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incarnated into a Game Filled with Mods RAW novel - Chapter (352)
외전: 추가 실험 – 2
마탑은 올 때마다 딱히 좋은 일이 없던 장소였다.
이상한 미신이 돌아서 단체로 날 붙잡고 가슴 주무르는 토템으로 쓰려 하질 않나, 고대의 스크롤 연구 권한을 가지고 프리 포 올 규칙의 배틀로얄을 벌여대질 않나.
한때는 인간을 포기한 공부 귀신들의 마굴이 되어버려서 인간처럼 살라고 강제로 공부에 제한을 둬야 했던 적도 있었다.
공부를 더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덜 하게 만들었다고 실의에 빠지는 인간들은 여기밖에 없을 거다.
“……왜 이리 조용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게 편해. 이해하려 드는 게 손해야.”
다만, 오늘 보이는 풍경은 나로서도 조금 의문이었다. 온갖 곳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던 마법사들은 죄다 어디로 가고, 중앙 홀은 물론 도서관까지 텅 빈 상태였으니까.
“일단 미네르바 님한테 가보면 알겠지.”
“국서께서도 알지 못하십니까?”
“내가 부탁받은 건 마법에 문제가 생겼으니 마탑으로 와달라는 거랑 오면서 실험체 한 명만 데려와달라는 말이 끝이었거든. 마탑이 이런 꼴 됐다는 건 못 들었어.”
“실험체…… 알겠습니다.”
라나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불안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게 바싹 붙어 뒤따라왔다.
그렇게 우리는 마탑 최상층에 위치한 미네르바의 공방에 도착할 때까지 사람 한 명 마주치지 못했다.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라나의 얼굴에 번지는 불안감도 점점 더 커져갔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설마 또 쓸데없는 짓을 벌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미네르바가 있다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미네르바도 결국 지식에 굶주린 마법사니까.
흥미로운 일이 생긴다면 그걸 알아보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진짜로 저 팔아넘기려는 건 아니시죠, 국서님? 메이드 주제에 너무 편하게 있던 게 잘못이라고 하시면 어떻게든 고칠 테니까ㅡ”
“또 헛소리 한다. 내가 너를 왜 팔아넘겨? 나중에 아우로라한테 뭔 소릴 들으려고. 그리고 라나 넌 단순한 메이드가 아니라 엄마나 누나에 더 가깝잖아. 아우로라를 저렇게 잘 키운 게 누군데.”
“그러시다면야…… 일단 엄마는 너무 나이 들어 보이니 누나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피식 웃으며 공방 문을 열어젖혔다. 미네르바가 우릴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서 오려무나, 아이야. 어머, 옆에 있는 아이가 실험체일까?”
“힉…….”
“이상한 말 하지 마시죠. 기껏 진정시켜놨더니 또 겁먹었잖아요. 일단 미네르바 님이 말씀하신 대로 말하긴 했는데, 전 솔직히 그 실험체라는 표현도 별로 마음에 안 들거든요. 어떤 마법인지부터 정확히 알려주고 시작하는 게 어떻습니까?”
“미안하게 되었구나, 아이야. 편의상 실험체라고 지칭하긴 했지만 크게 힘든 일은 없단다.”
싱긋, 미네르바가 미소를 짓자 라나가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최근에 나랑 같이 있으면서 이미지가 조금 많이 바뀌어서 그렇지, 사실 아이테르눔 제국에서 영원의 마법사라는 이명이 가지는 위상을 생각해보면 이런 반응 쪽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 그런가요? 하하하…….”
“오히려 여자의 몸을 무척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일이지.”
“……네?”
기분 좋은 일, 이라는 말에 라나의 몸이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겁먹지 않아도 되니 안심하려무나. 아이는 그저 쾌락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된단다.”
“방금, 쾌락이라고, 하셨……?”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생각할까?”
미네르바가 손가락을 튕겼다. 메이드복이 몸을 통과해 옆으로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속옷 차림이 된 라나가 “꺄아악!” 하는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가슴과 아랫도리를 가렸다.
하지만 미네르바는 비명을 지르든 말든 무자비하게 남은 속옷마저도 벗겨버리고, 유두에 은백색 스티커를 붙인 다음 허벅지 사이에 C스트링을 끼웠다.
“시, 실험복으로 환복시키실 거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저 혼자서도 입을 수 있습니다.”
라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렸던 손을 내렸다.
‘……?’
나는 어이가 없었고 말이다.
분명 ‘실험복’따위보다 속옷의 면적이 훨씬 더 넓은데, 속옷을 보여주는 건 부끄러운 일이고 유두 스티커랑 C스트링을 실험복으로 착용하는 건 안 부끄러운 일인가.
지금도 은백색 스티커 너머로 돌기가 살짝 융기해 있는 모습이 고스란히 보이고 있건만, 그걸 조금도 신경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이것이 아이를 부른 이유란다.”
내가 어이없어 하는 사이 일은 착착 진행됐다. 미네르바가 손에 든 지팡이를 휘둘렀다. 푸른 마나가 인간의 형상으로 뭉쳤다가 미네르바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여기까지는 라나도 놀라지 않았다. 당장 황궁에 있는 아우로라부터가 마법으로 만들어진 분신이었으니까.
