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10)
외전: 다른 세계 – 1
“평소보다 일찍 복귀하셨군요, 단장님.”
이제는 라크시아의 집무실이나 다름없게 된 칠흑 성야 기사단장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라크시아가 그렇게 말해왔다.
잠시 나가있던 시간을 계산해보았다. 아우로라를 찾아가서 15시간 정도, 인격까지 바꿔가며 계속 엉겨붙는 닉스를 기절시키는 데 18시간쯤, 마지막으로 이클립스에게 잔소리를 하느라 1시간.
“평소랑 비슷하게 돌아온 것 같은데?”
얼핏 듣기에는 반어법처럼 들리는 표현인지라, 만약 다른 사람이 한 말이었더라면 날 비꼬는 거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말을 한 사람은 라크시아였다. 라크시아의 성격상 직설적으로 말했으면 말했지 은근슬쩍 돌려서 비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듯, 라크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이번 복귀 시간은 평균보다 약 1일 9시간 정도 빠르셨습니다. 제 기억이랑 대조해봤는데 확실해요.”
“……그런걸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었어?”
“기사단장님을 보필하는 것도 부기사단장의 업무 중 하나니까요. 정말이지, 단장님 얼굴 보기가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습니다. 거기에 최근에는 특별히 신경써야 할 일까지 하나 더 추가되지 않았습니까.”
알고 있지. 나는 창문을 통해 떨떠름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성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내 방이 위치한 자리를 향해 각자 기도를 올리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한둘 정도가 아니라 수백 명씩이나 됐다.
모두 순례를 온 사람들이었다.
“소식은 모두 들었습니다. 대체 성국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신 겁니까?”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거주하는 이 성이 일종의 성소로 불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 찾아와 개인적으로 기도를 올리고 돌아가는 선에서 끝나더니, 갈수록 숫자가 늘어나선 마침내 수백 명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루에 수백 명이 찾아와 하루종일 기도를 올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여기 살던 영지민들의 불만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아니, 나올 리가 없었다.
성국 측에서 어마어마한 돈을 풀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다른 영지에 정착하게 해줬으니까.
즉, 지금 이 영지에 거주하는 인원은 칠흑 성야 기사단과 카이킬리아가 전부라는 뜻이다. 정말이지 경이로울 수준의 행동력이었다.
“저희도 아이테르눔 제국의 칠흑 성야 기사단이 아니라 라파엘라 성국의 성기사단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중이고 말이죠. 살아계신 성자님을 기사단장으로 두고 있는 기사단이란 직위가 이토록 부담스럽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 탓에 칠흑 성야 기사단은 졸지에 살아계신 성자의 성소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기사단이 되어버렸다. 라크시아의 감정을 대신 표출해주기라도 하듯, 토끼귀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칠흑 성야 기사단의 정복은 여전히 바니걸이었지만, 예전과 아주 큰 차이점이 있었다. 중간에 ‘개량형’이라면서 바니걸의 천을 투명한 타이즈로 바꿨다는 점이었다.
지금 당장은 시험삼아 몇 명만 입고 있는 상태인데, 워낙 평이 좋아서 조만간 칠흑 성야 기사단 전원의 복장이 투명한 타이즈로 교체될 것 같다던가.
‘활동성 개선용 정복이라고?’
일단 그놈의 하이힐부터 어떻게 해야되지 않나.
굽이 족히 7~8cm는 되어보이는 하이힐을 신고도 잘만 뛰어다니고, 훈련하고, 온갖 검술까지 선보여대면서 발목 부상이 하나도 없으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그런데, 저희는 어떤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단장님?”
라크시아가 토끼귀를 다시 쫑긋거리며 질문했다. 스티커로 유두만을 간신히 가린 적당한 크기의 가슴이 책상 위에 턱 올라왔다.
“카이킬리아랑 같이 어디 좀 다녀오려고. 당분간은 저택 쪽에 배치한 경호 인원을 줄여도 된다고 말해주려고 들렀어.”
“황제 폐…… 아니지, 그분과 말씀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반사적으로 황제 폐하, 라고 말하려다 급히 말을 바꾼 라크시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군요.”
본인은 그냥 평범하게 대하라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가 황제였을 때와 그대로인지라 기사단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는 듯했다.
‘선제라는 호칭은 본인이 싫다면서 거절했고, 원하는 대로 평범하게 카이킬리아라고 부르자니 기사단이 고장나버리고.’
참으로 애매한 위치였다.
“어차피 카이킬리아는 여기 있어봤자 할 것도 없잖아?”
“예. 요즘은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계시긴 합니다.”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카이킬리아는 아우로라가 살던 저택에서 메이드들의 수발을 받으며 유유자적한 무직 백조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이곳이 영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었다면 영주 노릇이라도 도맡아 했을 텐데, 사실상 성역이나 다름없는 장소가 되어버리다보니 자연스럽게 할 일이 죄다 사라져버린 것이다.
“따로 말씀까지 하시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조금 오래 자리를 비우시려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중간중간 돌아오긴 할 건데, 일단 당분간은 안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어디로 가시려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토끼귀가 쫑긋 일어섰다.
“내 고향.”
“이러려고 저한테 황제 자리 넘겨주셨어요, 고모?!”
카이킬리아를 붙잡은 아우로라가 발버둥을 쳤다. 카이킬리아는 그런 아우로라를 쉽사리 떼어내지 못해 쩔쩔 맸다.
눈매와 분위기가 조금 다른 것만 빼면 자매나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닮은 두 여자가 서로 달라붙어 아동바동하는 모습은 꽤나 귀여운 면이 있었다.
