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0)
결전 – 1
2페이즈, 라는 말에 멈칫 했다. 내 지식을 알고 있지 않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단어였다. 인게임에서도 공식적으로 페이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니까.
“그 여신도 어지간히 절박했나 보군. 여태껏 나와 싸웠던 경험을 토대로 그 이상한 가상 현실을 만들다니. 그것도 한낱 인간 하나 따위를 위해.”
“한낱 인간? 그 한낱 인간한테 당해서 꼴사납게 도망친 적도 있는 놈이 뭐래?”
내가 비아냥거렸지만, 세계를 먹는 자는 그걸 아주 깔끔하게 무시했다. 아예 처음부터 내 말이 들리지도 않았다는 듯한 태도였다.
“너를 특이한 인간이라 여기기는 했다. 그 여신은 너를 과하다 싶을 정도로 보호하고, 너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양 돌아다녔지. 너의 지식이 일종의 예지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하찮은 자신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군.”
“하찮은 자신감이라기엔 지금까진 잘 먹혀서 말이야. 그쪽 하나만 예외인 거지.”
놈이 비릿하게 웃었다. 칠흑색 눈동자가 잠시 드래곤 특유의 세로 동공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내 눈동자랑 똑같은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들려주마. 그 여신이 힘을 부여한 인간은 네가 처음이 아니다. 언젠가, 자기 세계의 어떤 인간에게 나를 처치하라는 사명을 부여한 적이 있었으니까.”
나는 놈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딱히 저 말에 흥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저놈이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틈을 타 기습할까 말까 간을 봤을 뿐.
하지만 그러기엔 살짝 애매하게 긴 거리가 발목을 잡았다. 아직도 마나와 신앙을 쓸 수 없는 상태인지라, 놈이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달려들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단 지켜보자. 더 가까이 올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저렇게 입을 나불대다가 뭔가 중요한 정보를 흘릴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저놈이 계속 입을 열어대서 내게 나쁠 건 없었다.
저 위의 빨간 세계처럼 이 공간 자체가 함정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 사명을 부여받은 것이 너의 지식으로 말하면 ‘교황’이라 불린 인간이다. 여신이 만든 세계에서 첫 번째로 교황의 자리에 올랐던 여자였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의 이야기였다.
이미 여신한테 들어서 알고 있으니까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 말고 주둥아리 닫으라고 하려다 꾹 참았다. 놈이 한 발을 더 내딛었기 때문이었다.
저대로 몇 발자국만 더 걸어온다면 충분히 기습할 수 있는 거리가 된다. 그러기 전까지는 계속 지껄이도록 내버려 둘 예정이었다. 날개 잃은 악몽의 손잡이를 살짝 강하게 쥐었다.
“허나, 막대한 힘이 생기자 그 교황이란 여자는 신에게 그릇된 욕망을 품었다.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당연히, 내가 살짝 건드려주자마자 자기 욕망에 삼켜져서 폭주했다. 그리고ㅡ”
“유일신이라는 개념이 오염됐지. 이미 여신님한테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이미 들었던 걸 또 듣긴 싫거든. 다른 이야기나 꺼내 봐.”
폭주한 초대 교황은 이클립스는 건드려보지도 못한 채 아주 간단히 제압당해 심연 속에 처박혔고,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이 되었다.
그 주변을 가득 메운 심연의 정체가 바로 오염된 신성력이었다. 유일신을 섬기던 시절의 신성력 말이다. 지금 사용되는 신성력은 그 개념을 뿌리부터 갈아엎어 새로 만들어진 것이고.
모두 이클립스가 해준 이야기였다.
‘설마 심연에 처박힌 이유가 저래서일 줄은 몰랐지만.’
저런 속사정이 있었다면 이클립스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이 만들어진 이유를 숨긴 것도 이해가 갔다. 내가 물어보지 않는 한, 굳이 먼저 드러내고 싶진 않은 과거였겠지.
“이미 들었다니 이야기가 빠르겠군. 너는 여신이 그 여자를 제압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지 않나?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들고, 자신이 거대한 힘을 내려준 존재가, 자신에게 그릇된 욕망을 품고 덤벼들었을 때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지 않나?”
“하나도 안 궁금한데. 그런 같잖은 이야기나 해대는 이유가 뭐냐?”
조금만 더.
이제 한 발만 더 다가오면ㅡ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뭐?”
