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299)
외전: 아이테르눔 제국의 일상 – 2
“저는 델타보다 술이 약한 허접 기사단장입니다…….”
“97번. 이제 3번 남았어.”
“저는 델타보다 술이 약한 허접 기사단장입니다…….”
“98번. 2번만 더.”
“저는 델타보다 술이 약한 허접 기사단장입니다…….”
“99번. 마지막.”
“저는 델타보다 술이 약한 허접 기사단장입니다…….”
“좋아, 이걸로 끝. 수고했어, 클라우디아.”
소파에 앉아있던 내가 몸을 일으켰다. 클라우디아는 내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선 뺨을 토마토처럼 붉게 물들인 채 부들부들 떨어대는 중이었다.
수치심 때문에 열이 올라서 더워진 건지, 피부에 땀이 송골송골했다. 11자로 탄탄하게 뻗은 복근을 따라 피부에 맺힌 땀방울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얼음을 띄운 주스를 건넸다. 그걸 단숨에 들이킨 클라우디아가 연이어 얼음까지 와작와작 씹어먹었다. 유리잔은 금세 텅 비워졌다.
“그러게 세 번만 해도 된다니까. 부끄러워 죽으려고 하면서 고집은 왜 부려?”
“내가 내 입으로 백 번이라고 했잖아. 한 말은 지켜야지.”
본인이 하겠다는데 말릴 수는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따라놓았던 달의 입맞춤을 단순에 비워버렸다. 그 특유의 향과 맛이 목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하지만 알코올의 역한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달콤한 음료수에 훨씬 가까운 느낌이었다. 클라우디아가 이런 내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억울함과 의문이 반씩 섞인 눈초리였다.
“리제는 저렇게 됐는데, 델타는 왜…….”
클라우디아가 허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분홍색 눈동자가 내 뒤쪽의 침대를 향했다.
침대에는 의식을 잃어버린 채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알코올 냄새를 폴폴 풍겨대는 리제가 있었다.
내가 달의 입맞춤 3잔을 연거푸 들이키고도 멀쩡하자, 혹시 변질된 게 아니나며 내가 마시던 걸 뺏어서 들이켰다가 벌어진 참사였다.
가뜩이나 조그마한 잔이었는데, 내가 반쯤 마신 걸 뺏어서 들이켰으니 실질적으로 리제가 먹은 양은 새끼손가락 한마디 정도밖에 안 됐다.
고작 그 정도만 마신 걸로 인사불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헌데 정작 더 많이 마신 나는 멀쩡하니 클라우디아 입장에선 이해가 안 가기도 하겠지.
“내기는 끝났나?”
타이밍 좋게 문이 열렸다. 단원들을 각자의 방에 눕혀다놓고 오겠다던 아이리스와 에리카였다.
본인들 나름의 배려였는지, 둘은 클라우디아가 벌칙을 열 번쯤 수행했을 때 단원들을 방에 옮겨주고 돌아오겠다며 자리를 피했었다.
“……끝났지. 확실하게 100번 다 말했어.”
“다행이군. 앞으로는 자신의 주량을 너무 맹신하지 말도록, 클라우디아. 방금 선언한 대로, 너는 델타보다 술이 약한 허접 기사단장이지 않나.”
“…….”
설마 아이리스까지 자신을 놀려먹을 줄은 몰랐던 듯, 클라우디아가 눈을 끔뻑거렸다. 아이리스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저건 어떡할까요? 밖으로 치울까요?”
곧바로 뒤따라 들어온 에리카가 인사불성이 되어 침대에 뻗어있는 리제를 보고선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다못해 호칭마저도 ‘리제’나 ‘언니’가 아니라 ‘저거’였으니, 에리카가 지금의 술 취한 리제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알 만했다.
“리제 한 명이라면 여기서 재워도 괜찮으니 내버려둬라, 에리카.”
“뭐…… 그렇긴 하죠. 알겠습니다.”
냉장고에서 와인을 꺼내든 아이리스가 엄지로 코르크 마개를 가볍게 따버리더니 병 하나를 통째로 쥐고 소파에 앉았다. 가슴이 반동을 받아 크게 출렁였다.
클라우디아도 침울한 표정으로 새 술병을 땄다. 병을 보아하니 위스키인 듯했다. 에리카는 얌전히 1/4 정도만 채운 와인잔을 들었다.
‘저게 평상복이라…….’
