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0)
“…….”
“…….”
“…….”
“…….”
아이리스와 리제, 에리카와 클라우디아는 아직도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원래의 영주는 대체 어디로 가고, 그 딸인 아우로라가 고풍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채 소파에 앉아 신입과 대화를 나누고 있단 말인가.
여기서 단 한 번도 좋은 기억을 가져본 적 없는 그녀들로서는 저택의 풍경이 이토록 평화롭고 따뜻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생소했다.
테이블에 먹을 수 있는 다과가 즐비하다거나, 메이드가 예의를 갖춰 대한다거나, 불쾌한 눈으로 몸을 훑어대는 그 돼지가 없다거나 하는 모든 것이 말이다.
아우로라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우선 그 돼지새끼가 저지른 짓에 대한 사과와 함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 도시를 위하여 노력해주셨던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드리겠습니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 여러분.”
소파에서 일어난 아우로라가 드레스 자락을 양 손으로 살짝 들어올리며, 무릎을 조금 굽히고 머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넷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상대가 인사를 건네오는 와중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실례라는 걸 분명 알고 있음에도,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니 자연스레 몸 역시 움직이질 않았다.
지금 대체 뭘 보고 있는건가 싶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아우로라가 후훗, 하고 짤막하게 웃었다.
“기사단장 여러분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혼란스러우시겠죠. 저도 처음에는 그랬으니까요. 저조차도 그랬는데, 당신들은 오죽할까요. 무례하다고 생각할 마음은 조금도 없으니 안심해주시길.”
“저, 그, 아우로라님. 이게 대체 무슨 일인건지……?”
“호칭도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겠네요. 이제부터는 저를 영주라 칭하시면 됩니다. 혹은 아우로라 영주도 괜찮고요. 편하신대로 불러주세요.”
“……네?”
클라우디아가 멍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표정에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훤히 드러났다.
“그 돼지새끼는 죽었으니까요.”
리제가 막 입에 집어넣으려던 과자를 놓쳤다. 아이리스는 손에 힘을 너무 준 나머지 들고 있던 찻잔을 깨먹었고, 클라우디아는 입을 헤 벌렸다. 에리카는 사레가 들렸는지 콜록대며 가슴을 두들겼다.
“그 돼지새…… 아니, 영주가 죽었다고요?”
“마음껏 욕하셔도 괜찮습니다, 리제 기사단장. 그걸 뭐라고 부르든, 무슨 호칭을 사용하든 저는 신경쓰지 않을테니까요. 아니, 오히려 모욕적인 호칭으로 불러달라 권장하고 싶네요.”
처음에는 평소 하던대로 돼지새끼라는 호칭을 붙이려다, 딸 앞에서 아버지를 그따위 단어로 칭하는 것은 조금 아니다 싶었는지 급히 말을 바꾼 리제였지만, 아우로라의 반응은 달랐다.
오히려 더 모욕적인 호칭으로 불러줄 것을 권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제게 단순히 황족의 핏줄을 물려준 생물학적 부친일 뿐, 인간 대 인간으로 교류를 나누는 가족이 아닙니다. 보세요. 지금도 그 돼지새끼를 제가 무어라 부르고 있나요?”
“아, 알겠어요. 그러면 영주님.”
아우로라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정말이지 언제 들어도 좋은 울림이었다. 그래, 자신은 진작부터 이 자리에 앉아있었어야 했다.
물론 혼자서는 절대 이룰 수 없었을테고, 이러한 성취를 가능케 한 인물은 따로 있지만. 황금빛의 눈동자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과자를 오독오독 갉아먹는 사내를 흘끗 곁눈질했다.
아우로라의 눈이 왠지 끈적한 감정을 담아 신입을 훑어대는 광경을 본 리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급히 현실로 돌아왔다.
“네, 말씀하세요. 리제 기사단장.”
“……아, 네. 그 돼지새끼가 죽었다는 것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
리제의 입에서 나머지 기사단장들도 모두 궁금해하고 있을 질문이 튀어나오자, 궁금증을 가득 담은 세 쌍의 눈동자가 아우로라에게 집중되었다.
아니, 질문을 한 당사자도 마찬가지였으니 네 쌍인가. 아우로라는 그 시선을 느긋이 받아넘기며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당연히 말씀드려야죠. 자, 처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와, 내가 생각한 거짓말이지만 저렇게 들으니까 꼭 진짜같네. 아우로라가 연기에도 소질이 있던가?’
아우로라는 우리끼리 사전에 입을 맞췄던대로 기사단장들에게 표면상의 이유만을 말해주었다. 그 뒤에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내 몫으로 남겨뒀다.
