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28)
외전: 평범한 부탁 – 2
“오빠!”
통화음이 두 번째로 울리기도 전에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오빠를 찾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오돌토돌하게 솟아오르려는 소름을 쓸어내렸다.
“어우, 씨. 소름 돋아.”
“……동생 목소리 듣자마자 한다는 말이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너한테 오빠라는 소리 들으니까 몸이 알아서 막 공중제비 돌려 하고 그러는데.”
“좋아서?”
“가슴 다시 작아지고 싶다고?”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게 나댔습니다.”
얌전히 사과가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행동이었다.
“그래서 방금 톡은 뭔데? 뭐 개소리를 얼마나 길게 쓸 수 있는지 대회라도 했냐?”
“개소리라니, 그래도 내가 부탁하는 쪽인데 예의를 갖춰야…….”
“헛소리 말고 왜 전화하랬는지 용건이나 말해.”
폰 너머에서 “우이씨, 예의 바르게 대해줘도 지랄이야…….” 하면서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못 들은 척 넘어가주기로 했다.
평범한 인간은 절대로 못 들을 만큼 작은 목소리였으니까. 저걸 지적한다면 대체 어떻게 들었냐는 소리가 저절로 나올 거다.
“설마 풍유환 더 달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 너무 급격하게 키우면 의심받을 게 뻔하니까 1년 동안 천천히 늘려가자고 분명 합의했을 텐데.”
원한다면 동생의 목표치인 F까지 한번에 키워버릴 수도 있었다. 세레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가슴을 키우는 건 여신이 아니라 미네르바도 가능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랬다간 주변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살 게 뻔하다는 것이다. 빨래판같던 가슴이 F까지 커지다니, 의심을 안 받는 게 더 이상한 수준이었다.
쓸데없는 분란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추가적인 작업이 들어가야 하고, 그 말인 즉 이클립스가 이 세계에 간섭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동생년이야 가슴을 키우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렬한 나머지 내 선에서 상식 개변을 끝내놓을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닐 테니까.
여기가 이클립스 세계의 하위 차원으로 동화되는 건 절대로 사절이었다.
“절대 아니지! 내가 설마 그러겠어?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어…… 그러니까…….”
펄쩍 뛰며 내 말을 부정한 백유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렸다. 저런 반응이니까 더 의심이 들었다. 누가 봐도 변명 거리를 찾는 모습이었다.
“……혹시 있잖아. 새언니랑 잠깐 통화할 수 있어?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생각해보니까 내가 새언니 번호를 모르더라고.”
“내 여친이랑? 왜?”
“어…… 여자끼리의 대화라서 이유를 물으면 조금 곤란한데…… 그냥 속는 셈 치고 한번만 바꿔주라. 응?”
‘수상한데.’
뭔가 수상했다. 백유진 얘가 내 여친이랑 할 대화가 뭐가 있다고 여자끼리의 대화라는 말까지 들먹이면서 대답을 회피하려는지 의문이었다.
아이리스한테 명치가 오목하게 들어갈 만큼 치명타를 맞아서 인상이 별로 좋게 남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고민을 거듭하던 나는 문득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좋아. 해줄게.”
“진짜? 무르기 없기다? 고마워! 오빠!”
“대신, 짖어봐.”
“……잉?”
황당하다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그러면 뭐 공짜로 해달라고 할 심산이었어? 많이는 안 바라고, 개처럼 짖으면 통화시켜줄ㅡ”
“멍멍! 멍멍!”
“…….”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들려온 개 짖는 소리에, 이제는 내가 당황할 차례였다.
‘그걸 진짜 한다고?’
쟤 성격상 당연히 못 하리라 확신해서 전화 끊을 빌미 찾으려고 시킨 거였는데.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방금 걸로 확실해진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건 무조건 가슴이랑 관련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백유진 쟤가 저런 행동까지 할 리가 없었다.
“어때, 됐지? 이제 새언니랑 통화시켜 줘.”
동생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요구해왔다.
사실 거절해도 되긴 했다. 어차피 칼자루는 내쪽에서 쥐고 있다. 잘 들었다면서 통화 끊고 모른 척한다 해도 자기가 뭐 어쩌겠는가. 풍유환은 나한테 있는데.
하지만 그러기는 양심이 조금 찔렸다. 여태껏 지랄했던 값은 풍유환을 빌미로 이자까지 아주 톡톡히 쳐서 받았으니까.
