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04)
외전: 황금 열쇠 – 4
“흐헤헤헤헤.”
가슴에 침까지 뚝뚝 흘려가며 이상한 웃음을 짓는 여자를 내버려둔 채, 페치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핫핑크색 동공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정확히 일치했다.
이 여자, 상상 이상으로 미친년이라고 말이다.
“뭔가 착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는 그쪽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좋아하게 될 일도 없겠죠. 망상은 그만두세요.”
나는 재빨리 부정했다. 괜히 상처받을까봐 빙빙 돌려말한다거나, 혹시 가능하다고 생각될 여지를 남겨두면 골치아파진다. 그러니 이렇게 칼같이 차단하는 것이 맞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지만, 여자는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했다.
“아, 아까부터 나랑 눈 마주쳤잖아. 나한테 웃어도 줬잖아. 지, 지금도 그러고 있네. 흐히히. 그러면 나랑 사귀자고 에둘러 말한 거 아니야?”
“대체 어디부터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흐, 이상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스승님들 과거 기억에도 남자가 웃어주는 건 호감이 있어서 그런거니까 무작정 들이대도 된다고 나와 있었는데. 나, 나한테 웃어준 남자도 처음이고.”
이쯤되니 그 스승이라는 작자들도 뭐 하던 인간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설마 이 여자처럼 밖에 안 나가고 연금 공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건가.
몇 대, 혹은 몇십 대에 걸쳐서 차곡차곡 쌓아온 잘못된 상식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갑자기 저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 스승님이라는 분들이 잘못 알고 계셨던 겁니다.”
저런 착각을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기에, 나는 쐐기를 박았다. 마음이 단칼에 부정당한 여자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고개를 푹 떨궜다.
“흐히히히.”
그리고는, 갑자기 이상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들었다.
가뜩이나 생기가 사라져 있던 칠흑색의 동공에 끝조차 보이지 않는 무저갱이 깃들어 있었다. 오싹한 느낌이 한층 더해졌다. 옆에 있던 페치가 몸을 부르르 떨 정도였다.
“알겠어. 히히. 저, 저년. 저년 때문이지?”
“뭐라고요?”
“저, 저년 때문에 그런 거잖아. 저년 때문에 나 좋아하는데 눈치 보여서 제대로 못 드러내는 거잖아. 다 알아. 흐헤헤. 여, 역시 죽여야 했어. 죽이는 편이 맞았지?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지금 죽일 테니까, 지금 죽일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섬뜩하게 웃은 여자가 비척비척 일어섰다. 자기를 죽인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 페치가 내 팔에 엉겨붙었다. 그 모습을 본 여자의 눈이 한층 더 짙은 검은색으로 변했다.
“어떡해요?! 설마 저 이대로 죽게 내버려둘 건 아니죠?! 그러실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지. 걱정 안 해도 돼. 방금 좋은 생각이 떠올랐거든.”
원래는 내가 직접 제압하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 나보다 훨씬 더 효율이 좋을 사람이 떠올라서였다.
갑자기 순간이동으로 소환된지라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카이킬리아는, 내가 해준 간단한 설명을 듣자마자 길길이 날뛰며 연금 공방을 아예 갈아엎어버렸다.
액체를 담은 시험관, 부글부글 끓는 플라스크, 온갖 실험 재료 등으로 엉망진창이던 공방 내부는 성검이 몇 차례 훑고 지나가니 아주 깨끗한 모습으로 정화되어 있었다.
물론 연금술사들도 자기네 공방이 날아가는 걸 가만 두고보지만은 않으려는지 소심하게나마 저항하려 했지만, 카이킬리아가 어디 그런 걸 내버려 둘 성격이던가.
오히려 한층 더 철저하게 파괴당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 그만해주세요! 제발!”
연금술사들의 수장이 제발 그만해달라고 애걸복걸하며 항복을 외친 것은 연금 공방의 80% 이상이 성검 끝에서 잿더미로 변한 뒤였다.
“이 시건방진 년아. 감히 누구를 넘보려 하였느냐? 네가 눈독들인 사내가 누구의 것인지는 알고 있었느냐?”
나무 파편 하나에 걸터앉아 다리를 꼰 카이킬리아가 신경질적으로 발 끝을 까딱였다. 그 옆에 놓인 성검이 은은한 황금색 빛을 발했다.
황금빛 눈동자에서 살기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 살기가 자신을 향한 것도 아닌데, 저번의 트라우마가 도졌는지 페치가 딸꾹질을 했다.
“히, 히에에에엑…….”
음침한 여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머리 두 개 크기는 될 법한 가슴이 바닥과 상체 사이에서 마치 원형 쿠션처럼 양 옆으로 한껏 삐져나왔다. 그 탓에 옷의 가슴 부분이 한계까지 팽팽해진 상태였다.
나는 카이킬리아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수고했어, 카이킬리아. 갑자기 이런 부탁 해서 미안.”
