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11)
외전: 다른 세계 – 2
이클립스의 세계와 내 세계를 비교했을 때, 의외로 건물 내부의 풍경은 그렇게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여신이 자기 세계에 온갖 물건들을 들여왔으니까.
에어컨이나 냉장고같은 전자제품이라든가, 내 세계의 외형에서 노출을 잔뜩 늘린 현대적인 옷차림이라든가 하는 것들 말이다.
건물 내부의 모습만 따지고 본다면, 그리고 모든 건물이 목조 혹은 석재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이클립스의 세계는 껍데기만 중세풍 판타지인 세계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다들 집 안에서는 별로 놀랄 부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거 뭐야? 설마 칼이야?”
“날이 엄청 무딥니다. 피부에 생채기나 조금 내고 말겠는데요?”
“이런 조잡한 물건을 호신용 단도로 쓰다니, 델타답지 않은 선택이군.”
“크로스가드도 없어. 잘못하다간 휘두르는 쪽 손가락이 나가겠는데.”
한쪽 벽에 꽂힌 식칼을 전투 단도로 착각하고 진지하게 품평하는 기사단장들.
“이런 내부 구조를 지닌 물건은 처음 보는구나. 일종의 전자 회로 집합체인가?”
“미, 미네르바 님. 그렇게 막 분해하시면 안될 것 같은데요. 아앗, 고모님은 뭐 하시는 거예요!”
“살짝 건드려보았을 뿐이니라. 이 물체가 터무니 없이 약한 것이다.”
컴퓨터 본체를 마법으로 죄다 분해하더니 그래픽 카드를 공중에 띄워 관찰하는 미네르바와, 모니터에 손바닥 모양의 움푹 패인 구멍을 만들어버린 카이킬리아, 그리고 그 옆에서 쩔쩔 매는 아우로라.
“신기해요, 세라피카 언니. 이 세계에는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에반젤리나. 하늘에 분명 태양이 떠 있는데도…….”
“하지만 신성력은 사용할 수 있어요. 보세요ㅡ 어라?”
“스텔라, 바닥이ㅡ 어, 엇?”
하늘에 태양이 떠 있음에도 신성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신기해하는 교황들과, 하지만 신성력은 사용할 수 있다며 황금빛 신성력을 일으키다가 바닥을 약간 태워먹은 스텔라, 그걸 보고 다급히 움직이다가 팔꿈치 부분의 갑옷이 걸려 벽지를 찢어먹은 셀레네.
“헤헤헤헤…… 델타의 침대…….”
마지막으로, 여기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뛰어들어 이불을 돌돌 말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닉스까지. 자기 혼자서 열심히 뒹굴거리는 중인 닉스를 제외하면 다들 총체적 난국이었다.
“헉! 부서졌다!”
“야! 델타! 아이리스가 네 단검 부쉈어!”
“나, 난 손가락으로 살짝 튕겨본 것밖에 없다!”
“척 봐도 약해보이는 칼이지 않습니까! 그걸 치면 어떡해요!”
“외형은 원래대로 돌아오긴 했는데…… 이거 다시 작동하는 것 맞아요? 전원버튼 눌러도 안 켜지는데요?”
“분해했던 순서 그대로 끼워넣었단다. 걱정하지 말려무나, 아이야.”
“이 넓직한 것은 대체 정체가 무엇이더냐? 손으로 누르면 누르는 대로 움푹 들어가다니, 이상한 물건이로다.”
“스텔라. 바닥이 잔뜩 그을렸습니다.”
“셀레네. 벽지가 찢어지지 않았습니까.”
“시, 신성 방호가 안 되어 있었네요……? 어, 어떡하죠? 성자님의 거처이니 당연히 되어 있을 줄 알고…….”
“죄. 죄송합니다. 성자님의 집이 그을렸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서 거리 조절을 하지 못했습니다.”
“델타의 냄새…… 히히히히히힛…….”
“…….”
온갖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고 소식이 들려왔다. 침대 냄새를 맡으며 손을 꼼지락거려대는 닉스가 차라리 양반으로 보일 정도였다.
기사단장들이 있는 부엌과, 성국 측 인원이 있는 거실, 나머지 4명이 있는 내 방. 다들 뭔가를 하나씩 해먹었다는 사실은 동일했지만, 그걸 대하는 태도는 각자 달랐다.
