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45)
외전: 혼돈 던전 – 1
침대에 앉아 구경중이던 2명이 놀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브닼 4에서 이리도 맥없이 죽어버리는 모습은 처음 봤기 때문일 것이다.
회차 진행이 막혀 끙끙 앓고 있을 때마다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들로 그 막힌 부분을 클리어하는 모습을 보여줘 왔었기에, 내 실력을 가장 극적으로 체험한 사람이 카이킬리아와 아우로라였다.
그런 내가 You died를 띄웠다. 그것도 1층 보스에서. 놀라는 게 당연했다.
“저…… 고모님. 방금 델타 어떻게 죽었는지 보셨어요?”
“확인하지 못하였느니라. 처음부터 대비하고 있었더라면 가능하였겠으나, 그러지 않았으니.”
내가 혼돈 던전 앞 조각상에서 부활한 캐릭터를 보며 멍을 때리는 동안 아우로라와 카이킬리아가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카이킬리아가 못 봤는데 아우로라라고 봤을 리 없었다. 아우로라는 자긴 공격이 들어왔는지도 몰랐다며,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난이도냐고 혀를 내둘렀다.
‘……방금 뭐였지?’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첫트에 죽는 정도야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닼라 모드에서 맨손런이 가능하게 된 것도 수없이 죽어가면서 모든 잡몹과 보스의 패턴을 외워놨기 때문이니까.
그런데 방금은 달랐다. 패턴 이지선다에 걸렸다거나 처음 보는 패턴이 나와서 죽었다거나 한 게 아니라, 정말로 순수하게 ‘공격을 못 봐서’ 죽었다.
지금의 내가 말이다.
‘이 여신이 진짜.’
대체 자기 세상에 뭘 만든 건데. 나는 황당함을 꾹꾹 억누르며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브닼 4 커뮤니티에 재접속했다.
슬슬 선발대들이 돌아와서 후기를 남기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아직 1층도 못깨고 있는 사람이면 개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단 나부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회수 4369] [추천 2831] [비추천 6] [댓글]이거 주작 아님 내가 개추 2700개 박음
ㄴ그만해 미친새끼야
ㄴ더하면 뇌절이다 선 잘타라
아니 근데 진짜 존나 어려움 ㅅㅂ 체감상 닼라모드 이상임
ㄴ그건 패턴이 보이기라도 했지 이건 패턴도 안보이는데 어캐 깨라는거
ㄴㄹㅇ 지금 시발 첫층부터 막혔음
ㄴ뭐에 처맞았는지도 모르고 뒤지니까 헛웃음밖에 안나오더라 ㅋㅋㅋㅋㅋ
[목 없는 철갑 기병 내려찍기 첫트에 반응 성공한놈 있냐?]난 내가 뭐 맞고 뒤졌는지도 몰랐다 ㅅㅂ 그냥 휙 하고 지나가니까 죽어있음
[댓글]나도 몰랐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3번 맞고나서 알음
ㄴ근데 알아도 못피하겠더라 시발 니가 알아서 뭐 어쩔건데? 하는 느낌임
한 7번쯤 죽으니까 보이긴 하던데 근데 시발 알고 있는데도 못막겠음
ㄴ나도 아는데 못막겠더라 걍 대놓고 뒤지라고 낸거 같은데
ㄴ1층부터 대놓고 뒤지라는거면 나중에는 어떡하냐
ㄴㅁ?ㄹ
야 나 방금 보고 피하려 했는데 못봐서 죽었거든?
ㄴ그래서 다음번에는 움찔할때 미리 피해있었는데 피한 자리로 공격 들어와서 죽음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료라고 꼬셔서 지금껏 브닼4 산놈들 한명이라도 더 엿먹이기 위해서가 분명함
좆 같 다!
[댓글]ㄹㅇㅋㅋ
‘세계 최악의 게임사’
나가 뒤지십시오. JOAT
브닼갤 역시 난리도 아니었다. 패턴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는 하소연에, 같은 패턴으로 몇 번을 죽고 나서야 뭐에 죽었는지를 간신히 눈치챘다는 한탄도 제법 많았다.
제일 압권은 어떤 패턴이 나올지는 파악했는데 그걸 알고도 못 피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예측으로 구르면 구르기 캐치를 해버리고, 보고 피하자니 도저히 반응이 안 되고.
그럴 만했다. 카이킬리아와 나조차도 미리 대비해야 첫트에 눈치챌 수 있는 수준이었으니까. 평범한 사람들이 반응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아우로라는 이거 못 깰 것 같은데.’
그 산증인이 바로 아우로라였다. 일단 대응이라도 가능한 우리와는 달리, 아우로라는 뭐가 휙 지나갔더니 You died가 뜬 것밖에 못 봤다고 했다.