“……어?”
하지만 이후부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네르바의 분신이 달뜬 숨을 내뱉으며 허벅지를 꼼지락대더니 뜬금없이 자기 위로를 시작한 것이다.
목욕 가운 위로 유두를 꼬집다가 검지와 중지를 입 안 깊숙이 밀어넣어 컥컥대며 목구멍 안쪽을 건드리기도 하고, 아예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직접 주무르기도 했다.
그러다 날 발견하고는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로 다가와 어떻게든 음란한 몸짓으로 유혹하려 들었다.
“…….”
몇 번이나 유혹했음에도 내가 넘어오지 않고 가만히 있자, 뾰로퉁한 얼굴을 하더니 내 손을 자기 엉덩이 구멍으로ㅡ
“자, 여기까지.”
미네르바가 다시 지팡이를 휘둘렀다. 분신은 푸른 마나로 변해 사라졌다. 라나는 그 미네르바의 분신이 저런 음란한 짓을 벌였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이해하였을까, 아이야?”
“바, 방금 뭐였…… 어요?”
“지금부터 아이가 해결해주어야 할 문제란다.”
“제가 말입니까? 어떻게……?”
“지금부터 분신의 감각을 아이와 연동시킬 텐데, 치밀어오르는 성적 욕구를 있는 힘껏 억눌러주면 된단다. 연동이 끝나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해소해도 상관없으니 안심하렴.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하는 감각이 얼마나 괴롭게 느껴지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으니.”
미네르바가 새초롬한 눈으로 나를 곁눈질했다. 뜨끔한 내가 시선을 피했다.
“……네?”
라나는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이었다.
“저한테, 그, 감각을 연동시킨다고 하셨……?”
“그렇단다.”
“왜……? 아니,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분신의 상태가 비정상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지 않니. 마법에 오류가 생겼기에 벌어진 현상인데, 분신의 감각을 사람과 연동시켜 감각을 희석하는 방식으로 고치기 위해서란다.”
“그걸 왜 제게 쓰시려는지 모르겠는데요.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을 쓰셔도 되지 않ㅡ”
“모자랐거든.”
히끅,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여기로 올라오면서 마탑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확인하였을 터. 아이는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그건…….”
“모두 내 분신과 감각을 연동했던 여파로 인해 방에 틀어박혀 있어서 그렇단다. 한껏 달아오른 몸을 각자의 방법으로 열심히 위로하는 중이지.”
어쩐지 마탑이 이상하게 조용하더라니, 다들 미네르바의 실험체로 사용돼서 그랬던 모양이다.
“나도 이런 방법까지 동원하기는 싫었는데, 아무리 고쳐도 자꾸 원래대로 돌아가지 뭐니. 이게 지금으로서 생각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주렴.”
“여기 다시 오신 이유가 그래서였습니까?”
내 질문에, 미네르바가 머쓱하게 웃었다. 본인도 마법 하나 고치는데 이렇게 애먹을 줄은 몰랐다는 눈치였다.
“아무리 그래도 마법사들을 실험체로ㅡ”
“오해는 하지 말려무나, 아이야. 모두 자원해서 감당한 일이었단다.”
“자원했다고요?”
이따위 실험에?
“외부 자극 혹은 심리적 요인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흥분이 아니라 강제로 발정 상태에 돌입하게 되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는 이유 하나, 발정 상태에 돌입한 채 특정 지식을 주입하면 그 지식을 떠올릴 때마다 발정하게 될지 궁금하다는 이유 둘. 이렇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지.”
“…….”
“그 아이들의 지식에 대한 갈망을 허투루 생각하지 말려무나, 아이야. 감각 공유로 인한 흥분 상태에서도 공부를 할 테고, 흥분 상태가 종료되어도 공부를 할 아이들이니.”
하여튼 미친 인간들 집합소다운 생각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파르나리도 지원자 중 한 명이었구나.”
“……파르나리 씨가요?”
“성적인 흥분 상태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해서 어떤 감각일지 궁금하다는 이유였지. 몸은 달아올랐는데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길래 관련된 책을 몇 권 빌려주기도 했단다.”
“마탑을 대체 뭐 하는 장소로 만드려고 그러십니까?”
“아이가 원하는 장소라면 무엇으로든지.”
내게 야릇하게 눈웃음을 친 미네르바가 분신을 소환했다. 이번에는 분신이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팔과 다리에 마나로 된 구속구를 채워버렸다.
몸을 만질 수 없어진 분신이 간절함을 담아 바동거렸다. 벌써부터 허벅지 안쪽을 타고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뚝, 뚝, 공방 바닥에 찌그러진 투명색 원이 생겨났다.
“시작해도 되겠니?”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영원의 마법사님. 아직 마음의 준비가ㅡ 꺅?!”
지팡이가 푸른 색으로 물들자마자 라나가 몸을 움찔대기 시작했다.
“흐, 힉?! 모, 몸이. 몸이 이상, 합니다.”
