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93)
2페이즈 – 1
자기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받자 길길이 날뛰기 시작한 세계를 먹는 자를 무시하고 시선을 돌렸다. 온갖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들이 있었다.
특히 이클립스나 교황들은 눈가에 눈물마저 그렁그렁했다. 다른 사람들도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다행이네.’
혹시 너무 늦어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라도 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말이다. 다행히 그런 끔찍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다시 세계를 먹는 자에게로 눈을 돌렸다.
“살아났다고! 알았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몇 번이고 죽여주마!”
놈의 목소리가 쩍쩍 갈라졌다. 내 머릿속에 사념을 때려박았을 때 들리던 것보다 훨씬 더 심했다. 그 손에 날개 잃은 악몽과 똑같이 생긴 검이 나타났다.
나도 신성 촉매를 품에 넣고 날개 잃은 악몽을 양손으로 쥐었다. 되살아난 뒤로 내게 걸려있던 용언은 완전히 풀렸다. 어쩌면 저놈이 내가 죽었다고 착각해서 풀었을 수도 있고.
거기에 더해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1 시절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옛날의 신체 능력까지 완전히 되찾았으니, 무력하게 구르기와 튕겨내기만을 반복해야 했던 저번과는 다를 것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세계를 먹는 자였다. 놈이 분노에 가득 들어찬 얼굴로 다가왔다.
‘자기가 날 죽여놓고 왜 화를 내고 있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유야 뭐가 됐든 알아서 들어와준다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내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날개 잃은 악몽을 똑같이 날개 잃은 악몽으로 튕겨냈다. 저릿한 감각이 팔을 타고 찌르르 흘렀다. 다리는 휘청이지도, 비틀거리지도 않았다.
‘버틸만 하다.’
예전이었으면 단순히 튕겨낸 것만으로도 몸이 한참은 밀려나거나 공중에 붕 떠올랐을 위력의 공격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충분히 제자리에서 버틸만 했다.
놈의 손에 들린 날개 잃은 악몽이 외형을 바꿨다. 손잡이가 커지고, 크로스가드가 넓어지고, 칼날이 두꺼워지는 동시에 넓어지고 길어졌다. 브닼 2에 나온 대검이었다.
대검이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휘둘러지는 대검을 피해 대각선으로 굴러 놈의 뒤까지 돌아들어갔다. 등 뒤에서 지반이 갈아엎어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일으키며 흘끗 확인했다. 대검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가 말 그대로 산산조각난 모습이 보였다.
물론 나한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이미 세계를 먹는 자의 뒤편으로 빠져나간 지 오래였으니까. 구르기가 끝나자마자 몸을 일으켜 등 뒤에 검을 찔러넣었다.
게임이었다면 콰앙! 하고 경쾌한 효과음이 울려퍼졌을 타격이 들어갔다. 브닼 시리즈에서는 전통적으로 ‘뒤잡’이라 불리는 기술이었다.
애초에 내가 사용한 동작을 이클립스가 게임으로 구현한 것일 테니 브닼 시리즈에서처럼 맞는 적의 동작이 고정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공격도 먹힌다.’
날개 잃은 악몽에 담았던 진혼은 가짜 본질을 벴고, 칼날이 피부를 뚫지도 못했다. 하지만, 제복이 찢어지며 놈의 등에 그어진 생채기에서 옅은 핏방울이 맺혔다.
그걸 보고 확신했다. 지금의 나라면 설령 진혼이 끝까지 안 먹히더라도 저놈을 소모시켜서 죽일 수 있다고. 중간에 내가 꺾이지만 않으면 되는데, 그건 무척 쉬운 일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 따위는 지겹도록 해봤으니까.
ㅡ콰앙!
세계를 먹는 자가 충격파를 일으켰다. 루치아가 사용했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여전히 선딜 따윈 존재하지 않는 충격파에,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한참을 날아갔다.
바닥에 엎어진 내가 미처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놈이 따라붙었다. 팔이 잘리고, 다리가 토막나고, 몸통이 분리됐다. 사방에 붉은 피가 흩뿌려졌다.
