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87)
결전 – 8
카이킬리아의 성검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황금빛 장판이 깔렸다. 노인의 성검이 베고 지나간 궤적에도 황금빛 장판이 깔렸으나, 색깔은 조금 더 칙칙했다.
화사한 황금빛과 칙칙한 황금빛이 서로 충돌하자, 두 빛무리가 서로를 집어삼키고 잡아먹히며 한데 뒤엉켰다. 얽힌 빛 사이에서 기하학적인 문양이 떠올랐다.
정확히 1초 뒤, 장판이 폭발하며 충격파를 일으켰다. 근처가 잠시 밝아졌다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빛이 사라진 자리를 어둠이 뒤덮었다.
카이킬리아는 아직 잔존하는 충격파를 뚫고 이상한 옷의 노인에게로 달려갔다. 황금빛 눈동자는 정확히 그 괴상한 놈을 향해 있었다.
‘이상하게 닮았다.’
자신이 예전에 쓰던 성검과 똑 닮은 성검을 휘두르는 것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공방이 몇 번 이어진 뒤로는 이상하단 생각이 줄어들긴커녕 오히려 점점 더 늘어만 갔다.
성검이야 워낙 유명하니 어떻게든 모조품을 가져왔다 쳐도, 사용하는 검술마저 닮았다는 건 도저히 설명이 안 됐으니까.
조금 전에 일대를 집어삼켰던 황금빛 장판도 색깔이 약간 더 칙칙한 것을 제외하면 카이킬리아의 것과 소름끼치도록 일치했다.
‘역겨운 것 같으니.’
그리고, 카이킬리아는 그런 점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역겹고 불쾌했다. 저런 정신병자나 다를 바 없는 노인이 자신과 닮았다니 말이다.
저것의 존재 자체가 카이킬리아에 대한 모독이자 모욕이었다.
카이킬리아는 분노와 살심을 성검에 담아 휘둘렀다. 화려한 보석으로 빛나는 성검과 투박한 철로 이루어진 성검이 충돌했다. 부딪힌 자리에서 황금색 빛이 번뜩였다.
처음에는 대등한 힘싸움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는 머지 않아 드러났다. 노인은 이미 카이킬리아의 공격에 팔 한쪽을 잃어버린 뒤였으니 힘겨루기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 몸이 서서히 뒤로 밀려났다. 카이킬리아가 으르렁거렸다.
“정녕 네 놈의 정체를 말할 생각이 없는 것이냐.”
“…….”
이번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카이킬리아는 코웃음을 치며 팔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계속 시간을 쏟는다 한들 말할 것 같지가 않으니 어쩌겠는가. 그냥 죽여야지.
놈의 정체가 궁금하긴 했으나, 여기서 고문에 시간을 쏟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죽이는 게 맞다.
노인의 다리가 뒤로 더 밀려났다. 그렇게 균형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가자, 놈은 작전을 바꾼 듯했다. 팔을 확 비틀더니 무작정 성검을 휘둘렀다.
“알았노라. 원하는대로 하여 주겠다.”
휘둘러지는 팔을 향해 성검을 내리쳤다. 서걱, 빛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남자의 손목을 깔끔하게 자르고 지나갔다. 잘린 손목이 바닥에 떨어졌다. 철제 손잡이를 쥔 모습 그대로였다.
노인은 왼팔이 통째로 뜯겨나가고 오른 손목은 잘려나간 와중에도 계속해서 덤벼들었다. 입으로 물어뜯기라도 할 작정인 것 같았다.
“역겨워서 견딜 수가 없구나.”
뒤로 한 발 물러난 카이킬리아가 성검을 한 손으로 잡았다. 그러면서 오른팔을 살짝 빼고 찌르기를 시전할 준비를 했다.
양측 모두가 서로에게 달려드는 모양새였지만, 공격권을 가진 쪽은 오로지 카이킬리아 뿐이었다. 남자의 손에는 더 이상 무기가 들려있지 않으니 말이다.
ㅡ푸욱!
빛으로 이루어진 칼날이 노인의 목을 관통했다. 카이킬리아는 그 상태로 팔을 밀었다. 칼날이 수평으로 꺾이며 관통되지 않고 남아있던 부분까지 썰어버렸다.
몸과의 연결고리를 상실한 목이 떨어져나갔다. 철퍽, 머리가 빨간색 액체 위로 떨어졌다.
“대답하지 않겠다면, 그 죄는 네놈의 목숨으로 갚거라.”
카이킬리아가 노인의 복부를 힘껏 걷어찼다. 내장이 박살나는 감각과 함꼐 머리 잃은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한참 떨어진 바닥에 추락했다.
빨간 액체가 튀고, 옷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보석과 장식이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잠시 시체를 지켜보던 카이킬리아는, 5초가 넘도록 미동조차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성검을 역소환했다.
‘교황들이 어디쯤 있을지 모르겠구나.’
처음에는 그럭저럭 서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곳에서 싸웠다가, 카이킬리아가 눈 먼 신성 주문에 휘말릴 것을 걱정한 교황들이 멀찍이 떨어졌다.
실제로도 그 이상한 것들이 사용한 신성 주문에 몇 번이나 스칠 뻔 했었으니 괜한 걱정은 아니었다.
“……대체 얼마나 멀리 사라진 것이더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카이킬리아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신성력이고 뭐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결국 카이킬리아는 다시 성검을 빼들었다. 정확한 위치까진 무리겠지만, 대략적인 방향 정도라면 성검으로 신성력을 감지해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카이킬리아는 성검으로 신성력을 감지하다 말고 조용히 뒤를 돌아보았다. 귀에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서였다.
