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36)
외전: 예지 – 3
한참을 이어진 폭로전의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클립스는 미래의 자신이 즐겨왔던 온갖 변태적인 체위가 모조리 까발려진 나머지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해졌고, 엄마한테 온갖 잔소리를 듣게 된 프리지아도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으니까.
그것도 보통 잔소리가 아니라 시간의 배율을 조정해서 1초가 수백 배는 길어지도록 만든 다음에 들려주는, 오직 여신만이 가능한 잔소리였다.
“둘 다 그만해. 여기까지 와서 무슨 짓이야?”
결국 내가 나서야 했다.
자기 엄마가 그만하라고 할 땐 무시하고 바락바락 대들었던 프리지아는, 내가 그만두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졌다. 이클립스는 그 모습을 보고 무척 황당해했다.
“……저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당신. 멋대로 자리를 비우게 돼서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그럴만 하니까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제서야 부끄러움이 몰려왔는지 귀까지 새빨갛게 물들인 이클립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사라졌다.
“으아앙, 아빠아아아아…… 나 진짜로 귀 아파…… 프리지아 귀에 호 해주면 안 돼? 응?”
프리지아는 이클립스가 사라지자마자 반쯤 울면서 내게 안겨들었다.
“혼날 짓 했잖아. 그러게 누가 어른들 비밀을 그렇게 마구잡이로 털어놓으래?”
“왜 엄마가 말하는 건 되고 내가 말하는 건 안 되는데? 엄마도 오늘은 어떻게 해달라면서 아빠한테 틈만 나면 속삭이고 그랬는걸.”
“……네 앞에서?”
“아니, 시간 돌려가면서 일일이 다 찾아본 거야. 엄마랑 아빠는 내 앞에선 절대 그런 얘기 안 꺼내니까. 솔직히 궁금하ㅡ 아얏?!”
딱,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프리지아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때렸다.
미래의 이클립스와 내가 자식 앞에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변태인 줄 알고 식겁했는데, 변태는 내 미래의 딸이었다. 그런걸 일일이 시간 돌려가면서 찾아볼 생각을 하다니 말이다.
프리지아는 아빠가 자길 때렸다면서 서럽게 울어댔으나, 그 와중에 왼손으로는 슬그머니 내 복부를 매만지고 있었다. 대체 어쩌다 이런 딸이 나왔는지 원.
이클립스의 유전자 때문인가.
“……훌쩍. 엄마랑 아빠 딸이면 그런 얘기도 들을 권리가 있는 거 아니야?”
“그런 권리같은 거 없어.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딸?”
“히이이잉…… 너무해, 아빠…….”
연기에 재능이 있기라도 했던 건지 불쌍한 연기 하나는 제대로였다. 지금도 내 복부를 쓰다듬는 왼손만 아니었더라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입으로는 우는 소리를 내고 얼굴로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왼손으로는 음흉하게 배를 만져대니, 불쌍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딸.”
“프리지아라고 불러줘. 아니면 대답 안 할 거야.”
“그래, 프리지아.”
“응. 왜, 아빠?”
방금 전까지 서글프게 울었던 건 모두 거짓말이었다는 듯, 잔뜩 아양떠는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이클립스에게 한 마디도 안 지려고 들었던 때와는 정반대의 태도였다.
“혹시 우리가 널 잘못 가르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가 왜 날 잘못 가르쳐? 그런 적 없어.”
“우리가 너를 다른 애들이랑 어울리지 못하도록 막았다든가, 아니면 네가 결혼하지 못하도록 조건을 덕지덕지 달았다던가 그랬었나 싶어서.”
상식 자체는 제대로 박혀 있는데, ‘좋아하게 된 사람이 하필 아빠였다’며 그런 쪽으로만 이렇게까지 뒤틀려 있는 걸 보면 우리가 사윗감이 될 남자를 너무 엄격하게 심사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자기 부모님이 관계를 맺었던 자리로 가서 시간을 되돌리고 그걸 지켜보면서 손장난을 치는 딸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비정상이었다.
