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06)
외전: 풍유환 – 2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연신 내 손을 주물럭대던 미네르바의 손길도 어느샌가 사라진 뒤였다. 눈앞에서 저런 참혹한 광경이 펼쳐졌으니 당연했다.
세레스는 완전히 죽어버린 눈으로 일말의 굴곡조차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 자신의 흉부를 내려다보았다. 벌벌 떨리는 손가락이 허리 근처까지 흘러내린 마이크로 비키니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비키니는 다시 축 늘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오렌지색 눈동자가 한층 더 깊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손 끝이 가슴을 향했다. 손가락이 흉부와 맞닿고, 팔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에 맞춰 흉부와 맞닿은 손가락 역시 아주 잘 깎인 대리석 벽을 훑는 것마냥 완벽한 직선을 그리며 위아래로 움직였다.
가슴을 훑던 손은 얼마 못 가 떨어졌다. 지독한 침묵이 감돌았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그리고 나 따위가 위로한답시고 세레스가 안식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저기…… 있잖아. 델타라고 했지?”
문득, 세레스가 날 향해 고개를 들어보였다. 그 얼굴에는 여지껏 볼 수 없던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오늘 즐거웠어. 이 집은 알아서 처분해줘.”
‘이런 미친ㅡ’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의 심장을 찌르려는 칼을 잡아챘다. 대체 힘을 얼마나 줬는지, 손바닥에 붙잡힌 칼날이 파르르 떨릴 정도였다.
‘큰일날 뻔 했네.’
반응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심장이 찔렸을 것이다. 이곳의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잘 죽지 않는 건 맞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급소를 찔리면 죽는 건 똑같다.
기사단장들의 말로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는 것보다 심장을 찔리는 게 더 위험하다던가.
설령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되더라도 곧바로 치유 마법을 사용한다면 멀쩡히 살아날 수 있는데, 심장을 찔린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네르바가 있으니 죽지는 않았겠지만…….’
자살마저 실패한 셈이니 아마 훨씬 더 비참해졌으리라.
“이거 놔! 뭐 하는 짓이야! 나 그냥 죽을 테니까 내버려 둬!”
세레스가 발버둥을 쳤다. 테이블이 휘청이고, 그 위에 있던 음식 접시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와장창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칼을 잡은 그대로 옆에 다가가 손목까지 붙들었다.
“미쳤습니까? 왜 죽으려고 해요?”
“나한테 이제 살아갈 이유가 있어?! 다시 이런 꼴이 됐는데 살아갈 이유가 있냐고!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지! 그냥 죽을래! 죽을 거야! 빨리 놔!”
“진정 좀…… 하시죠!”
세레스의 저항은 필사적이었다. 대체 얼마나 안간힘을 써대는지, 카이킬리아를 힘으로 간단히 압도할 수 있는 나조차 칼을 빼앗기 위해 양 손을 전부 동원해야 할 지경이었다.
“일단 칼부터 내려놓고 얘기합시다!”
손목을 내리쳐 칼을 떨구게 만든 다음 벽으로 밀어붙였다. 양 팔을 머리 위에서 X모양으로 교차시키고 왼손을 이용해 교차된 지점을 단단히 틀어쥐면서 꽉 눌렀다.
세레스가 발악하듯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아무리 필사적이라 해도 작정하고 힘을 쓰는 나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흐아아앙…… 나 그냥 죽여줘…… 아니면 죽게 해줘…… 다시 이렇게 살긴 싫어…… 싫단 말이야…… 흐어엉…….”
내 품에 반쯤 안긴 자세가 된 세레스는, 힘으론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깨달았는지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대신 펑펑 울기 시작했다. 서러움을 가득 담은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륵주륵 흘러내렸다.
“세레스 씨.”
“흐어어엉…… 흐아아앙…….”
“가슴을 되돌릴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진정하시죠.”
“흐으윽…… 으응?”
가슴을 다시 되돌릴 방법이 있다는 말에, 대성통곡을 하던 세레스가 훌쩍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훌쩍…… 그게 무슨 소리야?”
“세레스 씨의 가슴을 다시 키울 방법이 있다고요.”
“……방법이 있다고? 정말로?”
순식간에 눈물을 멈춘 세레스가 나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오렌지색 동공에 이채가 맺혔다.
방금 전까지 세상이 떠나가라 펑펑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가슴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기세였다.
“저희는 예전부터 세레스 씨가 만든 풍유환의 효과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보세요. 약효가 떨어질 시점을 정확히 추측해서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사실은 그동안 까먹고 있었다가 생각나자마자 아차 싶어서 찾아온 거지만, 이럴 때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한 법이다. 나는 세레스의 시선을 태연하게 맞받았다.
“그러면 왜 미리 안 알려줬는데? 미리 알려주기만 했어도ㅡ”
“어차피 알려줘봤자 안 들으셨을 거잖아요?”
“…….”
“저희도 그때 가슴이 커진 세레스 씨가 얼마나 기뻐하고 있었는지 똑똑히 봤습니다. 그렇게 기뻐하던 와중에 풍유환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니 언젠가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간다고 말했다면, 세레스 씨는 과연 저희 말을 받아들였을까요? 아마 쫓아내지나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 건…….”
세레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자기가 보기에도 우리를 쫓아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할 여지가 없는 모양이었다.
“저희가 하필이면 지금 세레스 씨를 찾아온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조금 죄송한 행동이긴 하지만, 약효가 떨어질 때를 노려야 했으니까요.”
“죄송한 건 됐어. 그깟 건 아무래도 좋으니까. 어쨌든, 핵심은 내 가슴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이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맞지? 응?”