“알고 있단다. 나 역시 경험해보았던 감각이지. 그래도 참으려무나.”
“이, 이걸, 어떻게, 참ㅡ 헤윽?!”
미네르바의 입에서 이상한 마법적 언어가 흘러나왔다. 분신의 몸 곳곳에 푸른 마법진이 떠올랐다. 분신의 바동거림이 격해졌다. 팔다리를 고정시킨 구속구가 세차게 뒤흔들렸다.
“흐엑?! 힛, 흑. 이거, 뭐, 얏. 꺄학?!”
“저렇게 놔둬도 되는 건가요?”
“괜찮단다. 보렴. 무척 기분 좋은 얼굴이잖니?”
라나는 무릎을 꿇은 자세에서 종아리를 좌우로 더 벌리고 바닥에 엉덩이를 붙인 채 움찔움찔 떨고 있었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된 것도 전부 아이 때문이니 아이도 공범이 되겠구나.”
“제가 공범이라고요?”
“아이가 첫 경험에 분신들까지 소환해서 나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될 일은 없었을 거란다. 맞는 말이지 않니?”
그게 내 잘못이라면 그렇긴 한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미네르바도 저러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싫으셨습니까?”
“…….”
미네르바는 반박하지 못했다.
“흐아아앙! 이거 이상해요!”
침묵을 깬 사람은 라나였다. 라나는 다리 사이로 움직이려는 손을 필사적으로 잡아끄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조만간 한계에 달할 듯했다.
“아, 안쪽이 마구 떨리ㅡ 아, 안돼! 더 못 버팁니다! 가앗! 이대로 가버ㅡ”
“끝. 되었단다.”
“……려? 어, 어라?”
라나가 몸을 부르르 떨며 최후의 절정에 도달하기 직전, 떨림이 우뚝 멎었다.
분신의 팔다리에 채워진 구속구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염원하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분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뾰루퉁한 눈으로 본체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미네르바가 지팡이를 살짝 내리찍었다. 분신이 푸른 마나로 변해 사라졌다. 라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전히 실험복을 입은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고생 많았구나, 아이야. 사탕이라도 먹겠니?”
그 손에 콜라맛 사탕 하나가 쥐어졌다. 라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끄, 끝입니까? 이걸로?”
“그렇단다. 말했잖니, 겁먹지 않아도 된다고.”
곧이어 실험복마저 공중에 둥둥 떠 있던 메이드복으로 교체되자, 라나의 눈이 한층 더 세차게 흔들렸다. 그 사실을 확인한 미네르바가 쿡쿡 웃었다.
“할 말이 있는 듯 보이는구나. 잠시 자리를 비켜주지 않겠니, 아이야? 금방 돌려보내겠단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와 나를 공방 바깥으로 인도했다. 자리에 버티고 서서 라나를 쳐다보았다.
“…….”
라나는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버렸다.
남아있겠다는 뜻이었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파르나리 씨?”
“응. 기분 좋은 거 싫어, 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게 됐어.”
“……그런 말이 어디서 나왔는데요?”
“미네르바가 준 책에 나와 있었는데?”
“대체 무슨 책을 받으신 겁니까?”
외전: 183%
이클립스 세계의 여자들은 술이 꽤 강한 편이다. 신체 능력이 뒷받침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본적으로 주량이 상당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독보적인 사람이 바로 클라우디아였다.
와인 따위는 오크통 단위로 마셔대고, 보드카를 물처럼 들이키는데도 몸에 이상이 생기기는커녕 취한 모습조차 한 번도 볼 수 없었으니까.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클라우디아가 취할 수는 있을지. 그리고 클라우디아가 취하려면 얼마나 독한 술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할 기회가 찾아오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몇 퍼센트라고?”
“183%! 내가 만들어본 것 중에서는 제일 세다고 보면 돼!”
그 무시무시한 도수에 소란스럽던 자취방이 조용해졌다. 다들 클라우디아의 손에 들린 투명한 유리병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엄마가 좋은 술을 구했으니 여자친구랑 나눠먹으라면서 무언가를 잔뜩 보내셨고, 그걸 본 교황들이 어머님께서 귀한 걸 보내셨는데 허투루 먹을 순 없다며 직접 요리를 해서 내놓은 것이다.
플로레타와 루나가 내게 손수 만든 요리를 먹여주는 걸 본 다른 여자들이 은근슬쩍 참전하면서 판이 급격하게 커졌다. 그리고 술이 떨어지기 시작할 무렵에 클라우디아가 내놓은 게 저거였다.
도수 183%짜리 물건 말이다.
‘대체 뭘로 만든 거지?’
나는 술병을 넘겨받아 천천히 관찰했다. 얼핏 본다면 아무것도 없다는 착각이 들 만큼 맑고 투명했다. 병도 그렇고, 병 안에 든 액체도 그렇고.
입구 근처에서 찰랑이는 액체만이 내부에 무엇인가 담겨있음을 말해줄 뿐이었다.
“183%면 그건 이미 알코올이라고 부를 수가 없지 않나?”
