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4)
늦은 밤. 카이킬리아는 중앙 홀이 모두 내려다보이는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꼬박 하루를, 이곳에 그 누구도 들이지 않은 채 홀로 말이다.
수백 명도 넉넉히 수용할 수 있을 크기의 홀은 조용하기 짝이 없었고, 조명이 모두 꺼져 음산한 분위기를 냈다. 거대한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달빛만이 간신히 광원이 되어주었을 뿐이었다.
카이킬리아는 오른쪽 허벅지를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 다리를 꼬고, 붉은색의 쿠션과 황금으로 장식된 옥좌에 등을 기대고, 용이 조각된 팔걸이에 오른쪽 팔꿈치를 괴어, 홀 중앙에 있는 무언가를 응시했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지 오래인, 과거에 그녀의 오라버니라 불렸던 무언가의 시체였다. 흘러나오던 검은 피는 진즉에 딱딱히 굳었다. 더 이상 움직이지도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성검이 꽃힌 시점에서 이미 그 명을 달리 했었으나, 카이킬리아가 구태여 저 시체를 여기까지 가져와 하루씩이나 지켜보는 것에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 고 하였느냐.”
카이킬리아의 입에서 싸늘한 중얼거림이 새어나왔다.
신입에 대한 것을 모조리 털어놓으라 명했을 때, 아이리스는 자신도 아는 것이 거의 없다고 대답했었다.
기껏해야 그 신입을 어디서 만났으며, 왜 기사단으로 데려왔고, 기사단에 데려온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도만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였다. 딱 하나, 마녀의 저주를 받아 대부분의 기억을 잃어버리고 모든 능력치가 바닥까지 퇴화되었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모든 능력치가 퇴화되었다?”
입꼬리가 살짝 말려올라갔다. 명백한 조소가 담긴 행동이었다.
아이리스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적어도 아이리스 본인은, 정체조차 불분명한 신입 기사를 데려온 기사단장 본인은 스스로가 했던 설명이 진실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놈이 거짓을 고한 것이겠구나.”
카이킬리아가 옥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검은 부츠에 감싸인 발이 레드카펫을 밟고 지나갔다.
그 발걸음은 성검이 꽂혀있는 반인반마의 시체 앞에서 멈췄다. 황금보다도 더 황금같은 색을 띠는 금안에서 시작된 싸늘한 시선이 그 겉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머리에 반쯤 돋은 뿔.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얼굴. 등 부분에 솟은 피막 덮인 날개. 전신에 돋아난 비늘. 역관절로 변한 팔과 다리. 길게 늘어진 손톱.
그리고, 성검의 신성력에 반응해 미약한 백색의 빛을 내뿜는 상처들.
“어리석은 것. 내가 눈치채지 못하리라 생각하였더냐.”
카이킬리아는 지하실에서 자신의 오라버니였던 악마를 보자마자 그놈의 전신에 신성 무기로 새겨진 상흔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나름대로 악마 본연이 지닌 회복력을 통해 상처를 감출 목적이었는지 기사단장들에게 영주를 실컷 두들겨패라고 던져준 듯 했으나, 다 부질없는 짓에 불과했다.
부정한 것의 몸뚱아리에 신성력으로 새겨진 상흔은, 그리 쉽게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아예 지상에 강림한 여신이나 다를 바 없다고 여겨지는 라파엘라 성국의 교황들에 비하면야 한 끗발 딸릴지는 몰라도, 카이킬리아 역시 본인의 힘으로 성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었다.
대륙의 모든 신성 무기를 싸그리 긁어모은다 한들 그 힘을 압도하리라 여겨지는 무기가 성검인데, 성검을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신성력으로 새겨진 상흔을 파악하지 못할 리 없었다.
카이킬리아는 성검의 손잡이를 콱 움켜쥐었다. 그러자, 악마의 몸 곳곳에서 흘러나오던 미약한 백색의 빛이 한층 더 짙어졌다. 길이는 짧지만, 내부로 깊게 파고들어간 상처.
단검의 흔적이었다.
“축복을 받아 신성력이 깃들게 된 단검을 가졌는데도, 기억을 잃어버려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정녕 그것이 제대로 된 변명이 되리라 여긴 것이냐.”
싸늘한 조소가 이어졌다. 축복받은 단검을 가진 것으로도 모자라 그걸 다룰 수 있기까지 한 인간이, 기억은 잃어버렸고 모든 능력치는 바닥이라고?