카이킬리아가 무척 복잡한 얼굴로 생각에 잡겼다. 입을 다물어버린 카이킬리아를 대신해 아우로라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델타. 이거 깰 수는 있는 거 맞지?”
“아마도? 일단 패턴 파악은 가능하니까 적당히 죽어가면서 외우면 될걸. 대신 좀 많이 집중해야겠지.”
보스가 패턴을 난사해대는 속도로 보아 여태껏 하던 것처럼 온갖 기행을 담은 클리어는 당분간 힘들 듯했다.
“저쪽 세계에서는 현실에 나타난 던전일 텐데, 아예 못 깨게 만들었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전체적으로 몹시 악랄한 구조이긴 하지만, 결국 저쪽 세계에서는 현실에 나타난 던전이다. 그 여신이 제 손으로 자기 피조물 죽이는 짓을 할 리가 없으니 깰 수는 있도록 만들었을 거다.
아우로라는 설명을 듣고 납득한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나도 당혹스런 감정을 잠시 밀어두고 키보드를 잡았다. 뭐가 됐든 일단 해보기는 해야 한다.
그렇게 1시간쯤 플레이를 이어가자, 혼돈 던전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악랄하게 디자인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패턴을 이것저것 다 섞어놨네요.”
“……보스들의 패턴을 말이더냐?”
“네. 방금 검 지나간 자리에 장판 깔리는 거 보셨죠? 얘는 닼라 모드에서도 장판은 안 까는 보스에요. 그리고 장판 그래픽을 보면 다른 보스랑 똑같아요. 아마 불타는 골렘 같은데요?”
바로, 브닼 4에 등장하는 보스들의 패턴이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도록 절묘하게 섞여있다는 점이었다.
은빛 여명 기사단장들의 속성 공격 패턴이 다른 속성 보스의 공격에 섞여 나오고, 반대로 속성 보스의 패턴이 기사단장들의 공격에 섞여 나가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패턴을 싹 다 처음부터 외울 수밖에 없겠네요. 이 혼돈 던전 한정으로요.”
“……와, 그럼 델타 너처럼 되려면 바닐라 패턴도 외우고 닼라 모드 패턴도 외우고 혼돈 던전 패턴도 외워야 돼? 끔찍하다, 진짜.”
“닼라 모드만 할 거라면 바닐라 패턴은 외울 필요 없지. 혼돈 던전은…… 글쎄다. 잘 모르겠네. 이건 어차피 할 거 없는 놈들 붙잡아두려고 만든 엔드 컨텐츠 느낌이라. 너희가 이거 손대려면 최소 5천시간은 찍어야 되지 않을까?”
심지어 보스의 모든 공격은 선딜과 후딜이 대폭 줄어들었고, 인간형 보스의 전투 피로 게이지와 짐승형 보스의 그로기 총량이 대폭 상승하기까지 했으니 난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나마 최후의 양심은 체력까지 무식하게 늘어나진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그랬었다간 보스 하나 잡는데 30분씩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거, 그냥 저쪽 세계에서 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패턴 익히는게 더 빠를 수도 있겠는데?’
기껏 만렙을 찍어봤자 능력치당 스탯이 고작 99밖에 안되는 게임 캐릭터에 반해,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일단 이클립스랑 대화를 좀 해봐야겠어.’
나는 카이킬리아와 아우로라를 자기 방으로 돌려보낸 뒤 문을 걸어잠갔다. 이럴때는 역시 제작사의 의도 파악이 우선이다.
“여ㅡ”
“네, 당신. 부르셨어요?”
저번처럼 내가 부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첫 음절을 발음하자마자 이클립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클립스는 침대 가장자리에 살포시 걸터앉아 싱글싱글 웃었다.
“대체 뭘 만드신 겁니까?”
“브라이티스트 다크니스 4의 신규 컨텐츠이자 엔드 컨텐츠 겸 당신의 무기 수집을 위한 장소요. 마음에 들어 하실 거라 생각했어요.”
일단 좋냐 싫냐로 구분한다면 좋은 쪽이긴 했다.
“미리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제게 들으시는 것보다 브닼 제작사의 컨텐츠 업데이트 공지로 확인하시는 쪽을 더 기뻐하실 것 같아서였고요.”
이 여신, 나랑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그런가 나를 너무 잘 알게 됐다.
나는 반박하지 못했고, 이클립스는 뿌듯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보란듯이 가슴을 폈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난이도를 그렇게 설정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제 세계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이 세계의 유저라 할지라도 그곳에는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어야 하니까요. 오직 당신만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있도록이요.”
이클립스가 방긋 웃었다.