“내 남자가 나를 불렀는데, 수고를 따질 것이 어디 있단 말이더냐. 응당 그래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니 감사는 되었노라. 또한, 너의 사과 역시 받지 않겠다. 내 남자를 지키는 것 역시 너의 여자로서 응당 그래야 할 일이니.”
카이킬리아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대답하였으나, 나는 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도 감사 인사는 해야지.”
엄지와 검지로 턱을 붙잡아 당기며 얼굴을 가져갔다. 입술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하자, 그 뺨에 홍조가 깃들었다.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눈마저 감아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어쩔 줄 몰라 이리저리 회전하는 금안의 모습이 훤히 드러났다. 거리를 더 좁혔다. 입술에 카이킬리아의 달뜬 숨결이 느껴졌다.
그렇게 입술이 맞닿기 직전.
ㅡ움찔! 움찔!
카이킬리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퍼져나갔다. 힘이 풀려 휘청이는 다리를 옆에서 받쳐주면서 귓가로 입술을 가져가 속삭였다.
“고마워, 카이킬리아.”
ㅡ!!!!!!
그 몸이 또다시 격렬하게 떨렸다. 투명하고도 끈적한 점성을 지닌 액체가 허벅지 안쪽을 타고 줄줄 흘러내려 검은색 스타킹을 적셨다. 복숭아 향기가 한층 짙어졌다.
수치스럽다는 표정으로 내게 몸을 기댄 카이킬리아는, 어떻게든 다리 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액체를 감춰보려는지 제복 치마를 아래로 끌어내리려 시도했다.
하지만, 엉덩이 밑부분의 살을 간신히 가릴 정도로 짧은 제복 치마가 그걸 감춰줄 수 있을 리 없었다. 카이킬리아는 결국 포기하고 부들부들 떨며 내 뒤로 숨었다.
이런 우리들의 애정 표현을 칠흑색 머리의 여자가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그 사람은 제 남자ㅡ”
“지금 무엇이라 하였느냐?”
내 뒤로 숨었던 카이킬리아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으르렁거리며 살기를 흘려보냈다.
나한테는 귀엽게밖에 안 느껴지는 행동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연금술사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고 페치는 호다닥 거리를 벌렸다.
카이킬리아의 등을 쓰다듬어 진정시킨 다음, 여자의 앞에 다가가 상반신을 일으켜주었다. 한껏 눌려있던 가슴이 솟구쳐 모이며 압도적인 중량감을 과시했다.
“그러고보니 이름도 안 물어봤네요. 이름이 뭐죠?”
“리, 린네…….”
린네라, 이 세계관 기준으로는 제법 특이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름에 대해서 크게 고민할 생각은 없었기에 곧장 다음으로 넘어갔다. 이클립스가 어련히 알아서 했겠지.
“좋습니다. 린네 씨. 이제 다시 원래 주제로 돌아가보죠. 황금 열쇠 복제, 하실 수 있습니까?”
“으, 응. 충분히 가능해. 아무것도 없이 밑바닥부터 만들어야 된다면 당장은 힘들겠지만, 결과물이 있는 걸 역설계해서 복제하는 일은 쉬우니까…… 그, 그래도 지금 당장은 무리야. 공방도 다시 지어야 하고, 연구하던 것도 마무리해야 하고…….”
“그건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카이킬리아가 때려부순 것들을 나몰라라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연히 보상은 해야 한다. 나는 제복 코트 안주머니에서 빈 스크롤을 꺼내 린네에게 내밀었다.
린네는 뭔가 음침하고도 찝찝한 웃음을 지으며 스크롤을 받았다.
“공방 짓는데 필요한 것들, 공방에서 부서진 것들, 그리고 앞으로 필요할 것들. 싹 다 적어서 청구하세요. 뭐가 얼마나 나오든 상관없으니까 아무거나 막 적어도 됩니다.”
어차피 내가 돈 문제에 발목 잡힐 일은 없다.
그리고 이 린네라는 여자에게 나름의 호의를 베풀어주는 이유가 따로 있기도 했고.
“지, 진짜로? 아무거나 막 적어도 돼? 진짜로 막 적는다?”
“얼마든지요. 그 대신, 연금 공방을 여기 짓는 건 안 됩니다. 이왕 반쯤 박살난 거 여기는 완전히 허물고 다른 곳에 지어요. 공방 부지 정도는 마련해드리겠습니다. 제국이 좋습니까, 성국이 좋습니까?”
“어, 어? 왜?”
“그러면 앞으로도 평생 이런 외진 곳에 틀어박혀서 손님들한테 함정이나 쓰면서 살 생각이었어요?”
“그럴 생각이었는데…….”
린네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제가 용납 못 합니다. 그리고, 이것도 받으세요.”
