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2)
결전 – 3
“……이것들은 뭐야?”
닉스는 뜬금없이 알현실 문을 박차고 쳐들어온 기사들을 보며 인상을 있는대로 찌푸리고선 흑마법을 준비했다. 기사들은 그런 닉스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안쪽으로 발을 내딛었다.
“감히 어딜.”
그리고, 닉스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바닥에서 치솟아오른 흑염에 정통으로 휩쓸리고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표정에 생기가 하나도 없길래 그냥 무식하게 뚫고 올 줄 알았더니 고통은 느끼는 모양이었다. 흑염에 휩쓸리고도 상처가 하나도 없으니 고통을 느낀다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너희는 누군데 여기 이렇게 막 들어와? 좋게 말할 때 빨리 나가지?”
기사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경고 차원에서 손가락을 튕겨 입구 근처에 흑마법진을 잔뜩 깔았지만, 놈들은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려 시도했다.
닉스는 깔아둔 흑마법진을 폭발시키는 것으로 화답해주었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네.’
어떻게 되어먹은 상황인지는 그럭저럭 파악할 수 있었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것과 판박이처럼 생긴 은색의 갑옷을 입은 넷, 거기에 더해 성국의 성기사들이 입는 갑옷과 똑같이 생겨먹은 흰색의 갑옷을 입은 둘.
외형이 훨씬 더 두껍고 육중해 보이는데다, 입은 사람이 남자라는 것만 빼면 이쪽의 것을 빼다 박았다고 해도 좋을만큼 닮은 갑옷이었다. 그정도 연관성 쯤이야 단번에 간파 가능하다.
문제는, 저놈들의 정체가 대체 뭐냐는 것이다.
‘은빛 여명 기사단에 남자 단원이 있단 말은 들어본 적 없는데. 미네르바는…… 안 될 거고.’
닉스는 미네르바에게 도움을 구할까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알려봤자 지금 당장은 도와줄 수 없으리라고 판단해서였다.
조금 전에 황궁 전체를 뒤덮었다가 빠르게 사라졌던 마법진과 그 직후에 들려온 커다란 폭발음을 돌이켜보면, 누군가 황궁에 마법진을 깔았고 미네르바가 그걸 저지했다는 추측이 나온다.
미네르바의 성격상, 마법진을 깐 녀석을 제압했거나 처치했다면 필시 경고를 위해 알현실에 들렀을 거다. 그렇지 않다는 건 아직도 대치가 이어지고 있단 의미였다.
괜히 가봤자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일밖에 더 되겠는가. 얌전히 여기 있는 편이 낫지.
“내가 물었잖아. 빨리 대답하는 게 좋을걸. 여긴 너 같은 놈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거든. 아니면 뭐, 팔다리부터 하나씩 잘리고 시작할래?”
닉스는 그러면서 뒤를 흘끔 돌아보았다. 남은 6명 모두가 진혼을 습득하기 위해 죽음의 기억을 견뎌내는 중이었다. 이제 마지막 단계까지 왔는데, 여기서 방해받게 할 순 없었다.
몸이 충격을 받았다간 영혼에 무리가 갈 확률이 높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것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했다.
‘앞으로 얼마나 남았지? 한 30분 남았나?’
다행인 것은, 저 6명이 기억 속에 틀어박힌 지가 제법 됐다는 사실이다. 일이 제대로 풀리고 있다면 슬슬 깨어날 시간이었다.
“말 안 들려?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했어?”
닉스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경고했음에도, 눈앞의 기사들은 꾸역꾸역 흑염을 뚫고 들어오려 할 뿐이었다.
손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이제 경고는 끝났다. 저것들이 누구든 간에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다. 죽든 말든 닉스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칠흑색 마법진이 살짝 빛나며 마법을 발동하려는 순간, 제일 선두에서 흑염을 뚫고 들어오던 은빛 갑옷의 기사가 칼을 휘둘렀다.
“ㅡ!!!!!!”
닉스는 마법진의 술식을 재빨리 뒤바꿨다. 공격 마법 대신 방어 마법이 펼쳐졌다. 칠흑색 장벽에 맞고 궤도가 뒤틀린 참격이 곧장 알현실의 벽에 충돌했다.
