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78)
종막 – 5
ㅡ쿠오오오오오오!!!!!!
세계를 먹는 자의 이빨 사이로 우렁찬 포효가 터져나와 지축을 뒤흔들었다. 한계까지 압축된 빨간 액체가 파르르 진동했다.
드래곤이 추락하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놈은 날개를 펄럭이며 어떻게든 다시 날아오르려 했으나, 무의미한 행동밖에 되지 않았다.
작은 산 크기의 드래곤이 지상으로 내려앉는 모습은 제법 장관이었다.
이내 콰아아앙! 하는 소리가 울렸다. 세계를 먹는 자가 핏빛 바닥으로 처박히며 낸 소리였다. 놈은 네 다리로 땅을 딛고, 입으로 낮게 그르렁거리며 버티고 서 있었다.
낙하의 충격으로 퍼져나간 진동이 가라앉았다. 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활짝 펴진 날개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중이었다. 날아오르려는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는 듯했다.
“드디어 눈높이가 비슷해졌네. 그렇지?”
비슷하단 말을 하기에는 격차가 좀 심하게 많이 나지만, 적어도 하늘 날아다니는 걸 올려다봐야 했을 때보단 낫다.
자존심이 꿈틀 했는지 왼쪽 앞다리가 신경질적으로 땅을 굴렀다. 한계까지 압축된 빨간 액체가 온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놈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금의 용언은 어디까지나 놈의 비행만을 봉쇄하는 역할이었다. 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지상에서 네 발로 걸어다니는 행동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제 좀 제대로 싸워보겠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도 제대로 싸울 수 있었다. 그냥 게임에서 했던 그대로 하면 된다.
이클립스가 세계를 먹는 자와 싸웠던 경험을 토대로 닼라 모드에 추가해놓았던 패턴은 엄청나게 많았고, 하늘을 날지 못하게 된 이상 대부분의 행동은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않을 테니까.
무의식 중에 나왔든, 아니면 의도하고 움직였든, 닼라 모드에서 썼던 패턴들이 저 상황에 등장할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적용된 용언 때문에 더 그럴 거고.’
브닼 4에 등장했던 적이다. 지난번처럼 등 뒤에서 갑자기 뭔가를 생성하는 공격만 조심하면, 나머지는 모두 내 머릿속에 들어 있다. 겁먹을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저놈은 닼라 모드를 끼고도 나한테 맨손으로 잡혔던, 한낱 게임의 최종 보스에 불과하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세계를 먹는 자와 정면으로 대치했다. 놈은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빨갛게 물든 세로 동공이 흉흉한 빛을 발했다.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지고, 이내 쿵! 쿵! 하는 소리와 진동이 합쳐지며 작은 산과도 같은 거대한 드래곤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돌진 패턴이고…… 공격은 왼다리부터.’
바로 앞까지 다가와서 땅을 구른 게 오른다리였으니, 첫 공격은 왼다리부터다. 놈은 내 예상대로 왼쪽 앞발을 반쯤 치켜들었다가 내리쳤다.
발톱이 다가오는 방향을 확인하고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러 그걸 튕겨냈다. 일반적으로 공격을 튕겨낼 때 들리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아니라, 포탄이라도 처박힌 것 같은 쾅! 소리가 들렸다.
‘윽.’
팔에 저릿한 감각이 몰려들었다. 몸이 급작스럽게 둔해졌다. 전투 피로가 가득 찼다는 의미였다.
전투 피로의 디버프를 무시할 수 있도록 해주는 룬이 사라졌기에, 디버프가 다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법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인지라 하마터면 칼을 놓칠 뻔했다.
예전의 기억을 대부분 되찾아서 스탯이 제법 올라간 상태인데도 이런 꼴이었다. 크기 차이를 감안하면 당연한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빨간 액체 속으로 칼을 박아넣고 몸을 지탱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뒤로 주욱 밀려났다.
