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1)
결전 – 2
“짐작가는 바가 있느냐?”
“……일단 저의 감각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델타가 끝없는 어둠 속으로 추락한 뒤, 빨간 세계에 남겨진 3명은 계속해서 델타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분명 진혼이 제대로 먹혔는데 왜 그놈이 살아 움직였던 건지, 델타는 어디로 사라진 건지를 파악할 방법이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감각을 한계까지 확장해서 근처에 혹시 움직이는 것이 있나 찾아보기도 하고, 아예 하늘을 날아다니며 눈으로 직접 살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카이킬리아는 성검을 이용해 델타가 추락한 자리의 지반을 부숴버리려다가,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도 멀쩡하자 얌전히 포기했다.
때맞춰 교황들이 바닥으로 내려왔다. 서로의 몸에 덕지덕지 묻은 빨간 액체가 유난히 더 소름끼치게 느껴졌다.
“먼저 이 공간을 벗어남이 좋아 보입니다, 카이킬리아. 이곳을 탈출하여 태양과 달께 델타 님의 행방을 물어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에반젤리나의 말이 옳습니다. 태양과 달이시라면 필시 델타 님의 행방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곳으로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여신에게 직접 델타가 어디로 갔는지를 물어보면 될 일이다. 무척 간단한 해결책이었다. 카이킬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로레타와 루나가 성유물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금색과 은색이 뒤섞인 빛무리가 나타나고, 세 명이 그 안으로 막 들어가려는 찰나였다.
“…….”
플로레타와 루나, 카이킬리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작을 멈췄다.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이 정도로 기분 나쁜 감각은 살면서 처음 겪어봤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든다, 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울렸다. 그 정도로 불쾌하고, 몹시 역겨웠다. 교황들의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지는 것을 본 카이킬리아가 중얼거렸다.
“나만 느낀 것이 아니로구나.”
“그렇습니다, 카이킬리아. 무언가 굉장히 갑갑하고…… 기분나쁜 느낌입니다.”
“혹 지금의 감각에 대해 짚이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카이킬리아?”
“있을 리가 없지 않으냐. 이딴 기분을 두 번이나 느꼈다간, 불쾌함이 아니라 분노가 먼저 차올랐을 것이다.”
카이킬리아는 성검을 다시 치켜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체 어떤 놈이 이따위ㅡ
ㅡ채애애앵!
순간, 성검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무언가를 향해 휘둘러졌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킬리아가 성검을 앞으로 밀어내며 그 무언가와 힘싸움을 했다. 앞으로 내딛은 발에 힘을 주고, 한쪽 손으로 성검의 날을 잡았다. 어차피 성검은 주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놀랍게도 눈앞의 상대는 카이킬리아와 힘이 거의 대등했다. 힘이 평형을 이룬 탓에 상황이 고착화되자, 카이킬리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뭘 밀어내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성검?”
황금색으로 빛나는 성검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카이킬리아는 기습적으로 팔을 꺾어 상대방의 균형을 무너뜨리면서 공격했다. 상대방은 휘둘러지는 성검을 피하고 뒤로 멀찍이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네놈은 무엇이냐.”
“……”
“대체 무엇이길래, 내가 과거에 사용하던 것과 똑같은 성검을 들고 있는지 물었다.”
카이킬리아는 눈앞의 인간을 보자마자 확신했다. 자신에게 그런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만든 원인이 바로 저놈이라고 말이다.
흰색과 회색이 섞인 머리카락에,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듯 얼굴 곳곳에 깊게 패인 주름살, 그리고 인중 근처와 턱까지 회색과 흰색의 수염이 뒤덮은 노년의 남성이었다.
옷차림도 전체적으로 무척 화려했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보석과 황금으로 치장되지 않은 곳이 없는데다, 제복마저 무지막지한 고급품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어깨 뒤로 내려오는 망토 또한 사치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체 뭘 믿고 싸우러 나가면서 저런 사치스러운 복장을 입었는지 의문이었다.
꼭 자기가 황제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내 다시 묻겠다. 이번에도 입을 닥치고 있겠다면, 그 뒤의 일은 너의 몫이니라.”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카이킬리아는 살벌함을 가득 담아 노인의 손에 들린 성검을 바라보았다.