알코올 원액의 순도는 대체로 96% 언저리가 상한선이라고 알고 있다. 그 이상으로 순수성을 높이려면 다른 화학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고.
내 세계에서 비행기 반입까지 금지됐을 정도로 악명 높은 스피리터스가 99%일 텐데, 183%란 도수는 대체 무슨 짓을 해야 나올 수 있는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아니지. 순도 183% 알코올이니까 이것도 알코올이지. 뭘 당연한 걸 묻고 그래?”
퍼센테이지가 100%를 넘어간 시점에서 이미 알코올이라 부르기엔 글러먹은 거 아닌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으로 클라우디아를 바라보았다. 자기 잘못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한숨을 내쉬며 코르크 마개를 땄다. 마개가 풀리자마자 복숭아 향과 섞인 알코올 특유의 지독한 냄새가 확 밀려들어왔다.
‘……심상치 않은데.’
단순히 냄새만 맡았는데도 눈앞이 살짝 어지러웠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냄새만 맡고 취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를 직접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옆에 있던 카이킬리아에게 병을 건네주었다. 카이킬리아는 병 입구에 코를 가져다대더니 눈살을 확 찌푸리며 반쯤 집어던지다시피 내 손에 내려놓았다.
그 카이킬리아가 저런 반응이니 다들 호기심이 생긴 듯 병 입구에 코를 가져갔다가 눈살을 찌푸리며 내게 돌려주는 일이 반복됐다. 심지어 닉스는 작게 헛구역질까지 해댔다.
“혹시 마셔볼 사람?”
병을 돌려받은 클라우디아가 내용물을 와인잔에 따르며 질문했다. 저 괴상한 물건을 처음으로 마시기는 싫었는지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조금씩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미네르바와 자존심 때문에라도 시선을 피할 이유가 없는 카이킬리아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다보니 첫 순서가 카이킬리아로 정해진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한번 용기 있게 도전해보시겠습니까, 선제님?”
“되었다. 그런 역겹고 구역질나는 액체를 무엇 하러 마시겠느냐.”
“알겠습니다. 두려우시다면야 어쩔 수 없죠. 그만큼 독한 술이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금 무엇이라 하였느냐.”
눈에 뻔히 보이는 도발이건만, 카이킬리아는 그대로 걸려들었다. 발끈한 카이킬리아가 손을 내밀었다. 클라우디아는 기다렸다는 듯 절반 정도 채워진 와인잔을 쥐여주었다.
잔 안에서 마치 공기를 담은 것처럼 눈이 부시도록 맑게 찰랑이는 액체. 그걸 잠시 들여다보던 카이킬리아는 내용물을 단숨에 비워버렸다.
“크흡! 콜록, 콜록!”
그리고 세차게 기침을 해댔다. 아우로라가 얼른 물을 내밀었지만, 카이킬리아는 연신 헛구역질을 해대면서도 거절했다. 내쉬는 숨에서 짙은 알코올 향이 풍겼다.
방실방실 웃고 있던 클라우디아도 새 잔을 꺼내 카이킬리아에게 줬던 만큼 들이켰다. 눈가가 조금 떨리긴 했어도 카이킬리아보다는 훨씬 안정된 모습이었다.
“두 잔은 무리시겠네요, 선제님.”
“…….”
카이킬리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딸꾹, 달짝지근하게 달아오른 얼굴에서 딸꾹질 소리가 들렸다. 눈이 점점 풀려가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쓰러질 듯했다.
미네르바와 둘이서 제국 최강의 자리를 양분하고 있는 여자답게 카이킬리아 역시 절대 술이 약하지 않은 편임을 생각해본다면, 저 술이라 부르기도 뭐한 액체의 도수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는 뜻이다.
“……잠시, 쉬어야겠노라.”
결국 카이킬리아는 5분도 채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청휘청 위태롭게 걸어가는가 싶더니 기어코 방에 도착해 문을 닫았다. 사실상의 패배였다.
다음 순서인 아우로라는 한 모금만 홀짝였는데도 아이리스의 품에 안겨 자기 방 침대에 눕혀지는 신세가 되었다. 순식간에 두 명이 쓰러지자, 자연스레 다음 목표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교황 성하.”
플로레타와 루나였다. 클라우디아가 와인잔을 내밀었다.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손수 만든 요리를 먹여주던 교황들이 살짝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은원 관계는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은원 관계, 라 하셨습니까?”
“네. 저희가 성국에 처음으로 방문하였을 때, 달의 입맞춤을 주시면서 뭐라 하셨었죠?”
“…….”
달의 입맞춤의 취기가 지닌 신성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사실을 알고도 술이 약하면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는 투의 말을 했었다.
기억을 떠올린 듯, 플로레타와 루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잔을 건네받아 조심스레 들이켰다. 루나가 절반, 그리고 플로레타가 남은 절반.
마신 다음에는 둘 다 귀엽게 켈록이며 기침을 했다. 클라우디아도 따라서 마셨다. 루나가 마실 때 한 번, 플로레타가 마실 때 한 번. 총 2잔이었다.