거짓말이다. 이 반인반마의 몸에 축복받은 무기로 새겨진 상흔이 남아있는 이상, 무조건 그 신입 기사가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였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우로라는 전투 능력이 전무한 여자였다. 어릴 때보다 모든 측면에서 더욱 성숙해지긴 하였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모와 성정의 이야기였지 전투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은빛 여명 기사단의 기사단장 네 명은 전투 능력은 출중하지만, 역시 신성력을 다루지는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제국 전체를 탈탈 털어봐도, 라파엘라 성국과 연관되지 않고서야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헌데, 그 자는 아니었다. 카이킬리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무리 인간 하나를 잠식시키는 것조차 실패했을 정도로 약한 악마라지만, 그런 악마에게라도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려면 최소 성국 교황청의 견습 수녀급은 되어야 한다.
교황청에서 견습 수녀라고 불리는 여인들조차 바깥에서는 커다란 교회 하나를 이끌 수준의 신성력을 지니고 있었다.
악마를 격퇴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모든 것이 모순되는데, 모든 것이 들어맞는구나.”
생각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그 신입 기사라는 사내의 정체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악마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수준의 신성력을 다루는데, 정작 저주를 받아 모든 능력치가 퇴화되었다고 한다.
축복받은 무기를 어디선가 구해왔을만큼 지식이 뛰어난데, 정작 그 지식을 뒷받침해야 할 기억은 모조리 잃어버렸다고 한다.
자신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는데, 정작 자신은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이 진실일 리 없다, 인가…….”
어렴풋이 말려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이리도 기분 좋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았다.
만약 신입 기사의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아우로라가 보낸 서신의 내용도 거짓이다. 그런 실력자가 ‘우연히’ 악마가 깃든 책을 발견했다고? 그럴 리 있나.
“금빛 황혼 기사단의 기사단장을 들라 하라.”
카이킬리아가 텅 빈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그 메아리가 벽과 기둥에 마구 부딪히며 사라진 직후, 중앙 홀의 옆문을 통해 어느 기사 한 명이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왔다.
전신이 황금으로 장식된 갑옷을 입고, 망토는 물론 투구와 검집까지 황금빛으로 장식된 기사였다. 절도있는 걸음걸이로 카이킬리아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기사가 무릎을 꿇었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네게 명을 내리겠다.”
“예,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금화를 들고 아우로라의 영지로 가라. 가서 그곳의 영주에게 악마를 제때 처리한 것에 대한 포상이라 말하며 돈을 건네고, 은빛 여명 기사단을 찾아라.”
카이킬리아의 입에서 은빛 여명 기사단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투구를 쓴 기사의 몸이 잠시 움찔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이킬리아는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그곳에 새로 입단한 사내가 있을 것이다. 그 자가 무슨 행동을 하는지, 그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지켜보아라. 기한은 두 주를 주겠다.”
“지켜본 다음에는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보고하라. 겉으로 사소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것이라도 좋다. 그 무엇 하나 빼놓지 말아라.”
“예, 폐하!”
금빛 갑옷을 입은 기사는 꾸벅 머리를 숙이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뒤돌아 중앙 홀을 나갔다. 쿵, 문이 닫히고, 중앙 홀에는 다시 혼자만이 남겨졌다.
“한평생 이토록 흥미를 가진 것이 없었거늘,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이리도 즐거운 감정이었느냐.”
악마의 시체로 다가간 카이킬리아가 아직까지도 미약한 신성력을 내비치는, 십수 개의 상흔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 몸을 관통한 성검의 손잡이를 콱 붙잡아 힘을 불어넣었다.
성검에서 마치 태양과도 같은 빛이 터져나왔다. 화르륵, 악마의 시체가 백염에 휩싸여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로지 이단만을 단죄하는 정화의 불꽃이었다.
악마의 몸은 이내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 사라졌다. 처리를 끝낸 카이킬리아가 손잡이를 놓자, 성검은 곧 환한 빛무리로 변했다. 시체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내, 너를 지켜볼 것이다.”
작업을 끝낸 카이킬리아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신입 기사를 지켜볼 것이다. 감시하고 또 감시해서, 어떤 비밀을 감추고 있는지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밝혀내고야 말 것이다.
자신에게 보낸 서신에 거짓을 고한 것? 얼마든지 넘어가줄 수 있다. 자신의 진짜 정체를 숨긴 것? 얼마든지 넘어가줄 수 있다. 그런 행동 따윈 사소한 일탈에 불과했다.
단 하나. 그 자가 정말로 자신의 야욕에 도움이 될 인간이라면, 그래서 카이킬리아의 곁에서 충실한 검이 되어줄 인간이라면 그런 하찮은 일따위는 얼마든지 눈감아줄 수 있었다.
“허나, 만약 그렇지 않다면.”
희번뜩하게 떠진 금안에 지독한 살기가 차올랐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저 수많은 병신들처럼 아주 잠시 두각을 드러냈다 이내 바닥으로 처박힐 쓰레기에 불과하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니, 네 능력을 증명해보이거라.”
이 즐거운 감정이, 잔혹한 결말에 바스라져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될 수 있도록.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