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37)
외전: 예지 – 4
“아빠……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 응? 어차피 아빠 몸이잖아. 그러니까 괜찮지 않을까?”
“내가 안 괜찮아.”
충격적인 일이 연달아 벌어져서 잠시 잊고 있었는데, 이건 엄연히 예지를 통해 미래를 체험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면 가기 전에 입술에 뽀뽀 한 번만…… 으부우우ㅡ 헤헤헤…….”
프리지아는 제발 조금만 더 있어달라며 찰싹 붙어서 징징대다가 뺨을 잡아당겨지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정확히는, 뺨 잡아당겨지면서 헤실헤실 웃느라 힘이 풀렸다.
“잘 가, 아빠. 나 잊으면 안 돼? 프리지아, 사라지는 거 싫어…….”
그리고 내 결심이 확고하다는 걸 알아차린 뒤로는 마지막까지 붙잡는 대신 자기를 잊지 말아달라고 동정심에 호소하며 눈물로 배웅하는 길을 택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나한테 존재감을 각인시켜두면 혹시라도 좀 더 빨리 태어나지 않을까 싶어서라던가. 끝까지 영악하기 짝이 없는 딸이었다.
어차피 내가 그러든 말든 이클립스가 절대 사라지도록 냅두지 않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잊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생각만큼 위험한 미래는 아니었네요.”
“제게는 그랬죠. 당신 혼자였더라면 제대로 된 저항도 못 하셨을 거예요.”
“당하기 전에 미래의 여신님이 구해주지 않으셨을까요?”
“아마…… 도요?”
“……왜 말에 확신이 없으십니까?”
결국 예지의 목적이었던 미래 개변은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프리지아가 이클립스를 압도적으로 찍어누를 만큼 위험하게 자랐던 것도 아니고, 미래의 우리가 다 알고 있으면서 장단을 맞춰준 거라고 판단됐으니까.
이래저래 속을 썩이긴 했어도 이클립스 역시 미래의 자기 딸을 무척 아끼는 분위기였으니 훨씬 더 그랬다. 구태여 가능성을 제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조금 더 심각한 진짜 고민이 생기기도 했고.
“축복 탓이 아니었으니 해결하기 힘들지도 몰라요. 만약 제가 걸어준 축복 탓이었다면 그걸 회수하는 걸로 끝냈겠지만, 축복 때문이 아니라서요.”
“…….”
이클립스는 프리지아랑 똑같은 자세로 내게 안겨서 쓰다듬받는 중이었다. 마지막에 축복이 원인 아니냐고 슬쩍 물어봤던 일 때문에 위로가 필요하다면서 말이다.
내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날 끌어안고선 헤실헤실 웃는 이클립스를 보고 있자니 곧장 프리지아가 떠올랐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혹시 해결 방법이 없겠습니까, 여신님?”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죄송해요.”
현실로 돌아온 이클립스와 나는, 오직 친딸만으로 이루어진 아내가 70여명이나 더 생기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제일 먼저 다른 미래부터 예지해보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저희가 직접 교육하는 게 맞는 것 같긴 하지만, 그랬다간 프리지아 말처럼 다들 눈이 한참 높아질 게 뻔하니…….”
아카데미와 비슷한 교육 기관까지 설립해가며 아이들을 평범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한 미래도 있었는데, 성공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이클립스의 세계에서 유능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여자들과 인간의 한계 따윈 진작에 뛰어넘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인지라 어릴 때부터 심상치 않은 재능을 가졌던 것이 원인이었다.
마탑에서 차출한 마법 교수도, 칠흑 성야 기사단과 은빛 여명 기사단에서 차출한 검술 교수도, 이단심판소와 이단심문소에서 차출한 신성력 교수까지도 일주일 안에 청출어람을 달성해버리는 아이들이 뭘 더 배우겠는가.
입학하고 한 달도 안 돼서 교육 과정을 모조리 끝내버린 뒤 자퇴 신청서를 제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아이리스와 아우로라의 딸은 성격이 엄마를 닮아서인지 자퇴까지는 안 갔는데, 그마저도 지루함을 억지로 참으면서 다니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저래서야 역효과일 뿐이다.
황제와 교황이 직접 설립한 아카데미라서 어중이 떠중이가 아니라 재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아이들만 모인 곳이었는데도 그랬다.
‘별 탈 없이 잘 자라준 건 좋다만…….’
이번 경우는 너무 잘 자라줘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된 거야. 너희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자취방에 있던 모두를 불러모아 미래의 딸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이클립스의 의견이었다. 다들 언젠가는 엄마가 될 사람이니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70여 명이나 되는 딸들이 제대로 된 남자를 못 찾아서 자기 아빠를 공유하자고 주장했다는 말에 다들 생각이 복잡해지는 분위기였다.
기사단장들은 계속해서 클라우디아를 흘끗거렸다. 저렇게 되는 미래가 확정됐는데 너는 언제쯤 진도를 뺄 거냐고 눈으로 묻는 것 같았다. 클라우디아는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아우로라는 이유를 모르겠지만 약간 불만이 서린 얼굴로 자기 가슴을 만지작거렸다. 객관적으로는 몰라도, 이 세계의 평균 라인에 걸쳐 있으니 주관적으로는 평범한 수치의 가슴을.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는 서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엿들어볼까 하다가, 엿들어도 괜찮은 이야기였다면 애초에 속삭이면서 말하지도 않았을 것 같았기에 그만뒀다.
