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41)
외전: 무기 수집 – 1
미래의 딸들을 만나고 일주일 뒤, 나는 페치를 찾아갔다.
“아, 안녕하세요! 델타 님!”
페치는 날 보자마자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지만,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발 끝까지 죄다 핫핑크색에 노출까지 무지막지한 복장 탓에 딱히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여전히 정신사나운 외형이었다.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어?”
“목록 중에 절반 이상은 모았어요. 보여드릴까요?”
애초에 그러려고 찾아온 거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페치가 앞장서서 걸어갔다. 목적지는 예전에 아우로라의 도움을 받아 구매해둔 저택이었다.
막상 사놓고도 쓸 일이 없었기에 실질적으로는 페치 집이나 다름없게 되긴 했지만, 소유권은 나한테 있으니 누가 쓰든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빈집으로 놔두는 것보단 낫기도 하고.
“그동안 뭐 하고 지내셨어요? 저 일 잘하고 있는지 보려고 자주 찾아오실 줄 알았는데 한번도 안 들르셔서 조금 놀랐어요.”
“왜, 내가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어? 말만 해. 원한다면 그렇게 해줄게.”
페치는 대답 대신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저 입장에선 지금처럼 돈을 꼬박꼬박 받아 챙기면서 얼굴 안 보고 생활하는 편이 훨씬 낫겠지.
어차피 나도 자주는 못 찾아온다. 당장 책임져야 할 여자가 몇인데. 만나는 빈도를 여기서 더 늘렸다간 앞으로가 몹시 고달파질 거다.
나 말고 페치가.
“일은 어때?”
“뭐, 나쁘진 않아요. 맨날 그 음침한 여자랑 마주치는 거랑 구해달라는 재료들이 죄다 냄새가 지독한 게 고역이긴 하지만, 최소한 방랑상인으로 살 때보다는 훨씬 안정적이니까요. 고정 수입도 있고.”
그때 만났던 음침 폭유 연금술사 린네는 결국 연금 공방을 제국의 수도에 다시 차렸다. 내 계획대로 페치가 그 공방에 재료를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고 말이다.
페치의 말로는 엄청 잘나간다고 했다. 사람을 반 죽일 목적으로 고안된 함정 때문에 손님이 없었던 거지, 대륙 전체를 통틀어 오직 하나뿐인 시설인지라 수요는 언제나 차고 넘쳤으니까.
“아, 그리고 이 종이가 검은색으로 변하면 황금 열쇠가 완성됐다는 뜻이니 델타 님 데리고 꼭 방문해달래요.”
페치가 명함처럼 생긴 흰색 종이를 꺼내 살랑살랑 흔들었다. 방금 핫팬츠 안에서 나온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설명이 끝나고, 페치는 타이즈의 왼쪽 엉덩이 부분을 살짝 벌려 그 안에 종이를 집어넣고 손을 놓았다. 타이즈가 탄력있게 피부에 달라붙으며 짝, 소리를 냈다.
“…….”
기분 탓이 아니었다.
급격히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얼마 안 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국의 수도에 지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은 정원이 눈에 들어왔다.
페치가 마법이 걸린 담장에 대고 손가락을 몇 번 꼼지락거리자 철문이 위압적인 소리를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내 세계의 도어락을 보고 미네르바가 만들어낸 마법이었다.
철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
온통 핫핑크색으로 변해 있는 저택 외벽이 보였다.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일단 잘못 보지는 않았다. 한 발짝 물러나 정문 바깥으로 나갔다. 그러자마자 저택은 평범하게 고풍스러운 형태로 돌아왔다.
정원 안쪽으로 다시 발을 내딛었다. 집이 핫핑크색으로 변했다. 담장 사이의 철문을 기점으로 색이 바뀌는 듯했다.
고개를 돌렸다. 페치가 애써 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마법이야?”
“네, 네. 마법으로 가려놓은 거예요. 마음대로 쓰거나 개조해도 된다고 하셔서 제 취향을 살짝 섞어봤는데…… 헤헤. 호, 혹시 화나셨다거나 그러신 건 아니시죠?”
화는 안 났다. 어이가 없을 뿐.
저택을 천천히 관찰했다.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어린이용 장난감 집에 가까운 외형이었다. 어딜 둘러봐도 핫핑크밖에 없어서 그래픽이 깨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밖에서는 평범하게 보이도록 마법을 걸어놨다는 건 본인도 저런 외형이 정상은 아니란 걸 알고 있다는 의미인데.
