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23)
외전: 다키스트 워리어 – 4
새 번째 패링을 성공하고 뒤로 물러났다. 전투 피로가 터져버린 다키스트 워리어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처음과 비교해 핏빛 적안에는 독기가 많이 빠져 있었다. 물론 살기까지 빠진 것은 아니었으나, 이대로 계속 진행했다간 죽음을 바라는 전사가 아니라 마음이 꺾인 전사가 될 것 같았다.
칠흑 성야 기사단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움직임의 여파만으로 방어 마법을 일렁이게 만들 수 있는 전사가 손도 못 쓰고 당하는 중이라 그런 듯했다.
나랑 같이 다녔던 여자들은 아무도 놀라지 않고 태연했다. 이런 걸로 놀라기엔 내 실력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지.’
다키스트 워리어가 말하는 ‘명예로운 죽음’의 기준이란 클리어 시간과 연관이 있었다. 10분 동안 망가진 직검으로 깔짝이다 원 히트 킬 트레이너 키고 죽이면 그것도 명예로운 죽음으로 쳐줬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딸그랑, 망가진 직검을 내려놓았다. 녹슨 검이 바닥과 부딪히는 소리에, 다키스트 워리어가 살짝 떨리는 눈동자로 망가진 직검을 쳐다보았다. 희미해져가던 살기가 다시 한껏 차올랐다.
“그런 조잡한 무기를 들 가치조차 없다는 뜻이냐? 나를 대체 어디까지 모욕해야 직성이 풀릴ㅡ”
“아니. 전력을 다해 상대해주겠다는 뜻이지.”
닉스가 다리 사이에 소중하게 끼고 있던 날개 잃은 악몽을 소환했다. 망가진 직검은 대충 경기장 구석으로 걷어찼다.
전력으로 상대해주겠다는 선언이 나왔음에도 저쪽의 표정은 그닥 밝지 않았다. 으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그리도 지독하게 농락하고 조롱하였으면서, 이제 와서 전력으로 상대해주겠다고?”
“맞아.”
“그럴 거면 처음부터 제대로 싸워줬으면 됐지 않나! 대체 뭘 위해서 그런 짓을 한 건가!”
뒷일은 내가 얼마나 잘 대답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나는 태연히 대답했다.
“너를 시험해봐야 했으니까.”
“……시험해? 나를?”
그 얼굴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시작하기 전에 말하지 않았나? 명예로운 죽음을 논하기엔 아직 못 해본 일이 많아 보인다고. 나한테 넌 그냥 실력을 너무 과신해서 허세만 가득 들어찬 인간밖에 안 돼.”
“그렇지 않다! 나는 정말로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단 말이다!”
“그럼 네 눈앞에 있는 난 뭔데?”
“…….”
대답이 궁해졌는지, 다키스트 워리어는 입술을 짓씹었다.
망가진 직검 하나도 못 이겨서 신나게 농락당하고 있으니, 올라갈 곳이 없다는 말은 사실상 거짓말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본인도 알고 있는 것이다.
“뭐, 그래서 첫인상처럼 네가 어중이 떠중이였다면 안 죽이려고 했거든. 실컷 농락만 하다가 살려서 보낼 예정이었지. 좀 더 강해져서 돌아오라고. 그게 내가 이걸 시험이라고 말한 이유야.”
“……통과 조건은 뭐였지?”
그런 게 있을 리가.
처음부터 시험 따윈 없었고, 시간도 끌 겸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주제에 세상 다 살아본 듯이 말하는 게 열받아서 혼 좀 내주려고 한 건데.
물론 이걸 그대로 대답할 순 없는 노릇이다.
“적당히 좋을 대로 생각하면 돼.”
왼손에 결정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오른손의 무기에 마법 피해를 추가해주는 인챈트를 걸고, 공격력이 증가하는 버프를 발동한 다음 작은 파란색 구체를 띄웠다.
