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38)
외전: 미래의 딸들 – 1
이클립스는 내 부탁을 아주 간단하게 들어주었다. 시간의 흐름이 섞이지 않도록 해놓았으니 걱정 말고 다녀오라던데, 설명을 자세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인간의 인지 능력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했으니 굳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미래에는 어떻게 됐든 지금 당장 창조신의 영역에 발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과거의 아버지라…… 무척 신비한 기분이로다.”
“나는 귀여워서 좋은걸? 지금 아빠랑은 다른 매력이 있으시잖니.”
“이번만큼은 네 의견을 긍정할 수밖에 없겠구나.”
“그렇지?”
카이킬리아의 딸과 미네르바의 딸은 먼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시간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특수하게 창조된 방이었다.
둘은 맞은편에 앉으라며 빈 찻잔에 차를 따라주었다. 우리 셋은 각자 찻잔이 놓인 자리 앞에 앉았다. 내 맞은편에는 딸들이, 양 옆에는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가 앉은 모양새가 되었다.
미네르바는 말할 것도 없고, 카이킬리아도 자신의 딸을 보고 신기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에일린이라고 하였느냐. 좋은 이름이로구나.”
“어머니가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마땅히 그리 하여야겠지.”
“혹시 딸에게 궁금한 것이 있을까, 엄마? 불가능한 질문 빼고는 뭐든 답해줄 테니 말해보렴.”
“세그레투스라고 했니? 내가 육아에도 재능이 있는 줄은 몰랐구나. 딸을 훌륭하게 가르쳤어.”
단 하나뿐인 자식인지라 엄마의 관심을 독차지해서 그런지, 스스로를 ‘에일린 리바누스’라고 소개한 카이킬리아의 딸과 ‘세그레투스 스키엔티아’라고 소개한 딸들의 언행은 각자의 엄마를 꼭 닮아 있었다.
에일린은 카이킬리아의 딱딱한 말투와 소름끼치도록 냉철한 눈빛을, 세그레투스는 미네르바의 나긋나긋한 말투와 느긋한 분위기를.
‘……내 유전자는 전부 눈 색깔로만 빠진 건가?’
마지막으로,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의 외형까지.
나를 닮은 것이라고는 딱 하나, 칠흑색의 눈동자 뿐이었다. 그 외에는 모두 엄마의 외형을 복사해서 그대로 붙여넣은 것 같았다. 나와 비슷한 부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클립스의 딸도 눈동자가 검은색이라는 걸 제외하면 이클립스와 판박이었는데,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의 딸까지 엄마의 유전자만 한껏 발휘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묘했다.
“아빠가 이곳에 온 목적은 알고 있노라. 우리가 아빠를 공유하자는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겠지. 프리지아 그 입 싼 것 같으니.”
“우리를 제일 먼저 찾아온 이유는 엄마들 때문일 것이고. 프리지아 그것이 멋대로 일을 벌이지만 않았어도 아빠는 이런 미래를 전혀 몰랐을 텐데 아쉽게 된 노릇이구나.”
“내 앞에서 대놓고 그런 말을 하지는 말아줄래, 우리 딸들?”
“진즉 모두 밝혀진 계획일진데 이제 와서 무엇을 숨기겠느냐. 하물며 잠시간의 인연에 불과할 과거의 아버지에게 그럴 수는 없느니라.”
자기는 떳떳하다는 것마냥 당당하게 가슴을 편 에일린이 반쯤 마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다리 위에 한쪽 팔꿈치를 세우며 손등으로 턱을 괴고 나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응시했다.
“살아온 세월로 치자면 나보다 열 배는 어릴 사내에게 아버지라고 부르려니 참으로 어색하다. 델타라고 불러도 괜찮겠느냐?”
“안 돼.”
“이런.”
내가 칼같이 자르자, 에일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제복 주머니에서 목걸이를 꺼냈다. 세그레투스가 싱글싱글 웃으면서 그걸 낚아채갔다.