칼날은 완전한 빛으로 이루어진 대신, 손잡이 부분은 광량이 조금 약해 투박한 강철이 보이는 외형의 검.
분명 델타와의 관계가 진전되면서 진정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되기 전의 성검이 맞았다.
“그 검을 어디서 손에 넣었느냐?”
“…….”
노인은 대답을 하는 대신 손에 들린 성검을 겨누었다.
“정녕 대답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로구나.”
카이킬리아도 피식 웃으며 성검을 겨누었다.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하였다. 너의 사지를 모두 자른 뒤에 다시 물어보겠노라. 대답이 마음에 든다면 곱게 죽여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죽여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서슬 퍼런 협박에도 노인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웃음을 거둔 카이킬리아의 몸에서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저희가 도와드리길 원하십니까, 카이킬리아?”
“되었다. 나 혼자서 처리하겠노라. 저따위 것을 남의 도움을 받아 쓰러뜨려봐야 찝찝하기만 할 뿐이니.”
“그러시지요……?”
플로레타는 대답을 하다 말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 눈동자에 무언가 이질적인 모습이 잡혀서였다.
조금 떨어진 장소의 바닥에서 인간의 형상이 꾸물꾸물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두 개나.
오른쪽에 선 사람은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신비한 옷을 입었고, 왼쪽에 서 있는 사람은 은과 보석으로 치장된 신비한 옷을 입었다. 짐작컨대, 아마 사제복 같았다.
품이 얼마나 넓은지 소매는 무릎까지 닿을 지경에, 스커트처럼 생긴 하의 역시 바닥과 맞닿아 질질 끌려댔다. 머리에는 위로 높이 솟아오른 모자 비스무리한 것을 썼다.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을 제외하면 두 사람은 어느 하나 닮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의복의 패턴, 걸음걸이, 자세, 그리고 하다못해 얼굴까지도.
마치 쌍둥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얼굴에는 처음 나타난 인간처럼 주름이 깊게 파였다. 머리카락도 회색과 흰색이 섞여 제 주인이 겪어온 세월을 여실히 드러냈다. 다만, 수염은 나 있지 않았다.
두 노인은 화려한 사제복을 치렁거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플로레타와 루나도 그 모습을 보고 카이킬리아처럼 눈살을 찌푸렸다.
말로는 형용하지 못할 불쾌감이 등골을 타고 찌르르 흘러대서였다.
“세라피카 언니.”
“응. 에반젤리나.”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성유물을 치켜들었다. 그 끝에 달린 자그마한 태양과 만월이 환한 빛을 발하고, 자신과 똑 닮은 거대한 구체를 만들어 눈앞의 노인들에게 내쏘았다.
“……어떻게?!”
“……무슨?!”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노인들이 소매 안에서 신성 촉매를 꺼내 휘두르자, 교황들이 만든 것과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크기를 한 태양과 만월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당연히 경악했고, 그러는 동안 완벽한 색깔의 태양과 달이 거무튀튀한 색깔의 태양과 달을 집어삼켰다. 천지를 울리는 듯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곧바로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교황 자매는 서로 손을 맞잡고 바람이 잦아들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그리고 후폭풍이 잦아들자, 기다렸다는 듯 질문했다.
“당신들은 무엇입니까.”
“……”
이번에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두 노년의 남성은 손을 가슴 앞에서 수평으로 모아 각각 반대쪽 소매에 넣은 채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녹안과 자안에 살기가 맺혔다.
“죽여달라는 뜻이십니까. 알겠습니다.”
“감히 태양과 달을 모욕한 죄, 절대로 곱게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플로레타와 루나의 몸에서도 살기가 피어올랐다. 저 노인들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저것들은 이단이고, 이단에게 베풀 자비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너는 누구니?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왔고?”
“내 이름은 아르카나. 이 세상에 내가 들어가지 못할 장소가 존재할 것 같으냐.”
“흐으음…….”
황궁 정원에서 마나를 회복하고 있던 미네르바는, 갑자기 심상치 않은 양의 마나와 마력이 감지되자 놀라서 눈을 떴다.
그리고 바로 옆에 서 있는 이상한 복장의 남자를 발견했다. 척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마나가 느껴지는 로브로 온 몸을 감싼 남자였다.