지팡이를 집어넣고 신성 촉매를 꺼내 똑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오른손의 무기에 신성 피해를 추가해주는 인챈트를 걸고, 공격력이 증가하는 버프를 발동하고.
대신, 근처에 작은 태양과 달을 하나씩 띄워 마무리했다. 손바닥 크기의 태양과 달, 파란색 구체가 내 주변을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며 은은한 빛을 방출했다.
셋 모두 공격력 증폭 효과를 지닌 구체다.
신성 촉매를 허리춤에 차고 흑마법을 일으켰다. 왼손에 피어오른 흑염이 날개 잃은 악몽의 검신에 덧대어졌다. 푸른색과 황금색에 추가로 칠흑색이 깃들었다.
원래라면 인챈트는 한번에 하나씩만 발동하고 여러 개를 연속해서 쓰면 중첩되는 게 아니라 덧씌워질 테지만, 나한테만큼은 예외였다.
형형색색으로 타오르는 날개 잃은 악몽을 바닥에 거꾸로 박아넣었다. 그리고 예전에 수리가 끝난 피 묻은 검을 꺼내들었다.
그걸 배에 찔러넣어 체력을 한계치까지 깎은 다음 뽑아냈다. 검신이 핏빛으로 물들었지만, 핵심은 검이 아니라 깎인 체력이었기에 대충 어딘가로 던져버렸다.
손등에 그려진 룬 문신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 체력이 낮을수록 공격력이 증가하는 효과를 지닌 룬이었다. 나머지 3개는 예전부터 쓰던 조합이고.
이 모든 과정이 1초도 채 되지 않아 끝났다. 이클립스가 준비를 도와준 덕분이었다.
‘밑작업은 끝났다.’
공격력 버프의 중첩 개수도 개수지만, 중첩된 버프들의 진짜 핵심은 그 수치였다.
마력 스탯이 높을수록 버프의 수치가 증가하는데, 증가치에는 한계가 없었다. 그러니 깡스탯만 최소 500이 넘어가는 지금의 나라면 어떻게 적용되겠는가.
“……하.”
내가 그 짧은 시간 만에 버프 작업을 마무리하고 무지막지한 기세를 흘려대자, 다키스트 워리어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헛웃음을 흘렸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네. 지금 네 모습을 보니까 알겠어. 배에 칼 찔러넣었던 것 빼고는 다 따라 할 수 있지만, 따라 한다 해도 너처럼 되진 못하겠지.”
딱딱해졌던 말투가 부드럽게 돌아왔다.
“어차피 평범하게 덤볐어도 얼마 못 버텼어. 설마 상대가 적당히 휘두른 무기에 적당히 맞다가 끝나는 게 네가 바라던 명예로운 죽음은 아니겠지?”
“절대 아니지. 그때의 나는 너를 나와 비슷한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네 강함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 내 멍청함을 원망하면서 억울하게 죽었을걸. 후회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한, 명예롭게 죽었다고는 볼 수 없어.”
그 머리가 살짝 숙여졌다.
“너에게 감사해. 멋대로 망가진 직검을 사용해서 나를 농락한 건 여전히 기분 나쁘지만…… 힘을 평가받는 과정의 일부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어. 덕분에 네 진정한 힘을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 인간이 개미에게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처럼. 너도 그런 거였구나?”
‘단어 선택이 뭐 저래?’
전력이라느니, 진정한 힘이라느니. 설마 저것도 이클립스가 잘못된 지식을 주입한 탓인가.
“이렇게까지 버프를 중첩해서 싸워본 건 네가 처음이야. 그리고 네가 마지막이 되겠지. 어때, 이만하면 마음에 들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세계를 먹는 자와 싸우면서 중간에 버프를 걸려 했다간 몸이 갈가리 찢겼을 테니까.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그것 참 영광스러운 일이네. 너랑 비교하면 벌레나 다름없는 나한테 온 힘을 다해 싸워준다는 뜻이잖아.”
