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94)
2페이즈 – 2
세계를 먹는 자의 주둥아리에서 평소 사용하던 칠흑색의 브레스가 아닌 이상한 빛 같은 것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둥아리에 모인 붉은 빛이 세상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빛을 모으는 동작. 당연히 게임에서 본 적 있는 동작이었다.
‘레이저 패턴.’
내가 다음 행동을 확정짓자마자 주둥아리가 위아래로 쩌억 벌어지고, 핏빛 광선이 터져나왔다. 레이저가 일직선으로 긋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성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을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핏빛 광선은 이리저리 비틀리는 머리를 따라 사방팔방을 긁고 지나갔다. 주변이 온통 시뻘건 색깔의 빛과 불꽃으로 뒤덮였다.
레이저가 닿지 않는 공간으로 굴러들어가며 옆을 돌아보았다. 거의 보스룸 전체가 피격 판정인 패턴이었으니, 이클립스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여자들이라고 예외일 리 없었다.
그쪽으로 날아가는 핏빛 광선을 이클립스가 막아내고 있었다. 레이저는 황금색 장막을 뚫지 못하고 하늘로 굴절되며 방향을 바꿨다. 하늘을 향해 붉은색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세계를 먹는 자가 고개를 돌리자, 이클립스도 황금색 장막을 거두어들였다. 그 잠깐만으로도 힘에 제법 부쳤는지 천쪼가리로 감싸인 가슴이 가파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델타! 아직도 안 돼?!”
리제의 외침에 나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각양각색의 눈동자들이 안절부절 못하며 나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하나같이 날 돕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였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제지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 내가 온갖 방법으로 죽었다 되살아는 걸 보고 패닉에 빠졌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세계를 먹는 자와 전투를 벌이게 된 지도 시간이 제법 흘렀으니 말이다.
‘어쩔 수 없어. 다 같이 달려드는 건 너무 위험해.’
사실 처음에 도와주겠단 말이 나왔을 때는 나도 수락했었다. 다 같이 덤벼들면 더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당장 진혼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 10명은 될 테고.
그런데 아니었다.
세계를 먹는 자의 가짜 본질은 동시에 날아드는 진혼‘들’을 모조리 파훼해버렸고, 오히려 패턴이 꼬여버리면서 카이킬리아와 닉스가 크게 다치기까지 했다.
놈의 가짜 본질을 파훼할 방법이 없는 이상, 다 같이 덤벼드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나야 죽어도 부활한다 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안 되니까.
이제 다 왔는데, 겨우 한 발짝밖에 안 남은 상황인데 누구 한 명이라도 눈먼 공격에 맞고 죽어버리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건 사절이었다.
ㅡ콰아아앙!
레이저쇼를 끝낸 세계를 먹는 자가 양 다리를 모아 바닥을 내리치면서 머리를 숙였다. 진작부터 레이저가 닿지 않는 공간으로 와 있었기에, 거리는 무척 가까웠다.
놈의 주둥아리를 전력으로 후려쳤다. 비늘과 주먹이 맞닿으며 퍼억, 하고 둔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아마 큰 타격은 없을 거다. 끽 해봐야 무언가에 맞았다 정도겠지.
하지만, 정신적 충격은 그 이상일 것이다.
‘내려찍기 3연타.’
예상과 정확히 같은 공격이 들어왔다.
놈은 앞으로 한 발짝씩 전진하면서 오른발을 들어 땅을 내리치고, 다음으로 왼발을, 마지막으로 오른발을 사용해 내가 있는 방향을 힘껏 내리찍었다.
그리고, 자신의 방금 행동마저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 나왔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분노에 찬 사념을 흘려보냈다.
ㅡ내게…… 무슨 짓을 한 거냐…… 인간……!
“알아. 니 머릿속에 들어있는 브닼 4의 최종 보스와 똑같이 움직였다고? 머리로는 상황 이해가 안 가는데, 몸이 먼저 움직이는 느낌이지? 그 느낌이 어떤지는 나도 대충 짐작이 가거든.”
여기로 넘어오고 감옥에서 처음 싸웠을 때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머리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굳어 있는데, 이해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처럼 몸이 알아서 구르고 피하고 다 했었다.