업보를 모두 청산했는데 먼저 시비를 건다면 그건 내가 백유진 저년이랑 동급이라는 의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알았어.”
“와! 진짜지? 약속했다? 그럼 언제쯤 가능해? 시간은 내가 알아서 낼게. 언제 되는지 말만 해줘.”
“그렇게 약속 잡을 거 있어? 지금 하면 되는데.”
“어? 지금?”
나는 통화 끊지 말라고 한 뒤 그대로 내 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이불 냄새를 맡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던 닉스에게 폰을 들이밀었다.
눈을 동그랗게 뜬 닉스가 상반신을 일으켰다. 무지막지한 크기의 가슴 사이로 말려들어가던 이불이 도로 빠져나오며 허벅지 위로 툭 떨어졌다.
“누구야?”
“내 여동생. 너한테 할 말 있대.”
ㅡ대신 스피커폰으로 연결하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알아야겠어.
머릿속으로 사념을 전달했다. 분명 뭔가 속셈이 있다. 닉스는 고개를 끄덕이고 폰을 받아들었다.
“응. 유진아. 주원이가 그러는데 나 찾았다며?”
방금 전까지 음침하게 웃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약간 졸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뭐하고 계셨어요? 혹시 제가 중요한 일 하시는데 방해한 건 아니죠?”
“나? 델…… 아니, 주원이 침대에서 자고 있었어.”
“……오빠 침대에서요?”
“응.”
“지금 오후 1시인데 오빠 침대면…… 아니에요. 죄송해요, 언니. 제가 쓸데없는 걸 물어봤네요.”
시간과 침대를 언급하면서 목소리가 살짝 흐려지는 것으로 보아 이상한 오해를 한 듯했다.
뭐, 오해라기엔 절반쯤은 정답이긴 했다. 여기서 닉스랑 했던 게 아닐 뿐이지.
“언니, 혹시 옆에 오빠 있어요?”
그 말을 들은 닉스가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ㅡ없다고 해.
“통화 끝나면 말하라면서 컴퓨터 하러 갔어. 왜?”
“오빠 있는 곳에서는 하기는 조금 민감한 이야기라서. 언니. 언니는 가슴 엄청 크죠?”
동생이 제일 먼저 꺼낸 것은 가슴 관련 이야기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리제나 교황 자매, 닉스같은 규격 외 크기를 제외하더라도 다들 이 세계 기준으로는 거유라 불리고도 한참은 남을 크기였으니까.
심지어 저쪽 세상에서는 평균 이하의 빈유로 취급받는 에리카마저도 말이다.
“물론 오빠랑 새언니가 잘 어울리시는 이유가 그거 하나뿐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오빠도 언니 가슴을 싫어하시지는 않잖아요. 그렇죠?”
“그렇지……?”
“언니도 큰 가슴이 여자에게 얼마나 좋은 무기인지 알고 계실 거고요.”
“응. 맞아. 알고 있어.”
이번에는 비교적 확신에 찬 대답이 나왔다. 아마 지금의 몸을 닉스 본인이 직접 디자인했기에 그럴 것이다. 영혼 수호녀 스스로의 욕망을 가득 담은 체형이다.
“언니는 얼굴도 예쁘고, 가슴도 크시고, 성격도 좋고, 아무튼 이것저것 다 가지셨으니까 혹시 몰라서 부탁드리는 건데요…….”
열심히 아부를 떨던 백유진이 마침내 본론을 꺼내들었다. 나도 바짝 집중했다. 드디어 톡을 보낸 이유가 드러날 시간이었다.
“혹시 그 풍유환이라고 하는 거, 새언니도 가지고 있어요?”
이것 봐라.
어쩐지 내 여자친구를 찾더니만, 풍유환에 대해 설명할 때 카이킬리아도 같이 있었던 걸 떠올린 모양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찔러보려는 거겠지.
나는 일단 갖고 있다고 말하라는 사념을 보냈다.
“가지고 있긴 한데. 왜 물어보는 거야?”
“갖고 있다고요?! 진짜로요?! 크, 크흠흠. 별 건 아닌데요, 언니. 저한테 조금만 나눠주실 수는 없으세요? 언니는 이제 충분히 크시니까 필요 없으시기도 할 거고 하시니…….”