튼튼하기로는 제국 제일인 황궁 건물 답게 무너지지는 않았으나, 균열을 통해 빛이 새어들어올 정도로 커다란 상흔이 남았다. 조각조각 부서진 파편이 우수수 흘러내렸다.
“너…… 애초에 날 노리려던 게 아니구나?”
방금의 공격은 정확히 아이리스를 향해 있었다. 만약 제때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필시 목을 베고 지나갔을 궤도였다.
닉스는 그제서야 기사들의 눈이 다른 쪽을 향해 있단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섯 개나 되는 시선 중에서 닉스를 쳐다보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칠흑색 눈동자에 분노가 깃들었다. 손에서 그려진 마법진이 뱀처럼 날아가 방금 선제 공격을 한 기사의 가슴팍을 후려갈겼다. 기사는 공중에 붕 떠서 뒤로 날아갔다.
갑옷 서너개가 뒤엉키며 와장창, 하는 소리를 냈다. 닉스는 그 위에 흑염으로 이루어진 폭포를 쏟아버리고, 멀쩡히 서 있는 다른 두 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잠깐. 넌 또 뭐야? 그걸 왜 니가 들고 있ㅡ”
기사의 손에 들린 무기가 무척 익숙하게 느껴지는 바람에, 닉스는 말을 하다 말고 허둥지둥 뒤를 돌아보았다.
“……그대로 있는데?”
하지만 클라우디아의 대검은 소파 옆에 기대어진 모습 그대로였다.
어리둥절해진 닉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분명 기사의 손에 들린 대검도 저것과 모양이 똑같았다. 크기 하나는 무식하게 컸기에 잘못 볼래야 잘못 볼 수도 없었다.
닉스는 잠시 벙쪄 있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아차리고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보니, 처음에 롱소드를 들고 있던 기사가 사용했던 참격은 바람의 검술이었던가.
“뭔가 비슷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추측이 진짜였을 줄은 몰랐네.”
신체 능력을 모두 빼앗으면 델타가 여기서 어떻게 버티냐고 걱정하던 닉스에게 여신이 말해준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이 바로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걸 만들 때, 이 세상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할 순 없으니 델타의 세계에 조금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도록 외형과 성별을 바꿨다고 했었다.
만약 저것들이 그 바뀐 외형이라면 지금 상황도 모두 설명이 된다. 갑옷의 디자인이 거의 판박이인 이유도, 무기의 외형과 검술이 같은 이유도 모두 말이다.
딱 하나, 누가 여기로 불러왔는지만 빼면.
당연히 여신님이 데려왔을 리는 죽어도 없었다. 그분이 미쳤다고 이 세상에 저런 것들을 데려오겠는가. 심지어 이 세계에 있는 원본들을 죽이려 들기까지 하는데.
‘……그놈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런 짓을 할 이유와 능력이 있는 놈은 하나뿐이었다.
머리가 복잡한 와중에도 몸은 알아서 움직였다. 검은 채찍이 놈들의 팔다리를 후려치고, 바닥에서 타오르는 흑염이 움직임을 제한했다.
큰 마법을 쓰긴 힘들었다. 그랬다간 저놈들과 같이 황궁도 불타 없어지게 될 테니까.
특히 아우로라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테니 더더욱 그래선 안 됐다.
ㅡ콰직! 콰직!
살벌한 소리와 함께 문 근처의 벽이 모조리 부서지기 시작하자, 닉스는 보호 마법을 발동해 문이 위치한 자리의 벽을 통째로 막아세웠다.
방어 장벽에 가로막힌 기사들이 어떻게든 장벽을 깨부수려 발광하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이, 불이, 얼음이, 벼락이, 그리고 신성력이 계속해서 마법진을 두들겼다.
롱소드와 바람, 단검과 얼음, 일본도와 화염, 대검과 벼락. 못 알아볼래야 못 알아볼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그러면 저 둘도…….’
닉스가 기사들의 옆에서 철퇴와 레이피어로 보호 마법을 뚫으려 시도하는 둘을 살폈다.
철퇴가 부딪힌 자리에 쩌적 금이 가고, 레이피어가 손쉽게 보호막에 구멍을 뚫어대는 모습을 본 닉스가 급히 마법을 덧댔다.
