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01)
외전: 황금 열쇠 – 1
페치는 떨고 있었다.
‘이거 진짜 무조건 죽는다……! 잘돼도 죽고 못되면 더 죽는다……!’
그것도 보통 떠는 게 아니라, 식은땀을 뚝뚝 흘려대면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떨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본 것이 얼마나 오래 됐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만큼.
분홍색 타이즈로 가려지지 못한 피부가 땀에 흠뻑 젖고 땀에 흠뻑 젖은 등이 코트와 찔꺽찔꺽 달라붙어 불쾌감을 유발했으나, 그런 사소한 걸 신경쓸 틈 따위는 전혀 없었다.
당연했다. 지금 페치의 눈앞에 있는 사람들은 전원이 대륙 전체를 손에 쥐고 흔들 수 있는 권력을 지닌 존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아이테르눔 제국의 황제 카이킬리아. 영원의 마법사 미네르바. 라파엘라 성국의 태양의 교황 플로레타와 달의 교황 루나. 하나같이 대륙에 널리 알려진 이름들뿐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존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면, 제 아무리 사람들을 등쳐먹으며 사기꾼으로 살아온 페치라고 해도 긴장을 하지 않을래야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기꾼으로 살아온 페치였기에 더더욱 긴장해야 했다. 꼬투리라도 잡히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므로.
‘왜 황제가 여기 있냐고……!’
더불어, 페치는 아주 장대한 착각을 하나 하고 있었다. 제국의 황제가 아우로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아직 제대로 공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진혼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야기가 오가던 와중 즉석에서 결정된 양위 선언인데다, 아우로라는 본격적인 황제로서의 활동을 개시하기 전에 이것저것 공부하느라 바빴다.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카이킬리아 역시 델타의 거처만을 오가며 조용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아이테르눔 제국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고위 귀족과 황궁 내 인물들밖에 없다는 것이 장대한 착각의 원인이었다.
“거짓 없이 제대로 대답함이 좋을 것이다. 어떠한 연유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였느냐.”
게다가, 더 이상 황제가 아니라 한들 카이킬리아 특유의 고압적이고 싸늘한 분위기가 어디로 사라진 것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착각하기 좋았다.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성검을 만지작거리던 카이킬리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자, 금안에서 쏟아져나오는 살벌하고도 소름끼치는 눈빛에 페치가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침을 삼켰다.
“딸꾹ㅡ 헙.”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다급히 입을 틀어막았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한번 시작된 딸꾹질은 도저히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딸꾹, 딸꾹 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히에으으윽…… 딸꾹.”
“괜찮으신지요, 이곳에 찾아온 이방인이여.”
정말로 울기 직전의 얼굴을 하고 있는 페치를 향해 플로레타가 조심스레 다가갔다. 손가락에 황금빛 신성력이 감돌았다. 섬섬옥수가 코트 너머로도 느껴질만큼 흠뻑 젖은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딸꾹질이 순식간에 멈췄다.
“…….”
페치는 자신의 등을 쓰다듬는 손길을 느끼며 미친 듯이 떨어댔다.
플로레타야 순수하게 눈앞의 여인을 진정시켜주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중압감에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페치로서는 교황이 자신에게 이러는 진짜 이유를 알 턱이 없었다.
얼굴이라도 한번 확인했더라면 방금 그게 순수한 호의로 이루어진 행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겠으나, 바닥에 납작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중이었으니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교황 성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결국 페치는 냅다 용서부터 구하는 길을 택했다.
분위기 탓에 겁을 잔뜩 집어먹어버린 상황인지라, 4명의 행동 하나하나가 처형의 꼬투리를 잡으려는 모양새로 느껴지는 것이다. 페치는 어떻게든 살고 싶었다.
“……?”
뜬금없이 사과를 받은 플로레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신경질적으로 발 끝을 까딱이던 카이킬리아가 그 모습을 보고 옅게 짜증을 냈다.
“내가 이곳에는 어떠한 연유로 발을 들였는지 묻고 있지 않느냐, 분홍머리 여자. 내 말이 말 같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더냐?”
“황금열쇠를 찾는데 성공해서 전달해드리러 왔습니다!!!!!!”
페치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고 나서야 아차 싶어 식은땀을 뻘뻘 흘려댔지만, 4명 모두 방금 목소리의 크기가 어땠는지는 별 관심도 없었다. 중요한 건 저 분홍머리 여자가 방금 뭘 찾았다고 말했는지였다.