“성자니이이임…… 같이 아기만들기 하지 않으시겠습니까아아아…….”
“저희는 이미 준비 되었습니다아앙…… 자궁에 싸주시기만 하시며어어언…….”
플로레타와 루나가 잔뜩 취해서 나한테 애교를 부리며 엉겨붙을 때까지도 클라우디아는 뺨이 살짝 달아오른 걸 제외하면 멀쩡했다. 진짜 괴물이 따로 없었다.
흑역사를 더 쌓기 전에 방으로 옮겨주려던 스텔라와 셀레네도 딱 걸려서 한 잔씩을 얻어마셨고, 이번에는 에리카와 리제가 넷을 안아들어 침대에 눕혔다.
무슨 독약도 아닌데 한 잔을 마실 때마다 사람이 한 명씩 줄어갔다. 저기 저 클라우디아라는 규격 외 존재를 제외하면 말이다.
‘……도수 183%짜리면 독이 맞을지도?’
아니, 일단 독은 맞는 것 같았다.
“여기, 마시려무나.”
“……저요?”
미네르바는 웃으며 술잔을 받아들더니 그걸 대뜸 옆자리에 앉은 닉스한테 넘겨버렸다. 얼떨결에 그걸 받아마신 닉스는 3분도 못 가 기절했다.
“몸이 작아서 취기가 빨리 찾아온 모양이구나.”
닉스를 방 침대로 순간이동시키면서 한 말이었다. 그나마 혼자서 안 마시고 넘길 생각은 없었는지 미네르바도 남들이 마셨던 만큼을 넘겨받아 조금씩 홀짝이긴 했다.
“흥미로운 사실 하나 듣겠니, 아이야?”
“네?”
“이건 약간의 마법적 작용이 가미된 액체란다. 그리고 관점에 따라 어쩌면 약간이 아닐 수도 있겠지.”
미네르바는 그렇게 말하며 무려 네 잔을 더 비웠고, 클라우디아가 그걸 모두 따라했을 때쯤에는 어느새 얼굴이 꽤 빨개져 있었다.
마지막 잔을 내려놓은 미네르바가 슬슬 더워지는 것 같다며 옷깃을 살짝 풀어헤치고 방으로 들어가버리자, 빈 공간이 제법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제 거실에 남은 것은 어수선한 테이블과 얼굴이 빨개진 채 알코올이 담긴 숨결을 내뱉은 클라우디아, 그리고 어정쩡하게 끼어 있는 기사단장들뿐이었다.
클라우디아가 살짝 떨리는 손으로 반쯤 채운 와인잔을 내밀었다.
“자. 델타 너도.”
입 안 가득 알코올과 복숭아 향이 퍼지고, 향이 올라오다 못해 비강으로 역류하고, 식도를 비롯한 위장이 어디부터 어떻게 뻗어있는지를 알 수 있는 그런 맛이 났다.
“그래서.”
탁, 텅 빈 와인잔을 일부러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거의 동시에 클라우디아의 앞에도 똑같은 모습의 유리잔이 놓여졌다.
“이게 회의에서 내린 결론이었어? 다들 술 먹여서 자기 방으로 돌려보내는 거?”
“…….”
“보니까 미네르바 님도 꽤 많이 도와주신 것 같고. 저렇게 대놓고 말씀하시는데 모를 수가 없지.”
“맞아.”
“어디서 어디까지가 계획이었는데?”
애초에 숨길 마음이 없었던 듯, 클라우디아는 곧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미네르바 님의 도움을 받으려는 건 아니었어.”
처음에는 어디까지나 취한 ‘척’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클라우디아의 어처구니 없는 연기를 보다 못한 리제가 차라리 진짜로 취하는 게 낫겠다면서 미네르바를 찾아갔고, 호기심을 느낀 미네르바가 동참한 것이다.
클라우디아와 미네르바에게는 도수 183%짜리 술에 불과하지만, 그 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얼마나 적은 양을 먹든 곧바로 취하도록 작용하는 복숭아 향 액체가 탄생하게 된 경위였다.
도수가 183%인 건 클라우디아의 키가 183cm라서 숫자를 맞춰준 거고.
‘그럼 분신 문제를 완전히 해결 못했던 것도 저쪽 세계로 가 있던 내내 클라우디아를 도와줘서인가.’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미네르바가 며칠이나 연구에 몰두했는데 분신 문제를 해결 못했다는 것이 더 이상했다. 감각 분산이라는 방법까지 떡하니 찾아놨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며칠동안 분신 문제가 아닌 클라우디아의 문제를 도와주고 있었다면 앞뒤가 맞는다. 일단 방법만 찾아두고 내가 라나를 데려갔을 때 완전히 해결한 거겠지.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내 원론적인 질문에, 클라우디아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베베 꼬았다.
“부, 부끄럽잖아…….”
외전: 부끄럼쟁이
‘부끄럽다고?’
그러면서 몸을 베베 꼬는 클라우디아를 슬쩍 훑어보았다.