“뭘 한 거야?”
“간단한 내기였을 뿐이니라. 과거의 아버지가 딸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행위를 허락할지, 아니면 허락하지 않을지. 이걸로 10717승 대 10716패이더냐, 세그레투스?”
“조만간 한번 더 이길 것이 분명하니 동률이라고 생각하렴. 에일린 네가 패배하였다는 증거는 잘 받아가도록 하겠단다. 패배의 증거이니 소중하게 간직해야겠지.”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이다. 바로 다음 내기에서 빼앗길 물건을 더럽히면 안되지 않겠느냐.”
“어머, 열심히 해보려무나. 그때까지는 ‘여기에’ 안전하게 잘 보관해야겠는걸?”
세그레투스는 옷으로 조금도 가려지지 못한 가슴골에 목걸이를 집어넣더니 과시하듯 가슴 밑에서 팔짱을 꼈다. 미네르바를 꼭 닮은 가슴이 한층 더 부각됐다.
본인도 절대로 작은 크기는 아니건만, 저 무지막지한 거유에 비하면 명백히 한 끗발 밀리는 에일린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고 작게 혀를 찰 뿐이었다.
“하던 것을 마저 하겠다, 아버지여. 우리 둘의 나이가 올해로 몇인지 아느냐?”
“글쎄? 그것까진 못 들었는데.”
“정확히 264년 하고도 91일째이니라.”
264살이라. 프리지아가 거의 백오십에 가까웠고, 에일린과 세그레투스 또한 첫째임을 감안하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나이였다.
“또한, 아직까지 남자라곤 조금도 알지 못하는 순결한 몸이기도 하다.”
“나 역시 그렇단다. 옛날의 엄마처럼 이론적인 지식은 있지만 실전 경험은 없다고 생각하렴.”
콜록콜록, 미네르바가 격하게 헛기침을 했다.
“……딸이 아빠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실례하였구나. 비록 겉모습이 현재의 시간대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한들, 고작 스물 언저리밖에 되지 않은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자꾸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에일린이 히죽 웃었다. 황제 자리에 앉아있을 당시의 카이킬리아가 자주 짓곤 하던, 상대의 속내를 꿰뚫어보는 듯 소름끼치는 미소였다.
카이킬리아의 얼굴에도 그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가 이 오랜 세월 순결한 몸으로 살아온 이유는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눈에ㅡ”
“눈에 맞는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세그레투스가 끼어들어 말을 잘랐다. 에일린의 얼굴에 기어코 짜증이 깃들었다.
“입 다물어라, 세그레투스. 아버지에게 설명할 사람은 나로 정해졌을 터. 패배자면 패배자답게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지 이토록 추하게 구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옆에서 구경만 하고 있으면 심심하잖니? 과거의 아빠랑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찾아오는 줄 아는 걸까?”
“그 기회를 온존하기 위하여 내기를 한 것이지 않느냐, 이 더럽고 추잡한 것아!”
두 딸들이 서로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어릴적부터 같이 자라온 사이라서 그런지 미네르바와 카이킬리아의 말다툼보다는 격식이 조금 덜했다.
“말리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260살 먹은 딸에게 그리하여줄 이유가 무엇이겠느냐.”
“아이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란다. 너무 심하지만 않다면 멈춰줄 이유는 없지 않겠니?”
결국 내가 나섰다. 에일린과 세그레투스는 내 말 한마디에 자기들이 언제 싸웠냐는 듯 다툼을 멈췄다.
내기의 결과대로 하라고 하자, 에일린이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폈다.
“보았느냐, 세그레투스? 아버지에게 감사하거라. 너의 그 추악하고 더러운 면모를 더 보여드릴 필요가 없어졌으니. 패배자면 패배자답게 굴라는 의미다.”
“어머, 내기에서 진 사람은 너 아니었을까?”