저 가슴이 풍유환 때문이라고 거하게 착각까지 하고 있다. 여신이 자기 몸을 본따 만들면서 유전자 단위로 축복을 내려준 거라 약 효과는 절대 아닌데.
“하지만 주원이랑 거래했잖아. 주원이라면 금방 눈치챌걸? 내 남자친구…… 응. 내 남자친구 눈치 엄청 빨라.”
닉스는 남자친구, 라고 말하다가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찌르르 몸을 떨었다. 얼굴에 헤실거리는 미소가 떠올랐다.
“에이, 조금이면 되는데 뭐 어때요! 옷 헐렁한 거 입고 가슴 바짝 조이고 나가면 몰라요! 제가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진짜 조금만 더 키우면 되는 건데 그걸 그 둔한 오빠가 눈치챈다고요?”
이미 다 들통났단다, 동생아.
머릿속으로 이년을 어떻게 조져야 할지 생각해보았다. 제일 좋은 건 역시 풍유환 압수겠지만, 그건 너무 많이 써먹었다. 이제 슬슬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할 때였다.
이쯤에서 슬슬 끼어들어야 할 것 같았기에 폰을 넘겨달라고 손짓했다. 닉스는 군말없이 팔을 내밀면서 머리까지 같이 내밀었다. 그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
“포부는 잘 들었다. 그래, 풍유환을 더 먹고 싶다고?”
“오, 오빠?! 언제부터?! 컴퓨터 하러 간다지 않았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얼마나 놀란 눈을 하고 있을지가 쉽게 그려지는 목소리였다. 나는 쯧쯧 혀를 찼다.
“당연히 거짓말이었지. 내 여친이 니 말을 듣겠니, 내 말을 듣겠니? 어떻게 예전이랑 비교해서 달라진 게 하나도 없냐.”
여친이라는 말에 한층 더 고롱고롱해진 닉스가 내게 달라붙어 뺨을 마구 비벼댔다. 꼭 커다란 강아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 하하하하…… 그게 아니라요, 오라버님…….”
“내가 그딴 표현 쓰지 말랬지. 됐고, 나중에 기대해.”
“오빠?! 오빠! 잠깐ㅡ”
뚝, 나는 절규를 무시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 뒤로도 계속 울려대는 스마트폰은 무시했다. 다 본인의 자업자득이었다.
ㅡ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망했다…….”
백유진은 통화음이 끊긴 스마트폰을 멍하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건 진짜로 망했다. 설마 새언니가 거짓말까지 할 줄이야. 진짜 착한 사람이어서 거짓말은 못할 줄 알았는데.
가슴이 없는데 속옷을 왜 입냐고 질문한 것도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진짜 궁금해서 물어본 것 같았고 말이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명치가 욱신거리긴 했지만.
‘……진짜 딱 10초만 차분하게 생각해볼걸.’
새언니랑 오빠는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지 않는가. 당연히 여동생인 자신의 말보다 백주원 그놈의 말을 먼저 챙길 거라고 예상했어야 했다.
그랬어야 했는데, 수십 번의 희망고문 끝에 풍유환을 먹자마자 아주 약간의 결실을 맺은 가슴을 확인하고 그만 눈이 돌아가버렸다. 그런 간단한 생각조차 못할 만큼.
“어쩌지? 이러면 진짜 답이 없는데…….”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마지막에 기대하라던 말 때문에 더 공포스러웠다.
어떻게 커진 가슴인데, 그리고 어떻게 커질 가슴인데. 여기서 성장이 멈춘다거나 도로 작아질 수는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목표 알파벳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그걸 위해서라면 설령 오빠에게 무릎꿇고 비는 것 이상의 일이라 해도 해낼 자신이 있었다. 아까도 개 짖는 소리를 내보라는 말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지 않았던가.
“아.”
좋은 생각을 떠올린 백유진은 방을 뛰쳐나와 곧장 주방에 있는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 이번 주말에 오빠한테 반찬 갖다주는 거 내가 할게! 내일이지?”
예전 같았으면 집에 왔을 때 싸서 들려보내지 자취방으로 직접 갖다주진 않았을 테지만, 그러기에는 아들의 여자친구가 너무 마음에 들어버린 나머지 생긴 변화였다.
“유진이 네가? 왜?”
“이유는 묻지 말고 내가 하게 해줘, 응?”