그 눈에 담긴 광기를 읽은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자면 지금처럼 일말의 굴곡조차 없는 가슴이 원래대로의 모습이긴 했지만, 괜히 그런 진실을 말해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해져 있는 세레스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좋아. 어떻게 하면 돼?”
“그 전에 잠시만요. 미네르바 님?”
“알았단다. 자, 이것부터 마시려무나.”
미네르바가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걸 본 세레스의 눈이 동그래졌다. 저번에 세레스가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색깔을 띠는 액체였으니까.
“저, 저게 네가 말한 방법이야? 저걸 먹으면 다시ㅡ”
나는 기쁨에 겨워 들썩이는 손목을 지그시 눌렀다.
“가슴을 크게 만들어주는 건 맞지만, 영구적이지는 않습니다. 세레스 씨가 만들었던 것과 똑같이 일시적인 효과를 발휘할 뿐인 물건이죠. 일단 가슴부터 ‘원래대로’ 되돌려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 맞아. 이런 이상한 상태로 있을 순 없으니까.”
나도 세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원래대로’라는 단어에 힘을 잔뜩 주었다. 주황색 머리카락이 위아래로 힘차게 흩날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만큼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무척 안쓰러운 광경이었지만,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손목을 잡고 있던 팔을 치웠다. 세레스는 허둥지둥 테이블로 달려가 풍유환을 들이켰다. 가슴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줄어들었을 때와 정확히 반대되는 순서였다.
“다행…… 흑…… 다행이야…… 돌아왔어…… 내 가슴…….”
교황 자매나 리제와 비교해도 몇 치수 더 클 정도까지 자라난 가슴을 손으로 주무르던 세레스가 눈물을 터뜨렸다. 가슴 위로 떨어진 눈물 방울이 그 사이의 골짜기로 또르르 굴러들어갔다.
“세레스 씨.”
“흐윽…… 응?”
“기쁘신 건 알겠지만, 일단 가슴부터 가리고 기뻐하시죠. 다 보입니다.”
“그, 그렇지! 미안해! 정신이 없어서 그만! 내, 내 속옷 어디갔지?!”
손으로 핑크빛 첨단을 가린 세레스가 호다닥 달려나갔다. 다급한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불쌍한 아이로구나.”
미네르바가 안타까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역시 동감이었다. 가슴이 원래 크기로 돌아가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죽으려 하다니 말이다.
이 타이밍에 세레스가 기억나지 않았더라면 이미 자살하고 남은 시체만 발견했을 수도 있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IF 시나리오였다.
“아이야, 손은 괜찮니?”
내 옆으로 슬쩍 다가온 미네르바가 오른손을 주물럭거렸다. 칼을 붙잡았던 손이었다.
“고기 써는 칼 따위로는 생채기도 안 납니다. 기름은 좀 묻었지만요.”
“……그렇구나.”
미네르바는 뭔가 묘한 목소리로 대답하더니, 내 손을 입으로 가져갔다. 할짝, 손바닥에 이질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미네르바가 내 손바닥을 핥기 시작한 것이다.
“뭐 하십니까?”
“닦아주고 있잖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팔을 빼려던 나는, 팔을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얌전히 포기했다. 감각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 정신이 반쯤 이상해진 모양이었다.
스크롤을 잘못 찾아줬나.
“나 왔어!”
세레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처음 봤을 때처럼 가슴 부분만 노출시킨 터틀넥을 입고, 마이크로 비키니로 유두만을 간신히 가린 차림이었다.
사실 노출 자체만 놓고 본다면 방금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었다. 오랜지색 비키니 근처로 핑크빛 원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 손톱만한 차이로 노출과 패션이 결정되다니, 여전히 적응하기 힘든 세계였다.
“……뭐 하고 있었어?”
세레스는 마치 고양이처럼 내 손바닥을 할짝여대는 미네르바를 보고 제자리에 서서 멈칫거렸다. 이번에는 저쪽이 어리둥절해질 차례인 듯했다.
“마법 연구의 부작용입니다.”
“그, 그래? 엄청 신기한 부작용이네.”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풍유환의 효과를 영구지속시킬 방법이 우리쪽에 있어서 그런지 더 언급하지는 않으려는 눈치였다.
“아무튼, 그 방법이라는 게 뭐야? 내가 뭐 해주면 돼? 설마 또 빛을 머금은 성수가 필요하다거나ㅡ”
“자세한 방법은 미네르바 님한테 들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설령 빛을 머금은 성수가 더 필요하다 해도 상관 없으니 안심하시죠.”
빛을 머금은 성수가 더럽게 비싼 이유는 오직 성국에서만 생산되고 작은 충격에도 변질되는 특성 탓에 운반이 더럽게 까다로워서인데, 나는 그 두 가지 다 해결 방법이 있다.
세레스가 다급히 미네르바를 쳐다보았다.
“방법이라는 게 뭔가요, 미네르바 님? 저도 미네르바 님 발가락이라도 핥을까요?”
“너 같은 아이한테 발가락을 내밀어서 뭘 하겠니? 그런 행동 따위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단다.”
얼마나 다급한지 절대로 사용하지 않던 존칭까지 써가며 질문한 세레스는, 미네르바가 혀놀림을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자마자 단번에 쪼그라들었다.
“다른 아이가 해준다면 모르겠지만.”
요염하게 나와 시선을 마주친 미네르바가 슬쩍 눈웃음을 지었다. 왜 저런 말을 하면서 내쪽을 보는 거지.
“걱정하지 말려무나. 어려운 것을 시킬 생각은 없으니. 아주 간단한 실험 하나만 도와주면 된단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