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22)
외전: 다키스트 워리어 – 3
녹슬고 망가진 검을 본 다키스트 워리어의 얼굴이 있는대로 일그러졌다.
검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검을 쥐지 않은 손은 저러다 손톱이 파고드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꽉 쥐어졌다. 힘을 잔뜩 받은 마디뼈가 새하얗게 변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솔라 카일룸을 원하니까 보내주겠다고. 왜, 뭐 문제라도 있어?”
“날 모욕하려는 것이냐!”
혼신의 힘을 다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여파만으로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경기장 내부와 관객석을 구분하는 방어 마법진이 힘차게 일렁였다.
쩌적, 마법진의 표면에 옅은 균열이 생겼다.
“…….”
피자를 집어먹던 기사단장들의 손이 굳었다. 카이킬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으며, 교황 자매와 전 심판관 심문관은 촬영을 멈췄고, 미네르바가 말없이 방어 마법진을 강화했다.
다키스트 워리어가 어떤 존재인지 설명을 듣긴 했지만, 귀로 듣는 것과 직접 체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여기서 당황하지 않은 사람은 힘을 정확히 파악할 능력이 없는 아우로라, 피자를 먹기에 바쁜 파르나리, 다리 사이로 가져간 검 손잡이를 의미심장하게 문지르고 있는 닉스, 그리고 나뿐이었다.
“나는 분명히 명예로운 죽음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런 조잡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나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면 뭐란 말이냐! 너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늘,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쓰레기같은 놈이로구나! 너 같은 놈에게 결투를 신청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목에 핏대까지 선 걸 보아하니 화가 정말 제대로 난 듯했다. 말투도 훨씬 더 딱딱하게 바뀌어 있었다.
“나라면 너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그렇다! 너도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고, 이룰 것이 없고, 삶의 방향과 목표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을 알지 않느냐! 그런데도 나를ㅡ”
“아닌데?”
“ㅡ이토록……?”
내가 너무나도 간단히 본인의 믿음을 부정해버리자, 말꼬리가 흐려졌다. 그 몸을 감싸고 있던 분노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망가진 직검의 녹을 떨쳐내며 말을 이었다.
“그래본 경험이 있어야 알지. 겪지도 않은 감정을 어떻게 알라고?”
꼬박 10년간 브닼 4를 플레이해오면서, 나는 게임에 질렸다거나 할 게 없으니 접어야겠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만렙을 달성해서 올라갈 곳이 없다고? 모든 보스를 잡아서 이룰 것이 없다고? 모든 스토리와 모든 엔딩을 봐서 방향과 목표를 잃었다고?
그럼 캐릭터를 처음부터 새로 키우면 된다. 수백 번을 그래왔듯이 말이다.
애초에 얼마 전까지 잠들어있다가 내가 스테이터스를 확인하자마자 깨어난 녀석이다. 실질적인 활동 시간은 일주일도 안 됐다. 그런 주제에 상실감을 논하다니, 웃음벨밖에 더 되나.
‘뭐, 아주 공감 못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맨손런, 눈가리고 깨기, 발로 깨기, 30프레임으로 깨기, 구르기 없이 깨기, 튕겨내기 없이 깨기, 소모품 사용 안하고 깨기 같은 온갖 제약 플레이들이 왜 나왔겠는가.
게임을 뽑아먹을대로 뽑아먹고 더 이상 할 게 없어서 나온 것들이다. 만약 게임이 모드 없이 그대로 갔더라면 나한테도 저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았겠지.
하지만 결과적으로 닼라 모드가 나왔고, 나는 플탐 3만 시간을 찍을 때까지 한 번도 브닼 4에 질려보지 않았다. 그러니 나한테 적용하긴 애매한 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맨손런도 안 해본 주제에 어디서 할 게 없다는 말을 꺼내?”
내 말을 듣고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다키스트 워리어는, 표정을 잔뜩 굳힌 채 더할 나위 없이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너라면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착각이었나 보군.”