최근들어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남매 사이에 묘한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강소영은, 간절한 눈으로 매달리는 딸을 바라보다가 쿡쿡 웃었다.
“알겠다. 너 주원이한테 뭐 잘못했구나? 전화로 사과하려다 실패해서 잘 안 됐고, 그래서 직접 가서 어떻게 해보려는 거지?”
“……그, 어쨌든! 이번은 내가 한다! 알았지?”
정곡을 찔렸는지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더니 어쨌든 자기가 하겠다고 대답하는 딸을 향해, 강소영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맨날 주원이에게 시비만 걸어대던 아이가 먼저 나서서 사과도 할 줄 알고.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진실은 조금 달랐지만.
외전: 방문
교황들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새벽 4시, 서로 다정하게 꼭 끌어안은 채 잠을 자고 있던 자매는 마치 짜기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눈을 떴다. 녹안과 자안이 희미한 빛 속에서 밝게 빛났다.
“언니, 오늘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에반젤리나.”
플로레타와 루나가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델타는 마탑에서 긴급 호출을 받아 잠시 저쪽 세계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게 새벽 1시쯤이었나 그랬을 것이다.
잠들어 있던 영원의 마법사가 깨어났는데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무리라면서 그 인간 형태의 드래곤이 도움을 요청했다던가.
어떤 종류의 도움인지는 정확히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빨리 오라는 간절한 부탁만이 전부였다.
나흘이나 델타를 독점해놓고 또 부른다는 것이 솔직히 말해 많이 부러웠지만, 저번이 첫 경험이었으니 이해할 수 있다. 일단 발을 들이는 순간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게 된다는 걸 아니까.
당장 교황 본인들부터가 시도 때도 없이 정을 요구하고 있지 않은가. 하물며 얼마 전에 처음 쾌락을 알게 된, 무려 사백 년간 남자를 알지 못했던 여자라면 몸이 계속해서 달아오를 만했다.
잠을 청하는 동안 이리저리 흐트러진 가리개를 정리한 교황들이 방을 나섰다. 새벽의 옅은 여명만이 비치는 자취방은 굉장히 고요하면서도 또 몽환적이었다.
“은빛 여명 기사단장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요.”
“흑마법사는 델타 님의 방에 있을 것입니다.”
“황제와 선대 황제는…….”
“두 분 모두, 게임 중이십니다.”
거실은 조용했다. 미네르바와 델타는 마탑에 있고, 기사단장들은 잠시 저쪽 세계로 돌아갔고, 닉스는 델타의 방 침대를 차지한 채 황홀한 냄새에 둘러싸여 꼼지락대고 있을 테지.
불이 켜진 방은 두 개뿐이었다. 카이킬리아의 방과 아우로라의 방. 닫힌 문 사이로 환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밤새 잠도 안 자고 게임에 몰두 중이라는 증거였다.
스텔라와 셀레네도 교황들을 방해할 리가 없으니, 준비는 모두 끝났다.
“그럼 시작하죠, 세라피카 언니.”
“알겠습니다, 에반젤리나.”
교황 자매는 게임에 몰두해 있는 둘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살금살금 주방으로 이동해 방음 장벽을 쳤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온갖 재료를 꺼내들어 요리를 시작했다.
델타의 어머님에게서 요리를 대접받았을 때부터 생긴 자그마한 목표였다. 언젠가 자신들도 델타에게 직접 만든 요리를 먹여주자고 말이다.
최대한 놀래켜주고 싶었기에 이렇게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몰래몰래 진행하는 거고.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이 반감되기 마련이니까.
“신성력을 너무 많이 넣은 것 같습니다, 에반젤리나. 찌개가 아니라 성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다음번에는 주의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그러는 세라피카 언니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물론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플로레타는 찌개에 신성력을 넣었다가 보글보글 끓는 성수를 완성시켰고, 루나는 갈비찜에 신성력을 넣었다가 아무튼 무언가 신성한 물질을 탄생시켰다.
둘 다 요리 실력은 제법 괜찮은 편이었기에 신성력을 넣는다는 고집만 버렸다면 금방 끝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성력의 양이 곧 사랑의 양이라는 고집 탓에 결과는 지지부진했다.
우그러뜨린 냄비를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정화’한 플로레타와 루나가 새 냄비와 새 재료를 꺼내들었다. 태양과 달께서 걸어주신 축복 덕분에 사라진 것들은 다시 재생된다.
