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43)
외전: 무기 수집 – 3
“…….”
“…….”
뚱한 표정이 두 개. 그리고 그 표정들은 서로를 향하고 있었다. 한동안 상대를 응시하던 칠흑색 동공이 문득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날 향했다.
아직 시야각 안이었던지라 타이밍이 겹쳤다는 게 훤히 보였다. 그 사실이 제법 불쾌했는지 린네와 닉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저기, 이거 뭐야?”
반말 닉스가 린네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린네도 아니고, 연금술사도 아니고, 하다못해 이 여자도 아닌 ‘이거’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면 상대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내가 말했던 연금술사야. 닉스 너랑 닮은 느낌이라고 했던 사람.”
그 말에 닉스와 린네가 질색을 했다.
한쪽은 나와 특별한 사이고, 다른 한쪽은 상식이 좀 많이 부족해서 그렇지 첫만남부터 페치를 죽이고 날 차지하겠다며 그 소란을 피웠던 여자다.
그런 두 사람이 대놓고 질색을 할 정도라는 건 방금 그 말이 정말 어지간히도 싫었다는 뜻이었다.
“키히힛, 아무리 당신이라지만 그 말은 좀 너무한데.”
“히히, 아무리 너라도 조금 너무한 말인데.”
“…….”
또 비슷한 말이 흘러나왔다. 린네와 닉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칠흑색의 눈동자가 상대를 노려보았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둘은 이상하게 뭔가 닮았다고 말이다. 처음 봤을 때도 닉스를 푹 숙성시키면 저런 느낌이지 않을까 했는데 이걸로 더 확실해졌다.
분위기도 음침하고, 말투에도 이상한 웃음이 섞여들어 있고, 머리카락이 산발이라는 점과 키에 비해 가슴이 차지하는 면적이 제법 된다는 점까지도 일치했다.
닉스는 리제보다도 한참 작은 주제에 가슴이 리제와 맞먹는 수준이니 말 다한 거고, 린네는 키 자체야 눈높이가 나랑 비슷할만큼 크지만 가슴이 머리의 두 배 이상이다.
닮았다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혹시 닉스한테 숨겨둔 자매가 있었나?’
잠시 쓸데없는 생각을 한 내가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닉스는 영혼 수호녀였다가 이 세계로 넘어왔는데 린네는 처음부터 이 세계 사람이었다. 착각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여자는 왜 불렀어?”
“거래를 하지 않았습니까. 함정을 좀 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게 해주는 대신 한 명을 더 부르겠다고.”
“……알았어. 출발하자.”
자기 입으로 한 말이었기에 반박을 할 수 없었는지 린네가 약간 뾰루퉁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인지라 검은색 머리카락에 검은색 옷을 차려입은 린네는 어둠 속에 꽤나 잘 녹아들었다. 입고 있는 옷이 별다른 장식 없는 일체형 드레스라는 점도 컸다.
다만, 저 거대한 가슴만은 어떻게 해도 감춰지지 않았다.
어떤 각도에 서더라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폭력적인 크기였고, 덕분에 아우로라에 비하면 한없이 건전한 노출도의 드레스마저 외설적으로 느껴졌다.
‘닉스보다는 건전한 옷차림이지만.’
“키히힛, 왜?”
“아니야. 빨리 따라가자.”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린네를 따라갔다. 그 뒷모습이 골목으로 향하자, 닉스가 주변에는 들리지 않도록 조곤조곤 속삭여왔다.
“그런데 오늘 뭐 하는 거야?”
뭘 하려는지 설명하기도 전에 따라오겠다고 수락한 탓에 닉스는 오늘 정확히 뭘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함정 깔기.”
“……함정?”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골목 중간에 멈춰서서 음산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이고 있는 린네를 가리켰다. 누가 본다면 귀신이라고 생각해도 믿을 외모였다.
손가락은 흐릿한 줄을 움직이고 있었고, 그 줄은 건물 3층에 뚫린 창문 밑에 연결되어 있었다. 줄 끝에서 무언가 복잡한 장치가 착착 완성되어갔다.
