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24)
외전: 미네르바 – 1
“하아…….”
스크롤에 마법 술식을 열심히 써내려가던 미네르바가 손을 멈췄다. 마법을 연구하던 와중에 아무런 이유 없이 손을 멈춘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네르바는 스스로 놀랐다.
쓰다 만 마법진에 자꾸 눈길이 갔지만, 어째서인지 별로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이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네르바는 두 번째로 놀랐다.
처음 있는 일을 동시에 두 개나 달성한 미네르바가 펜을 잡는 대신 가슴골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델타는 그걸 왜 거기 넣고 다니냐면서 어이없어했지만, 편한 것을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가슴 사이에 끼워놓는 것 말고는 딱히 넣어둘 장소도 애매했다.
“으으음…….”
화면이 꺼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미네르바는 스크롤과 폰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화면을 켰다. 이 안에 든 것 때문인지 도저히 집중이 되질 않았다.
미네르바가 사백 년 생애 최초로 ‘공부 중 딴짓’을 달성하는 순간이었다.
잠금이 풀리자마자 곧장 갤러리에 들어갔다. 수천 장의 사진이 주루룩 나열됐다. 델타의 어머니께서 보여주셨던 앨범에서 통째로 복사해온 것도 있었고, 찍힌 지 얼마 안 된 것도 있었다.
최근들어 한창 사진에 몰두하고 있는 교황들과 거래를 통해 받아낸 결과물이다. 델타의 과거 사진을 주는 대신 최근에 찍은 사진들을 받기로 한 거래.
어차피 델타도 교황들을 엄격하게 제지할 생각은 없어보였기에 직접 찍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건 여기 분류하고…… 이건 이 폴더에…….”
미네르바는 그 사진들을 하나씩 분류하며 천천히 관찰했다.
호감은 있었다. 고대의 스크롤을 찾아주겠다고 기세 좋게 선언했을 뿐 아니라, 그 선언을 지키기까지 했다. 호감이 없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의미의 호감이었다. 미네르바는 자신에게 남자가 생기리란 생각을 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법을 연구하기도 바빴으니까.
혹시나 싶어 중간중간 조금 야릇한 유혹을 해보기는 했다. 언젠가부터는 델타가 고대의 스크롤을 대가로 몸을 요구했더라도 기꺼이 다리를 벌릴 수 있을 관계가 되었고.
실제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델타가 유혹에 넘어올 듯 말 듯 하면서도 결국은 넘어오지 않은 탓이었다. 심지어는 미네르바의 행동이 점점 더 대담해지는 지금까지도 말이다.
미네르바 역시 스스로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몰랐고, 델타가 넘어오지 않는다면 자신도 먼저 접근할 생각은 없었기에 어영부영 야릇한 행동을 하는 선에서 끝내기만 했다.
적어도 몇 달 전까지는 그랬다.
“아…….”
미네르바가 손을 멈췄다. 교황들이 제일 아낀다는, 목욕을 끝낸 직후의 델타가 찍힌 사진.
비록 상반신밖에 찍히지 않긴 했지만, 오히려 상반신밖에 찍히지 않아서 지워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태양의 교황이 시무룩하게 말하길, 하반신까지 찍힌 건 델타가 지워버렸다고 했다.
“……읏.”
미네르바가 델타를 향한 감정을 자각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카이킬리아 덕분이었다.
정확히는, 카이킬리아와 델타가 몸을 섞은 이후라고 봐야 할 것이다. 델타의 품에 안겨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으로 쾌락에 절여져 있던 모습을 본 이후부터.
객관적으로 보나 주관적으로 보나 개차반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던 카이킬리아가 쾌락에 헐떡이는 모습은, 그 미네르바조차 호기심을 동하도록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평소에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성격이었으니 더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저런 모습일까, 하고.
“한 번만. 딱 한 번만 해볼까…….”
미네르바는 사백 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위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여자였다. 이론적인 지식은 있었지만,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시간에 마법 연구나 하는 편이 더 낫다고 여겨서였다.
