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4)
결전 – 5
“황궁을 그쪽이 부수면 어떡합니까!”
닉스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런 닉스의 비명을 듣는둥 마는둥,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왔다. 한때 황궁의 벽이었던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아이리스는 폭풍을 휘감은 검으로 눈앞의 은빛 갑옷을 노렸다. 검이 휘둘러지고, 폭풍이 상대방의 롱소드와 갑옷을 통째로 절단했다.
그걸로도 피해를 모두 흡수하긴 모자랐는지 뒤쪽 벽이 터져나갔다. 어디선가 또 비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칼날에 휘감긴 바람을 흩트러뜨리고, 이번에는 본질을 노려 검을 휘둘렀다. 방금 전과 대비되는 고요한 참격이 남자의 목을 노렸다.
칼 끝이 본질을 스치고 지나가는 감각이 느껴졌다.
목이 잘려나간 몸은 앞으로 휘청이다가 먼저 쓰러진 상반신에 걸려 덩달아 엎어졌다. 제법 잔혹한 광경이긴 했지만, 이곳에 겨우 인간 시체 가지고 유난 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체는 검은 진흙처럼 변하더니 부글부글 끓는 듯이 증발해 사라졌다.
“끝났군.”
덤덤히 롱소드에 묻은 피를 털어낸 아이리스가 무기를 집어넣었다. 폭풍으로 인해 황궁의 한쪽 벽이 무너지는 ‘사소한’ 피해가 있었지만, 다친 사람은 전무했다.
적어도 아이리스가 입힌 피해는 그랬다. 아이리스는 클라우디아가 벼락을 두른 채 전투를 벌였던 방향을 흘끗 쳐다보았다. 완전히 엉망진창이었다.
전투 중에 벌어진 일이니 책임을 묻진 않겠지만, 찝찝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황궁 안의 사람들은 모두 지하실로 대피했으니 괜찮을 것이다. 영주님은…… 아니, 폐하께서도 무사하시겠지.’
영주란 호칭을 생각했던 아이리스가 급히 정정했다. 지난 몇 년을 영주로 불렸는데, 몇 시간도 안 돼서 폐하로 바꿔 부르려니 영 입에 안 붙었다.
아우로라가 무사할 거라고 생각한 이유도 당연히 있었다.
클라우디아가 위험에 빠진 아우로라를 내버려둔 채 싸움에만 집중하거나, 아우로라가 휘말리든 말든 상관 없이 검을 휘두를 성격은 절대로 아니니까.
“몸은 괜찮나, 닉스?”
“저야 뭐 한 것도 없으니 당연히 괜찮은데…… 황궁이 안 괜찮네요.”
“다친 사람이 없으면 그걸로 족하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황궁을 신경썼다간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테니.”
“그건 그렇죠. 당신들이 안 죽었으니 그걸로 됐어요.”
닉스도 간단히 긍정했다. 사람 목숨과 황궁 중에 뭐가 더 중요하냐고 한다면 당연히 목숨 쪽이니까.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된다. 아우로라가 그런 걸 아까워 할 성격도 아니고.
“다친 곳은 없습니까?”
“없다. 걱정에 감사하지.”
알현실 내부가 정리되었으니, 둘의 시선은 자연스레 밖으로 향했다. 리제와 에리카는 밖에서 싸우고 있었다. 전투가 시작된 직후에 공격을 주고받다가 밖으로 튕겨나간 것이다.
챙, 챙 하고 단검이 맞부딫히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푸른 단검이 맞닿을 때마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안개가 흩뿌려졌다. 서리로 뒤덮인 바닥이 버석거려댔다.
“승패가 갈린 모양이로군.”
“척 봐도 그렇게 보이네요.”
리제는 생채기 하나 없었지만, 리제를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저 놈은 곳곳이 상처 투성이였으니 결과는 뻔한 일이었다.
스읍, 옅게 숨을 들이쉰 리제가 최후의 연격을 준비했다. 푸르른 머리카락이 하얀 성에로 물들고, 주변 공간을 얼음이 뒤덮었다. 입술 사이로 흰 입김이 새어나왔다.
오른손에 들린 단검이 먼저 수직으로 내리쳐졌다. 남자가 왼손의 단검으로 그 공격을 막자 쇳소리와 함께 얼음 안개가 확 퍼져나갔다.
리제의 단검이 그 퍼져나간 얼음 안개를 흡수했다가, 칼 끝으로 긋고 지나간 궤적을 따라서 날카롭게 쏘아보냈다. 안개에 직격당한 갑옷이 쩌적 얼어붙었다.
공격은 쉬지 않고 이어졌다. 리제는 눈앞의 남자가 오른쪽을 막으면 왼쪽을 후려갈기고, 위를 막으면 아래쪽을 올려치고, 아래를 막으면 머리를 뒤흔들었다.
‘나보다 훨씬 약해. 날 모방해서 만들었다니 별 것 아니잖아?’
누가 보더라도 리제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모습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결판은 금방 날 듯 했고, 실제로 머지 않아 기회가 찾아왔다.
“잡았다.”
리제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서리폭풍 난격이 막 끝나가던 참이었다.
마지막 공격까지 제대로 끝마친 리제는 상대가 크게 휘청이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은빛 갑옷의 뒤에 나타났다.
