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91)
패배 이후의 세계 – 2
“그래도 아주 멍청하지는 않군.”
델타의, 아니, 델타를 닮은 것의 눈동자가 서서히 모습을 바꿨다. 칠흑색에서 붉은색으로, 동그란 모양에서 위아래로 찢어진 세로 동공으로.
저 붉은색 세로 동공의 정체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이클립스가 표정을 굳혔고, 나머지도 얼마 안 가 눈앞에 있는 것이 델타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었다.
“이 인간이 그토록 소중한 존재였나? 고작 화를 내는 척 따위에 제일 쓸모없는 한 명을 제외하고는 쩔쩔 매다니. 날 의심하고 있다는 것이 표정으로 훤히 보이는데도 말이야.”
“……델타와 우리들의 관계를 네 더러운 혀로 언급하지 마라, 이 하찮은 것아.”
“아, 언제부터 그렇게 기세가 등등해졌지, 여신? 가졌던 모든 것을 빼앗기고 고작 세계 하나만 남은 주제에, 무얼 믿고 그리도 콧대가 높은 건가? 아직 주제 파악이 덜 되었나? 여태껏 그래왔듯이 닥쳐올 패배를 두려워하고, 죽음의 절망 속에서 울부짖는 것이 네게 어울리는 모습 아닌가?”
정체를 들켰으니 더 숨겨봤자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는지, 델타를 닮은 것에게서 흘러나오는 감각이 바뀌었다. 더 이상 인간조차 아닌 느낌이었다.
“그딴 개같은 장난에 우리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면, 잘못 짚어도 한참은 잘못 짚은 거야.”
아우로라가 빠득 이를 갈며 눈을 살벌하게 치켜떴다. 황금빛 눈동자에 살기가 차올랐다. 리바누스의 핏줄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인지, 지금의 아우로라는 카이킬리아와 꼭 닮아 있었다.
“이런 장난에 넘어오리라고는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 방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간단한 질문 하나면 들통날 변장이었으니. 내가 이 장난을 진심으로 시도했다고 생각한다면, 네년도 한참 잘못 짚고 있는 거다.”
그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클립스가 차갑게 읊조렸다.
“델타의 얼굴로 그따위 표정 짓지 마라. 진심으로 역겹기 짝이 없으니.”
“이런, 이런. 여전히 세상 물정을 모르는군, 여신. 그런 말을 하면 내가 순순히 모습을 바꾸어 주리라고 생각하나? 오히려 계속 이 모습으로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보았고?”
꿈틀, 이클립스의 눈썹이 작게 씰룩였다. 그걸 신호로 여기기라도 한 듯, 아우로라를 제외한 모든 여자들이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각자가 지닌 무기에 진혼이 깃들었다.
무기와 마법에 깃든 진혼을 감지한 세계를 먹는 자가 코웃음을 쳤다.
“그 이상한 힘이로군. 예비용 부품을 많이도 만들어 놓았어. 죽고 난 뒤의 일을 대비해 놓기라도 한 건가?”
놈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려던 이클립스였지만, 방금의 말만큼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저 빌어먹을 것이 방금 뭐라고?
“델타를 어떻게 했나.”
화아아악, 빛무리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퍼져나갔다. 이클립스로부터 퍼져나간 빛이 지평선 너머까지를 한꺼번에 뒤덮었다. 어두컴컴했던 하늘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표정 하나 안 변하고 여신을 바라보던 세계를 먹는 자가 조소를 띄웠다.
“내가 왜 여기까지 행차했다고 생각하지, 여신?”
“…….”
“입을 다물겠다는 의미인가? 좋다. 네깟 것들이 아무리 부정해봤자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으니. 내가 친히 설명해주도록 하마.”
세계를 먹는 자가 낄낄거렸다.
“그 인간은 죽었다. 아주 확실하게.”
“……!”