세계를 먹는 자가 뒷다리만으로 일어서더니 나를 아예 짓밟아버리려는 듯 내 바로 위에 발톱을 내리찍었다.
‘저건 못 튕겨낸다.’
게임에선 저걸 튕겨내는 것 자체는 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저 내려찍기를 튕겨낸다면 그 이후에 곧바로 이어지는 씹기 공격에 당할 거다.
그건 튕겨내기로 받아칠 수 없는지라 무조건 굴러서 피해야 하는데, 앞발 공격을 튕겨내면 전투 피로가 가득 찰 테니까.
전투 피로가 가득 차면? 당연히 구르기를 못 쓴다.
ㅡ콰아아앙!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가, 발톱이 목전까지 닥치는 타이밍에 정확히 맞춰 놈의 몸 안쪽으로 굴러들어갔다. 이게 정답이었다.
놈의 복부 밑에 들어오자마자 뒤에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어마어마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충격파가 터져나오며 몸이 휘청였다.
‘맞았으면 진짜 뼈도 못 추릴 뻔했네.’
그 상태로 위를 향해 진혼을 사용하려다,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섬짓한 감각에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1초도 채 되지 않아서 방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를 무언가 스치고 지나갔다.
스쳐 지나간 것의 정체를 파악할 시간 따윈 없었다. 세계를 먹는 자가 또다시 뒷다리만으로 일어서더니, 자신의 발 밑을 향해 칠흑색의 브레스를 내뿜었다.
게임보다 훨씬 더 이른 타이밍이었다.
“흩어져라!”
브레스는 용언으로 날려버렸지만, 공격 기회도 같이 날아갔다. 뒤로 빠져나가며 거리를 벌렸다. 그 방향으로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거대한 꼬리가 날아들었다.
급히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러 그걸 튕겨냈다. 반동을 다 흡수하지 못한 두 다리가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다리는 거의 4~5초가량 떠오른 뒤에야 다시 바닥을 디딜 수 있었다.
내가 빨간 액체 위로 착지함과 동시에 놈도 들어올렸던 앞쪽 다리를 내렸다. 붉은 안광이 한층 더 흉흉하게 빛났다.
‘한 번만 제대로 공격하면 끝인데.’
브닼 4에서 보스전을 치를 때처럼 나는 스쳐도 한방인데 너는 수백 번 맞아야 죽는다, 하는 그런 싸움은 절대로 아니었다.
저 녀석은 진혼에 제대로 베이는 순간 끝이고, 나도 어떤 공격이든 허용하는 순간 끝이다. 그 제대로 된 유효타를 누가 먼저 성공시키느냐의 싸움인 것이다.
물론 저쪽이 훨씬 더 유리한 싸움이었다. 마나와 신앙이 통째로 봉쇄된 나와는 달리, 세계를 먹는 자는 비행만 막혔다뿐이지 다른 능력은 모두 건재하니까.
그러니 신중해야 한다. 놈을 지상으로 끌어내린 건 맞지만 용언까지 봉인한 건 아니었다. 낌새를 읽힌다면 진혼을 사용하는 족족 막힐 거다.
내가 세계를 먹는 자에게 진혼을 적중시킬 방법을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ㅡ이런 하찮은 잔재주로…… 나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나……!
놈이 날개를 펄럭이며 위로 솟구쳤다.
순간 용언의 효과가 끝났나 싶어서 심장이 철렁했으나, 자세히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비행 속도가 전에 비해서 명백히 느렸고, 높이 역시 얼마 안 됐다.
게임에서처럼 그냥 자신의 힘으로 세계의 법칙을 일정 부분 무시하는 쪽에 더 가까웠다.
세계를 먹는 자가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검은 하늘에서 화염과 용암으로 이루어진 유성우가 쏟아져내렸다. 그러는 동안, 붉은 동공은 정확히 날 향하고 있었다.
이쪽이 빈틈을 보이는 즉시 브레스를 내뿜을 기세였다. 내가 어설프게 쓴 진혼이 막힐 걸 알듯이, 저놈도 어설프게 쓴 브레스가 막히리란 걸 아는 것이다.