미네르바도 얼굴에 웃음이 만연한 채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저만 빼놓고 델타 세계에 가다니!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아우로라가 저렇게 화를 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들 내가 살던 세계에 가볼 예정인데, 아우로라는 황제로서의 업무를 처리하느라 도저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기 떄문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던 시절의 아우로라라면 뒷일은 미래의 자신에게 맡기고 훌훌 떠났겠으나, 지금은 그랬다간 추후에 밀어닥칠 후폭풍이 얼마나 클지를 예상하고 있어서 차마 그러질 못하는 것이다.
성국을 오래 떠나있으면 떠나있을수록 성자와 교황이 더 깊은 관계가 된다며 좋아하는 반응밖에 없는 플로레타나 루나와는 천지차이였다.
“……나도 이런 일이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하였다, 아우로라.”
“거짓말! 고모님이 이런 상황을 생각 못 하셨다고요? 그 고모님이?”
이번만큼은 카이킬리아도 무척 미안한지 별다른 반박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평소의 카이킬리아와는 사뭇 달랐다.
쩔쩔 매는 카이킬리아와 그런 카이킬리아를 바짝 몰아붙이는 아우로라를 웃음 가득한 얼굴로 지켜보던 미네르바가 내 귀에 입술을 가져왔다.
“슬슬 말해줄 때도 되지 않았니, 아이야?”
“저런 표정을 짓는 카이킬리아는 엄청 희귀하지 않습니까. 조금만 더 내버려두죠.”
“좋은 생각이구나.”
당연히 아우로라만 빼고 내 세계로 넘어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온갖 생체 실험을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 개량을 끝낸 미네르바의 분신 마법이 아우로라의 일을 대신할 예정이었으니까.
생체 실험의 지분은 거의 전부 세레스가 가져갔다. 마지막에는 무수한 실험 끝에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게 된 세레스를 순간이동 마법으로 집에 보내줬다던가.
“헌데, 아이야. 어떤 연유로 이리도 급작스럽게 너의 세계를 여행하자 제안한 것이니?”
“뭐…… 그럴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다 여신님 덕분이죠. 미네르바님 말대로 갑자기 결정된 사항이긴 합니다.”
이클립스가 내 잔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안한 것들 중 하나였다. 마침 나도 슬슬 할 말이 떨어져가고 있던 참이라 잘 됐다 싶어서 냉큼 수락했고.
물론 진짜 ‘벌’은 나중에 따로 주기로 했다.
“자, 둘 다 그쯤 해둬.”
나는 미네르바가 웃음을 참다 못해 쿡쿡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쯤 끼어들어 둘을 때어놓았다. 항상 가지런하던 카이킬리아의 칠흑색 머리가 살짝 헝클어져 있었다.
반쯤 울상이 된 아우로라가 내게 달라붙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델타! 정말로 나만 버리고 갈 거야? 아니지?”
“당연히 아니지.”
“……응?”
너무 시원스럽게 아니라는 대답이 나오자, 내 가슴팍에 얼굴을 부벼대던 아우로라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들었다. 날 올려다보는 황금빛 동공에 의문이 가득 담겼다.
미네르바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허공에 아우로라와 똑같이 생긴 분신이 나타났다. 뜬금없이 자신을 닮은 무언가가 나타나자, 당황한 아우로라가 손을 풀었다.
“데, 델타. 이거 뭐야?”
“아우로라 네 분신. 미네르바 님이 만드셨어.”
내가 분신에 대해 설명을 하면 할수록 아우로라와 카이킬리아의 얼굴이 미묘해져갔다. 미네르바는 그 모습을 보며 입을 틀어막고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설명이 끝나자, 아우로라와 카이킬리아가 동시에 뚱한 얼굴을 했다.
“왜 진작 말 안 해줬어?”
“왜 진작 말하여주지 않았느냐?”
아무리 봐도 쌍둥이 자매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모습에, 나도 쿡쿡 웃으며 말했다.
“둘이서 투닥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서? 계속 보고싶어지더라고.”
“귀, 귀엽다니! 흥, 그런 걸로 내가 넘어갈 것 같아?”
“아우로라의 말이 맞노라. 그런 옅은 수작으로 내가 넘어갈 것…… 같…….”
나와 시선을 마주친 카이킬리아가 말을 하다 말고 흠칫 몸을 떨었다. 입을 틀어막은 손가락 사이로 옅은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안 가 은은한 복숭아 향기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복숭아 향의 정체를 눈치챈 아우로라가 질린 눈으로 나를 다시 끌어안았다. 미네르바도 조용히 웃음기를 지웠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너무 심하게 대했나?’
이름만 불러도 절정하는 몸이 된 상태에서 13시간 가까이 몸을 섞어댔으니, 그러는 동안 다른 것까지 알아서 개발되어버린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칭찬 받다가 눈 마주쳤다고 가버리는 건 조금 너무하지 않나.
퍼져나가는 복숭아 향기로 인해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아우로라의 분신이 작동을 개시했다. 우리 넷을 향해 꾸벅 머리를 숙여보인 분신이 문 밖으로 사라졌다.
“……저희도 가죠.”
셋은 군말없이 내 말에 따랐다. 카이킬리아가 다가오자 아우로라가 슬며시 팔을 풀었다. 아우로라의 빈자리를 카이킬리아가 채웠다. 가녀린 팔이 내 등을 단단히 감쌌다.
“……더, 끌어안아주거라.”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채 쉴 새 없이 움찔거리는 몸을 안아들며, 미네르바가 열어둔 순간이동 포탈 안으로 들어갔다.
출발이 아주 조금 늦춰질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