플로레타와 루나, 스텔라와 셀레네는 누가 한 명을 덜 낳은 건지 열심히 추측하는 중이었다. 4명이서 43명이라는 무지막지한 가족력에 대해서는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일언반구도 없었다.
닉스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헤벌쭉하게 웃어댔다. 평소의 음침한 미소가 아닌, 진심으로 행복해보이는 미소였다.
어째 나랑 같은 이유로 생각이 복잡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좋은 방법 있어? 내 딸들이 나한테 그런 쪽 관심 못 가지게 할 방법.”
“…….”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지만, 어차피 지금 당장 그럴싸한 대답이 떠오르리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갑자기 모이라고 하더니 미래의 딸들이 아빠한테 그렇고 그런 욕망을 품는데 해결책이 있냐고 묻는다면 나 같아도 이 자리에서 대답 못 한다.
아직 시간도 많이 남았겠다, 오랫동안 천천히 생각해보는 게 제일이었다. 지금은 그냥 이런 미래가 있다는 것 정도만 인지해두면 된다.
“저…….”
의외로 제일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닉스였다.
“그런데, 꼭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나요? 헤헤.”
“……그게 무슨 소리야?”
비록 내 기대와는 한참 동떨어진 대답이긴 했어도 말이다.
닉스는 자기가 말을 꺼내고도 찔리는 게 있는지 가슴 앞에서 검지를 맞대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살펴댔다.
“저, 저희들 사이라면 유전병 걱정도 안 해도 될 테고, 세계 전체를 돌아다녔는데 마음에 드는 남자가 없었다면 앞으로 나타날 일도 요원하고, 그렇다고 딸들이 평생 혼자 살게 할 수도 없잖아요. 꼬,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위를 둘러보았다. 분명 나랑 같이 질색하는 반응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대부분은 약간 미묘한 눈빛이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느낌.
“닉스.”
“네, 네. 델타 씨. 헤헤…….”
“가서 반성하고 있어.”
“네?!”
나는 마법으로 닉스를 꽁꽁 묶어 자기 방 침대 위에 올려놓고 문을 닫았다. 아무래도 닉스의 딸에게는 내가 좀 더 시간을 할애해야 할 듯했다. 특히 윤리의식에 관해서 말이다.
“당신! 그건 내 다른 인격이 멋대로 저지른 일인데 나는 한번만 봐주면 안 될까?!”
“걔, 자기가 일 저지르고 꽁꽁 숨었어. 키히힛. 이제 안 나와. 그러니까 열어줘도 돼.”
안에서 닉스의 다른 인격들이 자기는 관계가 없다며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회의 끝날 때까지 알아서 혼내라고 말한 다음 문을 잠가서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고 시선을 돌리자, 카이킬리아를 빼면 하나같이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딸이 아니라 엄마들의 윤리의식 교육부터 해야할 것 같았다.
결국 모임은 흐지부지 해산됐고, 나는 문 앞에서 10분 정도 기다렸다가 닉스를 풀어주었다. 플로르의 인격과 반말 쪽 인격에게 혼이 났는지 존댓말 닉스는 시무룩하게 사과했다.
“딸을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그렇노라.”
그날 밤,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가 나를 찾아왔다. 미래의 딸을 만나보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난색을 표했다.
“될까 모르겠네요. 저도 제 의지로 본 게 아니라서요. 워낙 뜬금없이 벌어진 일이라 여신님의 도움도 받았었습니다.”
“시도만으로도 족하다. 여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 호기심 때문이니.”
호기심이라,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한 이유였다.
“또한, 우리가 찾아온 이유에는 너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함도 있느니라.”
“……제 고민을 말입니까?”
“얼굴에 다 드러난단다.”
말을 받은 미네르바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우선, 카이킬리아와 나는 아이가 말했던 그 현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나쁘게 보고 있지도 않다는 점을 미리 말해주고 싶구나. 아마 우리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대놓고 찬성하던 닉스 그 아이를 제외하고는.”
“……바로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미네르바 님.”
“알고 있단다. 하지만, 그건 모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렴.”
“어쩔 수 없다니요?”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우리 세계에서는 남자의 곁에 머무는 여자의 숫자가 곧 남자의 능력과 업적을 상징한다던 말을 기억하니?”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클립스의 세계는 일부다처가 공식적으로 허용되지만, 그러고도 매장당하지 않으려면 남자가 그만한 숫자의 여자를 거느릴 능력과 업적이 있다고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아야만 했다.
나야 뭐 사회적 인정이라면 차고 넘치는 수준이라 별 의미가 없지만 말이다.
“이제 반대로 생각해보자꾸나. 엄마를 열둘이나 거느린 아빠를 보는 딸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도 한명 한명이 제국과 성국의 핵심 인물밖에 없다면? 당연히 모든 생각의 기준이 아빠가 되지 않겠니?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한 거란다.”
“…….”
“아이야. 아이는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단다. 아이가 세상의 그 누구보다 우월한 남성이라는 것을 명심하려무나. 그리고, 조금 다른 의미로도 말이지…….”
미네르바가 입술을 핥으며 내 고간을 빤히 쳐다보았다. 시선이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스스로를 너무 과소평가한다는 건 프리지아한테도 들었다. 프리지아는 내가 자꾸 스스로를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 여긴다고 그랬었지.
“그걸로 어떻게 고민을 덜어주려고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습니다.”
일단은 미네르바와 카이킬리아의 요청대로, 딸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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