푹, 목을 노리고 찔러진 단검이 왼쪽 귀 밑을 뚫고 들어가 오른쪽 귀 밑으로 튀어나왔다. 단검에 넘쳐흐르는 냉기가 그 몸을 곧장 얼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목이 꿰뚫리고 몸이 얼어붙어가면서도 팔을 꺾어가며 어떻게든 리제를 죽이려 들었으나, 리제의 움직임이 훨씬 더 빨랐다. 곧바로 이어진 진혼이 단숨에 그 본질을 조각냈다.
푸른 단검이 목에서 뽑혀져나왔다. 리제는 얼음 동상으로 변해버린 남자의 몸을 걷어찼다. 동상이 기우뚱 넘어지며 반짝이는 핏빛의 얼음 결정으로 흩어졌다.
“이딴 더러운 거나 만들다니. 용서 못해.”
복수심을 불태우며 검은 진흙처럼 변한 얼음이 부글부글 증발하는 모습을 흘끗 쳐다본 리제가 자기 동생을 바라보며 외쳤다.
“네가 마지막이야! 에리카!”
“…….”
에리카는 리제의 말을 가볍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온 몸의 감각은 오로지 눈앞의 은빛 갑옷을 입은 남자를 향해 있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고.
이 다음의 한 방으로 모든 것이 결정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둘의 상황이 같음에도 외형은 현저히 달랐다. 에리카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는 것과 반대로, 남자의 은빛 갑옷은 대부분이 그을리고 녹아내린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 펼쳐졌던 공방의 승자가 누구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대치는 끝났다. 에리카는 왼손으로 검집을, 오른손으로 일본도의 손잡이를 강하게 움켜쥐며 몸을 왼쪽으로 살짝 비트는 동시에 상체를 숙였다.
왼발은 어깨보다 조금 뒤로, 오른발은 어깨보다 조금 앞으로. 다리의 너비는 어깨와 비슷하게.
상대 역시 그 자세를 똑같이 취했다. 이런 점까지도 닮았다. 에리카의 입장에서는 무척이나 기분나쁜 일이었다.
“…….”
잡념은 지웠다.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 에리카는 그대로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가, 단숨에 힘을 폭발시키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불꽃으로 이루어진 잔상이 퍼졌다.
발도가 이루어지며, 에리카의 일본도가 검집에서 뛰쳐나왔다. 그와 동시에 검신을 타고 흐르던 주황색 불꽃이 해방되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화염을 잔뜩 머금은 검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목을 파고들었다. 에리카의 눈에 그 본질이 정확히 깃들었다.
불꽃과 열이 인간의 신체를 파고들어갔다. 살과 뼈, 근육이 베이는 감각은 느껴지지도 않았다. 화염을 머금고 있는 검은 너무나도 쉽게 하나의 목숨을 앗아갔다.
바로 다음 순간에, 에리카는 한쪽 무릎을 굽히고 칼을 빼든 채로 남자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목을 잃어버린 몸뚱아리는 칼을 절반도 미처 뽑지 못하고 기우뚱 엎어졌다.
“후우…….”
극한까지 끌어올렸던 집중을 푼 에리카가 검을 납도했다. 찰칵, 하고 일본도의 코등이와 검집이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들리며 타오르던 화염이 사라졌다.
“수고했어, 에리카.”
제일 먼저 다가온 리제가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겁니다. 칭찬은 됐어요. 나머지 사람들은요, 언니?”
닉스와 아이리스는 무너진 알현실 벽 근처에서 여길 내려다보는 중이었지만, 나머지 세 명은 어디로 갔나 안 보였다.
이단심판관은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철퇴로 상대를 황궁 정원 안쪽까지 날려버렸었고, 이단심문관은 동시에 그림자 속으로 녹아 사라졌었으니 말이다.
클라우디아는 벽을 뚫고 간 뒤로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알아서 잘 이겼을 거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우리가 이겼으니 다들 이기지 않았을까? 나중에 적당히 나타날ㅡ”
“아이리스! 리제! 에리카!”
그러기가 무섭게 클라우디아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리제와 에리카는 서로를 잠시 마주보았다가, 박살난 파편을 짚고 단숨에 알현실까지 뛰어 올라갔다.
알현실에는 어느새 돌아온 클라우디아와 그 옆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우로라가 있었다.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페하?”
“여기서…… 헤엑……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델타한테 가야 한다.”
“이미 그러려고 했지 않습니까. 저 이상한 것들이 나타나서 잠시 늦춰진 거지, 곧바로ㅡ”
“더 서둘러야 한다는 의미다!”
아우로라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리고선 숨이 아직 덜 골라졌는지 제풀에 지쳐 헥헥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나머지 5명이 다음으로 이어질 말에 바짝 집중했다.
한참이나 숨을 고르던 아우로라는 다급히 말을 이었다.
“우리한테 온 것들은 단순히 실험작이었다. 그것들이랑 싸우면서 터무니없이 약하다고 느낀 적 없느냐? 모두 그래서였다. 어차피 쓰다 버릴 것들이었으니까.”
정작 쓰다 버릴 용도로 만들어진 당사자는 그런 것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는 투였지만, 아우로라는 아니었다. 그래서는 안 됐고, 그럴 수도 없었다.
“네? 그러면 실험작이 아니라 진짜는 어디로…….”
진짜는 어디로 갔냐, 라고 물으려던 닉스가 조용해졌다. 어디로 보냈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전부 델타에게로 향할 예정인 거다. 그러니 서둘러라. 당장.”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