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2)
‘……아니, 완전히 똑같지는 않네. 그냥 얼핏 본다면 자매나 모녀 관계로 착각할 것 같은 정도야.’
처음에는 아우로라를 빼다박은 듯이 닮은 외모인 줄 알았는데, 엄연히 다른 면이 있었다.
방금 빛기둥 속에서 걸어나온 여자의 눈매가 더 날카로웠고, 머리카락이 더 길었고, 인상이 더 차가웠고, 키도 더 컸고, 몸매도 더 우월했다.
그래, 꼭 어른으로 성장한 아우로라 같았다.
‘일단은 친척관계이기도 하니…… 저렇게 닮았다고 해도 딱히 문제될 건 없겠지.’
사실 둘 다 NPC 외형 리터칭 모드에서 나왔던 외모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황제의 모델링을 가져와 살짝 미성숙하게 손본 다음 아우로라의 모델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겠지만 말이다.
친척 관계라서 닮은 것이 아니라, 친척 관계이기에 닮게 설정한 것이다. 얼핏 보기엔 비슷해보이는 말이어도 엄연히 달랐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제국의 태양을 뵙습니다.”
나는 눈치껏 아우로라의 말과 행동을 따라했다. 게임에서야 대화를 시작하면 주인공 캐릭터가 알아서 자세를 취하거나 아무것도 안 해도 알아서 넘어갔지만, 여기서는 아닐테니까.
“고개를 들라.”
‘목소리도 비슷하네.’
목소리까지 아우로라를 닮았는데, 이번에도 저쪽이 더 성숙하다는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곁눈질로 훔쳐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정면에서 바라본 후에야 그 외모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칠흑처럼 새까만 흑발이 등 뒤로 길게 늘어져선 엉덩이 밑에서 끝을 맺었다. 마치 빚조차도 삼켜버릴 듯한 어둠처럼 느껴지는 흑발이었다.
앞머리는 가르마를 기준으로 단정히 정리되어 왼쪽 눈 윗부분의 이마를 드러냈다. 황금보다도 더 황금색에 가까운 금안에는 아무런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온통 검은색인 제복에는 황제의 문양이 수놓아져 있었고, 가슴골이 제법 깊게 파여선 그 안에 있는 풍만한 가슴을 밖으로 노출시켰다. 제복과 맨살 사이로 란제리 속옷이 얼핏 보였다.
속옷 역시 검은색이었다.
제복의 옷깃과 재질은 뻣뻣하기 짝이 없었으나, 허벅지를 감싼 검은색 가터벨트와 골반에 딱 달라붙은 치마 사이로 드러나는 허벅지는 무척이나 말캉말캉할 듯 했다.
제복의 치마는 엄청나게 짧았다. 허벅지와 골반에 딱 달라붙어선 몸의 라인을 그대로 드러냈을 뿐 아니라, 각도를 조금만 바꾸어도 그 안의 속옷을 보일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벌써 안에 있는 검은색 란제리 속옷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각도 탓에 내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무감정한 금안이 아우로라를 향했다. 똑같이 생긴 금안이 마찬가지로 황제를 향했다.
“내 오라버니였던 것에게 시달리느라 잘 지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우로라.”
“그렇습니다. 잘 알고 계시네요, 카이킬리아 고모님.”
“언젠가 그 자리를 차지하겠다 포부를 가졌었지. 성공한 듯 보이는구나.”
“제 힘으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저 혼자였다면 필시 그것에게 역으로 굴복하였겠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한 사람의 힘이었고, 저는 그저 입을 벌려 떨어지는 것을 받아먹었을 뿐입니다.”
잠깐 내 귀를 의심케 만드는 대화가 들렸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내용이 어떻게 됐든, 친척끼리 안부인사를 주고받는데 외부인이 간섭하기도 뭐하고.
아무리 그래도 첫 대화가 영주에게 시달리느라 잘 지내지는 못했을거라니. 그걸 알고 있었는데 내버려둔거였나.
“서신을 받았다. 그 머저리같은 것이 악마를 소환하려 했고, 그래서 죽였다지?”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악마를 죽이려면 신성이 깃든 주문이나 무기가 필요한데, 저희에게는 둘 다 없으니까요.”
