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31)
외전: 최초의 교황 – 1
플로레타와 루나가 타락한 교황이라면서 자궁문신을 새기고 찾아왔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이클립스가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즉 최초의 교황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였다.
일단 좋은 감정이 없으리란 사실만은 분명했다. 세계를 먹는 자랑 싸우라고 빠듯한 살림 쪼개가며 강화시켜놨더니 그 힘으로 자기를 강간하려 들었으니까.
타락한 교황이란 호칭은 그 여자한테 훨씬 더 잘 어울리기도 해서, 혹시 플로레타와 루나의 행동을 최초의 교황에 겹쳐 보면 어떡하나 싶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잖아요. 별 생각 없어요.”
하지만 그건 내 기우에 불과했던 듯했다. 이클립스는 무척 태연한 얼굴로 괜찮다며 웃어보였다.
“절 배신한 여자인데 그때야 당연히 화났었죠. 지금은 신경 안 써요. 당신이 그 여자랑 도마뱀을 처리해주셨으니까요.”
만약 저희가 패배했더라면 힘을 빨아먹혀 죽어가면서 원망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클립스는 웃는 얼굴로 섬뜩한 말을 덧붙였다.
“그러시다니 다행입니다. 혹시 아직도 불편한 감정을 갖고 계셨다면 제안이라도 하나 해드리려 했거든요.”
“제안? 어떤 제안이요?”
나는 실수로라도 여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도록 최대한 조심하면서, 계획했던 내용을 알려주었다. 계획을 듣는 이클립스의 눈이 조금씩 동그래져갔다.
“좋은 생각이에요! 그렇게 하죠!”
끝까지 다 들은 다음에는 체통이고 나발이고 다 내팽개친 채 폴짝폴짝 뛰기까지 했다.
관계가 진전되면서 예전의 딱딱하게 말하던 모습은 거의 사라진 이클립스였지만, 반대로 너무 천진난만하게 변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신으로서의 위엄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예전에는 그랬냐고 한다면 그건 또 아니지만.’
그 와중에 유두와 음부를 가린 천쪼가리는 그대로였다. 제 주인이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와중에도 살랑살랑 흔들릴지언정 본분을 망각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플로레타랑 루나는 조금 걷기만 해도 알몸이나 다름없는 꼴이 되던데. 저렇게 보여도 역시 여신은 여신인 건가.
“그러면 일단 세계부터 하나 만들어야겠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당신.”
이클립스의 손바닥 위에 자그마한 구체가 나타났다. 안쪽에 무언가 기하학적인 것들이 떠다니는 구체였다.
저게 뭐인지는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머리가 아예 인식 자체를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시간선과 공간을 만드는 과정이에요. 지금의 당신은 이해 못 하는 것도 당연하답니다. 창조의 개념 자체가 각인되어 있지 않으니까요.”
내 표정에 담긴 의문을 읽었는지, 이클립스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필요하시다면 안쪽의 시공간을 인식하시도록 각인을 해드릴 수도 있어요. 금방 끝날 거예요.”
“괜찮습니다. 그런 거 인식해서 써먹을 곳도 없는데요.”
내가 세계를 창조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클립스는 거절당한 게 아쉬웠는지 약간 시무룩한 얼굴로 구체를 키웠다. 그 즉시 주변 세계가 뒤엉키고, 손바닥 위로 압축되며 세계 그 자체가 변화했다.
낮과 밤이 공존하던 하늘에는 오직 태양만이 남았다. 개념과 공간이 뒤섞이며 온갖 자연물이 나타났다. 손짓 몇 번으로 세계 하나를 창조해낸 이클립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음, 이만하면 별 문제는 없겠네요. 엉성한 부분이 좀 있긴 하지만 괜찮겠죠. 어차피 그 여자에게 되갚아주고 나면 폐기처리할 세계니까요.”
이런 면모만 본다면 창조신이 맞긴 한데 말이지. 나는 내 앞에선 체통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이 허접밖에 안 되는 여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내 시선을 느낀 이클립스가 슬그머니 눈을 피했다.
“시작할게요, 당신.”
약간 차분해진 말투와 함께 그 몸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터져나왔다. 약간 떨어진 자리에 심연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검은색 진흙처럼 생긴 물체가 꾸물꾸물 퍼졌다. 성국의 심연 던전과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 보스룸에서 봤던 것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여신님. 태초의 교황 때문에 유일신이라는 개념이 오염됐다지 않으셨습니까? 이젠 그것도 정화할 수 있으실 텐데 왜 방치해두신 거죠?”
