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
‘진짜 제대로 병신이 됐네.’
반쯤 악마화가 진행된 영주를 보자마자 떠오른 생각이었다. 방금 전까지 이 도시의 영주였던 반인반마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꼴사납게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내가 일부러 망자 때려잡고 살점을 모아 악마의 힘을 회복시켜준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살점을 정확히 2개 먹였을 때 한정으로만 전투 없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으니까.
악마의 힘을 하나도 회복시키지 않거나, 혹은 살점을 딱 1개만 되찾아준다면 약해질대로 약해진 악마를 지배해 완전한 반인반마로 각성한 영주와 보스전을 벌이게 된다.
반대로 살점을 3개 이상 되찾아준다면, 영주는 악마의 힘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죽어버리고 지상에 강림한 악마와 보스전을 벌이게 된다.
보스로 나오는 악마의 스펙은 플레이어가 살점을 얼마나 되찾아주냐에 따라 달라져서, 최종적으로는 100개를 모두 먹였을 때가 완전체였다.
악마를 완전체로 각성시키고 그걸 때려잡는 업적이 있었는데, 일단 살점 100개짜리 책을 들고다닐 수 있는 조건이 신성력 스탯 99라서 스펙 맞추는 것부터가 고역이었지.
‘그건 그렇고, 진짜 더럽게 못생겼네.’
바닥에서 열심히 꿈틀대는, 영주였던 무언가를 찬찬히 관찰했다.
게임에서는 그냥 인간이랑 악마를 반반씩 조잡하게 뭉쳐놓았다는 느낌이었는데, 여기서는 정말로 인간과 악마가 하나로 합쳐졌다는 느낌이 훨씬 더 강했다.
몸의 체형은 가로와 세로가 별 차이 없는 그대로였지만 맨살에 비늘 같은 것이 무수하게 돋아났다.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선 그 사이로 뾰족한 송곳니가 보였다.
눈은 염소처럼 세로동공인데다 머리 위에는 반쯤 생기다 만 뿔이 달렸고, 팔다리는 전부 다 역관절이었다. 끝에 달린 손발톱은 매우 뾰족했다.
생기다 만 형상의 날개는 덤이었다.
“네, 노오옴, 네에, 노오오옴!!!!!!”
영주가 검은 피를 왈칵 토하며 나를 노려보았다. 땅을 아등바등 기어서라도 나한테 다가오려는 듯 했으나, 얼마 못 가 고개를 피웅덩이에 처박았다.
“왜 꼴사납게 그러고 있어? 안그래도 병신같은 얼굴이었는데, 이제는 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모습이 됐잖아.”
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영주는 나를 보며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마구 중얼거리다가, 꾸어어억 하고 다시 피를 토했다.
놈의 목구멍에서부터 그르르륵, 하고 피 끓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말하고는 싶은데, 목이 피로 가득 차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모양이었다.
“자기가 왜 그런 꼴이 됐는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이네. 야,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라는걸 좀 해봐. 인간이 어떻게 악마를 다뤄?”
영주의 옆에서 여전히 검은 기운을 내뿜고 있는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에 욕망을 품자마자 정신이 잠식당해버린 저놈과는 달리, 나한테는 아무런 영항도 못 끼치는 평범한 책이었다.
일단 내가 이거에 딱히 욕망을 품은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저택으로 오기 전에 신성력을 5까지 찍어놨다. 고작 살점 2개 먹은 악마 따위로는 내 정신에 간섭 못 한다.
“너도 지금 돌이켜보니까 뭔가 이상하다 싶지? 머리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악마를 불러내야한다는 생각으로 꽉 들어찼을텐데. 제국법상으로 악마와 연관되면 무조건 사형이고, 그건 황족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말이야.”
탁, 펼쳐져 있는 책을 닫았다. 흘러나오던 검은 기운이 뚝 멎었다. 영주의 꿈틀거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할 시간을 줄게.”