하나같이 민소매 너머로 핑크빛 돌기가 제법 선명히 비치는 중이었기에 눈 둘 곳이 애매했다. 시야를 아래로 내리자니 엄청나게 짧아진 돌핀팬츠가 마음에 걸렸고 말이다.
내가 눈 둘 곳을 찾아 헤매는 동안, 앉은 자리에서 와인을 절반 넘게 비워버린 아이리스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장난기가 반쯤 섞인 시선이었다.
“그래서 네가 감추고 있던 비밀은 뭐였지, 델타?”
“비밀? 어떤 비밀?”
그 시선을 별것 아닌 척 흘러넘겼다. 아이리스는 웃으며 남은 와인을 마저 털어넣었다.
“나는 너를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 네 성격상, 그 정도로 자신있게 내기에 응했다면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게 분명할 텐데. 이제 내기도 끝났겠다, 그 믿는 구석이 뭐였는지를 알려줄 때도 되지 않았나?”
“말하는 걸 보니까 그 믿는 구석이 뭔지는 대충 짐작한 것 같은데?”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군.”
우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교환했다. 벌써 위스키 한 병을 통째로 비우고 다음 술을 집어들던 클라우디아가 동작을 멈췄다.
“잠깐. 대화를 못 따라가겠는데? 믿는 구석? 비밀?”
“간단하다.”
냉장고에서 새 와인을 꺼낸 아이리스가 코르크 마개를 가볍게 비틀어 열었다.
“성국에서 달의 입맞춤을 마신 이후에 내 나름대로 정보를 찾아봤었다. 대체 어떤 술이길래 그렇게까지 독한지 궁금해졌으니까. 다행히 대서고에 미네르바 님께서 남겨두신 기록이 있더군.”
병 안의 내용물이 단숨에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달의 입맞춤과 찬란한 태양은 마신 대상이 지닌 신성력과 신앙에 반비례하여 독해지는 술이다. 지닌 신성력과 신앙이 많을수록 도수가 낮아지고, 적을수록 도수가 높아지지. 그 책에 의하면, 교황 성하들에게는 이 와인보다 살짝 강한 정도라는 모양이다.”
아이리스는 내용물이 1/3 정도 남은 병을 휘적휘적 흔들어보였다.
“평소에 달의 입맞춤을 음용할 수 있는 사람이 교황 성하들과 이단심판관, 이단심문관에 한정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네 사람이 성국에서 제일 강한 신성력을 지녔으니까.”
은색 눈동자가 나를 흘끗 돌아보았다. 자기 설명이 맞냐고 묻는 듯했다.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미네르바가 남겨둔 기록이라면 최소한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내용이랑 비교해도 딱히 다른 게 없었고.
다만, 나로 인해서 평균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간 지금의 성국이라면 어떻게 될는지는 불명이었다. 아마 안 취하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
클라우디아는 그제서야 진실을 알아차린 눈치였다. 입이 떡 벌어졌다.
“술의 위력이 가진 신성력에 반비례한다면, 델타에게는 별것 아닌 도수였을 확률이 높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이기는 것이 불가능한 내기였다는 의미다. 어떤가, 델타? 내 설명에 틀린 부분이 있나?”
“다 맞췄어. 나한테 별것 아니라는 부분만 빼고. 별것 아닌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거든. 음료수라는 생각밖에 안 들더라.”
“들었겠지, 클라우디아?”
아이리스가 씨익 웃었다. 클라우디아의 표정이 점점 넋을 놓은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델타 너…… 알고 있었어? 다 알고도 내기하자고 한 거야?”
“먼저 진짜로 내기하자고 제안한 건 클라우디아 너다? 그러게 내가 마셔도 안 취한다고 했을 때 대충 넘어가지 그랬어.”
“아, 아니 난…….”
“달의 입맞춤이 그런 술인지 정말 몰랐습니까, 클라우디아? 델타 씨가 얼마나 강한 신성력을 가졌는지도 몰랐고요?”
횡설수설하는 클라우디아를 바라보며 와인을 홀짝이던 에리카가 질문을 던졌다.
“……알려줬던 것 같기도 한데, 몰라. 까먹었어. 솔직히, 이제 두 번 마실 일은 없는 술이라고 생각해서 별 관심을 안 뒀지…….”
말소리의 크기가 점점 작아졌다. 두 번 마실 일은 없을 술이라고 생각해서 별 관심을 안 줬다니, 클라우디아다운 대답이었다.