개념이 오염됐던 당시야 그 도마뱀한테 힘을 강탈당하고 있어서 불가능했다지만, 지금의 이클립스라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텐데.
“그럴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제가 유일신이라는 개념을 복구한다 쳐도 그걸 어디 쓰겠어요? 라파엘라 성국에는 이미 태양과 달 신앙이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당분간은 새 세계를 창조할 생각도 없는데.”
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가 나를 슬쩍 훑고 지나갔다.
“만약 유일신의 자리에 오를 다른 누군가가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요.”
“전 그런거 필요 없으니까 눈독들이지 마시죠.”
그러는 사이, 심연의 면적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훨씬 더 넓어져 있었다. 근처 공간이 끈적한 어둠으로 뒤덮였다. 저게 한때는 다 신성력이었겠지.
“드디어 등장했네요.”
심연 중앙에서 기둥이 솟아올랐다. 기둥은 흐물흐물해지나 싶더니 점차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갔다.
어디를 어떻게 봐도 괴물 그 자체였던 신에게 버림받은 피조물과는 달리, 몸매가 굉장히 출중한 여자의 형상이었다. 전체적인 체형을 따지자면 플로레타나 루나와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가슴은 그 둘보다도 훨씬 컸다. 저번에 황금 열쇠의 건으로 인해 만났던 음침한 연금술사처럼, 가슴 하나가 머리 두 개 크기는 되어보였다.
“끄으…… 끄어어…….”
여자는 괴로운 듯 얼굴을 감싸쥐고 신음하며 허리를 구부렸다. 감쌀 손과 감싸쥘 얼굴이 있다는 말인 즉, 점점 더 인간의 모습에 가까워진다는 의미다.
한때 여자의 형상이었던 심연이 완벽한 인간으로 바뀌었다. 검은색으로 뒤덮였던 피부가 점차 복숭아색으로 물들고, 인간의 각종 신체 기관이 나타났다.
곧게 뻗은 머리카락이 바닥에 끌릴 길이까지 내려왔다. 여자의 모습을 확인한 내가 고개를 돌렸다.
“저거, 여신님 아닙니까?”
“……제게 더 가까워지고 싶다면서 자기 멋대로 따라한 거예요. 처음부터 저런 모습으로 창조한 건 아니라고요.”
최초의 교황은 이클립스와 무척 닮아 있었다.
머리카락의 바깥이 금색이고 안쪽은 은색에 이클립스보다 가슴이 훨씬 더 크다는 점만 빼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물론 금색과 은색의 오드아이라는 점까지 빼다박았다.
다만, 입고 있는 옷만은 천쪼가리가 아니라 수녀복 비스무리한 무언가였다. 아마 스텔라의 복장에서 색깔을 금색과 은색으로 바꾸고 노출도를 ‘훨씬 더’ 높이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원본보다는 낫네.’
물론 이클립스가 입은 옷보다야 노출도가 적었다.
“으…… 아……?”
고통스러워하던 신음 소리가 살짝 높아지고, 인간 여성으로 바뀐 심연 기둥이 천천히 머리를 들어올렸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황금색과 금색의 오드아이가 어딘가에 고정됐다.
“……여신, 님?”
그 눈에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깃들었지만, 얼마 안 가 격렬한 환희로 바뀌었다.
“여신님이 절 되살려주신 거예요? 그런 거예요? 역시 여신님도 제 사랑을 받아들여주시기로 하신ㅡ”
환한 얼굴로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던 초대 교황은, 이클립스의 옆에 있는 나를 보고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날 향한 눈동자에 살심이 깃들었다.
“너 뭐야? 왜 여신님 옆에 남자 따위가 있는 건데?”
“남자 따위라니, 말이 심하네.”
“떨어져! 떨어지라고! 그 더러운 몸뚱아리로 여신님 옆에 붙어있지 마! 죽여버린다!”
초대 교황은 입에 거품을 물 기세로 발광하듯 날뛰었다.
“저런 인간한테 교황 자리를 준 겁니까?”
“……절 직접 목도하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어요.”
지금은 전혀 멀쩡해보이지 않는데.
하긴, 안 멀쩡하니까 자기네 여신한테 몹쓸 짓을 하려 했을 것이다. 제정신이었다면 다키스트 워리어처럼 여신의 말에 철저하게 복종했겠지.
슬슬 계획을 실행할 시간이었다. 옆을 향해 눈짓했다. 이클립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목을 가다듬었다. 나도 받아줄 준비를 했다.
“주인님…….”