분노가 극에 달한 나머지 180도 턴을 해버린 모양이었다. 살기를 가득 담은 빨간색 눈동자가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너는 내게 명예로운 죽음을 선사할 자격이 없다. 아니, 오히려 너 같은 놈에게 죽는 것이 불명예다. 용서하지 않겠다, 칠흑 성야 기사단장.”
“자기가 멋대로 명예롭게 죽여달라며 찾아와놓고선, 이제는 또 멋대로 그럴 자격이 없다고? 억지도 작작 부려야지, 자꾸 그러면 성격만 나빠져.”
그래도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된 녀석이니까. 그런 녀석한테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관객석을 흘끔 돌아보았다. 라크시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ㅡ걱정 마, 라크시아. 너보다 얘가 더 처참하게 당할 예정이거든.
사념을 흘려보냈다. 라크시아는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 웃고 있는 나를 확인하고 버럭 소리쳤다.
“애초에 망가진 직검을 안 꺼냈으면 됐잖아요! 그런 걸 위로라고 하십니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라크시아가 억울한 목소리로 외쳤다.
억울함은 얼마 가지 않았다. 자신을 향해 집중되는 시선에, 라크시아는 슬그머니 다시 착석했다. 부기사단장 몇 명이 깔깔대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는 말이긴 해.’
애초에 망가진 직검을 안 꺼냈으면 라크시아가 놀림받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 무기로 상대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저 녀석이 원하는 명예로운 싸움을 해주려면 별 수 없어.’
이클립스가 직접 내 스테이터스를 알려주지 않았는가. 각 능력치당 500은 가뿐히 넘어간다고 말이다. 그만한 스탯이라면 어지간한 무기로는 싸움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장렬하고 장대한 전투 끝에 맞이하는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라 최단시간 사망 신기록이나 경신하게 되겠지.
공격 몇 번 튕겨내고 특수 능력 한 번 써주면 픽 죽어버릴 텐데, 다키스트 워리어가 원하는 죽음은 그렇게 일방적으로 처발리는 싸움이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고 치열한 공방 끝에 정말 한 끗 차이로 아깝게 패배하면서, 상대에게 ‘훌륭한 전사였다’라는 극찬을 들으며 죽는 그런 싸움을 원하는 것이다.
‘브닼 4에서도 원턴킬로 처치하면 플레이어를 욕하면서 죽으니까.’
원 히트 킬 트레이너를 이용해 저걸 단칼에 죽여버린 유저들이 보여준 기믹이었다.
평범하게 보스전을 끝내면 마침내 솔라 카일룸에 갈 수 있다고 기뻐하면서 죽지만, 단숨에 끝내버리면 비겁하다고 플레이어를 욕하면서 죽는 정반대의 반응이 나온다.
‘그때는 이런 부분까지 디테일을 챙긴 갓제작사라고 칭송받았는데.’
설마 제작사가 진짜 신이었을 줄은 몰랐지.
“가만두지 않겠다, 칠흑 성야 기사단장.”
그 몸에서 흉흉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나도 웃으며 망가진 직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걱정 마. 나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
다키스트 워리어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었다. 자신은 분명 명예로운 싸움을 원한다고 했는데, 정작 저 인간이 꺼내든 무기는 관리조차 되지 않아 녹이 잔뜩 슨 무기였으니까.
그건 자신에 대한 모욕이자 불명예였다. 이겨도 얻을 것이 없고, 만약 진다면 대참사다. 눈이 돌아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머리 끝까지 차올랐던 분노는 손을 섞기 시작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흩어졌다.
‘이 놈, 정체가 뭐냐?’
휘청이는 자세를 가다듬었다. 분명 한 번 맞닿기만 해도 부러질 것 같이 녹슬고 망가진 검인데, 자신의 전력을 다한 공격을 손쉽게 맞받아치고 있었다.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를 악물고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첫 공격은 머리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치고, 몸을 한 바퀴 비틀어 대각선으로 베고, 다시 수평으로 휘두른 다음 밑에서 위로 올려쳤다.
그리고 그 모든 공격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튕겨났다. 고작 녹슬고 망가진 직검에 의해서 말이다.
“이 정도면 명예로운 싸움 맞지? 전력을 다해 덤벼들고 있잖아. 결판이 금방 나지도 않고.”