“하지만 당신도 그리 쉽게는 못 깨실 걸요?”
“네?”
그 말을 듣자마자 살짝 열이 뻗쳤다.
저 허접 여신한테 저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하는 기분이었다. 이클립스가 나한테 ‘너 개못하잖아’를 선언할 수 있는 위치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리 당신이라 해도 1층부터 최하층 돌파까지 족히 두 달은 걸리도록 설계했거든요. 아, 물론 하루 24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기준이에요.”
“……두 달이요?”
보스의 난도가 폭증해서 그렇지, 숫자 자체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팔레트 스왑으로 나온 보스들은 모두 제거하고 원본만을 남겨놓았으니까.
룬 던전이나 필드에서 나오는 보스들 중 팔레트 스왑 개체가 꽤 된다는 걸 생각하면, 실질적인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의미다.
“그리고 당신, 벌써 한번 죽으셨잖아요?”
“…….”
“처음 들어가자마자 전투다운 전투도 못해보고 한방에 죽으셨죠. 제 말이 맞죠, 그렇죠?”
나는 조용히 손을 쥐었다 폈다 했다. 설마 이클립스가 저런 도발을 해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여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 의기양양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당 가능하시겠습니까, 여신님? 제가 막보까지 잡는데 두 달이 넘게 걸린다고요?”
“못 믿으시겠다면 내기라도 하실래요?”
“내기요?”
“네. 당신께서 혼돈 던전의 마지막 보스인 세계를 먹는 자 클리어까지 걸린 시간이 두 달을 넘어가면 제 승리, 두 달을 안 넘기면 당신의 승리. 어때요?”
정말로 자신감이 충만하다못해 줄줄 흘러넘치는 제안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자기가 질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좋습니다. 받아들이죠. 상품으로는 뭘 거시겠습니까?”
“제가 이기면 당신이 제 말을 뭐든 하나 들어주세요. 그리고 당신이 이기면…….”
두 손을 모은 이클립스가 손바닥이 위를 향하도록 폈다. 그 위에 빛무리가 모여들고, 곧 개목걸이의 형태로 바뀌었다.
중간의 이름표에 ‘이클립스’라는 글자가 적힌 목걸이였다.
“제게 이걸 채울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여신에게 이런 굴욕을 줄 수 있다면 절대로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니시겠죠.”
‘하.’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머리가 단번에 차가워졌다. 이 허접 여신, 처음부터 저걸 노리고 있었던 거다. 아까부터 자꾸 날 도발하던 이유도 그래서일 테지.
날 브닼 4로 건드리면 어떤 제안을 하든지 거절당할 가능성이 0%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다. 전후 사정 파악이 끝나니 조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신님. 아무래도 제 손해 같은데요?”
“네?”
“목걸이 차, 이클립스. 지금 당장.”
“헤윽?!”
이름이 불리자마자 이클립스가 몸을 비틀며 허리를 꺾었다. 다리 사이를 중심으로 침대 시트에 그려지기 시작한 액체 자국이 점점 더 커지고, 달콤한 과일향이 퍼져나갔다.
그러면서도 벌벌 떨려대는 두 손이 스스로의 목에 개목걸이를 가져가고 있었다. 황홀경에 빠진 얼굴에서 싫은 감정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내 저럴 줄 알았지.’
나는 채워지기 직전까지 간 목걸이를 마법으로 빼앗아 부숴버렸다.
“아!”
“내기가 아니더라도 언제든 채울 수 있는데 그걸 굳이 상품으로 걸어야 할까요? 그리고, 그게 어딜 봐서 싫어하는 사람의 얼굴입니까?”
이클립스가 몸을 움찔거리면서 뺨을 붉혔다.
속셈이 들켰기에 부끄러움이 몰려와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본인만이 알고 있으리라.
“으그그극.”
기지개를 켜며 허리를 잡아당겼다. 일주일 내내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더니 몸이 제법 찌뿌둥했다. 하늘로 향한 팔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옆을 쳐다보았다.
“…….”
이클립스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클리어에 두 달은 걸리리라 공언한 컨텐츠가 일주일만에 정복당한 모습을 본 개발자의 얼굴이었다.
‘깨는데 한 달은 걸릴 거라 생각했다고?’
2달 선언 자체는 이클립스 본인이 거짓말이었다고 인정했지만,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었다. 2달이 아니라 1달쯤 걸릴 거라 생각하고 있었댔으니까.
그런데 한달은커녕 일주일만에 세계를 먹는 자까지 박살을 내버렸다. 지금 이클립스의 저 경악한 표정은 순도 100%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표정이었다.
“제가 뭐랬습니까, 여신님.”
나는 피식 웃었다.
“감당 가능하시겠냐고 했었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