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20)
외전: 다키스트 워리어 – 1
ㅡ콰지직!
“아.”
나는 폭음과 함께 완전히 박살나버린 능력 확인 구슬의 일부를 손에 들고 약간 놀란 기색으로 서 있었다.
폭발음이 바깥으로도 퍼져나갔는지 저 멀리서 허겁지겁 달려오는 하이힐 소리가 들렸다. 위치를 짐작해보니 대충 10초 정도면 도착할 듯했다.
“……설마 터질 줄은 몰랐는데.”
머쓱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 사방이 푸른색 파편 투성이였다. 그냥 측정 불가 메시지라거나 뭐 그런게 뜰 줄 알았지, 구슬 자체가 터질 거라고는 진짜 상상도 못 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단장님?!”
벌컥, 문이 힘차게 열어젖혀졌다. 바니걸을 입은 단원 세 명이 가슴을 출렁이며 방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놀란 표정이었지만, 경계는 하고 있지 않았다. 소리의 근원이 나라는 걸 눈치챈 거겠지. 나는 한때 능력 확인 구슬이었던 것의 파편을 발 끝으로 이리저리 치웠다.
“별것 아니야. 이걸 부숴먹었거든.”
“……능력 확인 구슬을 말이십니까?”
“맞아.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바니걸들은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나도 떨떠름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미네르바 님한테 부탁해서 최대한 빨리 새로 들여놔 줄게.”
말만 이렇게 해놓고 보는 눈이 없어지면 복원의 권능으로 고칠 생각이었다.
칠흑 성야 기사단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여신이 직접 내려준 능력이니만큼 복원의 권능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으니까.
“혹시 지금 당장 필요한 사람 있는 건 아니지? 한 30분이면 충분할 것 같긴 한데.”
“단련 후에 능력치가 올랐는지 확인한다면서 꼬박꼬박 들르는 애들이 몇 명 있긴 하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스테이터스의 확인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니까요. 능력치가 올랐다면 당장 본인이 제일 먼저 느낄 수 있기도 하고요.”
“어떻게 하신 겁니까, 단장님? 능력 확인 구슬이 측정 중에 폭발했다거나 부서졌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만…….”
“나도 궁금하네. 그냥 능력치 좀 확인해보려고 예전처럼 손 올렸다가 이렇게 됐거든.”
ㅡ뭐야? 다들 왜 모여 있어?
ㅡ단장님이 능력 확인 구슬 터뜨리셨다는데?
제일 처음 달려온 3명의 뒤로 온갖 종류의 바니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방 안을 쳐다보는 눈동자의 개수가 점점 더 많아졌다.
어지간한 단원들은 전부 다 모인 것 같은데, 폭발 소리가 그렇게 컸나. 아니면 할 일이 없어서 심심해 죽을 지경이던 와중에 가십 거리가 던져져서 모여든 건가.
ㅡ능력 확인 구슬을 터뜨렸다고? 그게 가능한 거였어?
ㅡ단장님이잖아. 우리가 모르는 능력 한두 개쯤은 가지고 계실 수도 있지.
수군대는 소리의 대부분은 ‘그게 진짜 가능하냐’로 압축될 수 있었다. 자기들딴에는 내게 안 들리도록 말하겠답시고 소리를 잔뜩 낮춰 속삭여댔지만, 애석하게도 잘만 들렸다.
ㅡ나는 알 것 같은데.
ㅡ그래? 뭔데?
ㅡ단장님은 평범한 인간이랑은 거리가 멀잖아. 구슬이 힘을 감당 못 해서 터진 거 아냐?
ㅡ오…….
ㅡ하긴, 단장님이시라면 그러고도 남겠다. 성국 사람들이 살아계신 성자라며 그렇게 떠받들잖아.
그 의견의 허무맹랑함을 지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나라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매일 수백 명의 성국 시민들이 찾아와서 날 경배하는 모습을 지켜보다보니 칠흑 성야 기사단도 슬슬 판단력이 흐려지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ㅡ나도 성국 사람들 따라서 단장님한테 기도나 드려볼까?
ㅡ왜?