특히 100살을 한참 넘어 150살에 육박하는 프리지아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더욱.
‘본인은 일곱 살이라고 아득바득 우기고 있긴 한데…….’
신을 인간의 나이로 재단할 순 없으니 자기는 147살이 아니라 7살이라는 게 프리지아의 주장이었다. 물론 나는 어림도 없는 소리라며 일축했고, 프리지아는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이런 행동마저도 자기 엄마랑 판박이였다.
“아니. 친구라면 엄청 많았는데? 언니랑 동생도 엄청 많았고. 다 합치면 70명도 넘는걸? 그리고 이상한 조건 단 적도 없어. 내가 마음에 들면 그걸로 괜찮댔지.”
“그래, 다행…… 잠깐. 뭐라고? 70명?”
대화를 이어나가려다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숫자를 듣고 되물었다. 방금 언니랑 동생이 합쳐서 몇 명이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 옆의 다른 여자들도 모두 수명의 문제에서 해방된 상태라고 한다. 삶에 질리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무척 오랜 시간을 살아왔으니 자연스레 아이도 많이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설명의 요지였다. 살아온 시간이 많아서 절대적인 숫자가 늘어난 거지, 그렇게 마구잡이로 낳아댄 건 아니라나.
‘플로레타랑 루나가 결국 소원을 이뤘구나.’
특히 성국의 4명을 합쳐서 딸 숫자가 43명이라는데, 교황들이 결국 소원을 이룬 듯했다. 스텔라와 셀레네도 교황들보다야 살짝 적지만 본인이 만족할 정도는 된다 했고.
나머지는 모두 평범한 숫자였지만, 의외로 리제와 닉스가 욕심이 제법 많았다.
아우로라와 나머지 기사단장들은 각자가 원하는대로, 제일 적은 건 1명씩밖에 낳지 않은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였다.
“결혼은?”
“이번에는 손 잡아줘, 아빠. 그러면 대답해줄게.”
프리지아는 내 궁금증에 대한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이후부터 하나씩 조건을 걸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머리 쓰다듬기였고, 두 번째는 뺨 잡아당겨주기, 세 번째는 뺨에 뽀뽀해주기,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였다.
아직까진 별로 어려울 것 없었기에 손을 내밀었다. 프리지아는 헤실헤실 웃으며 손가락을 얽어 단단히 깍지를 꼈다.
이러면서도 절대 부녀 관계라는 선을 넘으려 들지는 않았다. 조금이라도 선을 넘는 순간 그걸 빌미로 거절하려 했는데, 역시 눈치가 빨랐다.
“아직 아무도 안했어. 제일 큰언니도 아직이고, 둘째 언니도 아직이고, 아무튼 우리 전부 다.”
“……정말로?”
“난 이런걸로 거짓말 안 해. 특히 아빠한테는 더. 아빠한테라면 내 자위 횟수도ㅡ 아팟?!”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혼난다?”
또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 하길래 등을 받치고 있던 손으로 엉덩이를 한 대 때렸다. 오른손으로는 깍지를 끼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프리지아는 입으로만 아프다며 히잉거렸지, 얼굴은 아주 그냥 헤실헤실했다.
“결혼 상대 찾겠다면서 세계 돌아다녔던 언니는 있어. 다 합쳐서 열 명 정도. 근데 다 실패하고 옆구리 시린 그대로 돌아왔거든. 그 이유가 뭔지 알아, 아빠?”
날 향한 얼굴에 뿌듯하다는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들은 평생 보고 자라온 남자가 아빠뿐이잖아. 비교 대상이 아빠인데 어지간한 남자로 성이 차게 생겼어?”
말문이 막혔다. 설마 내 잘못인가.