탄탄이 아니라 단단이라는 표현이 훨씬 알맞을 전신의 근육들. 복부에 선명하게 그려진 11자 복근. 자기 키만한 크기와 손가락 한 마디 두께의 강철 대검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던 팔.
화룡점정으로 어지간한 남자보다도 훨씬 커다란 키를 지닌 클라우디아가, 고작 부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뺨을 붉히며 몸을 베베 꼬고 있었다. 살짝 인지부조화마저 오는 느낌이었다.
“내가 미네르바 님을 왜 찾아갔는지 알겠지?”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리제가 귓속말을 해왔다. 확실히, 저 덩치로 부끄럽답시고 어설픈 연기를 해대는 모습을 보고 있는다면 혈압이 팍 오를 것 같긴 했다.
“뭐가 부끄러운데?”
“그, 그냥 전부 다. 너한테 내 취향 알려주는 것도 그렇고, 내 취향대로 행동하는 것도 그렇고, 조, 조, 조조조,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거나 하면서 감정 드러내는 것도 그렇고.”
“무슨 취향이길래?”
내가 그렇게 되묻자, 클라우디아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맹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아아! 방금 말은 취소! 못 들은 걸로 해!”
“이미 다 들었는데?”
“하, 하지만…… 진짜 이상한데…….”
“글쎄. 클라우디아 네가 얼마나 특이한 취향이든 리제보다는 아닐 확률이 높아서.”
“나? 내가 왜?”
클라우디아를 보면서 답답해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얻어맞은 리제가 샐쭉한 눈을 했다.
“모르겠으면 네가 무슨 취향인지 나한테 말해줬던 그대로 말해봐.”
“아, 내가 키운 남자한테 역으로 잡아먹히고 싶다던 그거?”
“그래. 봐, 클라우디아. 네 취향이 뭐가 됐든지 설마 저거보다 이상하겠어?”
“……이게 뭐 어때서?”
리제는 입이 댓발은 튀어나와 작게 투덜거렸다. 클라우디아는 머쓱하게 웃었고, 에리카와 아이리스는 내 말에 백번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죽을 순 없으니까 클라우디아 너도 빨리 털어놔. 네가 말 안하면 내가 한다? 진짜 내 마음대로 아무거나 다 말할 거다?”
협박 아닌 협박이 들어오자, 클라우디아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망설이는가 싶더니 눈을 질끈 감고 병에 남아있던 술을 단숨에 절반이나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우욱,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금방이라도 아까 안주로 뭘 먹었는지 죄다 보여줄 것 같은 모습에 아이리스가 급히 물을 내밀었지만, 클라우디아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혓구역질을 하는 와중에도 물 마시기를 거부했다.
“그러…… 그러니까.”
아무리 천하의 클라우디아라 해도 도수 183%짜리 술은 버거웠던 모양인지, 숙였던 고개가 다시 들어올려졌을 땐 얼굴이 반쯤 풀려버린 상태였다.
‘……취하는 게 가능하긴 했구나?’
내가 이런 반응이었으니 나보다 클라우디아와 함께 지낸 시간이 훨씬 길었을 다른 기사단장들이야 뻔했다. 리제와 에리카는 물론이고 아이리스마저도 입이 헤 벌어져 있었다.
“내 취향이 뭐냐면…….”
우리가 놀라는 것도 아랑곳 않고, 얼굴이 취기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이유로 새빨개진 클라우디아가 아랫배 앞에서 맞닿은 검지를 연신 꼬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나, 남자한테…… 남자한테 보호받는거…….”
“보호받는다고?”
“응…… 내가 앞에 나서서 혼자 다 쓸어버리는 게 아니라…… 나는 뒤에 힘없이 앉아있고 앞에서 남자가 지켜주는 그런 거…… 그, 내가 무섭다고 꺅꺅거리거나 벌벌 떨면 와서 품에 안고 달래주기도 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데…….”
그동안 클라우디아가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한참 동떨어진 취향이었다. 왜 말하기를 부끄러워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저번에 있잖아, 이상한 지네들한테 둘러싸였을 때. 그때 델타 네가 나타나서 우리 지켜주는 거 보고 조금 심각하게 많이 두근두근했거든……? 그런 경험 자체가 처음이었어서…….”
그러고보니 구해준 이후에 클라우디아 반응이 평소랑은 조금 달랐던가 싶기도 하고.
본의는 아니었던데다 그때는 취향이 저런 쪽인 줄도 모르고 있었지만. 애초에 저 넷이 죽을 뻔 한 걸 눈앞에서 봤던지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조금도 없었다.
“난 보다시피 어지간한 남자보다 키도 크고, 근육도 많고, 평소 성격도 그런 쪽이고, 그, 내 입으로 말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엄청 강하기도 해서…… 항상 지켜주는 쪽이었지 지켜지는 쪽이랑은 거리가 멀었으니까…….”
말이 길어질수록 얼굴 역시 새빨개졌다. 이제 취기보다는 부끄러움이 훨씬 앞서는 듯했다.
“근데 내 외모랑 성격에 이런 취향이면 좀 많이 이상하잖아. 그렇지? 리제가 이러는거면 또 몰라. 리제는 나랑 다르게 작고 아담하고 귀여우니까.”