“좋은 거 하나 알려줄게. 나는 지금 여신의 세계를 모조리 잡아먹고 이제 단 하나만을 남겨둔 공포의 존재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야.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보스인 ‘세계를 먹는 자’와 싸우고 있는 거지. 이제 상황 돌아가는 게 이해가 좀 되냐?”
ㅡ아니다……! 그럴 리 없다……! 내가 한낱 인간 따위에게 조종당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놈이 사념을 쩌렁쩌렁 퍼뜨리며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정확히는 조종당하는 게 아니라 세계의 법칙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정확한 설명 같은 건 저놈한테든 나한테든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당연히 저것도 브닼 4의 패턴에 포함됐기에 별 감흥은 없었다. 세계를 먹는 자가 브레스를 내뿜어 지상을 불사르는 걸 보고, 멀찍이 자리를 옮기며 이클립스에게 외쳤다.
“여신님! 이쪽입니다!”
이클립스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순간이동을 했다. 방금 전까지 이클립스가 있던 자리를 칠흑색의 브레스가 휩쓸었다.
여신이 도착한 자리로 달려갔다. 브레스가 닿지 않는 안전지대였다. 드디어 얼굴을 제대로 볼 기회가 생기자, 여자들이 순식간에 달려들어 날 둘러쌌다.
“델타! 살아있었구나! 역시 저놈 말이 거짓말이었던 거지, 그렇지?”
“살아있었다니 다행이군, 델타. 정말로 다행이다.”
“이렇게 살아서 보게 되어 정말로 기쁩니다, 델타 씨. 진심이에요.”
“역시 그렇지. 델타 네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없잖아!”
“……나, 진짜 열심히 노력했어. 어떻게든 너 돌아올 때까지 싸우려 했는데…….”
“참으로 늦었구나. 허나, 돌아왔으니 그걸로 족하다.”
“아이야, 다친 곳은 없니? 정신적인 문제도 없고?”
“성자님, 정말 잘 오셨어요…….”
“다시 뵙게 되어 기쁨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성자님.”
“아아, 델타 님. 당신을 무척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델타 님. 저희는…… 저희는…….”
“……왜 이렇게 늦으신 거예요, 당신. 그래도 돌아와주셨으니 기쁩니다.”
열둘이나 되는 목소리가 기쁨으로 가득 차 조잘조잘 떠들어대자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 말을 아끼고 있는 건 이클립스밖에 없었다.
이클립스는 나를 바라보기만 하면서 그저 조용히 눈물을 훔칠 뿐이었다.
나는 세계를 먹는 자의 위치를 확인한 뒤, 감정을 모두 표출하도록 잠자코 기다려주었다. 저놈의 성격상 얘들이랑 싸우는 내내 내가 죽었다고 조리돌림을 해댔을 테니까.
그때 차오른 불안과 슬픔을 해소하는 것쯤은 지금이라도 해줄 수 있다.
“…….”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무작정 기뻐하고 있을 상황만은 아니라서 그런지, 들뜬 목소리가 점차 잦아들었다. 이제는 내가 입을 열 차례였다.
“시간 없으니까 핵심만 말할게. 난 안 죽었어. 정확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 너희들이 여기서 수십 번은 봤던 것처럼.”
나는 오른손등에 새겨진 불사의 표식을 보여주었다. 그걸 본 전원이 눈을 휘둥그레하게 떴다.
“당신, 그건…… 잠시만요. 당신의 사명은 저번의 세계를 구한 것으로 끝났던 게…….”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내가 생각한 사명은 저 빌어먹을 드래곤한테 복수하는 거였더라고.”
“…….”
이클립스의 표정이 멍해졌다.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때 했던 말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나는 근처 지반을 모조리 태워버린 세계를 먹는 자가 비틀거리며 다시 내려앉는 걸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저건 내가 잡을게. 너희는 저놈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허튼 짓 못하게 감시하고 있어줘.”
“감시라고 하시면?”
“그 빌어처먹을 파란색 기차 기억 안 나? 이클립스 네 신경 긁으려고 그런 치졸한 짓까지 벌인 놈인데, 자기가 불리해지면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그래서 말하는 거야.”
세계를 먹는 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더는 말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양 옆으로 갈라선 플로레타와 루나, 카이킬리아를 헤치고 놈을 향해 다가갔다. 사방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이 느껴졌다.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불사의 사명을 달고 있는 한, 내가 죽을 일은 없으니까. 그렇지, 이클립스?”
