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1)
기사단장들은 단번에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경악을 가득 담은 눈동자들이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저런 정도라면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 안에 속했다. 황제에게 거짓말이라니 정신이 나갔냐면서 당장에 날 죽이려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신입 너는…… 정말이지…….”
“아,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 아이리스. 내가 황제 폐하한테 다른 마음을 품었다거나 그런건 아니니까. 그놈을 아무런 뒤탈 없이 처리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거든.”
아직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닌지, 아이리스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 눈이 일단은 이유를 들어보겠다는 무언의 시선을 보내오고 있었기에, 나는 말을 이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그놈은 황가 출신이야. 물론 옥좌 방향으로는 고개조차 안 돌릴 인간이지만, 옥좌랑은 거리가 멀어도 단순히 핏줄에 황족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 하나면 어지간한 귀족 이상의 권세를 누릴 수 있지. 그런 인간을 아무런 뒤탈 없이 처리하려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안되잖아? 그래서 어지간하지 않은 방법으로 처리한거야.”
“…….”
전 영주가 절대로 곱게 죽을 놈이 아니라는 것은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추방당하면서도 발악을 했던 탓에 황궁의 기사단에서 이런 변두리 영지까지 같이 끌려내려왔으니까.
그런 인간을 무탈히 처리하려면 정말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도 짐작했을거고. 다만, 내가 사용한 방법이 본인들의 예상보다 훨씬 극단적이었을 뿐이다.
악마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 모든 권리를 박탈시킨 다음 황제가 직접 처리하도록 만든거다. 이런 방법을 감히 상상이나 해 봤겠나.
“딱히 위험한 거짓말도 안 했어. 우연히 발견한 책의 처리 방법을 논하기 위해 영주에게 접근했다는 것, 아우로라가 설명했던 내용에서 거짓말이라곤 그거 하나가 전부야.”
“거짓말의 경중은 중요하지 않다. 폐하께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거지. 그리고, 만약 진실이 들킨다면? 처음부터 황족을 해할 목적으로 악마를 끌어들였다는 진실이 들킨다면 어떡하려고 이런 짓을 저지른거지?”
“아니요. 설령 들키더라도 딱히 문제가 되지는 않을겁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아우로라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이리스는 그게 문제가 안 된다고? 하는 눈으로 아우로라를 쳐다보았다.
“지금의 황제 폐하, 그러니까 제 고모 되시는 분도 그 돼지새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놈이 패악질을 부려댈수록 자신의 자리가 더욱 굳건해질테니 일부러 내버려뒀을 뿐입니다. 그런 인간을 아무 뒤탈 없이 처리하고, 친분이 있던 귀족 파벌들도 이번 일을 빌미삼아 압박할 명분이 생겼으니 대충 넘어가실 공산이 큽니다.”
‘저런 뒷사정이 있었나?’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기도 싫고, 어차피 영주놈은 능력도 없는 머저리였겠다 깊게 파봤자 득될 것 없으니 대충 자기 선에서 끝내버린 줄로만 알았었는데.
설마 황제도 그놈을 싫어하리라곤 생각 못했다.
물론 이쪽의 영주는 게임에서보다 훨씬 더 개막장인 성격이었으니, 브닼 4 본편에서도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거기선 나름 상식은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니 기사단장 여러분,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사회를 갉아먹던 벌레를 처리하고, 그 놈이 남긴 쓰레기를 치우고, 제멋대로 뒤틀린 것들을 원래 그랬어야 했던대로 되돌린 것이니까요. 단지 그 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부정적인 방법이 동원되었을 뿐이죠.”
황제를 고모라는 호칭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보증해주자, 기사단장들의 얼굴에 핏기가 조금 돌아왔다.
나야 스토리가 원래부터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었으니 계속 침착했고.
“하지만 역시…… 폐하께 거짓을 고하는 일은…….”
“기사단장 여러분들이 직접 입을 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저 아우로라와 저기 앉아있는 신입 기사가 해야 할 일이죠. 여러분들은 그저 다급한 지원 요청을 받고 달려와서 악마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계속 막고 있었다는 역할이면 충분합니다.”
“……악마가 일어나지 못하도록, 말입니까?”
“네. 애석하게도 저희들에게는 악마를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아우로라는 그러면서 나를 흘끗 곁눈질했다. 당당하게 그 시선을 되받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어처구니 없다는듯한 눈빛이 스쳐지나갔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어. 너희들한테도 분명 이득일걸?”
나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제 자리를 옮길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받았던 것들, 전부 다 이자까지 쳐서 되갚아줘야지.”
나는 기사단장들과 아우로라를 이끌고 영주가 죽기 직전까지 내몰린 채 꿈틀거리고 있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네 명은 반인반마가 된 영주를 모자마자 반사적으로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진짜 흉측하게 생겼네.”