“확실히 언니 사이즈가 작고 아담하긴 하죠. 뭐, 귀엽다는 생각은 조금도 안 듭니다만.”
“…….”
리제가 에리카를 향해 눈을 흘겼다.
하지만 에리카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닉스가 워낙 독보적으로 단신이라 그렇지, 리제도 꽤 작은 편에 속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농담이었습니다. 분위기가 너무 처지려고 하길래 한번 해봤어요. 계속 말씀하시죠, 클라우디아.”
“어…… 고마워?”
클라우디아는 얼떨떨하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리제는 ‘내 동생이 농담도 할 줄 알았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걸 본 에리카가 울컥했다가 아이리스에게 제지당했다.
“……아무튼, 그 뒤로 계속 생각해봤는데. 다른 걸 아무리 떠올려봐도 델타 너한테 구해졌던 때 느꼈던 찌릿찌릿함이 느껴지지가 않더라고. 나도 잘 모르겠어. 직접 겪어봤으니 이제 망상으로는 해결 안 된다는 건지. 그리고, 델타 너 말고 내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남자가 있긴 한 건지도.”
“없다. 내 모든 것을 걸고 확신하지. 저번에 직접 말하지 않았나, 지켜지는 쪽이 되기엔 너무 멀리 왔다고.”
아이리스가 딱 잘라 단언했다.
하긴, 클라우디아를 지켜줄 수 있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당장 제국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은빛 여명 기사단과 칠흑 성야 기사단이 나 빼고 전원 여자인데다 마탑의 마법사들도 전부 여자니까.
금빛 황혼 기사단의 전 기사단장이 나랑 같이 유이하게 남자였긴 한데, 그놈은 이제 와선 언급할 가치도 없으니 논외다.
“그렇, 지……?”
아이리스의 단언을 듣고 약간 쪼그라든 클라우디아가 병 밑바닥에 남은 액체를 마저 처리했다. 딸꾹, 작은 딸꾹질 소리가 났다.
“딱히 이상한 취향은 아닌 것 같은데?”
“……응?”
내 말에 벚꽃색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그런 걸로 이상한 취향이라고 말하기엔 더한 것도 많이 만나봐서. 당장 여기에도 한 명 있잖아. 작고 아담하고 귀여운 사람.”
“또 나야?”
리제가 또 투덜댔지만 그 이상으로 반응하지는 않았다. 본인도 찔리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들 특이 취향 하나씩은 갖고 있거든. 플로레타랑 루나가 나랑 무슨 플레이까지 해봤는지 너흰 상상도 못할걸? 카이킬리아랑 미네르바 님도 은근 그런 쪽 기질이 있고, 아우로라는 다른 의미로 이상한 취향이고. 아, 제일 심한 사람은 닉스겠네.”
플로레타랑 루나는 교황이면서 타락한 수녀 컨셉 플레이까지 시도한 변태들이고, 카이킬리아와 미네르바는 내가 평소에 존댓말을 쓰는 이유부터가 둘의 취향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다.
아우로라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면서 할 때 반응이 훨씬 더 좋은데다, 제일 극단에 위치한 닉스는 아예 폭력에 가깝게 학대당하는 걸 선호하는 성벽이다.
스텔라랑 셀레네는 아직 취향을 논할 시기가 아니니 제외하면, 약간의 피학 성향 정도가 끝인 에리카와 아이리스가 제일 정상인에 가까웠다.
그 외에는 누가 덜하고 더하냐의 차이일 뿐 다들 하나같이 변태라고 불리기에 충분했다.
“내 경험으론 에리카랑 아이리스가 제일 정상이고 그 다음이 클라우디아 너겠네. 열두 명 중에서 세 번째면 꽤 높은 순위 아니야?”
“그…… 러니까…… 그건…….”
클라우디아가 말을 더듬었다. 내가 직접 경험했다니 차마 반박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 실컷 들이켰던 술 탓에 머리가 핑핑 돌아서 그렇기도 할 테고 말이다.
“그리고.”
손목을 쥐고 끌어당겼다. 바로 옆까지 힘없이 딸려온 클라우디아가 떨리는 눈동자로 날 올려다보았다.
“취향에 맞는 사람은 한 명이면 충분할 텐데.”
“…….”
취기 때문인지, 클라우디아는 잠시 멍해졌다가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어…… 그, 그런가? 그게, 그, 그렇게 되나?”
“내 말이 틀렸어?”
“아, 아니…… 그건…….”
“맞지?”
“…….”
침묵이 이어졌다. 클라우디아는 핑핑 도는 눈으로 손목이 잡힌 팔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뜬금없이 도수 183%짜리 술병 하나를 더 따고선 그걸 힘차게 들이켰다.
이미 몇 잔씩 나눠먹어서 내용물 자체가 얼마 안 남아있던 저번과는 들이키는 양 자체가 달랐기에 아이리스와 에리카가 기겁을 하고 달려들었다.
“제정신인가?! 그렇게 마셔댔다간 아무리 너라도 버티지 못할 거다!”