세그레투스는 가슴골에 넣어두었던 목걸이를 꺼내 과시하듯 짤그랑거렸다. 그 모습을 심기가 무척 불편하게 바라보던 에일린이 또다시 혀를 찼다.
“……지상에 내려갔다 돌아온 자매들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보면, 지상의 남자들은 우리가 원하는 정말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하지 못하였다는 의견이 공통적이었다.”
“무슨 조건이었길래?”
“우리보다 강할 것.”
“……응?”
방금 뭔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사내가 되어서 어떻게 평생의 짝이 될 여성보다 약할 수가 있단 말이더냐.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니라. 그런 남자에게 무엇을 믿고 우리의 전부를 바칠 수 있겠느냐?”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가 무척 진지한 얼굴로 고민에 빠졌다. 정말로 그럴 남자가 있을지를 가늠하는 듯했다.
“지상에는 그런 남자가 없었다. 자매 열 명 가량이 족히 수십 년을 돌아다녔음에도 빈 손으로 복귀하였으니 확실하노라. 허나, 가까운 곳에 그 조건을 만족하는 남자가 한 명 있지 않느냐.”
“남자가 아니라 아빠겠지.”
“아버지이기 이전에 남자이니라.”
이게 정녕 부녀 관계에서 오갈 수 있는 대화가 맞는 건가. 얼척이 없었다.
“에일린.”
고민을 끝냈는지 카이킬리아가 입을 열었다.
“너의 실력이 어느정도인지를 먼저 들어봐야겠다.”
“확답은 하지 못하겠으나, 어머니 당신과 싸워서 세 판 중에 한 판을 간신히 이길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되노라.”
“그렇다면 너를 이길 사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카이킬리아가 딱 잘라 공언했다. 이 시점에서도 미네르바와 더불어 제국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실력자가 카이킬리아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에일린의 눈동자가 “들었지?” 하는 투로 날 향했다.
“어머니의 말대로ㅡ”
말이 끊겼다. 에일린과 카이킬리아의 눈빛이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미네르바와 세그레투스 역시 그랬다. 내 직감에도 뭔가 잡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광등에서 쏟아져나오는 빛과, 소파 뒤에 진 그림자가 미묘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빠!”
내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꿈틀거리던 자리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내게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내게 달려드는 인영을 양 팔로 받아냈다. 묵직한 충격이 닥쳐왔지만 충분히 버틸만 했다.
인영의 정체를 확인한 에일린과 세그레투스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고,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는 그 돌격을 저지하려다 만 듯 어정쩡하게 들어올린 팔을 다시 내려놓고 있었다.
내 팔에 대롱대롱 매달린 2명이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빠! 저희 초면이죠? 그렇죠?”
“저, 저는 말렸습니다, 아버지. 아, 이 모습도 제법 훌륭한…….”
한 명은 웨이브가 살짝 가미된 금발이 쇄골과 어깨를 간신히 덮는 길이까지 내려왔고, 다른 한 명은 포니테일로 묶은 은회색 머리카락이 발뒤꿈치를 넘어 바닥까지 늘어졌다.
눈동자만큼은 칠흑색이었지만, 척 보기에도 엄마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는 외형이었다.
“그 잠깐동안 어디에 가셨나 했더니, 이곳에 있었습니까.”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에일린. 그리고 세그레투스. 자매들이 너무 큰 무례를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얼마 안 가 문이 얼어젖혀지며 누군가 걸어들어왔다. 침입자의 얼굴을 확인한 에일린과 세그레투스의 얼굴이 한층 더 썩어들어갔다.
‘플로레타랑 루나…… 일 리는 없고.’
나조차도 한순간 플로레타와 루나로 착각했을만큼 누군가를 닮은 둘. 만약 눈동자가 칠흑색이 아니라 녹안과 자안이었더라면 엄마쪽과 구분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외모였다.
아니, 내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간 건데.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