“황금 열쇠?”
카이킬리아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황금 열쇠에 대해서는 몇 번 들어본 적 있었다.
헌데, 그 전설로만 내려오던 물건을 저 가벼워보이는 여자가 찾아냈다고?
“지금 나더러 그 말을 믿으라고 지껄인 것이냐?”
카이킬리아가 으르렁거렸다. 마땅히 그래야 할 반응이었다.
그 막강한 권력을 자랑했던 아이테르눔 제국의 선대 황제들조차도 발견에 실패했다는 기록만을 남긴 물건인데, 그걸 저따위 여자가 찾았다니 말도 안 됐다.
“…….”
페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저 머리를 조아린 채 벌벌 떨고만 있었다.
사실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라면 많았다. 황금 열쇠를 꺼내서 보여주거나, 델타가 오길 기다려서 직접 물어보라고 해도 됐다.
이곳, 델타의 방까지 무사히 들어왔다는 건 성을 지키는 칠흑 성야 기사단이 페치를 통과시켜줬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여기 있는 넷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워낙에 터무니없는 주장인지라 증거도 없이 믿기가 힘들 뿐.
‘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죽는다……!’
하지만, 페치가 이곳의 분위기와 눈앞의 사람들에게 심각할 정도로 겁을 집어먹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심각할 정도로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꼬투리가 잡혀 처형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버렸기에, 감히 설명을 꺼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페치는 엎드린 자세로 벌벌 떨고만 있고,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한 카이킬리아가 눈살을 찌푸리는 찰나였다.
“……페치가 찾아왔다고 해서 들렀더니, 여기 모여서 뭐 하십니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모습을 한 칠흑색 머리카락의 남자가 들어왔다.
“델타 님!”
‘……델타 님?’
플로레타와 루나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델타에게 달려갔다. 페치는 벌벌 떠는 와중에도 교황들이 저 남자를 부르는 호칭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
물론 오래 가지는 않았다. 델타가 성국에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보는 이미 지겹도록 들은 뒤였다. 그런 남자라면 진작 교황들을 취했어도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데, 델타 님! 제가 황금 열ㅡ 히이이익?!”
그건 그거고, 이 분위기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다급히 입을 연 페치는 새된 비명으로 말을 끝마쳤다.
방금 전까지 들려오던 애교 넘치는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느껴질만큼 살벌한 기세를 내뿜는 녹안과 자안에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페치는 즉시 어마어마한 속도로 땅에 머리를 박았다.
플로레타와 루나는 단순히 오늘 처음 보는 여자가 ‘델타 님’이라면서 자신들을 따라했기에 반사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지만, 페치가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둘 다 진정해.”
손가락이 턱을 간질이자, 금세 표정을 푼 교황들이 델타의 가슴팍에 얼굴을 부볐다. 델타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잠시 밖으로 내보낸 뒤 페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한걸음, 그리고 또 한걸음.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페치의 몸이 격하게 움찔거렸다.
‘그러고보니 황금 열쇠를 찾아오라고 했었지. 까먹고 있었네.’
나는 ‘조아리다’ 제스쳐의 자세를 하고 있는 페치를 내려다보았다. 그 이후로 워낙 굵직한 사건들이 연속으로 터지는 바람에 까먹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황금 열쇠의 필요가 없어져버렸다는 점도 컸다.
황궁의 보물고? 아우로라한테 말만 하면 얼마든지 드나들 수 있다. 성국의 보물고? 오히려 거기 있는 걸 전부 바치려고 들지는 않을까를 걱정해야 한다.
미네르바 대서고의 최상층이나 미네르바 마탑의 창고까지도 제집 드나들 듯 출입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였다. 황금 열쇠가 있어봤자 딱히 쓸 일이 없었다.
던전의 퍼즐 같은 건 그냥 힘으로 열어도 되고 말이다.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 카이킬리아?”
페치는 잠깐 떨도록 내버려두고 남은 두 명에게 질문했다. 어쩐지 바깥의 기사단이 단체로 뻣뻣하게 굳어있더라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너의 여자가 너를 만나는데 합당한 이유가 필요하겠느냐. 그저 얼굴을 보고싶어 찾아온 것이다.”
“뭐…… 그건 그렇네. 알았어. 미네르바 님은요?”