“잘 찾아왔구나. 그만한 마나와 마력이라면 지금 당장 내 마탑에 들어와도 손색이 없겠어. 어때, 관심 있니?”
미네르바는 갑자기 황궁에 들어온 마법사를 보고도 나름 태연했다. 방금 전에 놀라서 눈을 뜬 건 어디까지나 심상치 않은 양의 마나와 마력을 감지해서였지, 저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
마법사들 사이에서 괴짜는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재능이 좀 있다는 이유로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마법사 역시 수도 없이 많았고.
눈앞의 남자 역시 비슷한 부류일 확률이 높았다. 저만한 재능이라면 미네르바가 직접 관리하는 마탑에서도 한 손에 꼽힐 수준이었다. 그러니 자존심이 하늘을 찔러대겠지.
물론, 그렇게 자기가 제일 잘난 줄 아는 마법사들의 콧대를 박살내놓는 것 역시 미네르바의 할 일이었다.
“어리석은 자여.”
허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로브르 입은 남자가 저 말을 하기가 무섭게 가뜩이나 무지막지한 수준이던 마나와 마력량이 더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직 힘을 숨기고 있었다며 감탄하던 미네르바도, 그 양이 끝없이 늘어나자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의 남자가 지닌 마나와 마력은 거의 미네르바에 필적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너, 정체가 뭐니? 대답하렴. 지금 당장.”
얼굴에서 웃음기를 싹 지운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들었다.
마탑에서 한 손에 꼽힐만한 재능? 그럴 수 있다. 마탑에 들어오자마자 미네르바 바로 밑에 위치할 재능? 그것도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미네르바에 필적할 재능이라면? 그것부터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특히, 그만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들어올리는 그 짧은 순간에 황궁 전체를 폭발 마법진으로 뒤덮었다면 더더욱.
“진실이 눈앞에 목도하였음에도 알지 못하는가.”
계산은 빨랐다. 미네르바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궁 전체를 뒤덮은 마법진의 역산을 끝내고, 자신이 펼친 방어 마법 안으로 폭발의 근원을 옮겼다.
ㅡ콰아아아아앙!!!!!!
그러자마자 방어 마법 안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은은한 푸른색의 장막에 충격파와 화염이 쉴 새 없이 반사되며 기하학적인 문양을 만들어냈다.
마법으로 소리를 줄이기까지 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 소리만으로 폭발과 가까이 있던 벽 쪽의 창문이 죄다 박살날 위력이었다.
만약 막지 못했더라면 황궁이 아니라 제국의 수도 전체가 증발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미네르바는 방어 마법 안에 가둔 폭발을 방어막째로 대륙 남쪽의 독늪 한가운데에 던져버렸다. 저 장소라면 죽는 건 운이 지지리도 없는 곤충 마물들 뿐일 것이다.
간단한 조치를 끝낸 미네르바가 분노를 담아 남성을 마주보았다. 미네르바 역시 상당한 장신이건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미네르바보다 족히 머리 세 개는 더 컸다.
그런 주제에 몸은 비쩍 말라서, 과장 좀 보태면 해골이나 다를 바 없는 외형이었다.
“이게 무슨 짓일까? 단순한 장난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세계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으니, 굴복하고, 복종하라. 구원이 임박하였노라.”
남자가 지팡이를 손에 들고 마법진을 그렸다. 미네르바도 지지 않고 마법을 준비했다. 그러면서도 머리로는 싸울 장소를 어디로 옮겨야 할지를 고민했다.
여기서 싸웠다간 겸사겸사 제국의 수도까지 같이 증발해버릴 것이다. 그런 상황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설산, 혹은 독늪. 그런 장소가 좋겠구나.’
목표는 대륙 북쪽의 설산이나 남쪽의 독늪이었다. 뭐가 됐든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았다.
미네르바는 이미 대륙의 지도를 새로 그릴 각오까지 한 상태였으니까. 아무리 자신이라 해도 이번만큼은 주변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 같았다.
‘그 아이들은 무사하겠지.’
아직 알현실에 남아있는 일곱 명을 떠올리며, 미네르바는 눈앞의 남자를 끌고 설산으로 이동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