다키스트 워리어가 자세를 잡았다.
“고작 개미 한 마리를 죽이기 위해 인간이 모든 힘을 쏟아붓게 만들다니, 개미 입장에서 이것보다 더 명예로운 죽음이 어디 있겠어?”
그 눈에 깃든 것은 더 이상 분노나 무력함이 아니었다. 투쟁심이었다. 지독한 투쟁심이 핏빛 적안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나도 덤덤히 검을 휘두를 준비를 했다. 거창한 행동은 하지 않아도 된다. 딱 한 번이면 충분하다.
체력이 1%밖에 남지 않은 상태니 저쪽도 한 번이면 충분할지 모르지만, 이 상황에서 누가 우위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키스트 워리어가 땅을 박찼다. 그 몸에 공격력 버프가 걸렸음을 의미하는 붉은색 기운이 감돌았다. 몸을 감싼 붉은색 기운은 점점 더 짙어졌다.
나도 오른발을 살짝 내딛으며 검을 왼쪽 옆구리로 끌어당기고, 허리를 숙이며 휘두를 준비를 했다. 몸의 감각이 하나로 집중됐다.
‘지금.’
팔을 뻗는 시간까지 계산해, 정확한 타이밍에 맞춰 왼발에 힘을 주면서 앞으로 튀어나갔다. 다키스트 워리어의 왼손에 들린 지팡이가 푸른 빛을 발했다.
하지만 내가 더 빨랐다. 오른발로 땅을 짓밟아 무게중심을 싣는 동시에 팔을 뻗었다. 인챈트가 3개나 발린 날개 잃은 악몽이 수평으로 휘둘러졌다. 정면에 얇은 실선의 궤적이 나타났다.
원형 경기장의 절반이 그 궤적대로 잘려나갔다.
제일 먼저 관객석과 경기장 내부를 구분짓는 벽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얇은 실선을 따라 벌어진 균열은 벽이 제 무게를 못 버티고 내려앉으면서 점점 더 커졌다.
그 다음은 관객석이었다. 위에 아무도 없는 텅 빈 관객석이 조금씩 기울더니 점차 급격하게 속력을 붙였다. 기반을 받치던 돌이 어긋나며 기울어짐이 심해졌다.
ㅡ쿠르르릉…….
잠시 아슬아슬하게 버티나 싶었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벽돌 하나가 완전히 주저앉은 것을 효시로 마치 나비효과가 일어나듯 굉음과 함께 주저앉아버렸다.
여파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경기장을 통째로 잘라버리고도 계속해서 뻗어나간 참격은 그 뒤쪽의 울창한 삼림과 돌산마저 잘라냈다.
“…….”
이건 저지른 나도 놀랐다. 설마 스케일이 이렇게 커지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놀라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좀처럼 당황하는 일이 없던 카이킬리아나 미네르바는 물론, 닉스까지 아무 말도 못 한 채 우뚝 굳어 있었으니까.
공격력 좀 증폭시켰다고 지형까지 통째로 잘라버린 참격에 다 같이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사이, 다키스트 워리어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무릎을 꿇었다.
어차피 그대로 서 있을 힘도 없어보이긴 했지만.
“마침내…….”
목에 생긴 실선 사이로 핏방울이 맺혔다.
“솔라…… 카일룸…….”
데구르르, 잘려나간 목이 굴러떨어졌다.
“아, 생각보다 일찍 왔네.”
“그쪽이 여긴 어떻게……?”
다키스트 워리어는 여신의 옆에 너무나도 태연히 앉아 있는 델타를 보고 당황했다. 저 남자가 어떻게 여기 와 있단 말인가. 심지어는 바로 옆에 창조주께서 계시기까지 하는데.
“원하던 곳에 잘 갔나 확인은 해 봐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여신님?”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요.”
문득, 자신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엄청난 사람에게 죽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