내 시선이 닿자 페치가 몸을 움찔 떨었다. 그 얼굴에 갈등이 떠올랐다. 사과해야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돈은 얼마나 들었어?”
“어…… 조금 많이요? 아무래도 외형을 통째로 바꾸는 작업이다 보니까…….”
“그렇구나.”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 즉시 복원의 권능이 발동해 저택이 원래대로 되돌아갔다. 마음대로 개조하라고 해두긴 했어도 이런 미친 짓까지 허락한 건 아니었다.
“내 저택이이이이이!!!!!!”
페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저택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곧장 말꼬리를 잡았다.
“‘내’ 저택?”
“…….”
오열하다 말고 다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페치가 내 눈치를 살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핫핑크색 눈동자가 데굴데굴 회전했다.
사실 내가 여기에 살 것도 아니니 핫핑크색으로 바꾸든 말든 별로 상관없긴 한데, 확실하게 선을 그어놓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기어오르려 할 거다.
“지금 걸린 걸 다행으로 여겨. 카이킬리아나 미네르바 님이랑 같이 왔는데 이런 모습이었으면 저 안에서 10년은 쉬어야 했을 테니까.”
“……히끅.”
10년간 쉰다는 말의 의미를 깨달은 페치가 딸꾹질을 했다.
“바, 바로 안내할게요!”
페치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 부르르 몸서리를 치더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옆이 아닌 뒤에서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자 핫핑크색 언더붑 밑으로 드러난 허리라인과 발걸음에 맞춰 야릇하게 씰룩이는 엉덩이가 고스란히 보였다.
하의는 엉덩이를 채 절반도 가리지 못하고 있었다.
‘원래 페치 뒷모습이 저렇게 야했…… 아.’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코트는 어디로 갔어?”
생각해보니 첫 만남때부터 입고 다니던 코트가 없었다. 페치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답했다.
“요샌 잘 안 입고 다녀요. 예전에는 가방이 하도 무식하게 커서 코트를 안 입으면 살이 쓸렸는데, 요즘은 그런 가방을 챙길 일이 없어서요.”
“그럴거면 그냥 제대로 된 옷을 입었으면 됐잖아?”
“이것도 제대로 된 옷이거든요?!”
내 말을 듣고 울컥했는지 말 끝을 높인 페치가 뒤를 돌아보며 당당하게 자기 옷을 매만졌다.
핫핑크색 언더붑 타이즈는 유두만을 간신히 가리는 길이였기에 밑가슴을 조금도 숨겨주지 못했고, 상체를 움직일 때마다 연한 핑크색의 유륜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골반과 엉덩이에 마치 진공포장이라도 한 것처럼 딱 달라붙어 있는 핫핑크색 타이즈는 리제의 돌핀팬츠와 맞먹을 정도로 짧았다.
저게 어딜 봐서 제대로 된 옷이란 말인가.
“상인으로서의 정직! 최고급 물건만 취급한다는 신념! 페치라는 이름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옷인데 이게 어딜 봐서 제대로 된 복장이 아닌가요?”
“정직이랑 신뢰?”
내 앞에서 정직이랑 신념을 논하기엔 찔리는 게 좀 많을 텐데. 저렇게 설득력 없는 설득은 처음 봤다. 역시 페치다운 뻔뻔함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지그시 쳐다보자 페치는 양심이 찔렸는지 괜히 콜록거렸다. 다행히도 브닼 4의 NPC 페치처럼 아주 심하게 뻔뻔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 뒤로 할 말이 없어진 페치는 얌전하게 앞만 보며 걸어갔고, 지하의 거대한 문 앞에서 멈춰섰다. 바닥에 깔린 마법진이 페치와 나를 스캔하더니 푸른 빛을 내뿜었다.
철컥, 하고 잠금이 풀렸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문이 양 옆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안쪽의 거대한 동공에는 온갖 무기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다. 모두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에 등장하는 무기와 신성 촉매, 마법 지팡이였다.
어느새 분위기를 회복한 페치가 어깨를 으쓱했다.
“엣헴. 제 수완이 어떠신가요?”
되도 않는 자화자찬을 한 귀로 흘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국에서 구할 수 있는 무기들은 물론 성국에서만 획득이 가능한 각종 축복받은 무기와 신성 촉매도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다만, 보스를 잡고 획득하는 무기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여신이 힘을 되찾으면서 이 세계의 마물을 모조리 지워버렸으니까. 이클립스 말로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갔다나.