내가 카이킬리아에게 반말을 사용하자 눈에 띄게 커진 움찔거림은, ‘너의 여자’라는 화답이 돌아온 시점에서 최대치를 찍었다. 이제는 아예 경련에 가까울 지경이었다.
나는 그러려니하고 넘겼다. 나랑 엮일 때마다 이래저래 불쌍하게 당하기만 해서 그렇지, 페치는 게임에서든 이 세계에서든 엄연히 선인보단 악인에 가까운 인물이니까.
브닼 4 초회차에 거하게 통수를 후려맞은 기억 때문에 지금 복수하려는 건 절대로 아니다.
“어떨 것 같니, 아이야?”
미네르바는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돌아온 되물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알려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페치, 고개 들어봐.”
“넵!”
내 말에, 페치가 벌벌 떨며 고개를 들었다. 대체 얼마나 긴장했는지 땀으로 샤워를 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얼굴은 울음을 터뜨리기 일보직전이었다.
“황금 열쇠를 찾았다고?”
“네! 여, 여기! 여기 있어요!”
코트 안주머니에서 다급히 황금 열쇠를 꺼내려던 페치가 손을 삐끗했다. 툭, 황금 열쇠가 카펫 위에 떨어졌다.
페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몇 번이고 열쇠를 집으려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가뜩이나 울기 직전이던 얼굴에 지독한 절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대체 뭘 했길래 사람이 이렇게 됐어, 카이킬리아?”
“너의 방에 처음 보는 여자가 들어왔으니 경계함이 마땅하며, 황금 열쇠를 찾아왔다고 말하였으니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하였음이 끝이니라.”
“저 아이가 우리를 보고 지레짐작으로 혼자 겁을 먹은 것에 불과하단다.”
결국 카이킬리아의 ‘경계’가 원인이긴 했지만, 저 금안에 담긴 힘은 게임으로 따지면 액티브가 아니라 패시브에 가까운 힘인지라 본인의 잘못은 없었다.
애초에 상인보단 사기꾼에 훨씬 더 가까운 패치에게는 하나같이 벌벌 떨어야 할 사람들뿐인데, 그런 상황에 카이킬리아의 시선까지 받았으니 저렇게 된 듯했다.
‘내보내긴 해야겠네.’
이래서야 할 말도 제대로 못 할 것 같았다. 나는 빠르게 결단을 내리고 카이킬리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카이킬리아가 살짝 당황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듣지 못하였느냐, 델타. 내 잘못은ㅡ 웁?!”
그리고, 그 몸을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키스를 받은 카이킬리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입술을 열어젖히고 혀를 휘감으며 그 제복 치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엉덩이를 간신히 가리는 길이의 제복 치마 밑으로 내 손이 파고들었다.
엉덩이를 강하게 쥐자, 카이킬리아의 몸이 파르르 경련했다. 가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혀를 빨아주니 경련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다음 절정이 이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엉덩이를 떡 주무르듯 주무르고, 제복 너머의 유두를 살살 간질여주고, 자궁이 위치한 아랫배를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흐으으읍! 으읍! 흐으으으응!”
꽉 막힌 신음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절정에 절정이 중첩된 몸이 기분 좋은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으나, 내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애무가 이어졌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최후의 교성이 터져나왔다.
“흐으으으으으읍!”
홍수라도 난 것처럼 흠뻑 젖어버린 다리 사이의 균열을 마지막으로 몇 번 문질러준 다음 입술을 뗐다.
고작 키스만으로 1분만에 17번을 절정한 카이킬리아는 힘이 완전히 빠져버렸는지 축 늘어진 채 내게 안겨왔다. 허벅지를 타고 끈적한 액체가 줄줄 흘러내려 가터벨트와 스타킹을 적셨다.
그 몸을 가볍게 안아들었다. 우리 모습을 흥미진진한 눈으로 지켜보던 미네르바에게 고개를 돌렸다.
“카이킬리아가 이렇게 됐으니 잠시 쉬게 해야겠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미네르바 님?”
“물론이지. 맡겨만 주려무나, 아이야.”
미네르바는 내게 찡긋 윙크를 하고선 카이킬리아를 데리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두 사람의 인영이 사라진 자리에 아주 옅은 푸른빛 마나가 감돌았다.
“…….”
페치는 방금 전까지 겁을 집어먹었던 것도 잊고, 열쇠를 집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