“함정이라니, 어떤 함정?”
“구체적으로는 저쪽에 달렸지. 나도 정확하게는 몰라. 저기 있는 린네 마음이니까.”
“단순히 사람들 괴롭히려고 저러는 건 아닌 것 같고, 뭔가 따로 노리는 게 있나봐? 키히힛.”
닉스가 음침하게 중얼거렸다.
맞다. 지금 린네가 함정을 설치하는 위치는 일반인이라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자리였다. 세상 그 어떤 일반인이 한밤중에 으슥한 골목까지 들어와서 건물 3층으로 들어가는 창문 밑 벽을 짚겠는가.
심지어 저 건물이 보석점이기까지 하다? 의도가 뻔히 보이는 행동이다.
나로 인해 공방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함정 잔치가 금지된 이후에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방법이라고 했다. 왜 함정에 그렇게 집착하는지는 불명이었다.
“됐어. 히히.”
린네는 얼마 안 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이제 다음 설치 지역으로ㅡ”
ㅡ삐걱.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고 말하려는 순간 창문이 열렸다. 린네의 얼굴에 “이렇게 벌써?” 하는 당혹감이 떠올랐다가 곧장 희열로 바뀌었다.
닉스에게 눈짓을 했다. 닉스는 린네까지 가려줘야 한다는 게 살짝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지만, 내 말이 더 우선이었기에 곧장 흑마법을 사용했다.
우리 셋을 어둠이 둘러쌌다.
“히히힛, 히힛, 히히히히히…….”
린네는 음침하게 웃으며 열린 창문 사이로 조심스레 고개를 내민 누군가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무척 조심스럽게, 오랫동안 주위를 살폈으나 닉스가 직접 발동한 은폐 마법을 간파할 순 없었고,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몸을 내밀었다.
ㅡ촤라라라락!
“……!”
그리고 얼마 못 가 함정이 설치된 자리를 건드렸다.
함정이 발동됐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남자는 마법까지 써가며 다급히 팔을 빼려 시도했다. 양손에 푸른 빛이 번뜩였다.
하지만 무려 린네가 직접 설치한 함정이었다. 함정은 부서지긴커녕 이상한 흰색 액체를 터뜨려 몸을 뒤덮었다.
목 아래부터 무릎 위까지가 흰색 액체에 잠겨버린 남자는 고스란히 벽에 찰싹 달라붙어 옴싹달싹도 하지 못했다. 밖으로 튀어나온 팔다리가 애처롭게 버둥거렸다.
곧이어 스멀스멀 기어올라온 흰색 액체가 코만 남긴 채 얼굴 전체를 뒤덮었다. 이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신세였다.
“히힛, 당신. 지금 당신이랑 나랑 똑같은 생각 하고 있는 거 맞지?”
“……아마 그럴걸?”
남자의 몸을 둘러싼 저 흰색 액체,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연상되는 물체가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진짜 그거겠어 하고 억지로 납득하면서 끝내려는데, 우리 대화를 엿들었는지 린네가 선수를 쳤다.
“맞아. 촉감이랑 냄새까지 완벽하게 재현했어. 히히, 원본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맛까지 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딱히 알고 싶진 않았던 진실이었다. 닉스가 헛구역질을 하며 슬그머니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어떻게요?”
“내 스승님 중 한 명이 지나가는 남자들 잡아다가 연구했었거든. 제법 오래 전 일이야. 한 삼사백 년 됐나?”
린네가 음산하게 웃었다.
“저 사람은 나중에 경비대가 알아서 할 테니 우린 이동하자. 다음 장소도 미리 조사해뒀어. 훔친 물건도 몸에 고스란히 있을 테니까 증거로는 충분하겠지, 히히.”
첫 순서부터 성공해서 신이 난 린네는 이상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다음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그렇게 동이 틀 때까지 총 여덟 곳에 함정을 설치했고, 세 명을 더 잡았다. 그 중에 두 명은 입까지 막히기 전에 비명을 질렀다가 순찰 돌던 경비병들한테 현장에서 체포됐다.