그런데, 이클립스의 행동이 내가 말한 계획이랑은 조금 달랐다.
“……어?”
“……?”
바닥에 무릎을 꿇은 이클립스가 땅을 짚고 엎드렸다. 앵둣빛 입술 사이로 선홍색 혀가 살짝 내밀어졌다. 그 모습을 본 초대 교황과 내가 동시에 굳었다.
“이클립스 쓰다듬어주세요, 주인님…….”
이클립스는 마치 강아지처럼 헥헥대고 있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무릎을 꿇은 채, 상반신만 들어올려 날 올려다보는 모습으로 혀를 내밀어서, 멍멍 짖기라도 하려는 듯이.
뭘 어떻게 한 건지 선홍색으로 달아오른 뺨은 색기가 넘쳐흐르다시피 했다. 반쯤 내밀어진 혀 끝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다.
“몸이 달아올라서…… 주인님 손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네? 제발요…… 앞으로도 말 잘 들을게요…….”
“그, 아니…….”
분명 내가 제안한 계획은 평범하게 친한 척 하기 정도였다. 저런 말이나 행동을 하라고는 절대로 시킨 적 없었다.
충격을 받은 내가 멍하니 있지, 네 발로 다가온 이클립스가 내 손을 잡고 자기 뺨에 부벼댔다. 그 얼굴에 무척이나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기, 여기도 부탁드릴게요…… 조금 더 격렬하게 해주세요…….”
이클립스가 하늘을 바라보며 누웠다. 옆으로 살짝 벌려진 다리가 굽혀지고, 무릎이 옆구리에 붙었다. 발가락이 유혹하듯 꼼지락거렸다.
팔이 들어올려졌다. 손목이 머리 위에서 교차했다. 티끌 하나 없이 새하얀 겨드랑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살과 근육이 적절하게 섞여 무척이나 부드러워 보이는 복부가 움찔움찔 떨렸다.
“제 겨드랑이도, 가슴도, 배도, 허벅지도, 모두 주인님의 것이니까…… 부디, 마음껏…….”
잠시 생각을 정지했던 나는,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초대 교황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그러실 수 있나요…….”
교황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어째서 제가 아니라 남자 따위에게 그런 천박한 행동을…… 제 앞이 아니라 왜…… 저깟 남자 따위에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 피눈물 말이다.
양쪽 눈에서 투명한 액체 대신 빨간 액체가 줄줄 흘러내렸다. 과거 사람이라 해서 눈물이 빨간색일 리는 없으니 진짜로 피겠지.
눈물 대신 피를 쏟아대던 초대 교황이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 전보다 훨씬 더 짙은 살기를 담은 시선이었다. 나도 덤덤히 날개 잃은 악몽에 손을 가져갔다.
효과가 너무 좋아도 탈이었다.
ㅡ제가 할게요, 당신. 제가 나서서 수습할 테니, 당신은 제게 계획을 어긴 벌을 주시면 돼요.
머릿속에 이클립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속셈이 뻔히 보였다. 바닥에 누워 있는 주책 여신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시선을 받은 이클립스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쩌면, 일부러 속셈이 뻔히 보이는 말을 해서 나한테 경멸의 눈빛을 받는 것까지 의도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됐습니다. 여신님은 그냥 지켜보기만 하세요. 그 대신.”
날개 잃은 악몽을 뽑아들었다.
“사고 치지 말고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어, 이클립스.”
“……헤으윽.”
부르르, 이클립스의 몸이 한번 더 떨렸다. 가리개 너머에서 쏟아져나온 투명한 액체가 엉덩이를 타고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음부를 가린 천의 색깔이 한층 더 진해졌다.
저쪽에서 이 모습을 못 봤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클립스가 방금 뭘 했는지 모를 리도 없었고.
“죽여버리겠다! 인간 수컷!”
노호성과 함께 어마어마한 양의 심연이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그 선봉에는 피눈물을 흩뿌리며 날다시피 달려오는 초대 교황이 있었다.
오른팔에 들린 거대한 낫이 치켜올려졌다가 내리찍혔다. 나는 그 궤적과 속도를 확인하다가, 적당한 지점에서 왼팔을 뻗어 잡아챘다.
“……!”
“자, 일단 진정하고.”
달려오는 힘까지 담아 전력으로 휘두른 대낫이 너무나도 쉽게 잡혀버리자, 초대 교황이 눈을 부릅떴다.
“다양하게 싸워. 다양하게. 알았지?”
그래야 브닼 5의 보스에 패턴으로 넣을 수 있을 것 아닌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대낫을 놓아주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