“라파엘라 성국까지 가서 힘들게 구해온 것들도 많다고요. 저 잘했죠?”
내가 제법 만족한 기색이자 더더욱 기고만장해진 페치가 기세등등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성국 가서 힘들었어?”
“…….”
기고만장해져 있던 입이 순식간에 다물어졌다. 핫핑크색 눈동자에 아차 싶은 심정이 떠올랐다.
“내가 너한테 증표까지 줬는데 성국 가서 힘들었다고? 정말?”
성국에서 내가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지를 생각해본다면 페치가 받았을 대접 역시 어렵지 않게 집작할 수 있다. 교황들과 거의 동급으로 떠받들어 모셔졌겠지.
장담하는데, 하나도 안 힘들었을 거다.
“그, 그러니까 그게요…… 헤헤.”
“아주 입만 열면 거짓말이지, 응?”
“히이이익!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한번만 용서해주세요!”
마침 손에 쥐고 있던 무기를 가볍게 휘두르자 페치는 바닥에 웅크려 머리를 조아린 채 벌벌 떨었다. 저놈의 사기꾼 본성은 아직도 못 버렸는지 틈만 나면 거짓말이다.
‘나한테 피해를 주는 거짓말은 안 하겠지만.’
똑똑했으면 똑똑했지 절대 멍청하진 않으니, 그랬다간 두 번째 기회 따윈 오지 않는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으리라.
머리를 조아린 채 벌벌 떨던 페치는, 갑자기 조금 다른 패턴으로 움찔 하더니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올렸다.
“저, 델타 님.”
“이번에는 또 무슨 거짓말을 하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여기, 이것 좀 보세요.”
페치가 타이즈 안에 손을 집어넣어 린네에게 받았다던 종이를 꺼냈다.
종이는 검게 물들어 있었다.
“황금 열쇠, 다 완성된 것 같은데요?”
“어서 와. 히히. 더 잘생겨졌네.”
린네는 여전히 무지막지한 크기의 거유를 출렁이며 날 맞이했다. 아마 여태껏 만났던 여자들 중에 린네가 제일 크지 않을까 싶었다. 그 최초의 교황보다도 더.
“나, 나도 예전보다 훨씬 예뻐졌는데. 혹시 시간 되면ㅡ”
“쓸데없는 소리는 됐고, 완성됐다는 열쇠나 보여주시죠.”
예뻐졌다는 주장도 딱히 빈말은 아니긴 했다. 음산한 분위기는 거의 다 사라지고, 머리카락도 아직 푸석푸석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기름기가 줄줄 흐르면서 떡져 있지는 않았으니까.
다크서클 하나만큼은 여전하긴 했어도 말이다.
“여기 있어. 흐.”
린네는 가슴 사이를 한참 뒤적거리다가 황금색으로 빛나는 열쇠를 꺼내 내밀었다.
미네르바도 그렇고, 미네르바의 딸도 그렇고, 플로레타랑 루나도 그렇고, 왜 다들 가슴 사이에 뭘 넣어뒀다가 꺼내는지 모르겠다. 다들 옷에 주머니가 없어서 그런가.
의문과 함께 열쇠를 가져오려는데 린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직도 뭐 남았습니까?”
“서, 설명이랑…… 또…….”
린네가 내 옆에 달라붙은 페치를 흘끔거렸다.
ㅡ덜컹!
그와 동시에 벽과 바닥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들이 튀어나왔다. 반사적으로 하나를 잡아챘다.
‘구속구?’
강철로 이루어진 구속구였다.
손에 가볍게 힘을 줘서 그걸 구겨버리고 다른 것들도 마저 박살내려다가 행동을 멈췄다. 구속구가 뻗어나가는 방향이 살짝 다르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꺄아아아아악?!”
구속구의 목표는 페치였다. 양팔에 하나씩, 그리고 양다리에 하나씩 차례차례 강철로 된 족쇄가 채워졌다. 페치는 필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강철을 끊어낼 순 없었다.
린네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보았다.
“……실전 테스트, 남았어.”
“델타 님! 살려주세요! 이대로 죽긴 싫어요!”
“걱정 마, 히히. 안 죽어. 그냥 열쇠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만 시험하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하는데! 이 망할 여자야!”
“너 바보야? 델타나 나한테 할 순 없으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페치는 밖에 놔두고 왔어야 했던 듯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