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14)
외전: 다른 세계 – 5
델타가 잠시 할 일이 생겼다며 집 밖으로 사라진 뒤, 남겨진 여성들 사이에서는 약간 색다른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우로라를 제외하고는 다들 신체 스펙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델타가 쥐고 있던 물건에 떠오른 글자를 놓칠 리 없었다.
그리고 무척 다행스럽게도, 전자기기에 떠오른 글자는 그녀들이 이해하기에도 손색이 없는 개념이었다.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플로레타와 루나가 방긋 웃었고, 미네르바가 흥미진진하다는 미소를 지었다. 스텔라와 셀레네는 아랫배 앞에 손을 모은 채 다소곳이 서 있었지만, 속내는 비슷했다.
기사단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건의 표면에 떠올랐던 글자를 본 뒤부터 잔뜩 들뜬 리제를 필두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약간 애매한 표정의 클라우디아를 빼면 말이다.
여기서 액정에 떠오른 문구를 확인하지 못한 사람은 게임에 바짝 집중하고 있던 카이킬리아와, 그런 카이킬리아의 옆에서 훈수를 두던 아우로라, 침대에 누워 꼼지락대던 닉스뿐이었다.
하지만 그 셋도 주변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슬그머니 하던 행동을 멈췄다. 카이킬리아와 아우로라가 게임을 중단하고, 닉스 역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저, 혹시 무슨 일 있었나요, 미네르바 님? 헤헤.”
이불에서 가슴 위까지만 쏙 빼낸 닉스가 음침하게 웃으며 질문했다. 미네르바는 반쯤 우화한 애벌레 꼴로 음침한 웃음을 흘려대는 닉스를 빤히 바라보다가, 지팡이로 바닥을 톡 건드렸다.
“어, 어어어?”
그러자 닉스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닉스는 팔다리를 허우적거렸으나, 미네르바가 직접 시전한 구속 마법을 고작 그런 행동만으로 풀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몸을 감싸고 있던 이불이 흘러내렸다. 그 안에 갇혀있던 온기와 습기가 해방되며 밖으로 터져나왔다. 얼핏 풍겨오는 달콤한 향기에, 미네르바는 눈살을 찌푸리며 닉스의 하반신을 쳐다보았다.
“아주 당돌한 짓을 하고 있었구나.”
바지는 풀린 버클 탓에 지퍼가 내려가서 음부를 아슬아슬한 지점까지 노출했고, 점성을 가진 투명색 액체가 바지 틈 사이로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점점 싸늘해지는 시선을 눈치챘는지, 손가락이 다급히 엉덩이 옆으로 숨었다. 하지만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묻은 투명한 액체는 이미 들킨 뒤였다.
“기분은 좋았니?”
“헤헤헤…….”
미네르바는 어색하게 웃는 닉스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바로 옆에서 델타의 이불로 자기 위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좋은 표정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었다.
딱, 손가락을 튕겼다. 닉스의 몸을 감싼 푸른색 마나가 밧줄처럼 변하더니 몸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겨드랑이는 물론, 가슴골과 복부, 그리고 다리 사이까지.
순식간에 귀갑묶기를 당한 모습으로 허공에 들어올려진 닉스가 당황한 듯 몸을 비틀었다.
“미, 미네르바 님? 그, 아무리 저라도 이런 건 좀 부끄러운데…… 헤헤. 풀어주시면 안 될까요?”
“델타가 돌아올 때까지 그대로 있으렴. 벌이란다.”
“네, 네?!”
델타가 올 때까지 귀갑묶기 자세로 있으라는 말에 닉스의 몸이 격렬하게 바동거리기 시작했다. 미네르바는 마나로 구속구까지 만들어 그 입에 채워버렸다.
마탑에서 벌을 줘야 할 일이 있을 때 사용하던 방식이었다. 체벌 대상을 이렇게 묶어서 1층 로비에 놔두고, 그 앞에서 다른 마법사들이 자유롭게 마법 공부를 하는 것이다.
부끄러운 자세로 묶인 상태에서 남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만 보는 것. 마법사에게 있어 제일 고통스러운 체벌이었다.
“읍! 읍읍!”
닉스가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했지만, 미네르바는 요지부동이었다.