그 말이 들리자마자 반사적으로 마법이 쏘아졌다. 미네르바였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자줏빛의 구체를 맨손으로 가볍게 잡아챈 다음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 간단히 터뜨려버린 세계를 먹는 자가 손을 툭툭 털었다.
“성질이 무척 급하군, 인간.”
“헛소리. 그 아이가 죽었을 리 없잖니. 너 같은 놈이 하는 말을 우리가 믿어야 할 이유라도 있을까?”
“부정이라, 아주 훌륭한 반응이다. 마음껏 눈을 돌리도록 해라. 그런다 해서 진실이 변하는 일은 없으니.”
이번에는 그 머리 위로 태양과 달이 추락했다. 하지만, 델타의 외형을 한 존재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최고위계 신성 주문을 전혀 피하려 들지 않았다.
신성한 빛과 함께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터져나온 황금빛 신성력과 은빛 신성력이 주위를 모조리 전소시켰으나, 빛이 걷힌 이후에도 세계를 먹는 자는 멀쩡히 서 있었다.
일말의 그을음조차 없는 모습이었다.
“내가 좋은 걸 하나 말해주도록 하지. 너희가 그토록 아끼는 그 인간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다. 어떤가? 재미있어 보이지 않나?”
카이킬리아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놈을 향해 튀어나갔다.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순식간에 델타의 모습을 한 존재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카이킬리아가 진혼을 담아 성검을 휘둘렀다. 성검이 목을 향해 날아드는 궤적을 그렸다.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듣고 싶었나? 무척 기대된다는 눈치로군.”
이것마저 무용지물이었다.
진혼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용언으로 만들어진 가짜 본질을 잘랐고, 본질을 베는 힘을 잃어버린 성검은 어느샌가 들어올려진 손아귀에 간단히 붙잡혔다.
“그렇다면 좋다. 특별히 허가를 내려주겠으니 감사히 여기도록.”
“아가리 닥쳐라……!”
카이킬리아는 온 힘을 다해 손에 붙잡힌 성검을 빼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성검은 미동도 없었다. 힘의 격차가 상상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칼날이 그놈의 배를 찌르면서 들어갈 때 어떤 감각이 느껴지는지, 너는 평생이 걸려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 인간은 이미 죽었으니까. 시체도 남지 않고 타버린 것을 찌를 수는 없지 않겠나. 하지만 설명은 해주도록 하지. 배를 찔러 우선 내장을 휘저어놓고, 뼈를ㅡ”
“닥치라고 하였다!”
ㅡ콰득!
카이킬리아의 주먹이 세계를 먹는 자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터져나왔다.
“예의가 없군.”
물론 살이 찢어지고 피가 터져나온 쪽은 카이킬리아의 주먹이었다. 눈을 정확히 가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를 먹는 자는 아파하긴커녕 맞았다는 기색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카이킬리아는 방금의 그 공격으로 손등 뼈에 금이 갔음을 알아차렸다. 맞은 쪽은 멀쩡하고, 때린 쪽의 손이 아작나버린 것이다. 팔이 부들부들 떨려댔다.
“다 때렸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주먹부터 나가다니, 못된 버릇이 들었어.”
놈은 화를 내지 않았다. 반격해오지도 않았다. 그저 얼굴에 비웃음을 띄운 채 카이킬리아를 무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런 반응이 더 열이 뻗치도록 만들었다.
퍽! 퍽! 퍽! 카이킬리아는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렀다. 작정하고 힘을 쓰면 강철을 따위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카이킬리아였다. 적어도 한 번은, 한 번은 타격을 줄 수 있으리라.
손이 망가지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 피부가 찢기고, 손가락이 우그러지고, 손등 뼈가 아작나도 멈추지 않았다. 세계를 먹는 자의 얼굴이 카이킬리아가 흘린 피로 새빨갛게 물들었다.
ㅡ우드득!