하지만 지금, 그 결심이 조금씩 흔들리려 하고 있었다. 목욕 직후의 델타가 찍힌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던 미네르바는, 자신도 모르게 다리 사이로 손가락을 가져갔다.
“아, 안돼, 눈꺼풀아…… 제발 저항해줘…… 한 글자만, 한 글자만 더…….”
“일주일 동안 한 시간이나 잤어…… 난 근성도 뭣도 없는 게으름뱅이 쓰레기야…….”
“내가 밥을 안 먹은 지 얼마나 됐더라…… 음, 책상 위에 이주 전 점심 식사가 그대로 놓여있는 걸 보니 이주째인가 보군. 앞으로 이주일은 더 굶어도 되겠어.”
최근 마탑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일주일에 한 시간을 잔 마법사가 게으름뱅이라며 놀림을 받을 지경이었고, 백 수십 명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2주동안 쌓인 음식 접시 개수가 고작 4개뿐일 정도였다.
심지어 강요로 인해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도 아니었다. 마탑의 모든 마법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원인은 미네르바에게 있었다. 여태껏 발견한 고대의 스크롤들을 알아서 연구하라며 마탑에 풀어버린 것이다.
여태까지는 미네르바가 빨아먹을 대로 빨아먹은 다음에야 그 편린이나마 간신히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 고대의 스크롤이 다섯 개나 생겨났으니 눈이 돌아가는 것도 당연했다.
“여기서 이렇게…… 오.”
“갑자기 뭐야?”
“나 방금 일주일 만에 처음 입 열었어.”
“그렇게 말이 많으면 될 공부도 안 되겠다. 난 이번이 열흘 만에 처음 말하는 거거든?”
“노력은 하는데, 자꾸 혼자서 중얼거리게 되더라.”
“입에 접착제 바르고 공부해.”
“좋은 방법이네. 당장 하자.”
갈수록 과열되다 못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까지 포기하기 직전이던 마탑의 분위기는, 어느날 모습을 드러낸 한 인간에 의해 끝이 났다.
“델타 님께서 지금부터는 반드시 하루에 여섯 시간 이상, 바닥이 아닌 침대에서 잠에 들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식사는 하루에 반드시 3번씩 정량을 섭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어긴다면 한 달간 모든 스크롤과 필기도구를 압수하고 최고급 호텔에 처박아 강제로 쉬게 만들겠다는 명령이시다!”
“하루에 여섯 시간이나 자라고? 이런 세상에…….”
“흰빵이랑 고기 스프가 나오는 식사를 하루에 3번이나 해야 돼? 배 터져서 죽을 것 같은데?”
“자는 동안 마법진을 그릴 수 없게 됐어! 흑흑, 난 죽고 말거야!”
“최고급 호텔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한 달을 쉬라니, 그런 끔찍한 처벌이…….”
무려 사흘이나 마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있는 미네르바를 찾기 위해 들렀다가, 광기에 물든 마탑을 보고 어이를 상실한 델타에 의해서 말이다.
그 명령에 토를 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아무리 연구에 미쳤다지만, 고대의 스크롤을 찾아주고 다른 세계의 마법을 알려주기까지 한 델타의 말을 거역할 만큼 미치지는 않았으니까.
“여기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정도는 돼야 황궁 마탑에 들어올 수 있구나 싶더라. 다들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게. 게임에서는 안 이랬는데.”
“…….”
나는 무척 태연하게 게임에선 안 이랬다는 표현을 꺼낸 아우로라를 바라보았다. 황궁에 분신이 잘 있나 확인하러 갈 때도 저러더니.
“왜? 맞잖아.”
“그렇지.”
맞긴 한데, 아우로라가 저런 말을 하니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최근에 미네르바 님이 안 보이신단 생각이 들긴 했는데, 벌써 사흘이나 됐어? 하도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다 보니까 시간 관념도 없어졌나봐.”