저 아이의 처벌은 이불이 더럽혀진 당사자인 델타가 결정할 일이었으니까. 미네르바는 이 이상의 권한이 없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작전을 세워야 하지 않겠니?”
작게 손뼉을 쳐 주의를 환기시킨 미네르바가 그렇게 선언했다. 아직 어떤 상황인지를 모르는 아우로라와 카이킬리아, 바동바동거려대는 닉스를 제외한 전원이 긍정했다.
“무엇에 대한 작전 말이더냐, 미네르바?”
카이킬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아이가 들고 나갔던 물건에 떠오른 글자를 보았단다. 아이의 어머니에게서 온 연락이더구나.”
“……델타의 어머니?”
황금빛 금안이 이채를 발했다. 델타의 어머님이라면 천하의 카이킬리아조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카이킬리아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이테르눔 제국의 선대 황제인 자신, 그리고 현 황제인 아우로라, 영원의 마법사 미네르바에 라파엘라 성국의 교황 두 명.
제국과 성국 그 자체나 다름없는 다섯 명에,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 4명은 물론 전 이단심판관과 이단심문관까지 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필시 같은 길을 걷게 될 터.’
비록 아직도 정을 나누지 않은 여자가 섞여 있긴 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온 시점에서 델타에게 종속되리라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 없었다. 당사자들 역시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고.
아들이 이런 업적을 쌓았다면 그 어떤 부모님이라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많은 여자란 곧 남성의 힘과 능력이 그만큼 뒷받침해주고 있음을 의미하니까.
“어머님께서도 우리를 보신다면 델타를 자랑스러워 하실 것이다. 그러니 델타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준비하여야겠구나.”
그 얼굴에 결연한 감정이 떠올랐다.
델타가 아직 이 세계의 상식을 모두 알려주지 않았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설마 원래 세계로 넘어온 지 1시간도 안 돼서 가족에게 전화가 걸려오리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한 것이다.
곧 거실로 자리를 옮긴 여성진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해야 이 기회를 좀 더 제대로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옆에서 귀갑묶기를 당한 채 읍읍대고 있는 닉스는 덤이었다.
ㅡ그래. 아들.
톡 보면 전화해, 라는 단답의 문자를 보고 전화를 걸자, 신호음이 세 번 가기도 전에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변한 게 하나도 없는 목소리였던지라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차올랐다.
“네. 엄마. 왜요?”
ㅡ우리 아들이 자취를 해서 그런가, 얼굴 보기 참 힘들어서 전화했지. 왜요는 무슨 왜요니? 네 동생은 주말마다 꼬박꼬박 집에 와서 반찬도 가져가고 그러는데, 너는 오빠가 돼서 한 달째 얼굴도 안 보여주고. 내가 우리 아들 밥 먹는 거 본 지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네.
“…….”
그 싸가지 없는 년은 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를 굳이 기숙사 들어간 거라서 자주 들를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저는 집에서 통학하면 편도도 꼬박 2시간은 잡아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의미로 얼굴 보기 힘들었던 건 맞지만.’
이클립스의 세계로 끌려가서 보낸 시간까지 합하면 년 단위로 집에 안 돌아갔던 셈이다. 엄마 기준으로는 한 달만에 보는 아들이지만, 내 기준으로는 몇 년 만에 보는 엄마였다.
“알았어요. 이번 주말에 갈게요.”
ㅡ그래. 뭐 먹고 싶은 건 없고?
“어…… 글쎄요. 지금은 딱히 생각나는 거 없는데요.”
정말이었다. 이클립스의 세계에서 먹는 것만큼은 이것저것 잘 챙겨먹은 데다, 이제는 음식 같은 거 안 먹어도 굶어죽지 않는 몸이 됐으니까.
화장실을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은 당연하고.
ㅡ아들, 말 안 하면 풀밭이다?
“그러면 고기 종류로 아무거나요.”
식탁이 사바나 초원으로 변하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에 냉큼 답했다. 그러자 엄마의 목소리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ㅡ알았어. 주말에 온댔지? 그때 보자, 아들.
뚝, 통화가 끊겼다.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통화를 시작한 지 1분도 지나지 않았다. 한 달 만에 걸려온 아들의 전화를 저리도 깔끔하게 끊다니,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자유랑 방임은 한 끗 차이라고 했던가.’
