지 않느냐. 더 이상 헛된 일에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노라. 알아듣겠느냐?”
헛된 일이라, 닉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하는 즉시 영혼이 망가질 수도 있건만 저런 태도라니.
“알았어요. 그쪽이 원하신다면.”
“……저희도 부탁드립니다.”
바로 옆에서 또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플로레타와 루나였다. 저 둘도 어느새 자기 힘으로 일어서 있었다. 카이킬리아보다야 살짝 느리지만, 저 둘 역시 적응하는 속도가 어마어마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교황 성하?”
“예.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플로레타와 루나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닉스는 아직도 기억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멍하니 고개를 숙인 나머지 6명을 쳐다보다가 얌전히 마법을 준비했다.
“이번은 진짜 다를 거예요. 영혼이 본질을 깨달을 수 있을 때까지 무한히 이어지니까 몇 번만 버티면 끝나고 그런 거 없어요. 아마 기억을 모두 읽어들이기 전에 끝나긴 하겠지만…… 그건 개인차라서 딱 잘라 말씀 못해드리겠네요.”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어쩌면 저 셋이 마지막으로 듣는 목소리가 될 수도 있을 경고였다.
“그러니까, 이 악 물고 참아요.”
카이킬리아는 어느 산 속에 서 있었다. 풀과 나무와 바위가 적당히 있는 그런 산속이었다.
“……!!!!!!”
이곳이 어디인지를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머리를 붙잡았다. 엄지로 추측되는 부위가 오른쪽 눈을 푹 찔렀다.
손가락이 단숨에 수정체를 관통해 그 안에 있는 유리체를 휘저으며 두개골 안쪽까지 깊숙이 꽂혔다. 카이킬리아가 소리 없는 비명을 토해냈다.
허공을 허우적거리던 손이 머리를 움켜쥔 팔을 붙잡았다. 어떻게든 팔을 밀어내려 했지만 손아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건 카이킬리아가 하는 행동이 아니었다.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부터 죽기 직전까지, 그 시간동안 델타가 했던 발버둥을 고스란히 따라하는 것에 불과했다.
물론 이게 죽음의 기억으로 저장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이번에는 오른쪽 허벅지가 붙잡혔다. 무릎 관절이 역방향으로 꺾이며 박살났다.
ㅡ콰드득!
곧이어 엄청난 격통과 함께 옆구리살이 통째로 뜯겨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카이킬리아는 하나 남은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물이 옆구리를 뜯어먹고 있었다.
카이킬리아의 발버둥은, 정확히 말해 델타의 발버둥은 복부가 거의 다 뜯어먹힐 때까지 지속됐다. 이내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자, 발버둥도 같이 끝났다.
하지만 죽음은 끝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