내가 목 없는 철갑 기병을 토벌하고 ‘우연히’ 악마가 깃든 책을 발견한 일.
은밀히 그 처리 방법을 논하고자 영주에게 책을 가져왔지만, 그놈은 욕심에 눈이 멀어 날 돌려보내고 몰래 악마를 소환하려 했던 일.
다행스럽게도 책에 깃든 악마가 굉장히 약화되어 있었기에 별다른 피해가 없었던 일.
하지만 그 여파로 인해 영주는 반인반마가 되었고, 따라서 제국법에 따라 모든 권리를 박탈한 다음 행적을 말살하고 그 빈자리를 자신이 채웠던 일까지.
아우로라가 워낙에 막힘없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말투로 설명한데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어색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에는 직접 살을 덧대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럴듯한 거짓말이 나왔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게 된 것입니다, 기사단장 여러분.”
설명을 마친 아우로라가 목이 마른 듯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호롭,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의 응접실은 찻물 넘기는 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질만큼 조용하다는 의미였다.
말문이 다시 트인 것은 시간이 꽤나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하던 아이리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정말로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놈이 자기 욕심으로 악마를 불러내고도 남을 성격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나머지는 전부 다 꿈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엄연히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기도 하죠.”
“예, 영주님. 알고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영주님께서 해주셨던 이야기를 그대로 제게 말했더라면, 저는 그런 황당한 거짓말을 할 시간에 검이나 한번 더 휘두르라고 일갈했을겁니다.”
“황당한 거짓말이라…… 그렇군요.”
아우로라가 그 단어를 곱씹으며 피식 웃었다. 자신은 이미 지금껏 했던 설명이 반쯤 거짓말임을 알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기분일테지.
“그런데, 신입.”
“응?”
은색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내가 막 아우로라와 바톤을 터치해 넷에게 우리가 세운 진짜 계획을 알려주려던 순간이었다.
“저 이야기를 모두 들으니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만.”
“……?”
나는 아이리스가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건가 싶어 눈을 끔뻑였다. 아우로라가 덧붙인 설명에도 딱히 허점은 없었을텐데. 설명이 어디에서 삐끗했을지를 잠시 되짚어보았다.
그리고, 예상 외로 쉽게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네가 우리보다 그 영주를 더 신뢰했을 리가 없지 않나. 정말로 그런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면, 영주가 아니라 우리에게 처리 방법을 논하러 왔겠지.”
그제서야 아우로라도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하긴, 이 도시에서 영주의 평판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애초에 대책을 논하러 그놈에게 갔다는 사실부터가 말이 안 됐다. 아이리스는 그 점을 정확히 잡아낸 셈이었다.
이곳의 사정을, 그리고 내 사정을 잘 모르는 황제에게야 ‘내가 은빛 여명 기사단에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주가 그토록 쓰레기인줄 몰랐다’라는 변명이 통할테지만, 영주를 잘 몰랐다는 변명이 기사단장들에게 통할 리가 있나.
“맞아. 제대로 짚었네. 아이리스 네 말대로야. 정말로 그런 책을 우연히 발견했다면 그 돼지새끼가 아니라 너희들한테 상담하러 갔을테니까.”
나는 순순히 그 말을 인정했다. 어차피 이쯤에서 진짜 계획을 털어놓을 생각이었다. 단지 그 타이밍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순순히 인정하는군. 그렇다면, 어디서부터가 거짓이고 어디까지가 진실이지?”
“반쯤은 진실이고, 반쯤은 거짓이야. 일단 영주가 반인반마로 변했다는 내용은 진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내용도 진실. 아우로라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내용까지 진실이고, 나머지는 다 거짓이라고 보면 되겠네.”
“대충 이해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거짓 계획을 먼저 털어놓았던 이유는 뭐였나?”
“그걸 써먹어야 되는 사람이 한 명 있거든.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듣는 것과 모르고 듣는 건 차이가 제법 크잖아? 그래서 너희들한테 어떤 점이 어색했는지 물어보려고 했던 거야. 그리고 너희까지 협력해줘야 계획이 더 완벽해지기도 하고.”
“……계획을 써먹어야 되는 사람이라니, 그게 누구지?”
“조만간 지하실에 있는 저 악마 때려잡으러 올 사람.”
내 애매모호한 말에 아이리스는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를 깨달았는지 곧바로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 날 쳐다보았다.
“신입 너, 설마……!”
“네 생각대로야, 아이리스.”
그 옆에 있는 리제와 에리카, 클라우디아도 별반 다르지 않은 얼굴이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손을 파들파들 떨며 방금 자신이 뭘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황제 폐하. 그분이 우리가 방금 말한 계획을 써먹어야 하는 사람이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