ㅡ딩동!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요리에 몰두하던 자매는, 뜬금없이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동작을 멈추고 시계를 확인했다.
바늘은 8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 찾아오기에는 제법 이른 시간이었다.
“이 시간에 델타 님을 찾아올 사람이 있었던지요?”
“잘 모르겠습니다, 에반젤리나.”
오늘 누군가 찾아올 예정이긴 했다. 점심쯤 해서 반찬을 갖다주러 델타의 어머님이 방문하실 예정이라고 했으니까. 8시 20분은 어떻게 봐도 점심은 아니었다.
“제가 확인하겠습니다.”
“예, 언니. 맡기겠습니다.”
루나는 칼을 내려놓고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기 전에 옷차림을 바꾸는 것도 잊지 않았다. 델타가 몇 번이고 강조해가며 신신당부한 말이었으니 무조건 지켜야 했다.
그게 누가 됐든, 이 세계의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 때는 무조건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이다.
가슴과 엉덩이를 비롯해 외부의 시선이 집중될 수 있는 대부분의 자리에 왜곡 마법이 걸려 있는 은색 홈웨어를 차려입은 루나가 문 밖의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했다.
검은 머리에 검은 눈을 한 귀여운 인상의 여자였다. 안에서 응답이 없자 초조해졌는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루나는 저 여자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델타 님의 동생분입니다.”
“예?”
플로레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하지만 루나 역시 믿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델타 님의 동생분이 여기까지 찾아올 이유? 그런 건 한번도 못 들어봤다.
최근에야 가슴 크기라는 약점을 잡힌 것도 있고 해서 사이가 좀 나아진 거지, 예전에는 아예 웬수지간에 가까웠다고 했었다. 그런 사람의 집을 이런 아침부터 찾아오다니, 이게 뭔가 싶었다.
“델타 님에게 연락을 해야 할는지요, 세라피카 언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교황들이 난감한 얼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였다.
ㅡ으음…… 안 나오네. 이 시간이면 아직 자고 있을 수도 있댔으니까 그냥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가라고 했지? 어디 보자, 비밀번호가…….
삑삑삑삑.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금장치가 해제되며 그대로 문이 열렸다.
열린 문 틈으로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는 듯 까치발을 든 여자가 조심조심 걸어들어왔다. 양 손에는 온갖 종이 가방이 한 짐이나 들린 채였다.
“어?”
그리고는 다음 발을 내딛기도 전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루나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새, 새언니? 안에 계셨어요? 없는 줄 알고 살짝 들어오려 했는데…….”
루나와 백유진은 서로 당황했다. 그 이유는 달랐지만, 훨씬 더 당황한 것은 루나 쪽이었다.
지금 당장 주방에 플로레타가 있고, 카이킬리아와 아우로라는 게임을 하고 있으며, 델타의 방에는 닉스가 침대에 폭 파묻혀 있는 데다 스텔라와 셀레네도 생각해야 한다.
여자친구를 한 명으로 소개한 이상 여럿의 모습을 보일 순 없었다.
“새언니가 두 명……?”
그 입에서 중얼거려진 말에, 루나는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주방에서 머리만 내밀고 바라보던 플로레타와 눈이 마주쳤다.
“혹시 뭐 잘못한 거 있으면 가서 싹싹 빌고 용서 받으라고 보냈지. 네 오빠는 착하니까 진심으로 사과하면 용서해줄 거라고. 왜? 너무 일찍 찾아가서 그러니? 난 약속대로 점심쯤에 가라고 했어. 유진이가 굳이 첫차 타고 가겠다더라.”
“……일단 알겠어요.”
“그래. 유진이가 너무 심하게 잘못한 것만 아니면 그냥 몇 번 부려먹다가 용서해 줘. 요즘에는 둘이 싸우지도 않고 잘 지내잖니. 돈 좀 보내줄 테니까 내가 줬다는 건 비밀로 하고 주원이 네가 준 것처럼 용돈도 좀 쥐어주고 해. 유진이한테 10만 원, 남는 건 아들 꺼. 알겠지, 아들?”
통화가 끊겼다. 계좌를 확인해보니 정확히 30만 원이 입금되어 있었다.
“백유진 이 화상을 진짜…….”
용서해주라는 언질을 받은 것과는 별개로, 황당한 건 황당한 거였다.