ㅡ혹시 알아? 우리도 은총 받아서 능력치 올라갈지.
ㅡ그럴 거면 차라리 성국을 가든가. 단장님 믿으려고 왔다고 하면 바로 받아줄걸?
ㅡ바로 눈앞에 살아있는 성자님이 계시는데 왜? 그리고 성국 가면 하루에 16시간씩 기도만 한다던데, 그럴 바에는 안 가고 말겠다.
점점 더 헛소리가 심해지다가 나중에는 아예 나한테 기도를 드려보자는 의견이 진지하게 오가길래, 헛소리 집어치우고 일이나 하라며 쫓아보냈다.
수십 명의 바니걸 군단이 엉덩이를 씰룩이는 특유의 걸음걸이로 사라지자, 곧장 문을 닫은 나는 이클립스를 불렀다.
“네, 당신. 부르셨나요?”
이클립스는 이번에도 1초가 채 되지 않아 모습을 드러냈다. 이쪽을 상시 감시중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속도였다.
“혹시 능력 확인 구슬에도 한계치가 있습니까?”
다시 구슬의 표면에 손을 올렸다. 구슬은 푸른색 빛을 내며 스테이터스를 띄우려는가 싶더니, 퍽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복원의 권능을 이용해 수리하고 쿠션 위에 도로 올려놓았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클립스가 간단히 긍정했다.
“당연히 있죠.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 나타나는 스테이터스 창과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브닼 4와 똑같다면, 표시 한계치는 99라는 의미가 된다.
“이 세계의 피조물에 한정한다면 별 문제가 없었을 한계치입니다. 아무리 강대한 자라도 스탯이 일정 수치를 넘어가지 못하도록 해두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다르죠. 당신은 여기로 오기 전에 3번이나 같은 길을 거쳐왔잖아요. 당신의 스테이터스가 고작 99 따위로 끝날 리 없으니, 구슬이 정보를 모두 받아들이지 못해 과부하가 걸린 거예요.”
‘그게 진짜였네.’
여기로 찾아온 단원 중에 하나가 구슬이 힘을 감당 못 해서 터진 거 아니냐고 추측했었는데, 그게 진짜였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이었다.
“표기는 99까지밖에 되지 않는데, 그 이상의 힘을 지닌 존재가 능력 측정을 맡기니 오류를 일으킬 수밖에요. 지금의 당신이 지닌 힘을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시리즈의 스테이터스로 환산하면…… 아마 각 능력치마다 500은 가뿐히 넘어가지 않을까요?”
브닼 1부터 4까지 전부 다 99를 찍었다 쳐도 396인데 어떻게 500을 넘겼나 싶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겠지. 이클립스가 뭐하러 저런 걸로 거짓말을 하겠는가.
‘이클립스 능력치는 숫자로 환산하면 얼마쯤 하려나.’
“힉?!”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신이 갑자기 몸을 움찔거렸다. 그리고는 안절부절못하며 허벅지를 비비기 시작했다.
“왜 그러십니까, 여신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방금 자궁이 찌릿한 감각이 들어서…… 이상하다. 이번에는 이름 안 불렸는데 왜 그때랑 똑같은 감각이…….”
이클립스가 허벅지를 비비면서 찌릿한 느낌의 원인을 찾았다. 왠지 그 원인을 알 것 같았기에, 속으로 혼자 조용히 어이없어 했다.
저 여신, 방금 내가 ‘이클립스’라고 생각하자마자 저런 반응을 보였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여신이다보니 연습의 여파가 저렇게도 미치는 모양이었다.
혹시 모르니 한번 더 실험해보기로 했다.
‘이클립스.’
“하앙?!”
“…….”
결국 끝까지 원인을 찾지 못한 이클립스는 몸이 이상해졌다며 울상을 지은 채로 돌아갔고, 그 어마어마한 존재감 덕분에 스탯 확인 작업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그리고, 내가 이클립스한테 놀라느라 새까맣게 잊고 있던 만렙 전용 엔드 컨텐츠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정확히 사흘 뒤의 일이었다.
“단장님. 지금 당장 여기로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뜬금없이 스탯 확인을 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아우로라와 카이킬리아의 스탯 분배 효율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구경하던 와중이었다. 라크시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연락해왔다.