‘어차피 오래는 못 날아. 지금은 회피에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게임에서도 그랬으니까. 날아올랐던 자리에서 시계 방향으로 7바퀴를 돌면 바닥에 내려앉는다.
유성이 지상과 충돌하며 폭발을 일으켰다. 하나를 옆으로 굴러 피하고, 다른 하나를 흘려보냈다. 연이어 쏟아지는 것들 역시 모조리 피해버렸다.
그렇게 수십 개의 유성을 피하자, 어느덧 주변이 불바다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내 주변에 떨어진 것들 말고도 다른 수백 개의 유성이 온갖 장소에서 폭발해댄 결과였다.
빨간 액체가 주황색 불꽃을 반사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ㅡ쿠웅!
세계를 먹는 자 역시 오래 버티지 못했다. 놈의 네 다리가 불꽃 위에 내려앉았다. 흑염을 정통으로 밟고 있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땅에 내려오자마자 날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왼발, 오른발, 그리고 목을 숙여 물어뜯은 다음, 왼발로 두 번 연속 내리찍었다가, 마지막으로 몸 전체를 비틀어 꼬리로 전방위 타격.
게임이랑 똑같은 패턴이었다.
마지막 공격을 튕겨내고 잠시 숨을 골랐다. 전투 피로가 줄어들자 무거워졌던 팔다리가 본래 무게로 돌아왔다. 팔을 가볍게 털고 다시 검 손잡이를 단단히 쥐었다.
공격이 하나도 먹히지 않자, 놈이 짜증스레 이빨을 맞부딪혔다. 몸집이 워낙에 큰지라 그 단순한 행동에마저 살벌한 울림이 담겼다.
‘하다못해 마나만 쓸 수 있었어도…….’
나 역시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놈의 비행을 봉쇄한 건 정말 최소한의 조건에 불과했으니까.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정도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졸지에 맨손런을 하게 되지만 않았어도 지금보단 훨씬 더 수월했을 텐데 말이다.
우리가 다시 격돌하려는 찰나였다. 오롯이 나만을 향해 있던 붉은색의 세로 동공이 옆으로 돌아갔다.
나 역시 그랬다. 여기 끌려온 이후로 계속해서 느껴지던, 뭔가 미묘하게 피부에 달라붙는 감각이 아니라 시원한 바람 비스무리한 감각이 전해져오는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어?”
붉은 대지 한복판에 피어오르는 태양과 달이 보였다. 어두운 하늘 밑, 시뻘건 바다 위에서 황금색과 은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어안이 벙벙해졌다. 저 색깔의 빛무리가 나타났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그 안에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황금색 빛 속에서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이 플로레타였고, 그 다음으로 은색 빛 속에서 걸어나온 것이 루나였다.
마지막은 카이킬리아가 장식했다. 오른손에 들린 화려한 장식의 성검이 은은하게 빛났다.
‘……그걸 벌써 성공했다고?’
여기에 도착했다는 건 진혼을 각성했다는 뜻이다. 거기에 더해, 내 기억을 공유하고도 영혼이 망가지지 않았다는 뜻이고.
카이킬리아는 주위를 둘러보다 눈살을 한껏 찌푸렸다. 플로레타와 루나도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날 발견하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환한 미소를 짓는가 싶더니, 갑자기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다. 카이킬리아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날 보자마자 표정을 굳히고선 성검을 빼들었다.
셋 다, 갑자기 왜 저러나 싶었다. 날 만나서 반갑다는 분위기가 절대 아니었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했고, 카이킬리아는 살기를 넘실넘실 피우고 있었으니까.
혹시 뭐 잘못된 건가 하는 마음에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공격을 굴러서 피하고, 딱히 청소할 시간도 없어서 꼭 ‘피처럼 생긴’ 빨간 액체로 범벅이 된 몸이 보였다.
“…….”
그래서였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