리제가 중얼거리며 한마디를 했다.
“단순히 바닥에서 꿈틀거리기만 하는 것이 전부인데, 그것만으로도 역겹기 짝이 없네요. 빈사상태의 반인반마가 이렇다면, 진짜 악마가 보여주는 힘은 얼마나 거대할지 상상조차 안 가는걸요.”
빈사상태라.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일부러 축복받은 단검을 챙겨와 영주의 피를 죽기 직전까지 깎아놨으니까. 물론 이유가 따로 있는 행동이었다.
힘조차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임에도 역시 근본은 악마이긴 한 건지, 반인반마가 된 영주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주변의 지형을 점점 오염시킨다.
그걸 막으려면 황제가 도착해 이걸 정화하기 전까지 계속 영주를 두들겨패야 했다. 남는 힘으로 주변을 오염시키지 말고 체력 회복이나 계속 해대라고.
‘기사단장들한테 맡기면 딱이지. 지금까지 그놈한테 시달려왔으니 복수도 할 겸 해서.’
하지만 기사단장들이 여기에 도착하고 우리가 설명을 끝마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모르기에, 그 동안 저놈이 주변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해둬야 했던 것이다.
내가 축복받은 단검을 챙겨온 이유도 그래서였다.
“……그래서, 이놈이 힘을 회복하는 걸 우리보고 막으라는거지?”
클라우디아가 자기 키와 맞먹는 길이의 대검을 어깨에 턱 걸쳤다. 얼굴에 희미하게 떠오른 미소를 보니, 내가 무슨 부탁을 할지 대충 짐작한 듯 했다.
“말씀드렸잖아요? 지금까지 받았던 것들, 전부 다 이자까지 쳐서 되갚아줘야 한다고. 그냥 실컷 두들겨패시면 돼요. 물론 지하실이 안 무너지게 적당히 힘조절은 해주셔야겠지만.”
사실 딱히 필요하지는 않은 과정이었다. 이미 축복받은 단검으로 체력을 다 깎아놨으니, 저대로 방치해둬도 주변이 오염되는 일은 안 일어난다.
하지만, 기사단장들은 저 영주놈에게 지난 몇 년간을 지독히도 시달려오지 않았던가. 당연히 지금까지 받았던 것들을 되갚아줄 필요가 있었다.
죽이더라도 복수는 하고 죽여야지.
“그래? 그러면 사양 않고.”
내 말에 제일 먼저 나선 인물은 클라우디아였다. 대검을 무슨 골프채 잡듯이 잡더니, 옆날을 사용한 풀스윙으로 영주의 몸을 후려갈겼다.
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비늘로 뒤덮인 몸뚱아리가 붕 떠올랐다. 영주는 뒤로 한참을 날아가선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지하실 벽이 우르르 떨려댈 정도로 강한 공격이었다.
그 돌발 행동에 아이리스와 에리카는 깜짝 놀란 듯 했다. 반대로 리제는 뭔가를 잠시 생각하다가 허리춤에서 단검을 빼들고 칼날에 얼음을 두르며 활짝 웃었다.
“저 돼지를 안 두들겨패면 악마가 다시 부활할수도 있다 이거지? 걱정 마, 절대 그런 일은 없도록 할테니까.”
리제는 고마워, 신입! 이라는 짤막한 감사 인사와 함께 서릿길을 남기며 영주에게 달려들었다. 클라우디아는 그 뒷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깊게 생각할 거 없어, 아이리스. 저놈이 죽으면 앞으로 평생 안 올 기회야.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끝날 때까지 즐기면 돼.”
“……진심인가, 클라우디아?”
“진심이지. 그리고 너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잖아. 정말로 반대할거였으면 무기에서 손부터 뗐을거 아니야?”
클라우디아가 아이리스의 손을 가리켰다. 그 손은 진작부터 허리춤에 매여있는 칼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회만 된다면, 그리고 스스로를 납득시킬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칼을 빼들고 같이 달려들법한 그런 자세였다. 속마음을 들킨 것이 못내 부끄러웠는지, 아이리스의 뺨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나도 처음부터 저런 계획을 들었더라면 반대했을거야. 하지만 신입은 이미 저질렀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데 뭐 어쩌겠어? 믿어줘야지. 이미 자기가 한 말은 지킨다는 걸 증명하기도 했었고. 그러니까 아이리스 너도 그냥 대충 납득하고 와. 저기 껴서 같이 두들겨패기나 하자고.”
