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03)
외전: 황금 열쇠 – 3
연금 공방.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서 보스를 처치하면 떨구는 각종 드랍템들을 무기, 혹은 여타 다른 장비로 바꿔주는 장소.
그리고, 전 대륙을 통틀어 한 곳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대륙 유일의 연금술사 집합소답게 괴짜들만 가득한 장소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미네르바의 마탑에 비견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물론 마탑의 마법사들과 비교하는 건 마법사들한테 실례였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새로운 지식에 미친 사람들이라면, 연금 공방의 연금술사들은 그냥 미친 사람들이었다.
이 세계가 아닌 브닼 4 기준으로도.
ㅡ콰아아아앙!
미치지 않았고서야, 연금 공방을 길이 하나뿐인 절벽 위에 세워놓고선 그 길을 함정으로 도배해놓는다든가 하는 짓을 벌여대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꺄아아악! 페치 살려!”
바로 옆에서 터져나온 장대한 폭발에, 페치가 주저앉아 벌벌 떨었다. 한 끗 차이로 폭발에 휘말리지 않았으니 그럴만했다.
나는 태연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방금 전의 폭발은 이쪽을 직접 겨냥하고 터뜨린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침입자를 직접 겨냥하는 함정은 조금 더 가야 나온다.
오히려 어줍짢게 폭발을 피하려 들면 휩쓸린다. 지금은 가던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게 맞았다.
“자, 잠시만 쉬면 안 돼요?”
벌벌 떨던 페치가 내 소매를 붙들고 간절한 표정으로 올려다보았다.
“함정 위치랑 작동 방식은 다 알고 있다고 말했잖아. 나보다 나이도 한참 많으면서 왜 그리 심약해?”
“…….”
핫핑크색 트윈테일이 제 주인의 감정을 표출하듯 아래로 축 늘어졌다.
결국 페치는 자신의 나이를 끝까지 숨겼다. 일단 200살 이상이라는 건 확실한데, 정확한 숫자는 아무리 물어봐도 묵묵부답이었다.
‘브닼 시리즈 페치가 전부 다 동일인이라는 가설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네.’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1부터 3까지는 세계 자체가 달라서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가서 쉬자. 가만히 앉아있다간 돌 굴러온다?”
“흐엑?!”
돌 굴러온다는 말에 펄쩍 뛰어오른 페치가 내 팔에 찰싹 달라붙었다.
나는 페치를 혹처럼 대롱대롱 붙이고 걸어가며 아마 지금도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을, 연금 공방 정면에 달린 작은 창문을 곁눈질했다. 돌 굴러온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였다.
저 창문으로 연금 공방의 주인이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게임에서도 중간에 3초 이상 멈추면 바로 돌이 굴러와서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진짜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란 말이지.’
함정에 소모되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가 않을 텐데 그걸 잠재적 고객들 상대로 뻥뻥 터뜨려대니 원. 그래서야 자금 충당은 대체 어떻게 하는 건지 의문이었다.
“아, 이건 피해야 돼. 꽉 잡아.”
“네에에에에엑?!”
페치를 잡고 훌쩍 도약했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유황으로 이루어진 불벼락이 쏟아져내렸다. 페치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 뒤로도 찬란하게 준비된 함정들을 모두 돌파한 내가 연금 공방 앞에서 멈춰섰다. 들쳐업었던 페치를 내려놓자, 페치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 숨만 헐떡였다.
순간이동을 사용했다면 구태여 함정을 돌파할 필요도 없었겠지만, 이놈들은 게임 시스템상으로 함정 구간을 지나지 않으면 플레이어 캐릭터에 아예 반응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브닼 4는 이 세계를 본따 만들어졌으니, 여기서도 혹시 그럴지 모른다. 황금 열쇠 건이 끝나면 다시 볼 일도 없는 사람들한테 괜히 두 번 왔다갔다 하긴 싫었다.
ㅡ쾅쾅쾅!
나는 숨을 고르는 페치를 내버려두고 연금 공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흐, 잘 왔어. 손님.”
안에서 나온 여자가 인사를 건네며 음산하게 웃었다.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카락은 잔뜩 떡져있는 데다 온통 산발이었다. 칠흑색의 눈동자는 이른바 죽은 눈에 가까웠고, 눈동자 밑에는 다크서클이 잔뜩 내려왔다.
펑퍼짐한 로브처럼 생긴 옷 역시 꼬질꼬질함 그 자체였다. 얼룩지고, 헤지고, 구겨지고, 뜯어지고, 찢어지고, 심지어는 이상한 냄새를 풍겨대기까지 했다.