경비병들은 함정을 누가 설치했는지 궁금해하면서도 어쨌든 당장 눈앞에 있는 범죄자를 호송하는 쪽에 더 중점을 뒀다.
“히히히히. 오늘 따라와줘서 고마워.”
8곳에 함정을 설치해서 4명. 린네는 오늘따라 성공률이 굉장히 높다며 무척 즐거워했다. 평소에는 스무 곳 설치해서 하나도 안 걸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던가.
뭔가 내 덕분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우연일 뿐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기분이 최고조에 달한 린네는 듣는둥 마는둥 했다.
“그래서, 약속했던 것 말인데ㅡ”
“이런 곳에 숨어 있었군. 장막의 색을 보아하니 흑마법사인가?”
린네의 말을 끊어먹으며 은빛 갑옷을 착용한 기사가 나타났다. 린네가 하려던 말을 멈췄다.
심지어 한 명도 아니었다. 네 방향에서 은빛 갑옷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마법이 간파당한…… 건 아니구나.’
어떻게 알아차렸나 했는데, 방금 린네가 몸을 일으키면서 근처 공간이 살짝 일그러진 듯했다. 장막에 파동이 생겨났으니 은빛 여명 기사단쯤 되는 실력자라면 낌새를 눈치챌 수 있다.
“두 번 말하지는 않겠다. 함정을 설치한 사람이 너희들인가?”
은빛 여명 기사단을 찾아갔을 때 많이 들어본 목소리였다. 이름까지는 모르겠고.
그때랑은 달리 단어 하나하나에서 살기를 풍겨대는 게 꼭 다른 사람 같았다. 저 입장에서야 범죄자한테 웃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은빛 여명 기사단? 저 사람들이 여긴 왜…….”
린네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칠흑색 눈동자에 미약한 공포가 깃들었다.
내 위치가 위치인지라 저런 모습을 보여줄 일이 없어서 그렇지, 은빛 여명 기사단은 엄연히 황궁을 수호하는 황제의 직속 기사단이다. 최정예 중에서도 최정예만 모아놓은 집단이라는 뜻이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지한 린네라고 한들 그 실력만큼은 알 수밖에 없었다.
“우응…… 역시 밤 새는 건 피곤하네…….”
그에 비해 닉스는 시큰둥했다. 나는 품에 안겨 고롱고롱대는 닉스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맞긴 한데, 그냥 적당히 넘어가 줄 생각은 없어? 어차피 해 뜨면 회수될 거고, 당한 사람이라곤 나쁜 짓 한 놈들밖에 없잖아. 그렇지?”
저쪽에서 달려들기 전에 목소리를 냈다. 장막을 들추지 않은 이유는 피차 얼굴 볼 일 없이 서로서로 좋게 넘어가자는 의미였다. 괜히 눈 마주보고 대화하면 양쪽 다 불편하다.
“그럴 수는 없다.”
예상을 한참 빗나가는 말과 함께 포위망이 더욱 좁혀졌다.
“그간 원인 모를 함정에 당한 범죄자만 수십이다. 일반인이 당하는 일은 없었다고 하나, 비인가 함정이 제국의 수도에 설치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황을 좌시하고 있지 않을 이유로는 충분하지. 원칙대로 집행하겠다. 너도, 그리고 네 일행도 모두 조사를 받아야겠으니 따라오도록.”
내 목소리를 못 알아들었나 싶어 의문을 품고 있으려니, 닉스가 장막 안에서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외부로 발산되는 목소리가 원본과 달라진다고 귀띔을 해왔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빨리 얼굴부터 보여줘야지. 나는 장막 밖으로 걸어나갔다.
“……!!!!!!”
이쪽을 향해 있던 살기가 단번에 흩어졌다.
“안녕.”
“데…… 델타 님……?”
“미안. 본의 아니게 정체를 숨긴 꼴이 됐네. 닉스가 그러는데 이 장막 안에 있으면 목소리가 바뀐다더라. 그래서 너희가 못 알아들은 것 같아.”