정말로 심각한 상황이 있을 때만 쓰라고 전해준 스크롤이었던 데다, 라크시아는 그걸 허투루 사용할 성격도 아니었기에 나도 살짝 긴장을 불어넣으며 통신을 받았다.
“왜? 무슨 일 생겼어?”
“웬 여자가 단장님을 불러오라면서 찾아왔는데, 성소에 함부로 발을 들인 것으로 모자라 단장님을 함부로 불렀다면서 성국 사람들이랑 시비가 붙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여자한테 덤벼들 기세예요. 말려보려고 했습니다만, 저희들 전원이 덤벼들어도 그 여자한테 상대가 안 됩니다. 빨리 안 오시면 진짜로 피 볼지도 몰라요.”
“알았어. 바로 갈게.”
자기도 따라가겠다고 하는 카이킬리아를 말린 뒤, 다급히 포탈을 열어 성으로 이동했다.
성은 완전히 개판이었다. 몇 군데씩 부러지고 박살난 칠흑 성야 기사단원들이 수녀에게 치료를 받고 있고, 온 사방에서 흉흉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보고받은 대로 금방이라도 일이 벌어질 기세였다.
‘저 여자인가.’
하지만 그 흉흉한 시선들의 한가운데 있는 여자의 표정엔 일말의 긴장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볼 뿐이었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는 갈색과 섞여 광택이 나는 검은색이었으며,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다. 피부는 마치 태닝이라도 한 듯이 건강한 구릿빛이었다.
키는 나랑 맞먹을 정도로 컸고, 드래곤 비늘처럼 생긴 문양의 칠흑색 갑옷을 입었다. 비키니 아머라든가 하는 무늬만 갑옷이 아니라 전신을 꽁꽁 싸매는 제대로 된 갑옷이었다.
허리춤에 찬 검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다들 물러나. 내가 처리할 테니까.”
“단장님!”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여자와 대치하고 있던 부기사단장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치료를 받던 일반 단원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여자의 시선이 내게 쏠린 틈을 타 재빨리 눈짓을 했다. 눈짓의 의미를 알아차린 부단장들이 부상자를 수습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 치료를 담당하던 수녀가 열심히 뒤따랐다.
“너희도 하던 기도 마저 하고.”
“예. 성자시여. 기꺼이 성자님의 말을 따르겠습니다.”
흉흉한 기세가 일거에 사라졌다. 여자를 둘러싸고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머리를 조아리며 짧게 기도를 올린 다음 기도소로 향했다.
이제 둘만 남았다. 지루해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여자는 내가 오자마자 자기가 언제 지루해했냐는 듯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당신이 칠흑 성야 기사단의 기사단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저쪽이었다.
“맞긴 한데, 무슨 일로 왔지? 보다시피 여기가 평범한 공간은 아니라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애들 건드린 대가는 확실하게 받아낼 거다.”
“너한테 볼일이 있어서 왔어.”
“나한테?”
“그래.”
여자가 내 눈을 또렷이 응시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냈어. 모든 모험을 끝냈고, 모든 적을 처치했고, 인간의 한계까지 성장했지. 나는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
‘……잠깐만.’
익숙한 대사였다. 나는 그걸 듣자마자 저 여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내가 왜 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지금의 나는 게임으로 따지면 사실상 만렙이나 다름없는데.
이클립스가 그런 짓을 벌였던 임팩트가 너무 컸나.
“너도 그렇잖아. 맞지? 너도 나처럼 모든 모험을 끝냈고, 모든 적을 처치했고, 인간의 한계까지 성장했어. 너도 이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고.”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서 만렙을 달성한 뒤에 스탯창을 확인하면 플레이어의 소문을 들었다며 찾아오는 NPC이자, 브닼 4 최후의 히든 보스.
“네 소문은 들었어. 이제 우리가 도전할 수 있는 상대는 서로밖에 남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결투를 하자. 너라면 나를 명예롭게 죽여줄 수 있겠지? 그렇지, 칠흑 성야 기사단장?”
다키스트 워리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