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6)
결전 – 7
미네르바의 지팡이 끝에 마나가 깃들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비쩍 마른 남자도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허공에 마법진이 맺히고, 어마어마한 마나의 격류가 사방을 휩쓸었다.
쿠르르릉, 하며 땅이 뒤흔들렸다. 어떤 자연재해가 몰아치더라도 끄떡 없을 것 같던 늪지의 수많은 고목들이 말라 비틀어진 풀처럼 쉽게 뽑혀나왔다.
근처의 땅이 통째로 찢어졌다. 그 찢어진 틈 사이로 늪 특유의 끈적한 물과 진흙이 빨려들어갔다. 지반이 서로 부딪히며 마치 산처럼 솟아올랐다.
이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상황에 제일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이 늪지에 살던 곤충 마물들이겠으나, 애석하게도 이 자리에는 피해를 입을 마물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한참 전에 제국과 성국으로 쳐들어갔다가 모두 죽었으니 말이다.
“그래, 네가 누구인지는 끝까지 대답할 생각이 없니?”
“종말이 찾아올지어다. 그리하면 모든 영혼이 기쁘게 구원을 얻으리라.”
“말이 안 통하는구나.”
미네르바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까부터 계속 저런 꼴이었다. 구원을 얻으리라느니, 종말이 찾아온다느니, 죽음을 경배하라느니. 하나같이 쓰잘데기 없는 헛소리였다.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붕괴되는 아래쪽의 독늪을 흘끗 쳐다본 미네르바는 다시 마법을 사용했다. 하늘에 벼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름이 모여들었다.
구름이 자신의 모든 것을 비쩍 마른 남자에게 쏟아부었다. 소름끼치는 굵기를 지닌 번개가 남자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하지만, 남자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지팡이로 흡수했다. 제 주인을 닮아 비쩍 마른 지팡이를 빙빙 돌던 벼락이 역으로 미네르바에게 날아왔다.
벼락이 보호 마법과 충돌했다.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고, 마법진이 크게 일렁였다. 근처로 퍼져나간, 크기로 따지면 수십 분의 일도 안 될 작은 번개줄기에 맞은 고목이 새까맣게 타버렸다.
마나를 흘려넣어 마법진을 재구성하던 미네르바는, 목구멍에서 왈칵 치솟아오른 핏덩이를 다시 목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입 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아직 회복이 덜 되었구나.’
제국 전체의 마물을 청소하고 나서 아직 회복이 덜 된 참이다. 그런 상황에 마나를 한계까지 끌어쓰다보니 슬슬 무리가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입 안 가득 퍼져나가는 피 맛을 삼키며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비쩍 마른 남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몸 근처에 마법진이 그려지고 있었다.
미네르바는 마법진의 모습을 확인하고, 한 발 빠르게 그 마법진에 간섭하여 회로를 날려버렸다. 대륙 전체를 통틀어서 오직 미네르바만이 할 수 있는 기행이었다.
마법진이 일그러지더니 아예 부서져버리자, 비쩍 마른 남자가 동작을 멈췄다.
‘시간을 벌어야 해.’
정신력이 쭉쭉 소모되는 기술인지라 평소에는 거의 안 쓰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머리가 피곤하더라도 마나를 최대한 많이 회복해둬야 한다.
목구멍에서 지속적으로 핏덩이가 역류해대고, 앞으로 공격 마법 몇 번이면 비행을 유지할 마나조차 남지 않을 상황이니 말이다.
문제는, 상대 역시 미네르바가 순순히 마나를 회복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없는 것 같단 사실이었다.
“시간은 너의 편이 아니다. 예견된 종말을 피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 이상한 표현을 사용할 나이는 옛적에 지나지 않았을까?”
미네르바의 옆에 수십 개나 되는 푸른색 구체가 나타났다. 이게 사실상 미네르바가 할 수 있는 마지막 공격이었다.
그 푸른색 구체의 절반을 자줏빛으로 바꿨다. 델타가 알려주었던 다른 세계의 마법을 응용해 미네르바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것이다.
하늘을 유유히 떠다니던 구체가 약간의 시간 차를 두고 발사됐다. 푸른색 구체들이 먼저 방어 마법을 두들겼다. 마나로 이루어진 방벽이 옅게 일렁였다.