지하실 반대편에서 싸늘한 추위가 몰려들었다. 얼음에 가려져서 상황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리제가 제법 신나게 날뛰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공기가 급속도로 냉각되자 아우로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내 옆으로 슬쩍 다가와 팔을 맞댔다. 뭘 하는건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 있냐는 뻔뻔한 시선이 되돌아왔다.
“에리카, 가자.”
“어, 네? 저요?”
“그럼 여기에 에리카가 너 말고 또 누가 있는데? 너 의외로 리제랑 많이 닮아서 지금 뭐 생각하는지 뻔히 보이니까 고민하는 척 하지말고 그냥 따라와.”
에리카는 자기 언니랑 닮았다는 말에 잠시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얌전히 클라우디아의 뒤를 따라갔다. 손에 들린 무기에서 조금씩 화염이 일었다.
우리 옆에 혼자 남겨진 아이리스는 저만치에서 영주를 다 함께 두들겨패기 시작한 나머지 세 명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신입.”
“듣고 있어.”
“클라우디아가 말했던대로다. 만약 네가 미리 허락을 맡으려 했다면 나는 결사반대를 외쳤을거다. 황제 폐하께 꺼짓을 고해야 한다니, 절대 제정신으로는 허락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처음에는 나를 질책하는 듯 했던 아이리스의 분위기가 그 단어를 기점으로 바뀌었다. 입꼬리가 중력을 거스르며 위로 올라가고, 눈매가 살짝 휘어지며 한층 부드럽게 변했다.
“너라면 이번에도 생각해놓은 것이 있으리라 믿는다. 네가 그 마물을 토벌하러 갔을 때, 나는 네가 돌아오는 그 순간까지도 널 신뢰하지 못했었다만…… 이번에는 다르다. 네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행동들이라면, 아무리 허무맹랑한 계획이라도 한 번쯤 믿어주기에는 충분하겠지. 이번 일은 전적으로 네게 맡기겠다.”
아이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무기에 바람을 일으키며 다른 기사단장들에게로 향하려다가, 잠시 멈칫 하더니 고개를 반쯤 돌렸다.
“그리고, 이런 기회를 마련해줘서 고맙다고도 해두마.”
“별 말씀을요.”
지하실 저편에서는 이미 폭풍에 가까운 무언가가 휘몰아치는 중이었다. 지하실이 번쩍번쩍했다. 나와 아우로라는 그 모습을 잠시 구경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 떠 있던 달은 산 너머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너, 은빛 여명 기사단에 입단한 지 얼마 안 됐었댔나?”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는데, 이제 아마 2주쯤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데도 저만큼이나 강한 신뢰를 얻었다는거야? 수완이 대단하네.”
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냥 게임에서처럼 스토리를 진행시키려고 했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말도 안 되는 업적으로 받아들여진 것 뿐이다. 내 기준으로는 이게 평범한거였다.
게다가 앞으로는 출몰하는 적의 스케일이 계속해서 커지기도 할테고.
브닼 4의 스토리 라인을 똑같이 따라간다면, 나는 도시쯤은 가볍게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마물들을 전부 다 혼자서 때려잡아야 한다.
1회차에서 엔딩을 보기 위한 권장 레벨대가 대략 100 정도였으니, 겸사겸사 그보다는 못한 것들을 수천 수만마리씩 때려잡아서 레벨 올리는 건 덤이고 말이다.
도시 멸망급 마물 수십 마리 토벌에 평범한 마물 수천 수만마리 토벌이라, 아마 황제도 그렇게는 못 할거다.
그게 전부 다 플레이어 한 명의 업적이었다.
‘게임 주인공들이 다 그렇지, 뭐.’
그러니까 주인공 아니겠는가.
우리는 정원 한 켠에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늦어도 아침쯤에는 도착할 황제를 기다렸다. 아우로라는 입담이 꽤나 괜찮았다.
시간이 흘러 해가 고개를 내밀 시간이 됐는데도 기사단장들은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지금껏 쌓인 감정이 꽤나 많았을테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하루종일도 할 수 있겠지.
“그래서, 나중에 하인 놈들도 싹 물갈이를 해야ㅡ 아.”
시종과 하인과 메이드를 어떻게 갈아엎을지 논의하던 와중이었다. 바로 옆 정원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풀밭을 짓누르고 불태우며 나타난 마법진은 하늘로 푸른 빛기둥을 쏘아올렸다.
전이 마법. 게임에서 보던 것과 똑같았기에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우리는 뒤로 멀찌감치 물러나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마법진이 쏘아올린 빛기둥 안에서 푸른 입자가 뭉치더니, 인간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팔과 다리, 머리와 몸이 생겨나고 그 몸에 의복이 입혀졌다.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빛무리가 천천히 기둥 바깥으로 걸어나왔다.
“……?”
아우로라와 똑같이 생긴 여자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