“아예 팔다리를 모두 찢어놓을 것을 그랬구나.”
분명 미동조차 없이 쓰러졌던 시체가 발작하고 있었다. 몸이 들썩이고, 뒤틀리고, 다리가 퍼덕였다. 그 몸이 바닥에 깔린 빨간 액체로 방울방울 물들어갔다.
“아직 죽지 않았던 것이냐?”
성검의 칼 끝이 다시 노인의 시체로 향했다. 발작하듯 꿈틀거리던 시체가 서서히 일어섰다.
잘렸던 팔이 새로 돋아나고, 몸은 위아래로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길쭉해졌으며, 척추가 꺾이는 소리와 함께 허리가 앞을 향해 90도로 굽혀졌다.
팔의 재생력은 이미 잘려나간 2자리를 메꾸고도 멈추지 않았다. 2개, 3개, 4개…… 계속해서 그 숫자가 늘어나더니 결국에는 10개도 넘게 돋아난 팔이 상반신의 절반을 뒤덮어버렸다.
“그런다고 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다면, 너의 그 멍청한 지능을 내 친히 감탄하여 주겠다.”
카이킬리아가 성검에 힘을 불어넣었다. 팔의 숫자가 늘어났다면, 늘어난 숫자만큼 잘라버리면 그만이다. 무척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이었다.
속으로 결론을 내리고 막 덤비려는 찰나, 노인의 팔에 칙칙한 황금색 빛이 뭉치는 것을 본 카이킬리아가 발을 멈췄다. 팔마다 뭉친 빛무리가 점차 검의 형상으로 변했다.
자신을 향해 일제히 겨누어지는 성검들을 본 카이킬리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카이킬리아는 정신없이 싸우던 와중에 갑자기 익숙한 기척이 나타났음을 알아차렸다.
아우로라를 비롯해, 카이킬리아와 교황들이 델타를 돕기 위해 떠날 때까지도 진혼을 각성하지 못하고 있던 다른 6명이었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각성에 성공한 듯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1명을 제외하고 말이다.
분명 제국을 온존해달라고 부탁하며 황제의 자리까지 넘겨주었거늘, 저러다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 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겁도 없이 이런 곳에 발을 디뎠는지 의문이었다.
아니, 아우로라가 여길 찾아왔다는 건 벌써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미네르바도 보이지 않는다.’
알현실에 있던 사람들 중, 그 짜리몽땅한 단신 여자와 미네르바도 일행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둘은 또 어디로 간 건가 싶었다.
“카이킬리아!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말을 외친 아이리스는 물론, 은빛 여명 기사단의 나머지 기사단장 3명과 스텔라에 셀레네까지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난 아우로라를 빼고 말이다.
“이 놈은 나의 몫이다! 내 손으로 죽일 테니, 너희는 교황들을 찾아라!”
카이킬리아는 도움의 손길을 단호하게 내쳤다.
저놈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불쾌하고 역겨운 감정이 아직 남아있어서였다. 저놈의 외형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나서는 조금 덜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이걸 다른 사람과 같이 토벌한다면 뭔가 찝찝할 것 같았다. 놈의 목을 따버리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롯이 카이킬리아 한 명만의 몫이어야 했다.
도움의 손길을 단칼에 거절당한 아이리스였으나, 이곳에 그 행동을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역시 저것도?”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는 걸 보면, 그럴 확률이 높겠군.”
여기 있는 모두가 자신을 본따 만든 모조품을 상대하고 온 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걸 본 순간 이유 모를 강렬한 불쾌감과 살의를 느꼈고, 반드시 자기 손으로 직접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저 괴상한 놈의 손에 성검이 들려있는 걸 보면 아마 카이킬리아의 모조품일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저걸 혼자서 상대하겠다고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카이킬리아의 모조품이라기엔 외형이 조금 심각하게 다르지만.
“저 말을 따르도록 하지. 클라우디아, 에리카, 리제. 너희는 아우로라 폐하를 호위하며 이곳에 남아 있어라. 혹시 모르니 여차하면 저쪽을 도와주도록 긴장을 풀지 말고.”
“아이리스 너는?”
“방금 카이킬리아…… 가 말하지 않았나. 교황들을 찾으라고. 아마 교황 성하들 역시 모조품과 싸우고 계실 것이다. 우리는 그분들을 찾아 도와주겠다.”
“알았어.”
기사단장 셋이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할 분배를 끝낸 아이리스는 스텔라와 셀레네를 돌아보았다.
“혹시 교황 성하들이 어디쯤 계시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으음…… 이쪽이에요. 이 방향에서 엄청난 신성력이 느껴져요.”
아이리스가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의 뒤를 따라 사라지고, 남겨진 4명은 카이킬리아와 싸우고 있는 괴상한 존재를 이리저리 관찰했다.
“이상하네. 저게 카이킬리아의 모조품이라고? 아예 인간도 아니잖아. 성검 든 것만 빼면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확실하지는 않지만, 짐작가는 게 있다.”
리제의 중얼거림을 들은 아우로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각기 다른 색을 지닌 세 쌍의 눈동자가 아우로라에게 쏠렸다.
“저것 역시 또 다른 실험의 일환일 가능성이다. 여러 능력을 하나로 합쳐놓은 것이지.”
기억 속에 있던 정보를 어떻게든 엮여놓은 거라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절대로 무시 못할 추측이기도 했다.
아우로라는 미네르바를 데리러 간다던 닉스와 여신님이 돌아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자꾸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