머리 두 개를 합친 것 같은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슴은 덤이었다. 전체적으로 마른 편에 속하는 여자였지만, 가슴 하나만큼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컸다.
리제나 닉스, 교황 자매를 데려와도 저쪽이 명백히 우위에 있을 듯했다.
‘저러고도 예쁘긴 예쁘네.’
떡지고 산발인 머리, 생기라곤 조금도 없는 죽은 눈, 눈가를 뒤덮은 다크서클, 꼬질꼬질한 옷과 이상한 냄새라는 디버프를 덕지덕지 달고 있는데 그 와중에도 외모 자체는 출중했다.
역시 이클립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피조물다웠다.
‘닉스 하위호환쯤 되려나?’
결론만 말하자면 닉스를 방구석에서 몇 년쯤 숙성시킨 듯한 인상이었으나, 눈앞의 여자는 키가 엄청나게 크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나랑 비교해도 눈높이가 별로 꿀리지 않았다.
“첫 만남에서 우리 함정에 한 번도 안 걸려든 손님은 네가 최초야. 처음 왔을 땐 전부 다 한 번씩은 죽거나 다치는데. 마음에 들었어.”
일단 말하는 것만 봐도 미친년이라는 건 확실해보였다.
“들어와. 손님을 바깥에 세워놓을 순 없지. 들어와서 얘기해.”
음침한 여자가 히죽거리며 몸을 돌렸다. 나는 숨을 다 골랐는지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페치에게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윽! 이게 무슨 냄새…….”
페치는 연금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코를 감싸쥐었다. 나도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얼핏 맡기에도 저 음침한 여자의 몸에서 나던 냄새와 똑같았다.
온갖 액체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플라스크가 사방에 널린 데다 공방 바닥에는 수십 종류의 식물과 광물이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다. 악취가 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환경이었다.
“히, 너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네?”
여자가 코를 감싸쥐고 울상을 짓는 페치와 덤덤히 서 있는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또다시 히죽거렸다.
“그럭저럭 견딜만해서요.”
브닼 1 시절에 맡았던, 다 불어터진 시체 수천 구가 천천히 썩어가면서 풍기는 냄새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 나는 페치에게 마법을 사용해 냄새를 차단해주며 답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사라지자, 페치는 나를 향해 쭈뼛쭈뼛 고개를 숙여보였다.
“흐, 흐흐. 마음에 드는 말만 골라서 하는구나? 방금 그것도 마음에 들었는데.”
우리가 안내받은 장소는 연금 공방의 최심부였다. 음침한 여자는 그 안에 있던 다른 여자들을 무슨 비둘기 내쫓듯 쫓아냈다. 하나같이 음침한 분위기의 여자들이 비척비척 걸어나갔다.
각자 외모는 달랐지만, 떡지고 산발이 된 머리카락과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눈, 꼬질꼬질한 옷차림만큼은 서로 짜기라도 한 것처럼 일치했다.
“여, 여기 앉아. 히히. 마실 거라도 내줄게.”
앉으라고 권유받은 의자에는 온갖 얼룩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페치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앉았다. 나도 떨떠름하게 엉덩이를 붙였다.
책상 위에 웬 액체가 든 시험관과 주스병을 올려놓은 여자는 그런 내 모습을 침까지 흘려대며 지켜보는 중이었다. 흘러내린 침이 머리의 족히 두 배는 되어보이는 가슴 위로 뚝뚝 떨어졌다.
“여긴 왜 왔어, 손님?”
“설명드리는 것보다는 직접 보시는 게 더 빠르겠죠.”
황금 열쇠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검게 죽어버린 눈동자가 일순간 빛을 발했다.
“이거, 어디서 난 물건이야?”
“아는 게 있으십니까?”
“있지. 당연히 있지. 흐히히. 예전에 내 제자 한놈이 이거 만들겠다고 공방 박차고 뛰쳐나갔거든. 소식 안 들리길래 죽었구나 했는데, 성공했었네.”
“……제자요?”
그러면 눈앞의 여자는 대체 몇 살이란 말인가.
페치가 이 열쇠를 999번 사용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열쇠를 발견한 자리에서 죽은 시체가 해골로 풍화될 때까지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저 제자라는 사람이 황금 열쇠를 개발해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연금 공방에서 제자로 있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또 저 여자가 스승이라 불리게 된 시간만큼은 거슬러 올라가야 진짜 나이가 나온다.
나는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속으로 경악했다. 페치도 그렇고, 눈앞의 이 여자도 그렇고, 노화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니 외형만으로 나이를 구분하기가 더럽게 힘들었다.