ㅡ콰드드득!
“아, 진짜! 적당히 좀 하지?!”
닉스는 왈칵 짜증을 내며 흑염으로 알현실 정면을 뒤덮어버렸지만, 놈들은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았다.
방금 저게 황궁 벽이 버틸 수 있는 최대치의 공격이었다. 마법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더라도 뼛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태워버렸을 텐데.
‘순간이동도 안 통하고.’
차라리 순간이동을 사용해 어딘가 먼 곳으로 보내버리려 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게 안 통했다.
‘진혼은…… 아니다. 괜히 위험 감수하진 말자.’
솔직히, 진혼을 쓰긴 애매했다. 옆에서 죽음의 기억을 받아들이는 중이었으니까 말이다. 정말로 만에 하나라도, 진혼이 저 작업을 방해해서 일이 꼬인다면 절대 돌이킬 수 없다.
그렇게 대치를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긴 우리가 맡겠다. 물러나라.”
어느새 눈을 뜬 아이리스가 자신의 롱소드를 빼들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리제도, 에리카도, 클라우디아도 그 옆에서 각자 무기를 빼들고 있었다.
심지어는 비슷한 시간에 눈을 뜬 스텔라와 셀레네마저 곧장 자신의 무기를 찾았으니, 기억 공유에 도전했던 전원이 죽음을 버텨냈다는 의미였다.
닉스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패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부터가 놀라운데, 그 수많은 죽음을 겪고서 저토록 태연할 수 있다는 것도 그랬다.
어안이 벙벙해진 닉스가 제자리에 굳어 있는 동안, 가볍게 몸을 푼 스텔라가 철퇴를 어깨에 얹었다.
“저 불쾌한 것들은 뭘까요, 이단심문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도저히 살려두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감이에요. 그냥 다 죽여버리죠!”
스텔라가 잔혹한 미소를 지었고, 셀레네는 싸늘한 표정으로 레이피어를 겨누었다. 목표는 당연히 성기사의 갑옷을 입은 주제에 자신들과 똑같은 무기를 든 2명이었다.
“너넨 뭔데 은빛 여명 기사단의 갑옷을 입고 있냐? 남자 단원을 뽑은 기억은 없는데.”
클라우디아가 평소의 호탕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질문했다.
단지 클라우디아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6명 모두, 얼굴에 도저히 숨기지 못하는 불쾌감이 드러나 있었다. 마지 못 볼 것을 봤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스텔라마저도 잔혹한 미소 한 켠에 불쾌감을 띄웠으니, 여기서 평소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닉스가 유일했다.
“델타 씨가 맞서 싸우고 계시는 그 드래곤이 당신들을 모방하여 만들어 낸 존재입니다. 그래서 외형과 무기가 똑같은 거죠.”
닉스는 재빨리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뭔가 이것저것 잘라먹은 설명이긴 했어도 딱히 틀린 건 없었다. 이 6명을 모방해서 만든 것도 맞고, 그 드래곤이 만든 것도 아마 맞을 테니까. 억울하면 항의하러 오라지.
자신들을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말에 6명의 얼굴이 더 크게 일그러졌다.
“……아하. 그렇다는데. 어떡할까, 에리카?”
리제와 에리카가 동시에 무기를 겨누었다. 단검에 얼음이 치솟고, 일본도를 화염이 휘감았다.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언니. 당연히 다 죽여야죠. 언니 생각이 제 생각인 거 알면서 왜 그래요?”
“이래야 내 동생이지. 너도 우리가 똑같은 거 인정한 거다?”
에리카는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는 눈치다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리제가 그런 에리카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혹시 괜찮다면 저것들의 처리는 우리에게 맡겨주지 않겠나?”
곧장 진혼으로 저것들의 본질을 박살내버리려던 닉스는, 아이리스의 정중한 부탁을 듣고 멈칫 했다. 다른 5명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직접 죽이려고요?”
“그렇다. 우리를 모방한 것들이니 죽이는 것도 우리 손으로 해야겠지.”
그 짧은 순간만에 이래저래 쌓인 게 많긴 했지만, 그래도 자길 모방한 놈들이니 자기 손으로 매듭짓게 해주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닉스는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아이리스가 그런 닉스를 향해 짧게 목례를 했다.