나는 그 말을 하고 일부러 뜸을 들였다가, 최대한 얄미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 여긴 뭐 처먹을 게 없어서 머리가 안 돌아가겠구나? 내가 실수했네. 미안하니까 정답은 그냥 알려줄게. 정답은, ‘내가 처음부터 너한테 거짓말을 했으니까’야.”
“……!!!!!!”
영주가 악마에 반쯤 잠식된 두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뭐. 노려보면 어쩔건데. 나는 얄미운 목소리를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원래 악마라는 것들이 다 그래. 한번 욕망에 사로잡히면 그거 극복할 수 있는 인간이 손에 꼽거든. 그리고, 색욕의 악마 따위가 있을 리 없잖아. 뭐? 남자한테는 무한한 정력을 주고 여자는 남자 옷깃만 스쳐도 절정하는 몸으로 만들어? 그딴 걸 왜 믿냐, 믿기는. 머리를 뭐 처먹는데만 쓰지 말고 생각이라는걸 좀 하고 살았어라, 좀.”
책으로 영주의 머리를 퍽, 퍽 두들겼다. 영주는 구우웨엑, 하며 다시 피를 한움큼 토해냈다. 몸에 흡수되는 검은 기운이 멈춰서 그런지, 방금 전보다 조금 더 붉은색에 가까웠다.
“뭐야, 너 저놈한테 그렇게 말했어? 저 병신은 또 그걸 믿었고?”
“네. 아주 철썩같이 믿던데요.”
악마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곤 하는데, 그 힘에도 엄연히 한계는 있다. 욕망에 잡아먹히도록 만들 수는 있지만 없던 욕망을 창조할 수는 없거든.
영주가 책을 가지고 싶단 생각을 들게 만들면 클리어라고 한 것도 그래서였다. 일단 조금이라도 그런 생각이 들게 만들면, 나머지는 저 책에 깃든 악마가 다 알아서 할테니까.
“저 돼지새끼가 내 가격을 꽤나 비싸게 책정하고 있었을텐데, 어쩐지 겨우 악마가 깃든 책 하나랑 맞바꿨다는 게 살짝 이상하다 했어. 내가 너한테 성노예로 팔린 이유가 그래서였구나?”
“아니, 표현 좀 곱게 하면 어디 덧납니까?”
“됐고, 나 저거 한 번만 걷어차고 와도 돼?”
“한 번이 아니라 백 번을 걷어차도 돼요. 어차피 못 움직이거든요.”
안전하다는 허락도 떨어졌겠다, 아우로라는 망설임 없이 바닥을 꿈틀대고 있는 영주에게 다가가선 드레스 자락을 살짝 들어올리고 하이힐의 굽으로 그 머리를 콱 찍어눌렀다.
“이 등신 머저리야. 여자를 그렇게 따먹고 싶었어? 응? 근데 있잖아, 그럴거였으면 그냥 죽고 다시 태어났어야지. 너한테 불려갔던 여자들이 다 뒤에서 뭐라고 수군댔는지 알아? 너 존나 실좆이래, 병신아. 아무리 흔들어대도 보지에 뭐 들어오는 감각이 아니라 뱃살 출렁이는 게 닿는 감각밖에 안 느껴진다고 자기들끼리 수군댔던 건 알고 있었냐? 응? 알고 있었어?”
‘세상에나.’
순간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아우로라가 저런 단어까지 거침없이 사용해댈 줄은 진짜 상상도 못했는데. 영주의 성격이 게임에서보다 훨씬 더 개막장으로 변했으니, 그 영향을 전혀 안 받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저런 놈 밑에서 사실상 혼자 큰 것 치고는 나름 정상이라 부를 수 있는 성격이니 다행인건가.
그 뒤로도 아우로라는 영주의 머리를 하이힐로 꽉꽉 짓밟으며 한참동안 욕과 폭언과 조롱을 퍼부었고, 시간이 제법 지나고 나서야 후련한 듯 숨을 가다듬으며 활짝 웃었다.