푸른색 구체는 단 하나도 보호막을 뚫지 못했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 진짜는 그 다음이니까.
연이어 쏟아진 자줏빛 구체가 보호막에 닿았다. 푸른색 구체와는 달리, 자줏빛 구체는 방어 마법에 닿자마자 안쪽으로 파고들어갔다.
방벽 내부로 파고들어간 부분은 즉각적으로 부풀어오르더니 보라색 안개를 퍼뜨리며 성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펑, 펑 하는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구체로부터 퍼져나간 안개는 스멀스멀 퍼져나가는가 싶더니 한 점을 향해 모여들었다. 뭉친 안개에서 새로운 자줏빛 구체가 탄생했다.
새로 생겨난 구체가 중앙을 향해 압축되기 시작할 무렵, 미네르바가 피를 왈칵 토했다.
“욱, 커헉!”
분명 공격은 저쪽이 당했건만, 어째 피해는 미네르바가 더 많이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하아, 하아, 하아…….”
미네르바는 입 안 곳곳에서 느껴지는 물컹한 덩어리들을 뱉어냈다. 주르륵, 그러자마자 왼쪽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액체를 손으로 닦았다. 손에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곧이어 오른쪽 눈에서도 비슷한 느낌의 액체가 흘렀다.
이제 진짜로 한계였다. 여기서 마나를 더 쥐어짰다간 그 뒤의 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다시 치밀어오르려는 핏덩이를 애써 삼킨 미네르바가 보랏빛 기운 너머를 응시했다.
얼마 못 가, 구체 내부에서 푸른 마나가 터져나오더니 구체를 찢어발겼다. 자줏빛 마나는 안개로 변해 스멀스멀 사라졌다.
“헛되고 또 헛되도다. 이런 하찮은 재주로 종말을 피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저 비쩍 마른 남자는 아직도 멀쩡했다. 어디 멀쩡할 뿐이던가.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비쩍 마른 지팡이 끝에 마법진이 그려지는 것을 본 미네르바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부터는 뒷일을 장담하지 못할 영역이다. 어떻게든 마나를 쥐어짜내볼 생각이었으니까. 어쩌면 마법 자체를 더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을 테고.
‘……그래도. 즐거웠단다, 아이야.’
크리스탈 스크롤을 발견한 이후로 이어진 나날들은, 미네르바의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처음 마법을 배우고, 모든 지식을 낱낱이 섭렵할때마저 그토록 행복하지는 않았다. 옛날의 미네르바는 무료함과 지루함에서 오는 공포를 몰랐었으니까.
무척이나 오랜 인고의 세월 끝에 얻은 보상이었으니, 당연히 훨씬 더 달콤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강한 충족감을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 하나면 충분했다.
결심을 마친 미네르바가 마나를 쥐어짜려는 찰나였다.
“손 보태긴 아직 안 늦었죠, 미네르바 님?”
닉스의 목소리가 들리고, 남자의 머리 위로 커다란 흑염이 떨어졌다. 황궁보다 훨씬 더 커 보이는 크기의 흑염이었다.
미네르바는 신성 장벽으로 보호받았기에 무사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모조리 불타버렸다.
산처럼 솟아올랐던 진흙이, 온갖 곳에 엎어졌던 나무가, 위태롭게 흘러내리던 토사들이. 무엇 하나 할 것 없이 공평하게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조차 시간벌이밖에는 안 됐다. 푸른 빛이 흑염을 단숨에 지워버렸다. 흑마법을 하나 더 쏟아부은 닉스가 미네르바의 옆에 섰다.
그리고는 피투성이가 된 미네르바의 얼굴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다.
“아이야, 여긴 어떻게…….”
“세상에, 꼴이 이게 뭡니까? 이렇게 될 때까지 싸우셨던 거예요?”
“……난 아직 괜찮단다. 왜, 어떻게 왔는지부터 말하렴.”
“딱 봐도 안 괜찮아 보이니까 그런 헛소리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 왜 왔겠습니까. 당연히 미네르바 님 도와드리려고 왔죠.”
“……가능하겠니? 저건 내 상태가 최상이어야ㅡ”
그 말을 들은 닉스가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무척 오랜만에 지어보는 음침한 미소였다.
“제가 싸운다곤 한마디도 안 했는데요?”