플로레타와 루나, 스텔라와 셀레네는 성자의 거처를 더럽혔다면서 안절부절못하고 상황을 수습하기 바빴다. 여긴 그래도 사건을 수습하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리제와 에리카, 아이리스와 클라우디아는 식칼을 내 개인용 무장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라 사건의 규모에 비해 호들갑이 컸다. 저쪽도 가서 별것 아니라고만 해주면 될 일이었다.
얌전히 침대에 누워있는 닉스야 말할 것도 없고.
문제는 나머지 세 명. 아니, 두 명이었다. 자기가 사고를 쳤다는 자각조차 없는 두 명 말이다.
미네르바에 의해 낱낱이 분해되었던 컴퓨터 본체는 다시 제 모습을 되찾긴 했으나, 아우로라가 전원 버튼을 눌러도 반응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뭔가를 날려먹은 듯했다.
카이킬리아가 만지작거렸던 모니터는 손가락과 손바닥 모양으로 움푹 들어간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그 와중에도 부서진 건 아니었으니, 다른 의미로 엄청난 업적이었다.
오직 아우로라만이 그런 둘을 말리느라 쩔쩔 매며 내 눈치를 살펴댔다.
‘이클립스 세계에 없던 물건이니 호기심을 갖는 것도 이해는 한다만…….’
여신 말로는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가져가지 않았다는데, 그러면 중세풍 판타지 세계에 멀쩡히 작동하는 에어컨은 대체 뭔가 싶었다.
일단 혼자서도 잘 놀고 있는 저쪽은 내버려두고, 교황들도 열심히 수습하려는 것 같으니 시간을 좀 주고,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줄 알고 당황하는 중인 기사단장들의 일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내가 다가가자, 단체로 몸을 움찔거린 세 명이 아이리스를 쳐다보았다. 아이리스가 쭈뼛쭈뼛 다가와 날이 반토막 난 식칼을 내밀었다.
“미안하다, 델타. 네 단검을 부러뜨렸다. 금액을 말해주면 나중에 제대로 변상하도록 하겠다.”
“그래도 고의는 아니었어! 칼이 너무 약해서 어쩔 수 없었, 으니까…….”
“……델타 씨 물건을 부숴먹은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긴 합니다만, 솔직히 손가락을 몇 번 튕긴 걸로 부서지리라곤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왕 부서진 거, 혹시 이 기회에 더 좋은 단검으로 바꿔볼 생각 없어? 내가 사줄게.”
머리까지 숙여가며 사과를 하는 아이리스의 옆에서 나머지 기사단장들이 열심히 변호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 손에 들린 식칼을 가져왔다.
내 웃음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아이리스가 몸을 살짝 떨었다.
“상관 없어. 이거 단검 아니거든.”
부러진 칼날과 손잡이를 맞댔다. 부러진 부분이 달라붙고,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완벽히 복구된 식칼을 본 4명의 눈이 동그래졌다.
다들 신기하다고 이것저것 부숴먹는 일이 많을 거라면서 이클립스가 부여해 준 복원의 권능이었다.
“그냥 식칼이지.”
“……식칼?”
요리할 때 쓰는 칼이라는 건 당연히 이클립스의 세계에도 있는 개념이었기에, 아이리스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필사적으로 변명을 하던 나머지 기사단장들도 마찬가지였다.
“식칼이라고? 아니, 무슨 식칼이 그렇게 약해?”
“재료가 잘리는 게 아니라 칼 손잡이가 먼저 부서질 것 같습니다만.”
“요리할 때 쓴다고 하면 아주 납득 못 할 정도는 아니긴 한데…….”
넷이 알쏭달쏭한 얼굴로 식칼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클립스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식칼은 내 세계의 식칼보다 훨씬 튼튼한 물건이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마나를 통해 제련하느라 강도와 경도가 상승하기도 하고, 그걸 사용하는 인간들의 신체 능력마저 이클립스의 세계가 우위에 있어서였다.
“익숙해질 때까지는 이것저것 많이 부숴먹을걸? 뭐 부술 때마다 나한테 재깍재깍 말해주기만 해.”
“……용서해주는 건가, 델타?”
“용서하고 자시고, 애초에 화도 안 났어. 내 세계에는 처음 와보는 거잖아. 호기심에 이것저것 만지다가 부숴먹을 수도 있는 거지 뭐. 너희가 안 다쳤으면 됐어.”
얘들이 고작 내 세계의 식칼 따위에 다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다, 다행이군. 고맙다, 델타.”
아이리스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흠칫거리며 시선을 피했다. 그날, 술에 취해서 나와 몸을 섞은 뒤부터 계속 저런 반응이었다.