“아, 속이 다 시원하네. 앞으로는 두 발 쭉 뻗고 편하게 자겠어. 잠깐. 뭐야, 그 눈은? 왜 그렇게 쳐다봐?”
“아뇨, 별 거 아니에요. 그냥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 뭔 생각 하는진 알겠는데, 너도 저런 놈 밑에서 살아봐. 나처럼 되는데 딱 1년이면 충분할걸? 그리고 솔직히 이것도 많이 자제한거거든. 너 아니었으면 더 심했어. 뭐라고 말하려 했는지 예시라도 보여줄까?”
“그런 예시 필요없으니까 제발 품위 좀 지키세요. 이제 가주 자리에 오를 사람이 왜 그런 천박한 말을 쓰고 그러십니까.”
“그 말대로 이제 내가 가주인데 쓸 수도 있지 뭘 그래?”
머리를 짓밟혀 땅에 고개를 푹 쳐박고 있던 영주가, 가주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쳐들었다. 아우로라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다시 눈을 빛냈다.
“아, 방금 그게 역린이었어? 그런데 이걸 어쩌나. 전부 다 사실인데. 너는 여기서 죽고, 니 재산은 전부 다 내가 먹을거야. 지금까지 재산 잘 불려줬으니 고맙다고 해둘게. 설마 나한테 하나라도 더 많이 주려고 그렇게 필사적으로 돈을 긁어모았던거야? 오명은 네가 전부 뒤집어 쓴 채로 죽고, 나한테는 돈과 명예만 가져가게 하려고? 이건 조금 감동인데?”
“……!!!!!!”
영주는 그 조롱을 듣고 눈이 뒤집어지기 직전이었다. 필사적으로 반쯤 역관절로 변한 팔다리를 버둥대고 있었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말을 끝낸 아우로라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놀릴 것도 다 놀렸겠다, 그만하고 죽이자. 저런 역겨운걸 더 보고있을 필요는 없잖아?”
표정과 말투가 전혀 맞질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러든 말든 일단 원판이 지독한 미인인지라 위화감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죠, 뭐. 아우로라님은 이 다음에 어쩌실래요? 제가 이놈 죽이는 거 구경하실래요, 아니면 잠시 밖에 나가있으실래요?”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다 지켜봐야지. 이 돼지새끼가 죽는 모습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겠어.”
방금 전까지 보여주던 상큼한 미소가 거짓말이라는 듯, 황금빛 눈동자에 이글거리는 증오가 타올랐다.
나는 마음대로 하라고 말한 뒤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들었다. 백골이 된 사제에게서 가져온 그 단검이었다. 내 손에 들린 단검을 본 아우로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너 무기가 단검이었어? 생긴것만 보면 전혀 그렇게 안 생겼는데.”
“단검 쓰게 안 생겼다는건 대체 어떻게 생긴건데요? 그리고 이건 원래 제가 쓰던 무기 아니에요. 저 악마 죽이려고 가져온거지.”
“저걸 죽이려고 가져온거라고?”
“네. 악마는 신성력이 깃든 무기가 아니면 절대로 안 죽거든요.”
브닼 4에서는 오직 ‘축복받은’ 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신성 계열의 대미지를 입히는 무기나 신성 주문만이 악마에게 대미지를 줄 수 있었다.
정확히는, 평범한 무기로 때려도 체력이 깎이긴 한다. 그걸 전부 다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해버려서 그렇지.
오직 축복받은 무기나 신성 주문으로 입힌 대미지만이 회복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단검을 사용하기 위한 스탯 조건이 신성력 5였다.
나는 단검을 빼들고 바닥에서 추한 모습으로 버둥거리는 영주에게 다가갔다.
“죽을만큼 아플텐데, 참을 수 있지?”
푹,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 몸에 단검을 찔러넣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