미네르바는 그제서야 주위가 너무 밝아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림자가 지는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지상에 태양이 강림해 있었다.
천지를 뒤덮고도 남을만큼 강렬한 빛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렸던 미네르바는, 얼마 안 가 손을 치웠다. 빛을 정면으로 쳐다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눈이 부시지 않아서였다.
그렇다면, 저 빛의 정체가 누구일지는 뻔했다.
“감히…….”
이클립스였다.
그것도 무척이나 화가 나 있어 보이는.
이클립스는 비쩍 마른 남자를 향해 거리를 좁혔다. 황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는 전례 없을 수준의 분노로 들어차 있었다.
이건 자신이 델타를 위해 만들어준 것이다. 델타를 위해 세계의 모든 것을 예지하고, 자신이 손수 만들어 델타에게 바친 것이다.
그런데.
“감히…… 내가 만든 게임의 모델링으로 내 피조물을 공격해?”
이클립스는 화를 내면서도 스스로에게 놀랐다. 분노라는 감정은 세계를 절반쯤 빼앗겼을 때 우울과 체념과 자기혐오에 먹혀 사라져버린 줄로만 알았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 가슴을 들끓게 만드는 이 감정은 틀림없는 분노였다. 이것 역시 델타와의 연결고리가 더럽혀졌다는 생각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 이클립스의 감정을 표현하기라도 하듯, 여신의 근처로 달빛과 태양빛이 끝을 모르고 모여들었다. 닉스와 미네르바는 태양이 바로 눈앞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러는데도 눈이 부시지 않았으니, 무척 신기한 일이었다.
“사라져라. 이 열등한 것아.”
이클립스가 신의 분노를 내렸다. 비쩍 마른 몸이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마법사는 그러면서도 끝까지 무언가를 중얼거렸으나, 그 말은 얼마 이어지지도 못했다.
빛이 사라졌을 때, 남자의 몸은 한 줌의 재조차 남지 않고 증발해 있었다.
그러고도 아직 분이 덜 풀렸는지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리던 이클립스가 미네르바와 닉스에게로 다가갔다. 둘은 빛무리로 감싸인 내부의 무언가를 올려다보았다.
“성국의 신을, 쿨럭! 이렇게 자주 볼 줄은 몰랐, 는데! 콜록!”
미네르바가 기침을 하자 입에서 핏덩이가 왈칵 튀어나왔다. 지금도 닉스의 힘을 빌려 아슬아슬하게 비행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몸 상태가 너무 나빴다.
그런 미네르바와 눈높이를 맞춘 이클립스가 그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 건드렸다.
“일어서렴. 나의 아이야.”
“……!”
이마에 무언가 닿았다는 느낌이 든 즉시, 미네르바는 엉망진창으로 뒤집어졌던 몸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모조리 고갈되어 바닥을 드러냈던 마나 역시 단숨에 모두 차올랐다. 몸 전체에 고양감이 넘쳐흘렀다. 꼭 크리스탈 스크롤을 처음 발견했을 때 같았다.
“이제 괜찮을 거란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델타 앞에서는 여러모로 이상한 모습밖에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래뵈도 이클립스는 이 세계를 창조한 창조신이었다.
고작 인간의 몸을 치료하는 일 따윈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다.
“……감사, 합니다?”
미네르바는 거의 400년만에 다시 써보는 존댓말로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는 되었단다. 지금은 다른 일이 더 급하니.”
“다른…… 일이라니, 요?”
“네가 아끼는 그 아이를 도와주러 가야 하지 않겠니?”
맞는 말이었다. 미네르바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옷차림이 아슬아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이곳의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어디로 가면 되니…… 나, 요?”
“…….”
닉스와 이클립스가 미네르바를 데리러 간 동안, 여신의 안배로 다른 세계에 먼저 도착한 일곱 명은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거…… 마물, 인가?”
“……모르겠군. 나도 저런 건 처음 본다.”
그 원인은 카이킬리아와 싸우고 있는 어떤 인간 때문이었다. 아마 카이킬리아의 모습을 본따 만들어진 모조품이겠지만, 외형이 크게 달라진 어떤 인간.
구부정하게 앞으로 휜 몸뚱아리에 열 개도 넘게 돋아난 팔과, 돋아난 팔마다 성검을 쥔 채 그걸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는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었으니 말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