에리카는 아이리스보단 덜했지만 흘끔흘끔 자기 언니의 눈치를 살펴대는 건 같았다. 어차피 내가 리제한테 다 말해준 뒤인데도. 리제는 잘했다면서 방방 뛰었다.
‘아이리스는 시간을 주면 알아서 극복할 거랬고, 에리카는 밀어붙이면 못 이기는 척 넘어올 거랬으니 괜찮겠지.’
클라우디아만은 속내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눈치를 챘을 것 같기는 한데,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다시 주방을 이리저리 살펴대기 시작한 기사단장들을 뒤로 하고, 거실 한 구석에 모여 쑥덕대고 있는 교황 자매와 스텔라, 셀레네에게로 향했다.
“오, 오셨습니까, 델타 님.”
“하시고 싶은 말씀이라도 있으신지요?”
교황들이 태워먹고 찢어먹은 자리를 몸으로 가리면서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스텔라와 셀레네는 그 옆에서 바짝 굳은 얼굴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려댔다.
플로레타와 루나를 한 팔씩 안아들고 가볍게 치웠다. 수습하려는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갔는지, 잔뜩 헤집어지고 그을린 바닥과 엉망진창으로 찢어진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스텔라와 셀레네가 곧장 바닥에 엎드렸다.
“죄송해요, 성자님! 저희가 저지른 짓이에요, 벌은 저희가 받을게요!”
“그, 그렇습니다. 모두 저희들의 잘못이니 저희들을 벌하십시오. 교황 성하께서는 아무런 잘못도 없으십니다.”
“괜찮아. 별거 아니니까. 그냥 고치면 돼.”
복원의 권능이 발동되고, 찢어진 벽지와 그을린 장판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마치 시간을 되감은 듯한 모습에 스텔라와 셀레네가 어리둥절하게 고개를 들었다.
“여신님이 그러셨거든. 너희가 내 세계로 넘어오면 당분간은 힘 조절 못해서 이것저것 많이 부술 거라고. 여신님이 다 예지하신 상황이니까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어.”
이것저것 부숴먹을 거라고 말하면서 복원의 권능을 건네줬으니, 지금의 상황을 예지했을 가능성이 100%였다.
아마 미래를 들여다 봤겠지. 이클립스가 볼 수 없는 미래는 세계를 먹는 자와 연관된 것뿐이니까.
“태양께서 이런 것까지 예지하셨다니…….”
“뭐, 뭔가 부끄럽습니다…….”
플로레타와 루나가 얼굴을 붉혔다. 스텔라는 어색하게 웃었고, 셀레네는 시선을 피했다.
설령 건물 자체가 무너지더라도 복구할 수 있으니까 호기심이 드는 건 마음껏 확인해보라고 해준 뒤, 마지막 세 명에게 향했다.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호기심을 해결한 둘과, 스스로가 사고를 쳤다는 자각조차 없는 둘의 옆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한 명에게 말이다.
“왔느냐, 델타.”
“어서오려무나, 아이야.”
“나, 난 말렸다?”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는 무척 당당했다. 아우로라가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과는 무척 대조적이었다. 나는 웃으며 아우로라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멀티탭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본체는 묵묵부답이었다. 옆에 놓인 모니터를 돌아보았다. 설령 본체가 멀쩡했더라도 켜지지 않았을 몰골이었다.
복원의 권능으로 수리를 끝낸 다음 다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익숙한 제조사 로고와 함께 부팅이 시작됐다. 미네르바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빛이 번쩍이는 본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설마 또 분해하시려는 건 아니겠죠, 미네르바 님?”
“아이가 허락한다면 못 할 것도 없단다.”
“방금 전에도 허락은 안 했었는데요.”
“성국의 여신이 아이를 총애해 마지 않는데, 안전장치도 없이 우리를 넘어오게 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니? 아마 무언가를 건드리거나 흩트러뜨려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 혹은 다른 무언가를 아이에게 건네주었겠지.”
톡톡, 가볍게 웃은 미네르바가 손가락으로 본체 케이스를 건드렸다.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여기 있다는 의미였다. 저 말이 맞아서 뭐라 할 말은 없었다.
“카이킬리아.”
다시 본체를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미네르바를 내버려두고, 카이킬리아에게 시선을 주었다. 카이킬리아는 조금 다른 의미로 혼을 내줄 생각이었다.
마침 무직 백조 생활을 이어가고 있기도 하겠다, 최적의 상태였으니까.
“혹시 게임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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