데구르르, 마지막으로 잘려나간 머리가 힘없이 굴러갔다. 십수 조각으로 토막난 채 널브러진 나를, 핏발 선 세로 동공이 쳐다보고 있었다.
ㅡ꿈틀.
토막난 고깃덩이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제일 먼저 머리와 목이 이어지고, 분리된 몸통이 붙고, 토막난 다리가 회복되고, 잘려나간 팔이 돋아났다. 움직임을 멈췄던 팔다리가 다시 영업을 개시했다.
비록 제복이 여전히 피투성이였긴 했지만, 몸 자체는 말끔하게 돌아와 있었다. 옷까지 함께 복구되는 원리가 뭔지는 몰라도 말이다.
“죽을 때까지 몇 번이고 죽여준다고? 어디 그렇게 해봐. 나도 몇 십번이든 몇 백번이든 기꺼이 죽어줄 테니까.”
콱, 날개 잃은 악몽으로 몸을 지탱하며 일어섰다. 칼 끝이 흙바닥을 파고들어갔다.
“그런데, 이건 알아둬.”
나도 놈의 눈을 마주보았다. 핏발 선 세로 동공이 씰룩거렸다.
“내가 백 번을 죽더라도, 너한테 생채기 하나만 남기면…….”
굽혔던 무릎을 펴고 날개 잃은 악몽을 빼냈다. 칼 끝이 다시 세계를 먹는 자에게로 향했다.
“내가 이긴 거다.”
“이런 건방진!”
놈이 다시 칼을 휘둘렀다. 그걸 깔끔하게 받아쳐 튕겨내고 거리를 좁혔다. 저번 싸움과는 달리, 이번에는 혹시라도 공격당하지 않을까 신경을 쓸 필요가 전혀 없었다.
브닼 4로 치면 죽어도 조각상이 아니라 죽은 자리에서 바로 부활하는 셈인데 뭐하러 그러겠는가. 공격을 피할 시간에 적당히 잘려주고 칼 한번 더 휘두르는 게 이득이지.
“그렇게 죽고 싶다면 원하는대로 해 주마!”
세계를 먹는 자의 몸에서 온갖 기술들이 펼쳐졌다. 손에 들린 단검이 푸른색으로 바뀌더니 서리 폭풍 난격이 날아들었다. 주변이 뿌옇게 얼어붙고, 폐 속으로 차디찬 공기가 스며들었다.
자기 기술이 날 공격하는 일에 쓰이다니, 리제의 반응이 어떨지는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모두 튕겨내려 아등바등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튕겨낼 수 있는 건 튕겨내고, 맞을 건 맞으면서 검을 휘둘렀다. 내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면서 놈의 몸에 생채기 하나가 더 추가됐다.
그 다음으로는 투박한 외형의 롱소드가 쥐어졌다. 수직으로 내리그어진 바람이 내 몸을 반토막냈다. 나 역시 검을 휘둘렀다. 놈의 몸에도 수직으로 그어진 상흔이 생겨났다.
일본도에서 터져나온 화염이 내 하반신을 통째로 불살라버렸다. 놈의 허벅지에 상처가 하나 늘었다.
대검에서 흩뿌려진 벼락이 내 전신을 바짝 구워버렸다. 놈의 팔뚝을 칼 끝이 스쳐지나갔다.
철퇴가 내 몸을 으깨고, 레이피어가 내 몸에 구멍을 내는 동안 세계를 먹는 자의 피부에도 연이어 붉은 실선이 번졌다. 죽음 한 번에 생채기 하나 정도면 내 쪽에 무척 이득인 거래다.
죽음이 반복될수록, 그와 비례해서 붉은 실선의 숫자 역시 늘어나고 있었다.
“이 끈질긴 녀석 같으니!”
세계를 먹는 자가 분노의 감정을 토해내며 무기를 휘둘렀다.
성검에서 터져나온 빛이, 칙칙한 색깔의 황금빛 신성력이, 칙칙한 색깔의 은빛 신성력이, 무수히 많은 마법이. 내 몸을 셀 수도 없을만큼 다양하게 조각냈다.