“배려에 감사한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하도록 하지.”
말을 끝낸 아이리스의 롱소드에 바람이 휘감겼다. 은빛 기사의 롱소드에도 바람이 휘감겼다.
누가 봐도 본격적으로 싸울 준비를 하는 모습에, 닉스가 다급히 말했다.
“여기 황궁인데요? 설마 여기서 싸울 건 아니죠?”
“걱정은 접어둬라. 새로운 것을 습득했으니 써먹어야 하지 않겠나.”
무기의 끝이 서로를 향했다.
“금방 끝날 거다.”
중앙 홀의 옥좌에 앉아 수백 장의 문서를 이리저리 살피던 아우로라는, 문득 들려온 발소리에 문서를 내려놓았다.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쳐다보니, 웬 여자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그 여자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치솟는 불쾌감에 한껏 표정을 찌푸린 아우로라가 입을 열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출입해도 좋다는 허락을 내린 기억이 없는데.”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우로라는 한숨을 내쉬고 은빛 여명 기사단을 호출하려 했다. 자신의 이모였다면 성검으로 직접 침입자를 썰어 죽였겠지만, 아우로라는 그럴 능력이 되지 되지 못했으므로.
“사람은 안 불렀으면 좋겠는데. 우리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거든. 은밀하게.”
문득, 자신의 것이 아닌 목소리가 들렸다. 옥좌 옆의 마법진을 발동시키려던 손이 잠시 멈칫 했다.
“내가 네 말을 들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
“당연히 있지. 난 너한테 해를 끼칠 수 없거든. 살면서 검을 잡아본 적도 없고, 하다못해 싸움을 해본 적도 없으니까. 봐, 무기도 안 들고 왔잖아.”
여자는 그러면서 치맛자락을 펄럭이고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아우로라는 저런 말을 곧이곧대로 신뢰할만큼 바보가 아니었기에, 긴장을 조금도 놓지 않은 채 다시 질문했다.
“내게 은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둘 뿐이다. 너는 그 둘에 포함되지 않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자비를 베풀어주겠다. 지금 당장 뒤돌아서 이 장소를 나가라.”
“매정하네. 진짜로 들으면 후회 안 할 이야기인데.”
“나가지 않을 모양이로구나. 좋다. 그렇다면 강제로ㅡ ”
“네 남자에게 도움이 되고 싶지 않아?”
마법진을 발동시키려던 아우로라가 그 말을 듣고 제자리에 우뚝 굳었다. 여자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선 옥좌로 천천히 걸어왔다.
“다른 사람들은 다 네 남자를 도와주러 갔는데, 너는 혼자 여기 처박혀서 그깟 종이나 들여다보고 있잖아. 억울하지? 그렇지? 너도 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어줄 수 있는데. 너 혼자서만 쏙 빼놓고 말이야.”
“……쓰잘데기 없는 헛소리로 날 유혹하려 든다면, 소용 없다. 나가라. 지금 당장.”
“그러지 말고 솔직해져. 난 네 마음을 아주 잘 아니까. 내가 널 도와줄게. 원한다면 네 남자 옆에서 같이 싸울 힘을 줄 수도 있어. 떠올려 봐. 너한테 등 뒤를 맡기겠다며 신뢰를 보여주는 모습을. 널 전적으로 믿겠다고 말해주는 거야.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너한테. 어때? 상상만 해도 짜릿하지?”
“그, 그렇지 않…….”
어느새 옥좌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여자가 마법진 근처까지 뻗은 손을 살포시 들어 무릎에 얹었다. 그리고는, 싱긋 미소지으며 아우로라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아니, 그렇게 될 거야. 왜냐하면, 너는 패배자니까. 보잘것 없고, 나약하고, 도움도 안 되는 쓰레기니까. 지금의 너는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년이니까.”
“…….”
황금빛 눈동자가 조금씩 멍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내가 시키는대로 해주기만 하면, 내가 말하는대로 따라주기만 하면 그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어. 네 남자에게 제일 큰 도움이 될 수 있어. 자, 그러니 겁먹지 말고 해봐. 첫 번째 단계.”
“첫 번째 단계…….”
아우로라의 중얼거림을 듣는 여자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피어났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