나는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을 잡고 얻었던, ‘심연의 정수’라는 이름의 아이템을 린네의 앞에 툭 던졌다. 그걸 본 린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야? 나도 처음 보는데?”
“제가 추가로 부탁하겠다던 내용입니다. 그걸 가공해주시면 돼요.”
이것이 린네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다른 이유였다. 이제 할 것도 없겠다, 브닼 4에 나왔던 무기들을 전부 수집해볼 생각이었으니까.
드랍템 가공은 연금술사들만 가능하니 호의를 베풀어서 나쁠 건 없었다.
“알았어. 어디…… 이건 검으로 해야겠네. 흐히.”
심연의 정수를 가슴 사이에 끼워넣고 비비는 것만으로 게임과 똑같이 검을 만들어야겠다는 결론이 나오자, 나는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저게 대체 무슨 원리로 가능한 건데.
“공방이 지어질 장소는 조만간 전달드리겠습니다.”
할 말을 끝낸 나는 카이킬리아와 페치를 데리고 연금 공방을 빠져나갔다. 페치는 드디어 이 더러운 공간을 탈출했다는 게 무척 기쁜지 폴짝폴짝 뛰었다.
‘어차피 곧 지겹도록 만나게 될 텐데.’
연금 공방이 위치를 옮기면, 그곳에 물건을 갖다주는 상인의 역할을 페치에게 맡길 예정이었다. 최소한 이 세계에서만큼은 사기꾼 페치가 아니라 그냥 페치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브닼 4 페치는 조지는 게 맞고.
“잠시 기다려주겠느냐, 델타?”
공방 앞의 함정 지대를 반 정도 빠져나갔을 무렵, 카이킬리아가 발걸음을 멈췄다.
“왜?”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아직 끝맺지 못한 일이 떠올랐느니라.”
린네와 연관된 일이 분명했다.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담아 당부를 건넸다.
“다치게 하지는 마.”
“이를 말이겠느냐. 네가 살려두기로 결정한 것에게 상해를 입힐 생각은 추호도 없느니라.”
“흐히히, 흐헷.”
린네는 연신 음침한 웃음을 흘려댔다.
그 커다란 가슴골에는 방금 델타가 쥐어주고 갔던 스크롤이 끼워져 있었다. 린네는 열심히 스크롤에 남은 델타의 체취를 감별해내는 중이었다.
“여, 여기서 추출만 해낼 수 있다면…….”
만약 이 스크롤에서 체취를 추출해낼 수 있다면, 그걸로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그 이후는 무척 즐거운 시간이 될 예정이었다.
“다, 다른 건, 다른 건 없나?”
스크롤을 가슴 사이에 끼운 채 몸을 일으킨 린네가 다급히 남아있는 물건들을 뒤졌다.
기껏 준비한 주스를 마시지 않았던 건 조금 안타까웠다. 그랬더라면 컵에 묻은 타액에서 유전자를 추출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유전자만 있으면 나중에ㅡ
“무척 즐거워 보이는구나, 여자.”
“흐엑?!”
린네는 공방을 뒤지던 그 자세 그대로 제자리에 우뚝 굳었다. 그리고는, 바닥을 살피느라 앞으로 엎드린 상태에서 천천히 위를 올려다보았다.
황금빛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파르르,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가 떨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의 남자로 쓰잘데기 없는 망상을 펼치고 있었느냐.”
“쓰, 쓸데없는 것이 아니ㅡ 힉?!”
ㅡ콰직!
성검이 여자의 머리 바로 옆에 박혔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한 가닥이 나풀나풀 떨어졌다. 그 수없이 많이 떡지고 산발이 된 머리카락 중에서, 정확히 한 가닥만을 자른 것이다.
린네는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만큼 멍청하지 않았다. 하려던 말을 멈추고 얌전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린네가 벌벌 떠는동안, 카이킬리아는 그 가슴골에 꽂힌 스크롤을 뺏어들었다.
“아!”
“나는 너를 다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이와 약속을 했으니, 여자 된 도리로서 마땅히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
바닥에 꽂혔던 성검을 빼든 카이킬리아가 그걸 휘둘렀다.
서걱, 스크롤이 반토막났다. 반토막난 스크롤은 곧 빛무리에 휩싸여 사라지기 시작했다. 린네가 사라지는 스크롤을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허나…….”
살기를 담은 금안이 린네를 또렷하게 응시했다.
“네년이 계속해서 스스로의 주제를 알지 못한다면, 나는 네년을 찾아온 첫 번째 여자에 불과할 것이다. 내 말을 명심하거라.”
할 말을 끝낸 카이킬리아는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델타가 그 능력을 신뢰할만큼의 두뇌라면 자신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정도는 알아들었을 것이다.
만약 못 알아들었다면? 그때는 델타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절정의 여파로 인해 아직까지도 욱신거려대는 아랫배를 꾸욱 눌러 진정시키며, 카이킬리아는 델타가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갔다.
아직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과 함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