“그, 그러셨습니까.”
“여긴 어떻게 왔어?”
빠르게 무기를 내린 은빛 여명 기사단이 투구를 벗고 설명을 이어갔다.
알고보니 린네는 제국의 수도에 연금 공방을 차린 그날부터 계속해서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설치 횟수만 따져봐도 벌써 최소 수백 번이다.
아무리 범죄자만 노린다 한들 인가되지 않은 함정이 설치되니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일반 경비병이나 기사가 린네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결국 지원 요청이 위로 올라가고 또 올라간 끝에 은빛 여명 기사단이 출동하게 됐건만, 재수없게도 하필이면 바로 오늘 린네가 날 데리고 함정을 둘러본 것이다.
“이, 이건 진짜로 우연이야…….”
린네는 노린 게 아니라 우연이었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넘어갔다. 저 여자가 이런 치밀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이제 원칙대로 집행해서 나도 체포돼야 하는 건가?”
내가 웃으며 두 손을 내밀자, 단원들이 다 같이 죽을 상을 했다.
“……저 그러면 진짜 리제 단장님한테 죽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부활해서 아이리스랑 에리카 단장님한테도 한번씩 더 죽겠죠. 마지막이 클라우디아 단장님일 테고요.”
“농담이야. 그냥 돌아가서 교화 끝냈다고 전해.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테니까. 내가 단단히 주의시켜 놓을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델타 님.”
기사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떠올랐다.
4명을 모두 돌려보낸 후, 나는 어안이 벙벙해진 린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던 계산은 마저 끝내야지.”
“으, 응. 그렇지. 맞아. 끝내야지.”
잠시 흐리멍텅해 있던 칠흑색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래서, 연성 무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고 있다고?”
연성 무기는 원래 보스를 잡으면 드랍되는 아이템을 재료로 만들어져야 한다. 저번에 제작했던 심연 검처럼 말이다.
하지만 린네는 모든 마물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소재지를 찾을 수 없게 된 보스 드람템 없이도 연성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이 내가 오늘 린네를 따라 나온 이유였다.
“세레스! 손님이다!”
문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세레스는 하던 작업을 마저 끝낸 다음에야 허리를 폈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다음, 가슴을 하나씩 붙잡고 부드럽게 벌려 그 사이에 고인 땀을 털어버렸다.
“누구야?”
“몰라. 너 찾아왔다는데. 어떡할래?”
“의뢰?”
“아닌 것 같던데.”
“그럼 뭐하러 받았어? 돌려보내.”
무시하고 다음 쇠를 꺼내려던 세레스는, 잠시 뭔가를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고 땀을 닦았다. 밖으로 나오자 놀란 눈을 하고 있는 구릿빛 피부의 여자가 보였다.
“뭐야, 만나게?”
“잠깐만이야. 나 대신 들어가 있어.”
“알았어. 허 참, 니가 웬일이냐?”
여자가 놀란 눈으로 세레스의 빈 자리를 채우러 들어갔다. 세레스는 잠시 서 있다가 옆에서 물 한바가지를 떠 몸에 뿌린 다음 손님을 맞으러 나갔다.
몸이 푹 젖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한창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시간에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상대의 차림새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가끔 지랄하는 년놈들이 있긴 한데, 그런 년놈들은 방금 들어갔던 여자 선에서 쫓겨난다.
‘옷차림은 평범하네.’
손님이 기다리고 있는 자리에 도착한 세레스는 그곳에 서 있는 여자를 천천히 훑어보았다.
머리카락부터 시작해서 죄다 핫핑크색인 건 조금 특이했지만, 밑가슴을 훤히 드러내는 언더붑이나 면적이 삼각팬티 수준에 불과한 타이즈 하의는 별로 특별할 것도 없었다.
핫핑크색 여자가 세레스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페치라고 해요!”
“그래, 네가 날 불렀다고?”
“네!”
“이유는?”
잠시 뜸을 들이던 여자는 핫핑크색 트윈테일을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며 말했다.
“한 방 먹여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