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3)
결전 – 4
거의 다 됐다. 여자는 이상한 단어를 중얼거리는 아우로라를 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이제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의식을 무방비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았다. 원본을 죽이고 이 세계에 구원이 찾아오도록 하라는 사명이었다. 그 이후에는 세계와 같이 창조주에게 흡수당할 기쁨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 영원한 암흑이 찾아오며 모두가 구원을 얻는 결말이 도래하리라. 여자의 눈이 번뜩였다. 입술 사이로 다음 말이 흘러나왔다.
“두 번째 단계. 마음을 연다.”
“두 번째 단계…… 마음을 연다…….”
아우로라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항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확인한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세 번째 단계. 받아들인다.”
“세 번째 단계…….”
눈동자에서 생기가 완전히 사라진 아우로라는, 여자의 말을 미처 다 따라하지도 못하고 중얼거림을 끝마쳤다.
고개가 천천히 바닥을 향했다. 힘이 풀리기 시작한 듯 상체가 등받이에 축 늘어졌다. 이걸로 준비는 끝났다.
아우로라의 허벅지에 옆으로 앉아있던 여자가 자세를 바꿨다. 몸을 반바퀴 돌리고, 다리를 살짝 벌려 아우로라와 마주보는 자세로 허벅지를 깔고 앉았다.
이성간에 하기도 제법 민망한 자세였으나, 여자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 머릿속에 든 것이라곤 모든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에 찾아올 죽음이라는 이름의 구원 뿐이었으므로.
여자가 아우로라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갔다. 톡, 이마가 서로 맞닿았다. 그러자 정신이 점차 아우로라의 머릿속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두 의식이 하나로 뒤섞였다. 여자는 아우로라가 되고, 아우로라는 서서히 존재의 의미를 상실해갔다. 2명의 지식이 서로 뒤섞이며 기억과 감정이 합쳐졌다.
융합이 일정 수준 이상 진행되자, ‘아우로라’가 눈을 떴다.
황금빛 동공에 생기가 다시 돌아왔다. 눈을 뜬 ‘아우로라’는 새로운 몸을 차근차근 움직여보았다. 발끝부터 시작해서 손끝까지, 모두 다 잘 작동했다.
속옷을 안 입은데다 몸에 워낙 딱 달라붙는 드레스인지라 움직이기는 조금 불편했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결국에는 구원받을 몸이다. 그깟 불편함이 대수겠는가.
마지막으로 손을 쥐었다폈다 해보던 아우로라는 만족스러운 웃음과 함께 텅 빈 껍데기만 남은 여자의 육신을 툭 밀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몸은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그러다가 검은 진흙처럼 변하더니 부글부글 끓으며 허공으로 증발했다. 여자의 몸이 완전히 증발한 것을 확인한 아우로라가 옥좌 옆의 마법진에 손을 올렸다.
마법진이 환한 빛을 발하고, 얼마 안 가 은빛 갑옷을 입은 기사 두 명이 중앙 홀로 뛰쳐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기사단장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준비하여라.”
“……저, 폐하. 기사단장께서는 지금 모두…….”
알고 있다. 기억 공유를 버티지 못하고 죽었거나, 기억 공유를 하던 중에 칼 맞고 죽었거나, 아니면 복제품들이랑 한참 싸우고 있겠지.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아우로라가 옆에서 적당히 위험에 처한 시늉만 해줘도 집중력이 흐트러질 테니, 그 틈을 타 처리하면 된다. 여차할 때는 진짜로 이 몸뚱아리를 죽일 수도 있고 말이다.
“내 명을 거역하겠다는 것이냐?”
황금빛 눈동자가 날카로워졌다. 그 모습을 본 기사들이 허둥지둥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은빛 갑옷이 문 밖으로 사라지고, 아우로라가 그 뒤를 따라 막 걸음을 옮기려는 찰나였다.
“윽!”
급작스럽게 찾아온 두통 탓에 발걸음을 멈췄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걸어가려 했으나, 도저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아우로라는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계획은 완벽했고, 실제로도 무척이나 손쉽게 의식을 강탈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융합이 끝난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아우로라가 그렇게 한참을 고통에 신음할 무렵, 비명을 지르던 입에서 문득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내 몸은…… 절대 못 줘…… 이, 개자식아……!”
완전히 흡수된 줄 알았던 원본의 인격이었다.
‘아우로라’는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을 듣고선 머리가 깨지는 듯한 고통에 발버둥치면서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분명 완전히 융합됐던 인격이 다시 분리됐다고?
대체 어떻게?
“마, 말도 안 돼……! 아흑……! 이게…… 이게 가능할 리가……!”
“델타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내 몸으로 민폐나 끼치는 꼴을…… 그대로 보고만 있으라고……? 그렇겐 못해…… 아니, 안 해……!”
“아아아아악!”
마침내 ‘아우로라’는 체통조차 잊고선 머리를 감싸쥐며 바닥을 굴렀다.
두 명의 아우로라가 상대를 몰아내기 위해 시작한 싸움은 간단했다. 그저 무작정 버티는 것.
의식이 서로 합쳐졌다가 분리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포기하는 쪽이 사라지는 싸움이었기에, 정말 지독하게 아팠다.