“아, 잘못 말했어. 히히. 내 제자 말고, 내 스승님의 스승님의 스승님의…… 아무튼, 좀 많이 오래된 스승님의 제자. 우리는 죽을 때 여태껏 쌓아온 지식이 날아가지 않도록 기억을 물려주고 죽어서, 가끔 기억에 혼돈이 일어나거든. 내 진짜 나이는 아직 서른도 안 됐다?”
말하는 당사자의 모습이 모습인지라 별 신뢰는 안 가지만,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괜히 의심해봐야 내 머리만 아프다.
“그런데 이건 왜?”
“혹시 그 열쇠를 복제할 수 있는지 물어보러 왔습니다. 겸사겸사 다른 부탁도 하나 있고요.”
예전에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잡고 얻었던 아이템. 그걸 무기로 가공할 생각이었다.
날개 잃은 악몽과 불멸이 있는 지금은 얻어봐야 별 의미가 없는 무기지만, 그렇다 해서 창고 한 구석에 계속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흐, 뭔가 하자가 있는 물건이었나보네. 어디보자…….”
음산하게 웃은 여자가 뜬금없이 열쇠를 가슴골에 끼웠다. 그리고는 팔로 가슴을 양쪽에서 조이더니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출렁출렁 흔들렸다.
느닷없이 펼쳐진 기행에, 나는 그걸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달리 페치는 무척 태연한 얼굴이었다. 슬쩍 몸을 기울여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연금술사들이 물건 감별하는 방법이잖아요. 그것도 몰라요?”
“……저걸로 감별이 되긴 해?”
“저걸로 감별이 되긴 하냐니, 엄청 이상한 질문인 거 아시죠? 제가 상식이 있나 없나 시험이라도 하시려고요?”
“…….”
왠지 스텔라와의 첫 만남이 떠오르는 대답이었다.
파이즈리, 아니, 감별을 끝낸 음침한 여자가 가슴골에서 황금 열쇠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옆으로 살짝 벌려진 가슴골에서 김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가슴을 쥐고 흔들던 손이 테이블에 올려진 주스병과 시험관을 하나씩 쥐었다. 그리고는 주스병 안에 시험관 속 액체를 떨어뜨리려는지 왼손을 기울였다.
“남은 횟수가 한 번뿐이던데, 그래서 나한테 복제가 가능한지 물어봤구나. 천 번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던데 둘이서 많이 쓰고 다녔나 봐?”
그 와중에 또 맞혔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저는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습니다. 그렇지, 페치?”
“네, 네! 제가 다 썼어요! 999번 전부요!”
물론 책임의 소재를 명확히 하는 건 잊지 않았다. 다크 서클이 짙게 깔린 죽은 눈동자가 페치를 지긋이 응시했다. 페치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그러면 너희 둘은 아무 관계도 아닌 거겠네?”
“굳이 따지자면 채무자랑 채권자의 관계쯤 되겠죠. 제가 채권자고요.”
“흐, 히. 그렇단 말이지?”
음산하게 웃은 여자가 주스병에 부으려던 시험관을 내려놓고는 주스병만 패치에게 내밀었다. 페치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어…… 방금, 뭘 하시려고 했던…….”
“주스에 독 타려고 했는데, 흐.”
“네?”
사람은 어떤 감정이 한계를 넘으면 도리어 침착해진다고 하던데, 지금의 페치가 딱 그랬다. 새하얘졌던 얼굴이 급속도로 원래 혈색을 되찾았다.
여자는 페치 대신 날 쳐다보며 대답했다.
“너, 나 좋, 좋아하잖아. 그렇지? 아, 아까 함정 돌파할 때도 나 쳐다봤고. 여기서도 세 번이나 눈 마주쳤고. 다, 다 알아. 난 가슴이 커서 시선에 민감하니까. 그리고 여기 왔을 때도, 내, 내가 좋아서 냄새 나는 거 참아준 거잖아. 맞지? 그렇지?”
“……방금 뭐라고?”
정신이 아찔해진 나머지 나도 모르게 반말로 되물었으나, 여자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내가 좋은데, 옆에 여자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으니까. 그, 그래서 내가 대신 죽여주려고 한 건데. 저 여자랑 아무 관계도 아니라니까. 흐헤헤. 아이는 몇 명이 좋아? 나, 난 가슴 커서 아이들 잔뜩 먹일 수 있으니까 스무 명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미친년인가?’
브닼 4에서도 괴짜였던 연금술사의 원본은 내 상상 이상으로 미친년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