그 말과 동시에, 놈이 발을 멈췄다. 눈꺼풀 사이로 옅게 드러나던 세로 동공이 완전히 사라졌다. 세로 동공이 사라진 자리를 완벽한 구형의 눈동자가 채웠다.
“네가 덤벼들지 말지 고민했던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반응하지 못할 속도로 덤벼들기엔 살짝 멀다고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고. 내 말을 듣는 척 하며 앞으로 더 다가오기를 기다린 이유도 그래서이지.”
“…….”
다 읽혔다. 나는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곧장 날개 잃은 악몽을 겨누었다. 이런 내 모습에, 세계를 먹는 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늦었다, 인간. 내게 덤벼들 거라면 진작 그랬어야지. 너도 내 눈을 봤으니 결합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단 사실을 알았을 텐데. 너무 과한 신중함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걸 몰랐나?”
“글쎄. 내가 보기엔 아직 시간은 충분한 것 같은데.”
이를 악물고 답했다. 저놈이 말하는 것 자체가 함정만 아니면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귀신같이 함정이었다.
“그렇다면 잘못된 사실을 보고 있는 것이로군.”
다섯 개의 손가락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쥐었다. 그러자, 근처 공간이 뒤틀리며 손 안으로 모여들었다.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의 옆으로 길다란 물체가 튀어나왔다.
세계를 먹는 자의 손에 잡힌 물체가 점차 검의 형상을 갖췄다. 엄지와 검지 위로 크로스가드가 생겨나고, 칼날이 만들어지고, 끄트머리가 뽀죡하게 변했다.
나도 날개 잃은 악몽을 겨누었다. 오른손의 검에 집중했다. 아마 날개 잃은 악몽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작을 크기의 검이었다.
‘시간을 더 주면 안 된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나였다. 발 밑을 박차고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거리를 좁혔다. 놈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으면서, 오른손에 든 무기를 옆으로 한껏 뻗었다가 수평으로 휘둘렀다.
날개 잃은 악몽이 칠흑색 검과 부딫히며 날카로운 쇳소리를 냈다.
“큭!”
그리고, 내가 뒤로 몇 발자국 밀려났다.
‘어떻게 되먹은 힘이야?’
분명 칼과 칼이 맞부딪힌 건데도, 무슨 거대한 철근을 때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칼을 휘두른 내 손이 다 저릿했다.
놈이 내가 뒤로 밀려난 틈을 타 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검의 손잡이가 복부까지 끌어당겨지고, 왼손을 놓음과 동시에 앞을 향해 빠른 속도로 찔러왔다.
그걸 튕겨내자 몸이 한참을 밀렸다. 일단 바닥이리라 추측되는 곳에 칼 끝을 박아넣고 몸을 지탱했다. 사실 이게 바닥인지도 의심스러웠다. 공간 감각이 상실될 것 같았다.
내가 그러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이번에는 놈이 달려들었다. 그 오른손에 들린 무기가 꾸물거리며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단검?’
날개 잃은 악몽보다 조금 더 작은 수준이던 검은 어느새 작은 단검의 크기까지 줄어들어 있었다.
세계를 먹는 자가 단검으로 변한 무기를 휘둘렀다. 목을 노리고 들어오는 단검의 궤적에 날개 잃은 악몽을 갖다대자, 챙! 하고 몸 전체가 휘청였다.
손잡이를 타고 흘러들어오는 저릿한 감각에, 입술을 짓씹으며 다음 연격도 받아쳤다. 딱 3번째 공격을 튕겨내니 몸이 급격하게 무거워졌다. 전투 피로가 가득 찼다는 의미였다.
놈이 희미하게 웃고선 단검을 양손으로 쥐고 뒤로 재빨리 뛰어 물러났다. 왠지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동작이었다.
뒤로 물러난 세계를 먹는 자가 또다시 무기의 모습을 바꿨다. 거대한 낫이었다.
“몸이 느려졌군. 그렇게 되면 이 공격을 못 피하던가?”
거리가 다시 좁혀지고, 놈이 오른손에 든 낫을 살짝 대각선으로 뻗고선 느리게 훑었다. 일반적인 공격과는 확연하게 느린 속도였다.
‘……설마?’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러 그 공격을 튕겨내려던 나는, 갑자기 느껴지는 섬짓한 감각에 반사적으로 땅을 박차고 옆으로 뛰었다.