“그 언니들이 다시 돌아와서 뭐랬게? 지상에는 ‘왜 이것도 못하지?’ 싶은 남자가 너무 많대. 아빠랑 살아오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평범한 인간들은 불가능하다고 한탄하더라. 그나마 적극적으로 나선 언니들이 그 정도인데, 아직 별 생각 없는 다른 언니들은 어떻겠어?”
“…….”
분명 내 잘못은 아닌데, 어째 인정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빠는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객관적으로 되짚어 봐. 난 아빠 좋은 점을 말해보라고 하면 세계 하나가 새로 탄생할 때까지 말하는 것도 가능해. 아마 다른 자매도 비슷할걸?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럼 혹시 그 아이들도 너처럼ㅡ”
“여기서부턴 DLC야. 이마에 키스해주면 대답해줄게. 뽀뽀 말고 키스.”
더러운 상술 같으니.
긴가민가 하긴 했으나, 이마 키스 정도면 부녀 관계에서도 할 수 있는 애정 표현이 아닌가 싶었기에 프리지아의 이마에 입술을 가져갔다.
프리지아는 잔뜩 기대된다는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톡, 입술이 맞닿았다. 속으로 시간을 세다가 최대한 빨리 떨어졌다.
“왜 3초밖에 안 해줘? 엄마랑 아빠는 한번 시작하면 몇십 분씩 붙어있고 그랬는데.”
너무 짧다고 불만을 표출했던 프리지아였지만, 내가 지그시 바라보자 알아서 꼬리를 내렸다.
“……가끔 논의하긴 했어. 지상을 아무리 둘러봐도 좋은 남자가 없으니까 차라리 아빠를 노려보자고. 가끔이라기엔 너무 정기적이었지만.”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딸이 또 있었다니 말이다.
내가 새롭게 충격을 받는 사이, 프리지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처음에는 다들 말도 안 된다고 거절했다가 갈수록 참가 인원이 늘었는데, 마지막으로 열렸을 때는 너무 어린 동생들 말고는 거의 다 참여했던걸로 알아. 뭐, 우리들 중에 자기 엄마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결국 흐지부지 끝났지만.”
“……”
“나는 가능할 줄 알았는데. 흥, 천년 뒤에 두고 보라지.”
프리지아가 작게 궁시렁거렸다. 나는 그 궁시렁거림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걱정했던 게 반쯤 현실이 됐다.
프리지아처럼 욕망을 견디다 못해 직접적으로 표출하려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나한테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심지어 몇몇의 일탈도 아니고 거의 전부란다.
그렇다고 아빠가 돼서 딸한테 관심을 주지 않거나 일부러 쌀쌀맞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빠, 우리가 회의에서 뭐랬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으면…….”
DLC를 하나 더 팔아먹으려던 프리지아가 허겁지겁 내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뭔가 했는데, 얼마 안 돼서 황금색 빛무리가 떠오르더니 이클립스가 걸어들어왔다.
뺨은 여전히 붉었고 나랑 눈을 제대로 못 마주치는 것도 여전했지만, 도망치듯 바람을 쐬러 나가기 직전처럼 터질 듯이 붉지는 않았다.
마침 잘 됐다. 나는 아직도 내 품에 안겨 열심히 우는 척을 하는 프리지아를 떨떠름하게 쳐다보고 있던 이클립스에게 질문했다.
“여신님. 몇 명이든 상관없이 제 딸이기만 하면 모두 축복을 걸어주신다고 하셨죠? 이 시간선에서도 제 딸들한테 그렇게 해주셨을 거고요.”
“네. 맞아요. 왜 그러세요?”
“이 정도면 여신님이 걸어주신 축복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싶어서요.”
“……네?”
처음에는 그 말을 듣고 황당해 했던 이클립스는, 70여명이나 되는 딸들의 깜찍한 계획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조금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결국 불안감을 견디다 못한 이클립스가 약간의 ‘신적 능력’까지 동원한 끝에, 축복과는 딱히 관계가 없는 걸로 밝혀졌다.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는 건 덤이었다.
아무래도 다른 해결책을 찾아봐야 할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