제발 조금만 더 하자며 엉겨붙던 미네르바를 떨쳐내다가 연락을 받고 급하게 자취방으로 돌아온 나는, 거실에서 교황들과 마주앉아 어색한 웃음을 흘리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잠시 뒷목을 주물렀다.
결국 내 여자친구한테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궁색한 변명을 쥐어짜내야 했다. 괜히 어설프게 변명하느니 그 편이 훨씬 더 나았다.
통화를 끝내고 거실로 왔을 땐, 여전히 어색하게 웃고 있는 동생과 그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는 플로레타와 루나가 있었다. 나머지는 쥐 죽은 듯 방에 틀어박혔고 말이다.
토요일 아침부터 이게 웬 소란인지 원.
“그래서, 니가 잘못했으니 여기까지 직접 사과를 하러 오셨다?”
“네, 그렇습니다!”
자신이 철저한 을의 입장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백유진은 각이 바짝 잡힌 모습으로 칼같이 대답했다. 그러다가 흘끔 하고 플로레타와 루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그런데 있잖아 오빠. 새언니 두분 다 진짜 예쁘시다. 쌍둥이라고 했지? 와, 진짜 평생 저런 얼굴로 살았으면 소원이 없겠네.”
“칭찬은 고마운데, 자꾸 말 돌릴래? 설마 내가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죄송합니다, 오빠!”
백유진 애한테 플로레타와 루나가 닮게 보이는 건 당연했다. 애초에 모두 다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놓았으니까.
상식적으로 같은 사람이 둘이나 존재할 리 없으니, 자연스레 쌍둥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죄송한 거 알았으면 이제 돌아가. 반찬은 잘 먹겠다고 말씀드리고. 아, 여기 온 김에 용돈도 줄게. 10만 원. 됐지?”
“아니, 용돈이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아닙니다. 일단, 그, 제 행동에 대한 사과의 말씀부터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난 너한테 아무 기대도 안 했으니까 사과 안 해도 돼. 자, 볼일 끝났지? 나가는 문 저쪽이다.”
“싫어! 싫다고!”
백유진이 내 발목을 덥썩 붙잡았다.
“오빠!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 네?! 다시는 그런 짓 안 할 테니까 제발요!”
확 걷어차버릴까 하다가 그만뒀다. 힘 조절이 안 될 것 같아서였다.
나는 발목을 붙잡은 채 계속해서 징징거리는 동생년을 내려다보다가,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다녀왔습니다.”
“왔어, 유진아? 주원이는 뭐래?”
“……용서해준대. 돈도 받았어. 10만 원.”
“어머, 잘됐네. 그것 봐. 사이 좋아지니까 그런 일도 있잖니. 앞으로도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백유진은 그 말에 대답을 하는둥 마는둥 하며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문을 닫는 걸로도 모자라 아예 잠가버리기까지 한 다음 침대에 걸터앉았다.
“하아아아아아…….”
입에서 길고 긴 한숨이 내쉬어졌다. 위에 덧대 입은 저지의 지퍼를 내렸다.
ㅡ출렁!
그러자마자 어마어마한 크기의 가슴이 지퍼를 터뜨리듯 튀어나왔다. 단순히 크다고 표현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한쪽 가슴의 크기가 머리의 족히 두 배는 됐다.
정확한 크기는 재어봐야 알겠지만, 알파벳을 Z부터 세는 게 더 빠르리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가슴이 커지길 원하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커지는 걸 원하지는 않았다.
“으아아아악! 백주원 진짜!”
백유진은 침대에 누워 발버둥쳤다. 가슴을 그렇게 키우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주겠다고 하더니 이따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큰 가슴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각종 부작용도 없애주고, 옷을 똑바로 입고 있다면 티가 안 나도록 조치를 취해준 건 다행이지만, 이래서야 노출이 조금이라도 있는 옷은 꿈도 못 꾼다.
“씨이…… 어디 두고 봐 진짜…….”
씩씩대며 거친 숨을 내뱉은 백유진이 한 손으론 제대로 잡기도 힘든 가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발은커녕 가슴을 쥔 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을 크기.
ㅡ히죽.
그 무지막지한 중량감을 만끽하고 있으려니, 무심코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주 잠시, 정말로 아주아주 잠시지만, 과유불급이라는 고사성어가 왠지 개소리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