내 목이 있던 자리를 낫이 수평으로 긁고 지나갔다. 목을 베려는 게 아니라, 세계를 먹는 자 쪽으로 당기는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만약 칼을 휘둘러 튕겨내려 했다면, 그걸 받아치는 게 아니라 무기째로 낫자루에 걸려 바로 앞까지 끌려갔을 것이다.
저것도 분명 본 적 있는 동작이었다. 설마,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방금 그건 뭐냐?”
“내가 그걸 말해줄 이유는 없겠지.”
놈의 무기가 다시 한번 외형을 바꿨다. 내 키보다 훨씬 커다란 대검이었다.
그 외형을 주의 깊게 살펴 기억에 있는 모습이라는 걸 확인한 후, 세계를 먹는 자가 지금껏 사용했던 무기도 모두 되짚어보았다.
처음에 나왔던 검, 그리고 두 번째에 사용한 단검, 세 번째로 쓴 낫, 그리고 지금 들고 있는 대검까지. 모두 브닼 4에 등장했던 무기들이었다.
ㅡ후우우웅!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지는 대검 소리에, 나는 생각을 끊고 구르기로 대검의 궤적을 피했다. 등 뒤에서 아슬아슬하게 바람이 느껴졌다.
내 생각이 맞다면 여기서 한번 더 굴러야 한다. 나는 옆으로 굴러나갔고, 반대 방향으로 휘둘러진 대검이 또다시 허공을 갈랐다.
두 번째 공격을 피하자 세계를 먹는 자가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대검의 칼 끝을 뒤로 향하면서, 무게중심을 한껏 낮춘 채 무기를 휘두르려는 자세. 무척 익숙한 모습이었다.
나는 왼쪽 대각선 자리에서 위를 향해 휘둘러진 대검이 내 근처까지 온 순간,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러 그걸 받아쳤다.
여태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크기의 쇳소리와 함께 몸이 뒤로 한참을 밀려났다. 나는 뒤로 밀려나면서도 세계를 먹는 자의 모습을 살폈다.
놈은 대검을 그대로 자기 머리 위까지 치켜들었다가, 몸을 옆으로 비틀고 자세를 바로잡으며 칼날을 반대편으로 넘기고 있었다.
‘저거…… 벼려진 특대검의 특수 기술이잖아?’
한가하게 생각이나 할 틈은 없었다. 세계를 먹는 자가 무기를 바꾸고 덤벼들어서였다. 평범한 칼보다 조금 길고, 날의 중간부터 크로스가드가 뻗은 방향으로 살짝 휘어진 무기.
곡검이었다.
놈은 우에서 좌를 향해 횡으로 한 번 긋고, 무기를 양손으로 쥐더니 회전을 받아 몸을 한 바퀴 돌렸다. 방금 전에 칼날이 베고 지나간 자리를 새로운 참격이 채웠다.
내가 옳게 추측했다면, 그 상태로 몸을 한 바퀴 더 돌려서 회전이 반쯤 이루어졌을 때 살짝 도약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는 공격이 마지막이다.
예상대로 이루어진 공격을 튕겨내고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러 놈이 뒤로 빠지도록 만들었다. 방금 그걸로 확신했다. 지금 저놈이 뭘 하고 있는지 말이다.
“드디어 확신이 들었나보군.”
이런 내 눈빛을 읽은 듯, 세계를 먹는 자가 공격을 멈췄다.
저런 말까지 하는 걸로 미루어보아 내 생각이 맞는 듯했다. 내 지식을 습득했다고 하더니 그걸 저런 쪽으로 활용할 줄은 전혀 몰랐다.
놈은 마치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에 든 무기의 외형을 바꿔댔다. 커다란 대검으로, 작은 단검으로, 기괴하게 뒤틀린 곡검으로, 날카롭게 뻗은 도 계열의 무기로.
모두 내 기억 속에 있던 것들이었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2의 무기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3의 무기들, 마지막으로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무기들. 그 수많은 무기들의 편린이 저놈의 오른손에서 보이고 있었다.
“지금껏 네 여정을 도와주었던 지식이, 도리어 너의 목을 옥죄는 칼날로 돌아오다니.”
놈이 날개 잃은 악몽과 똑같은 외형의 검을 든 채 말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일이지 않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