“나도 예전에는 그랬지. 눈 감았다 떴다고 생각했는데 주말 사라져있고.”
예전의 나랑 똑같은 모습이다. 지금은 게임보단 여자들을 챙겨주는 쪽에 집중하고 있지만.
“아,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
아우로라가 가볍게 미소지었다. 나도 같이 웃어주며 아우로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새초롬한 눈을 하던 아우로라가 슬쩍 깍지를 껴왔다.
“여기 이렇게 태연하게 걸어가니까 신기하다. 아르카나 적대 루트를 타버려서 게임에서는 하나하나 죽이면서 가야 했는데.”
“…….”
우리는 얼마 안 가 마탑 최상층에 있는 미네르바의 공방 앞에 도착했다. 아우로라는 직접 올라가기엔 계단이 너무 많다며 투덜댔다.
“바로 들어가자.”
“어? 그냥 막 들어가게? 노크는?”
“예전에도 안 했어. 어차피 스크롤 연구하고 계실 텐데 들어가서 부르지 뭐.”
스크롤 연구하는 미네르바는 밖에서 폭탄이 터져도 제대로 못 듣는다. 그러니 직접 들어가서 불러야 한다.
이 안에서 미네르바가 할 일이래봐야 연구밖에 더 있을까.
문에 걸린 마법을 해제하고 열어젖히자마자 상큼한 레몬 향이 풍겨왔다. 아마 미네르바한테서 흘러나오고 있는 향기겠지.
“이 향기는…….”
“예전에도 고대의 스크롤 연구할 때 이러시더라. 신경쓰지 마.”
카이킬리아와 같이 몸을 섞으면서 ‘향기’에 대한 지식이 생긴 아우로라였기에, 공기중에 퍼진 레몬향의 정체를 대충 짐작한 듯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성만이 흘릴 수 있는 절정의 증거에서 과일향이 난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긴 했지만, 이 세계의 창조주가 이클립스인지라 납득이 갔다. 그 여신이 자기 피조물한테 뭔들 못 해주겠나.
“미네르바 님? 여기 계시ㅡ”
나는 공방에 미네르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침실의 문을 열어젖혔고.
“…….”
문을 등지고 책상에 앉아 다리를 양 옆으로 살짝 벌린 채 꼼지락대고 있는 미네르바를 발견했다.
등을 돌린 자세인지라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완전히 풀어헤쳐져 어깨와 날개뼈까지 고스란히 드러낸 목욕 가운과 바쁘게 움찔대는 어깨, 침실 안을 가득 채운 레몬향을 보면 무얼 하는 중인지는 뻔했다.
거기에 더해, 의자 밑에 웅덩이가 만들어질 정도로 흘러내린 투명한 액체와 내 사진이 떠올라 있는 스마트폰도.
“……다음에 오자. 바쁘신가 봐.”
“그, 그러게.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오자.”
아우로라와 나는 최대한 조용히 돌아서려 했다. 차마 지금 상황에 미네르바를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이번 일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듯했다.
“누구니?”
순간 미네르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락을 띠는 숨소리와 철벅거리는 물소리도. 아마 방음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껴 해제한 모양이었다.
“내가 분명 스크롤 연구 때는 멋대로 들어오지 말라고 했…… 을…….”
뒤를 돌아본 미네르바가 어색하게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의자가 삐걱이며 회전했다. 덕분에 앞모습까지 훤히 드러났다.
내 예상대로였다. 목욕 가운은 완전히 벗겨지다시피 해서 팔뚝에만 간신히 걸렸고, 가슴 첨단의 핑크빛 유두는 여기서도 알 수 있을 만큼 빳빳하게 솟았다.
땀으로 흠뻑 젖은 상반신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가슴골을 타고 흘러내리며 살짝 접혀진 배에 모였다. 의자 시트 역시 온갖 액체로 범벅이었다.
다리 사이는 척 보기에도 알 수 있을만큼 흠뻑 젖어 있었다.
“…….”
“…….”
“…….”
침묵이 감돌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