“어차피 곧 죽을 신세일 터, 지금 살았든 죽었든 상관없는 일이다. 사건의 전말은 서신에 적힌 그대로이느냐?”
“예. 다른 점은 없습니다.”
“흐음, 다른 점이 없단 말이지…….”
카이킬리아는 가슴 밑에서 팔짱을 껴 가슴을 한껏 부각시킨 채, 손가락으로 팔뚝을 톡톡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모드의 영향인지, 팔짱만 꼈다 하면 죄다 저런식으로 가슴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자기 머리 크기만한 거유를 가진 리제는 물론이고 그에 한참 못 미치는 크기인 에리카마저도.
문득, 고개가 내쪽으로 돌려졌다.
무감정한 황금빛의 금안이 날 향하자마자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서는 몸 전체가 서늘해졌다.
‘와, 이거 장난 아니네.’
게임에서도 황제를 직접 마주하면 온 몸이 낱낱이 발가벗겨져 속마음의 본질까지 꿰뚫리는듯한 느낌이 든다는 NPC들의 증언이 있었다.
정작 플레이어가 그 기분을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마주해보니 절대로 과장이나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졌다.
정말로 속마음을 전부 다 꿰뚫리는듯한 느낌이었다. 정체모를 오한과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전신으로 찌르르 퍼져나갔다.
“네가 그 신입 기사이더냐.”
“그렇습니다, 폐하.”
“아우로라가 영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운 것이 너라고 하였지.”
“제가 옆에서 아무리 날뛰었다 한들, 본인의 능력이 출중하지 않았다면 성공할 수 있었겠습니까?”
카이킬리아는 또다시 입을 다물고선 뚫어져라 날 쳐다보았다. 등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래서야 중간에 벌어질 이벤트에 제대로 반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악마가 깃든 책을 발견한 것 역시 너라 하였느냐.”
“예. 그렇습니다.”
“서신에는 철갑을 두른 말과 그 말을 탄 철갑 기사를 잡았더니 악마가 깃든 책이 나타났다고 적혀 있었다. 그 또한 사실인 것이냐.”
“폐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 또한 사실입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안 했다.
목 없는 철갑 기병을 때려잡고, 걔가 드랍한 봉인 해제 열쇠를 얻어 던전 봉인을 풀고, 던전에 들어가서 그 책을 얻은거니까. 그냥 중간 과정이 조금 생략된거다.
“그 책을 내 오라버니였던 것에게 가져가 해결 방법을 논의했다 하였고.”
“예.”
“헌데 그것이 제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멋대로 악마를 소환하려 건드렸다가 이 사달을 냈다지.”
“그렇습니다.”
이런 실없는 문답이 계속되자 약간의 불안감이 들었다.
서신의 내용 하나하나를 되짚으면서 플레이어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을 추궁하는 대사는 없었는데. 그냥 대화할 시간도 아깝다는 듯이 곧바로 지하실에 들어갔었지.
카이킬리아는 한 발자국씩, 아주 천천히 걸어오며 나와의 거리를 좁혔다. 거리가 좁혀질 때마다 심장을 조여드는 압박도 같이 강해지는 기분이었다.
분명 발을 풀받에 내딛고 있음에도 저벅 저벅 하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그 보폭에 맞춰 아주 천천히 좁혀지던 거리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이 서너 발자국 길이까지 줄어든 후에야 멈췄다.
“기사단에 합류한 지는 얼마나 되었느냐.”
“2주 가량 되었습니다.”
“2주, 2주라…….”
카이킬리아가 다시 팔뚝을 톡톡 건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한층 더 무기질적이고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허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내 오라버니였던 것이 쓰레기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사실도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냐?”
‘이런 시발.’
아이리스가 지적했던 사항을 고스란히 되묻는 카이킬리아를 보며, 속으로 나지막이 욕을 내뱉었다. 게임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그냥 곧바로 지하실에 내려가서 악마 처리하고, 사건이 어떻게 된건지 짤막하게 캐묻다가 가볍게 주인공이랑 이벤트 한 번 일으키고 영주놈 시체 회수해서 황궁으로 돌아가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리 이런 상황까지 생각하고 준비해두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당황한 모습이 얼굴에 나타났을 것이다.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안 봐도 뻔했을테고.