처음부터 이기는 게 불가능한 내기였다는 충격이 컸는지, 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클라우디아가 비틀비틀 몸을 일으켜 달의 입맞춤이 담긴 잔을 집어들었다.
그러더니 우리가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나 깨어나면, 이번 일은…… 잊어, 줘…….”
그 몸이 소파에 풀썩 무너져내렸다. 몰려오는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현실 도피를 택한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쉰 에리카가 클라우디아를 들쳐 업고 리제 옆에 내려놓았다. 둘의 키 차이가 워낙 커서인지, 세삼스레 리제가 평소보다 더 자그맣게 느껴졌다.
가슴은 빼고.
“이제 우리 셋만 남았군.”
주변이 조용해지자, 아이리스가 태연히 와인을 홀짝였다.
“그러게요. 은빛 여명 기사단 모두가 참석하는 술자리라길래 난리가 나겠구나 했는데, 다른 의미로 난리가 났네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조용해졌어요.”
아이리스와 에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나 역시 리제나 클라우디아에 비하면 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능력은 영 부족했다. 덕분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우리 이제 뭐 할 거 있나? 술 마시는 거 말고.”
“어…… 글쎄요? 저희끼리는 딱히…… 대화나 좀 나누는 거 빼면요.”
에리카와 내가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허둥대는 사이, 셋만 남았다는 말을 작게 되뇌이며 내 눈치를 살피던 아이리스가 들고 있는 병을 통째로 비워버렸다.
와인병과 테이블이 맞닿는 탁! 소리에 우리 둘의 시선이 집중됐다.
“으, 으으으음…….”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억지로 냈다는 티가 팍팍 드는 신음을 흘리면서 내 옆에 앉았다. 아이리스의 허벅지와 내 허벅지가 바싹 밀착했다.
“……뭐해, 아이리스?”
“아, 아무래도 취한 것 같다. 그, 조금, 어지러워서…….”
“취해?”
주위를 살폈다. 아이리스가 마신 술이라곤 고작 와인 몇 병이 전부였다.
근처에 클라우디아라는 괴물이 한 명 있어서 그렇지, 아이리스도 객관적으로 본다면 술이 상당히 강한 축에 속했다. 그런 아이리스가 고작 와인 두 병에 취한다?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저렇게 부끄러워하면서도 억지로 취한 척을 하고, 은근슬쩍 가슴을 내 팔뚝에 문질러 오기까지 하니 그 목적이야 뻔한 일이었다. 내가 저런 것도 눈치를 못 채는 사람은 아니니까.
내 옆에 달라붙어 연신 가슴과 허벅지를 부비적대던 아이리스가 눈을 돌렸다.
“에리카 너도 취하지 않았나?”
“어…… 저는 아닌 것 같은데요? 몇 모금 안 마셔서요.”
에리카도 아이리스가 저러는 이유를 알아차렸는지 자기는 선을 그으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에상한 듯 발갛게 달아오른 뺨은 덤이었다.
“정말인가? 이런 기회가 두 번 오지는 않을 텐데?”
“…….”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는가 싶던 에리카는, 내 손을 허벅지 사이에 끼운 채 문질러대는 아이리스를 보더니 눈을 딱 감고선 손에 든 잔을 비웠다.
“아. 어, 어지러워. 저 아무래도 취한 것 같아요.”
그러고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삐걱삐걱 몸을 일으켜 내 반대쪽에 앉았다.
나는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 에리카 스스로도 자기가 방금 연기를 더럽게 못했다는 걸 자각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얼굴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둘 다 갑자기 취했다니 별일이네, 그렇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나도 원래 취하도록 마실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리제와 클라우디아가 둘 다 쓰러졌으니…… 뭔가, 분위기를 탔다고 할까…… 아니, 잊어라. 잘 모르겠다.”
“저, 저도요…… 뭔가 그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그러니까, 원래 이런 짓을 할 생각은 없었는데 리제랑 클라우디아가 인사불성이 된 걸 보고 냅다 저질러버렸다는 건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였다.
‘……취한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리스는 분위기만으로 행동할 성격이 절대로 아닌데다, 에리카도 아이리스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 2명이 분위기를 탔다니, 취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 그리고. 그래. 예전에 우릴 구해준 은혜를 몸으로 갚겠다고 한 적이 있지 않았나…… 그, 그것도 있다.”
“이 상태로? 어떻게?”
뺨을 붉게 물들인 아이리스가 조심조심 행동에 나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