내 부모님은 그 한 끗 차이의 구분이 명확하셔서 다행이었다. 지금도 성인이 됐으니 나 알아서 하라며 간섭을 안 하는 거랑은 별개로, 챙겨줄 때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챙겨주시니 말이다.
밥하기 귀찮다고 세 달 동안 라면만 먹다가 딱 걸려서 뒤지게 혼난 뒤로는 더더욱.
“거기 모여서 뭐 해?”
집으로 돌아오자, 12명이나 되는 대인원이 다 같이 거실에 모여 무언가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뒤에서 뭘 하나 싶어 구경만 하던 교황 자매나 기사단장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한창 게임에 집중하고 있던 카이킬리아와 아우로라까지 나와 있으니 뭔가 싶었다.
‘……웬 귀갑묶기?’
귀갑묶기를 당한 모습으로 허공에 매달린 닉스만 빼고.
“델타! 저 좀 풀어주세요!”
플로르의 인격이 튀어나온 듯, 음침한 웃음이 사라진 닉스가 날 보고 구세주를 만난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몸을 팽팽하게 조인 푸른색 끈과 팔다리가 뒤로 비틀린 자세 덕분에 가뜩이나 커다란 가슴이 한층 더 강조되어 보였다. 특히 가슴 주변에 둘러진 끈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마나로 닉스를 묶어둘 사람이라면 한 명밖에 없다. 나는 미네르바를 쳐다보았다. 미네르바는 손가락으로 닉스와 침대를 번갈아 가리키더니 자기 아랫배를 톡톡 건드렸다.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일단 닉스가 내 침대에서 뭔가 이상한 짓을 했다는 건 확실했다. 그냥 얌전히 누워있는 줄 알았더니 뭘 하긴 했구나.
“조금 더 그러고 있어.”
“어째서?!”
절규하는 닉스를 뒤로 하고 거실 테이블에 다가갔다. 교황들이 여기 앉으라는 듯 자연스럽게 양 옆으로 물러났다. 그 사이에 앉자마자 양 팔에 온기가 달라붙었다.
테이블 위에는 어디서 갖고왔는지 글자가 빽빽하게 적힌 공책이 있었다.
“이건 뭐야?”
“어머님을 뵈러 갈 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들의 존재가 곧 델타 님이 지니신 능력을 상징하니까요. 필시 어머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
그러고보니 얘들한테 일부다처에 대해서 설명하는 걸 까먹었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봐.”
양해를 구하고 몸을 일으켜, 거실에서 제일 떨어진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 혹시 이클립스가 이 세계의 위화감을 수정하면서 일부다처에 관한 위화감도 수정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희망을 담아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신호음이 끊기며 목소리가 들렸다.
“뭐?”
그런데, 내가 기대하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뭐야. 엄마 전화를 왜 니가 받아?”
“엄마 지금 바빠. 나보고 대신 받으라고 한 거니까 할 말 있으면 빨리 하고 끊지?”
쓰읍. 나도 모르게 솟구치는 혐오감을 눌러 참았다. 이년한테 그런 질문을 하긴 싫은데. 하필 오늘이 공강일이라 집에 먼저 들어와 있던 모양이다.
내가 약간 뜸을 들이자, 전화 저편에서 곧바로 불평불만이 터져나왔다. 이대로 가다간 끊고 다신 안 받을 분위기였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야. 이상한 생각 하지 말고 들어. 넌 일부다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이번에는 저쪽이 침묵했다. 나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별 시발 병신같은 소리를 다 듣겠네. 개소리는 개한테 해야지 왜 나한테 하고 지랄이야?”
“…….”
아무래도 이쪽 세계의 상식이 바뀌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개가 전화를 받았는데 개소리로 답해야지 인간 말로 하냐?”
“뭐? 야! 너 돌았ㅡ”
뚝, 내 할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곧바로 스마트폰이 진동하며 ‘여동생’이라는 글자가 떠올랐지만 무시했다. 이러면 내가 이긴 거다.
‘일단 12명을 동시에 데려가는 건 무리일 것 같은데…….’
그랬다간 엄마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실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고민하던 나는,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 싸가지에게 금수저 물고 태어난 흉부장갑이 뭔지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