마침내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이것 역시 카이킬리아의 몸에서 나는 소리였다. 손가락은 말할 것도 없고, 손등까지 완전히 뭉개졌으니까.
아무 힘도 담겨있지 않은 주먹을 놈의 면상에 마지막으로 휘두른 카이킬리아가 힘없이 팔을 늘어뜨렸다. 으깨진 왼손이 덜렁덜렁거리며 손목에 간신히 달라붙어 있었다.
무슨 재주를 부린 건지 얼굴에 묻은 피를 말끔히 닦아낸 세계를 먹는 자가 조소를 흘렸다.
“아파 보이는데, 치료를 원한다면 해주지.”
“그 입 닥치ㅡ”
카이킬리아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그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뒤로 한참을 날아간 몸은 달려들기 전에 서 있던 자리로 아주 정확히 떨어졌다.
미네르바는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손목을 향해 다급히 치료 마법을 사용했다. 박살났던 뼈가 붙고, 뒤틀렸던 손가락이 복구되고, 찢겨나갔던 피부가 되돌아왔다.
“이것도 가져가도록. 칠칠맞게 무기를 흘리고 다녀서야 쓰겠나.”
툭, 그 발치에 성검이 떨어졌다. 눈을 살벌하게 치켜뜬 카이킬리아가 세계를 먹는 자를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네놈…… 반드시……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포부는 크게 잡을수록 좋다지만, 그건 너무 큰 것 아닌가?”
델타의 외형을 하고 있는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의도가 굉장히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비틀비틀 자리에서 일어서는 카이킬리아를 뒤로 하고, 이클립스가 나섰다. 극도로 강렬한 빛무리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어두웠던 하늘이 순식간에 대낮처럼 밝아졌다.
“네놈의 헛짓거리에는 질릴대로 질렸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델타는 지금 어디에 있지?”
“설명을 해줘도 듣지를 않는군. 죽었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나? 날 귀찮게 만들어서 처리하기라도 할 속셈인가?”
“헛소리!”
이클립스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팔을 휘둘렀다. 그 누구도 결코 범접하지 못할 신성력을 담은 광창이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세계를 먹는 자가 내지른 포효에, 도시 하나를 통째로 멸절시킬 위력의 광창은 너무나도 허망하게 궤도를 바꿨다.
ㅡ콰아아앙!
폭발은 착탄 지점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거리에서 일어났다. 광창의 위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충격파가 한 발 늦게 몰아닥쳤다. 이클립스는 근처를 빛의 장막으로 감쌌다.
충격파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며 나아갔지만, 세계를 먹는 자는 그 힘을 정통으로 받아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바닥에 깔렸던 핏빛 액체가 모조리 증발했다. 이제 새빨간 장소라고는 빛의 장막이 펼쳐진 내부 뿐이었다.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말하도록. 그 남자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몇백 번이라도 더 되풀이해서 들려줄 수 있으니. 그렇게 할 건가?”
“……아주 여유가 넘치는구나. 그딴 헛소리나 지껄이는 걸 보아하니.”
“이러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지? 이제 누가 날 막겠나? 여신 네가? 아니면 그깟 충격파 따위를 견디지 못해 보호해주어야 하는 그 인간들이?”
어느덧, 세계를 먹는 자의 언행에는 예전의 그 오만함과 자만심이 다시금 한껏 묻어나고 있었다. 눈앞의 인간들이 하는 말을 일일이 다 받아주고 있는 것 역시 그래서였다.
저런 인간들 따위는 설령 진혼을 들고 있다 할지라도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어쩌면 이러한 성격이 세계를 먹는 자의 본성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여신을 비롯해 자신을 막아보겠답시고 모여든 인간들을 깔볼 이유가 차고 넘쳤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성격 말이다.
“됐어. 더 못 들어주겠네.”
그때였다. 외모에 걸맞는, 무척이나 날카로운 기세로 주변에 스멀스멀 냉기를 흩뿌려대던 리제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