“두고 봐, 델타……! 이 녀석이 원하는 상황 따위,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서서히 주도권을 잡아가는 쪽은 여자가 아닌 아우로라였다. 애초에 마음가짐부터가 달랐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우로라는 자신만 진혼을 습득하지 못했던 일을 계속해서 신경쓰고 있었고, 덕분에 지금의 고통은 델타가 죽으면서 느꼈을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의식을 빼앗기기 전에 열등감을 자극받았던 점도 컸다. 도움이 되지 않는다느니 어쩌니 하는 말에 오기가 생겨버린 것이다.
“조금만…… 조금만 더……! 으으윽!”
아우로라는 비틀거리면서도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에 반해, 아우로라의 머릿속에 들어왔던 여자의 인격은 서서히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중이었다.
최후의 발버둥이 이어졌지만 그것조차 오래 가지 못했다.
“허억, 허억……!”
마침내 고통이 완전히 가시자, 아우로라는 무릎을 꿇고 두 팔로 땅을 짚은 채 숨을 골랐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입술 사이로 거친 숨이 계속 흘러나왔다.
이마뿐 아니라 전신이 땀투성이였다. 가뜩이나 몸에 달라붙던 드레스가 피부에 한층 더 찰싹 밀착했다. 조금만 더 나갔다면 바디슈트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았다.
“……하하.”
아우로라가 공허한 웃음을 흘렸다. 이겼다. 비록 알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싸움이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델타에게 폐를 끼치진 않았으리라는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지금도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기사들에게 생각이 미쳤다. 아우로라는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 옥좌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려버렸다.
미안한 일이지만 조금 더 기다리게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한 아우로라가 막 등받이에 늘어지려는 찰나였다.
ㅡ콰아아아앙!
우레와도 같은 파열음과 함께 천장이 박살나더니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뜬금없이 천장에 구멍이 뚫리자, 깜짝 놀란 아우로라는 몸을 반쯤 일으켰다.
‘설마 다른 놈들인가?’
여자가 주도권 싸움에서 패배하고 사라진지라, 머릿속에는 그 여자의 지식만이 남은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신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으리란 사실 역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마법진에 손을 뻗어 다시 기사를 호출하려던 아우로라는 곧 그럴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굉장히 익숙한 모습의 여성이 천장에 뚫린 구멍으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클라우디아!”
“아, 영주님…… 아니지, 폐하. 죄송합니다. 폐하라는 단어가 입에 안 붙네요.”
“괜찮다. 나도 이 자리가 익숙하지 않으니. 그런데 갑자기 무슨ㅡ”
아우로라는 말을 하다 말고 우뚝 멈췄다. 천장이 무너지며 생긴 먼지 구름 속에서 웬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걸 본 클라우디아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어떻게 된 상황인지는 곧바로 파악했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것과 똑 닮은 남자의 은빛 갑옷, 그리고 클라우디아의 대검을 빼다 박은 듯한 남자의 대검.
‘저게 그놈들 중 하나인가.’
“아직도 안 죽었네?”
대검에 벼락이 감돌았다. 남자의 대검에도 노란 벼락이 감돌았다. 하지만 여태껏 입은 상처가 제법 큰 건지 남자는 대검을 드는 것만도 버거워 보였다.
먼저 움직인 사람은 클라우디아였다. 땅을 박찬 클라우디아가 벚꽃색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들었다. 쩌어엉! 하고, 질량과 질량이 충돌했다.
처음에는 힘겨루기가 이어지는 듯 보였으나, 오래 가진 못했다. 클라우디아가 점차 은빛 갑옷의 남자를 압도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갑옷도 이미 너덜너덜해서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여기에 추락하기 전에도 클라우디아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의미다.
결국 놈은 얼마 버티지 못했다. 벼락으로 뒤덮인 대검이 반대쪽 대검을 통째로 부숴버림과 동시에 그 뒤쪽의 갑옷과 인간 상반신마저 썰어버렸다.
잘려나간 몸뚱아리가 바닥으로 엎어졌다. 시체와 무기는 검은색의 진흙처럼 변해 부글부글 끓으면서 증발하듯 사라졌다.
시체를 보고 비웃음을 흘리던 클라우디아가 굉장히 개운한 표정으로 대검을 어깨에 얹었다.
“끝났습니다, 폐……?”
그리고는, 완전히 폐허로 변해버린 중앙 홀을 보자마자 표정이 급속도로 다시 안좋아졌다.
“……죄송합니다, 폐하. 처음에는 진혼을 사용해서 빨리 끝낼 생각이었는데, 저놈이 자꾸 벼락까지 사용하면서 저항해대길래 어디 한 군데 부숴놓고 죽이자 했다가…….”
“괜찮다. 나중에 고치면 되니. 신경쓰지 말아라.”
일부러 부순 것도 아니고, 괜히 힘 조절 하려다가 역으로 당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까지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사하겠……?”
까지 말한 아우로라가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에 저장된 그 여자의 지식 중에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있었다.
“알현실로 돌아가자, 서둘러라!”
아우로라는 방금 전까지 축 늘어져 있던 팔다리를 억지로 움직이며 중앙 홀을 나섰다. 어안이 벙벙해진 클라우디아가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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