아우로라를 흘끗 바라보았다. 아우로라도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우로라는 괜찮아. 어차피 등 뒤에 있으니까 표정은 못 봐. 중요한 건 나다. 내가 당황하거나 동요하는 티를 냈다간 끝장이야.’
이미 판은 벌어졌고, 되돌릴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대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했다.
“파악하지 못하였습니다.”
“파악하지 못하였다?”
그 눈이 가늘게 떠졌다.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 기사단장님들이 그 영주를ㅡ”
“‘그것’이다.”
“예?”
“‘그것’이라고 칭하라 말하였다. 그것은 이제 제국법상으로 인간이 아닌 존재다. 왜 인간이 아닌 것을 인간만이 앉을 수 있는 직위의 호칭으로 부른단 말이냐.”
그러고보니 카이킬리아도 꼬박꼬박 그 영주를 ‘오라버니였던 것’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나는 급히 머리를 숙이며 말을 바꿨다.
“죄송합니다, 폐하. 실언이었습니다. 기사단장님들이 그것을 제대로 되먹지 못한 놈이라 욕하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습니다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그것과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놈의 성격 상, 만약 저희가 별다른 말도 없이 기사단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악마와 연관된 일을 해결하려 들었다간…… 그걸 빌미삼아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고 여겼기에 그리 한 것입니다.”
“흐음, 그래. 그것이 어떤 트집을 잡을지 모른다고 여겼다는 것이지…….”
카이킬리아가 두루뭉술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고는, 다시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이제 카이킬리아와 나 사이의 거리는 팔뚝 하나 길이보다 못할 수준까지 좁혀져 있었다.
반대편에서 아우로라가 어쩔 줄 몰라하며 발만 동동 구르는 것이 보였다. 설마 카이킬리아가 이렇게까지 깊게 추궁해오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겉으로 드러내지만 않고 있을 뿐, 속으로는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아우로라는 카이킬리아를 직접 만나봤기에 대충 넘어갈거라 생각했고, 나는 게임에서의 지식이 있었기에 대충 넘어갈거라 생각했다.
둘 모두 어느정도 근거가 있는 자신감이었으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틀렸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이런 트집을 말하느냐?”
‘……!’
카이킬리아의 손에 빛무리가 형성되는 것을 보자마자 피 묻은 검을 치켜들었다. 검집에서 검을 뽑아들 시간조차 부족했다. 그러려고 하는 순간, 이미 늦는다.
여기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최대한 빨리 반응하는 것이 핵심이다. 피 묻은 검을 검집째로 목 옆에 가져다놓았다. 그러자마자 강렬한 충격이 들이닥쳤다.
ㅡ채애앵!!!!!!
“고모님?!”
“호오?”
경악성에 가까운 아우로라의 목소리가 들리고, 동시에 내가 반응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는 듯 작게 감탄하는 카이킬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몸이 곧장 뒤로 튕겨나갔다.
땅에 칼을 박아넣어 몸을 지탱했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더 밀려났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족히 스무 걸음 가까이를 멀어지고 나서야 간신히 자리에 멈춰설 수 있었다.
저릿저릿한 손을 털며 자세를 풀었다. 칼을 박아넣어 속도를 줄이려 했던 흔적이 정원 흙에 한 줄로 길게 새겨졌다. 주변의 풀들이 온동 갈아엎어져 있었다.
‘와, 하마터면 반응 못할 뻔 했네.’
후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예상과 한참 다르게 행동하는 카이킬리아를 보고 당황했던 나머지, 하마터면 제대로 반응도 못해보고 죽을 뻔 했다.
검을 막는 게 조금만 더 늦었다거나, 검집째로 막으려 들지 않고 칼을 빼서 막으려 했었다간 그대로 목이 잘려나갔을테니 진짜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네가 세웠다는 그 업적들이 허풍은 아니었던 듯 하구나.”
어딘가 만족감이 묻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카이킬리아를 마주했다.
날 보며 입꼬리를 조금 끌어올린 카이킬리아의 오른손에는, 하늘의 태양만큼이나 밝고 신성한 빛을 발하는 성검이 들려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