칠흑 성야 기사단장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예로운 싸움? 웃기는 소리였다. 자신을 봐주다 못해 농락하고 있으면서 명예롭긴 뭐가 명예롭단 말인가.
그 점이 훨씬 더 분노를 치솟게 만들었다. 마치 너는 내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듯한, 저 태연하고 여유로운 목소리가.
허리춤에서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마법을 시전했다. 발 밑에 푸른 불꽃이 타오르고, 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아, 이건 피해야겠네.”
불꽃은 닿지 않았다. 불꽃의 높이가 최저점에 이른 그 잠깐의 틈을 타 훌쩍 뛰어넘어버렸으니까.
곧바로 다음 마법이 시전됐다. 날아드는 마력 창은 구르기 몇 번에 간단히 무력화됐다. 그 다음 마법이 시전됐다.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나간 격류는 그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마법은 안 된다. 지팡이를 넣고 신성 촉매를 꺼내들었다. 촉매에 화려한 황금빛이 떠올랐다. 황금빛은 하늘로 치솟았다가 마치 운석이 떨어지듯 낙하했다.
“좋은 공격이지. 선딜이 너무 길지만.”
하지만 칠흑 성야 기사단장은 그 자리에 없었다. 어느새 황금빛의 편린조차 닿지 않는 자리로 가 있는 상태였다.
다음 신성 주문을 사용했다. 저 남자를 직접 노리는 대신 회피할 방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신성 촉매가 휘둘러지자 경기장 바닥을 금색과 은색 불꽃이 뒤덮었다.
다키스트 워리어는 도망칠 곳이 없는 기사단장에게 달려들어 머릿속에 있는 검술을 똑같이 시전했고, 하나도 남김 없이 깔끔하게 막혔다.
‘어째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려 수십 번이나 이어진 연격이다. 도망갈 곳도 없고, 몸을 피할 곳도 없다.
그런데 저 녹슬고 망가진 검 하나에 전부 다 튕겨나왔다. 도저히 말이 안 됐다. 다키스트 워리어는 점점 꺼져가는 신성 불꽃과 멀쩡히 서 있는 남자를 허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직도 인정 못하겠어?”
“시끄러워.”
전력을 다해 땅을 짓밟았다. 약간 무거워져 있는 몸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쾅! 하고 천지가 뒤집어지는 소리와 함께 가뜩이나 엉망진창이었던 원형 경기장이 산산조각났다.
땅이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지고, 압력을 견디지 못한 돌바닥이 자기들끼리 부딪히고 밀어내며 위로 솟아올랐다. 균열은 바닥에서 그치지 않고 벽까지 이어졌다.
검을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이제 전력을 다해 내려찍으ㅡ
“틀렸어.”
마치 자신을 훈수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ㅡ터엉!
“전투 피로가 가득 찼을 때는 공격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되니까.”
다키스트 워리어는 방금 벌어진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전력을 다해 검을 내리찍었을 터였다. 그런데 왜, 어째서, 저 남자가 가볍게 휘두른 왼손에 칼이 튕겨나갔고 자신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해도 도무지 그럴 수가 없었다.
꼭 머리가 작동을 멈춘 것 같았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남자의 태도였다. 자신은 무방비하게 무릎을 꿇고 있는 상태고, 누가 보더라도 완벽한 공격 기회였다. 하지만 남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왜 공격하지 않지?”
자신도 모르게 질문이 흘러나왔다. 분노나 증오같은 일차원적인 감정보다 훨씬 더 강하게 떠오른 의문 탓이었다.
“패링은 내 공격력 비례가 아니라 상대방 체력 비례거든. 이걸로도 패링 두 번 하면 너 죽는데, 그러면 명예로운 싸움이 안 되잖아. 아니다, 두 번 공격할 때 쯤이면 시간이 충분히 흘렀으려나?”
“……죽여버리겠다.”
여전히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는 못하는 말이었으나, 저 남자가 또 자신을 봐줬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다키스트 워리어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방금 전보다 힘이 빠져있단 사실을 눈치채지 못한 채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