가슴 앞에서 손을 맞잡은 이클립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신까지 확답을 내려주자 굳어있던 얼굴들이 조금 펴졌다.
앞으로 걸어나가다 문득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고보니, 나 방금 여신한테 반말 쓰지 않았나?’
하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와서 반말을 쓰고 있는 줄도 몰랐다.
ㅡ이것까지 알고 있었나…… 인간…….
세계를 먹는 자와 대치했다. 방금 전에 자신이 세계의 법칙을 거슬렀던 행동마저 브닼 4의 기억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 놈의 사념에는 몹시 불쾌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브레스는 이미 쓸만큼 써 놓고선, 그걸 이제 알아차리셨어? 머리 회전이 너무 느린 거 아니야?”
놈은 분노로 가득 들어찬 사념을 토해내며 다음 동작을 이어가려다, 뜬금없이 제자리에 굳은 채 멈칫거렸다.
방금 하려던 행동이 설마 또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 나오는 ‘세계를 먹는 자’의 패턴과 일치하지는 않는가 살피는 분위기였다.
살짝 들어올려졌던 앞발이 도로 땅에 닿았다.
ㅡ그렇다면 알았다…….
놈의 눈이 한층 더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 입에서 포효와 뒤섞인 용언이 터져나왔다. 가뜩이나 약해져 있던 지반이 충격파나 다름없는 포효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ㅡ네가 지켜야 할 세계를…… 먼저 파괴해 주마…….
“…….”
혹시 몰라서 말하고 나오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써먹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이클립스를 필두로 여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황금색 빛무리가 나타나고, 익숙한 뒷모습들이 그 빛무리 안으로 속속 자취를 감췄다. 벌써 역할 분담까지 끝낸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이클립스의 모습까지 사라지고, 이제 완벽하게 둘만 남은 것을 확인한 내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주먹으로 너무 맞아서 당황을 좀 많이 했나 봐? 그딴 걸 전략이라고 내놓다니, 쪽팔리지도 않냐?”
ㅡ마음껏 웃고…… 떠들어라…… 그 인간들이…… 내 피조물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버텨? 뭔가 착각을 좀 크게 하는 것 같은데.”
내 쪽에서 먼저 거리를 좁혔다. 세계를 먹는 자가 그에 반응해 앞발을 휘둘렀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발톱이 근처를 스쳐지나갔다. 무시하고 더 바짝 달려들었다.
놈은 방금 그것마저 기억 속 패턴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멈칫 하는 모습이었으나, 망설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또다시 게임 속 보스전과 비슷한 행동이 이어졌다.
커다란 입이 바로 옆을 짓씹었다. 이빨끼리 서로 부딪히며 살벌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공격 범위를 벗어난 뒤였다.
ㅡ콰앙!
주먹이 놈의 왼뺨을 강타했다. 기우뚱, 놈의 머리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자기 눈동자보다 작은 크기의 인간이 내지른 주먹을 맞고 머리가 기울었다는 사실에, 세계를 먹는 자 역시 무척 놀란 듯했다. 네 다리가 땅을 박차며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ㅡ네놈…….
“주위나 한 번 살펴보지 그래? 여기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시뻘건 세로 동공이 좌우로 움직였다. 내가 말하려는 바를 알아차렸는지 주둥아리 사이에서 작은 으르렁거림이 새어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사용한 용언은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내 인식이 브닼 4와 동화되면 동화될수록, 저놈에게 적용되는 세계의 법칙 역시 강화되니까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이 공간마저 세계를 먹는 자의 보스룸과 닮아가는 상태였다.
“모두 이클립스가 설계한 공간이지. 그러니까 너는, 자기보다 약하다고 조롱하고 무시했던 그 여신의 작품 때문에 죽는 거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단순히 이클립스의 상상과 경험으로만 채워넣어졌던 닼라 모드의 세계를 먹는 자가 원본의 행동마저 제한시키다니 말이다.
“아까 얼마나 버틸 수 있겠냐고 했던가? 미리 말해두는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라 그쪽이야.”
어깨를 풀었다. 브닼 4 주인공의 맨손 상태 대기 모션이었다.
“이제부터는 그딴 걸 만들어낼 여유도 없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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