놈이 공격을 퍼붓는 속도는 이전과 비교조차 안 되게 빨랐고, 위력 역시 터무니없이 강했다. 예전의 전투는 나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힘 조절을 했던 거라고 말하기라도 하려는 것 같았다.
“……이게 전부냐?”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섰다. 내 두 다리로 일어서서 놈을 바라보았다.
머리가 터지거나, 몸이 수백 조각으로 썰리거나, 산 채로 불에 태워지는 건 이미 한참도 더 전에 겪어봤다. 겨우 저딴 걸로 끝날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다.
뼛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타버렸던 팔이 다시 돋아났다. 까딱까딱, 검지 손가락을 좌우로 저었다. 어림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걸 본 세계를 먹는 자가 이성을 잃고 무기를 바꾸며 달려드는 틈을 타, 중간에 한 박자를 쉬었다가 칼을 휘둘렀다. 살짝 어긋나게 휘둘러진 날개 잃은 악몽이 놈의 칼질을 방해했다.
나는 어느새, 브닼 4의 보스가 아닌 ‘세계를 먹는 자’의 패턴을 읽어내고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 무기를 바꾸는 타이밍, 공격이 들어오는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을 패턴처럼 외웠다. 서서히 놈의 공격이 읽히기 시작했다. 공격을 피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났다.
ㅡ콰앙!
그리고, 그 결실은 내가 루치아의 충격파를 구르기로 피하면서 완성됐다. 선딜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 회피당하자, 놈은 크게 당황한 눈치였다.
“내가 말했지.”
놈의 목을 향해 날개 잃은 악몽을 휘둘렀다. 비록 목을 완전히 잘라내지도, 진혼으로 본질을 꿰뚫지도 못했지만, 놈의 피부에 길게 핏방울이 맺혔다.
이제는 생채기가 아니라 상처라고 불러도 될 만한 흔적이었다.
“백 번 죽고 한 번 때리면, 그건 내가 이긴 거라고.”
세계를 먹는 자가 날 걷어찼다. 발차기 한 방에 내장이 죄다 박살나며 뒤로 한참을 날아가 나뒹굴었다. 내가 비틀비틀 일어서는 동안, 놈이 으르렁거렸다.
“네놈의 목적은 잘 알았다.”
ㅡ콰드드득!
그 몸이 다시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발을 디딘 땅이 쩍쩍 갈라지고, 작은 산과도 맞먹는 크기의 몸이 하늘을 가렸다.
머릿속에 사념이 울려퍼졌다.
ㅡ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그렇게 해 주마…….
“드래곤 모습이라, 한참 잘못된 선택을 했네. 내가 너랑 뭔 생각을 하면서 싸웠는데?”
오른손에 들고 있던 날개 잃은 악몽을 도로 허리춤에 찼다. 뜬금없이 무기를 놓는 내 모습에 살짝 이상한 분위기가 번졌다.
저건 단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 나오는 최종 보스일 뿐이라고, 그러니 게임에서처럼 싸우면 된다고 생각하며 싸웠다. 놈의 비행을 제한하는 용언이 먹힌 것도 그래서였으니까.
그렇다면, 내가 지금 이 상황을 브닼 4와 가깝게 느낄수록 용언의 효과 역시 훨씬 더 강하게, 오랫동안 발휘될 수 있게 된다는 의미다.
어차피 저놈이 가짜 본질을 생성할 수 있는 이상 진혼을 담은 칼질은 무의미하다. 차라리 용언의 효과를 훨씬 더 강화해서, 세계의 법칙 자체를 뒤바꾸는 걸 노리는 편이 훨씬 낫다.
“내가 여기로 끌려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했던 게 닼라 모드 맨손런이었거든. 너도 내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그게 뭔지 알 거야.”
진혼을 사용하는 건, 그 다음이다. 나는 세계를 먹는 자의 거대한 붉은색 동공과 눈을 마주치며, 명령하듯 읊조렸다.
“움직여라.”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