“미쳤습니까, 클라우디아?! 기껏 분위기 다 잡아놨는데 술 퍼먹고 기절해서 다음으로 미룰 건가요?!”
“괜찮으니까 놔 줘! 딱 취할 때까지만 마실게! 취할 때까지만! 부끄러워서 더 이상 맨정신으로는 못 있겠어!”
리제는 필사적으로 옥신각신하는 셋을 유유자적하게 구경만 하고 있었다.
“넌 같이 안말려?”
“난 작고 아담하고 귀여워서 저기 껴 봤자 별로 도움도 안 될 텐데 왜?”
아까 클라우디아가 했던 말을 인용하며 꺄르륵 웃는 리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으려니, 길고 긴 실랑이 끝에 승자가 결정났다.
승자는 내용물을 반이나 비워버린 클라우디아였다. 아이리스와 에리카는 벌써 반밖에 남지 않은 병을 떨떠름하게 옆으로 치웠다.
“헤으윽…… 딸꾹…….”
이상한 신음소리를 낸 클라우디아가 비틀거리며 내게 안겨왔다. 단순히 품에 얼굴을 묻었을 뿐인데도 알코올 냄새가 훅 끼쳤다. 중간중간 복숭아 향도 느껴지긴 했지만, 다른 게 워낙 압도적이었다.
“델타 네가 나 지켜주니까아…… 그러면 나 이제 애교 부려도 돼?”
“애교?”
여기서 허락했다간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듯한 직감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내가 그만하라는 말을 꺼내는 속도보다 클라우디아가 입을 여는 속도가 더 빨랐다.
“델타 오빠아앙…… 클라우디아 그때 이따만큼 많이 무서웠눈뎅ㅡ 우웁?”
“거기까지.”
다행히 말이 끝까지 나오기 전에 입을 틀어막을 수 있었다. 클라우디아는 입이 틀어막혀놓고서도 헤실헤실 웃어댔다. 방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클라우디아는 취하면 이런 느낌인가.’
술이 세서 진심으로 다행이었다. 주위 사람이 아니라 클라우디아 스스로에게 말이다.
“…….”
“…….”
“…….”
바로 눈앞에서 심상치 않은 모습을 목도한 기사단장들은 실 끊어진 꼭두각시처럼 멍하니 있다가, 내가 눈짓을 하자 그제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삐걱삐걱 몸을 돌렸다.
“그,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다, 델타.”
“목적은, 네. 목적은 이뤘으니까요.”
“이제 남은 건 델타 너한테 맡길게? 파이팅?”
“어딜 가려고?”
멋대로 방에 돌아가려는 셋을 불러세웠다. 리제와 에리카, 아이리스가 불안한 눈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마법으로 잔 3개에 술을 절반씩 채우고 밀었다. 당연히 클라우디아가 먹다 남긴, 도수 183%짜리 그 술이었다. 한 치의 흔들림조차 없이 날아간 와인잔은 손으로 잡기 좋게 가슴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 기억을 그대로 가져갈 순 없잖아. 친구의 존엄성은 지켜줘야지. 안 그래?”
셋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외전: 클라우디아
눈 딱 감고 술을 들이켰다가 반쯤 인사불성이 되어 비틀비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기사단장들을 뒤로 하고, 클라우디아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품에 안아들었다.
팔다리가 상당히 길쭉한지라 모양이 별로 안 살긴 했어도, 일단은 내 키가 더 큰 덕분에 그럭저럭 안아들 수준은 됐다. 크다고 해봤자 몇 센티미터 수준이긴 하지만.
“프흐흐흐.”
밍기적대며 다리를 꼬물대던 클라우디아가 머리를 내 귓가에 가져오더니 대뜸 웃음을 터뜨렸다.
“왜?”
“신기하잖아아앙…….”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고, 목소리에 비음이 섞이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취기가 제법 강하게 도는 듯했다. 부끄럽답시고 도수 183%짜리 술을 반이나 비워버렸으니 예견된 결과다.
그 전에 마셨던 양까지 감안하면 1.5리터 페트병 크기의 병 하나를 클라우디아 혼자 처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싶은게에에…… 프흐흡. 솔직히이, 나도 기대 별로 안 했다아? 나 같은 애가아…… 언제 어떻게 이런 자세로 안겨보겠엉…….”
꾸우욱, 목에 감긴 팔의 힘이 조금 강해졌다. 클라우디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프흐흐, 하며 웃어댔다.
복구의 권능을 발동해 난장판인 거실을 정리하고 클라우디아를 안아든 채 방으로 향했다. 그동안 횡설수설하는 소리가 꾸준히 들려왔다.
“내 성격도 성격이고오…… 나 같이 키 크고 힘만 센 여자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싶었는데에에…….”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리던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반쯤 풀린 연분홍색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프흡, 그 입에서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콕콕, 손가락이 내 뺨을 찔렀다.
“여기 있었네에?”
콕콕. 다시 한번.
“이럴거며언…… 그냥 마음 졸이지 말고 너 기다릴 걸 그랬나보다앙…… 이렇게 멋진 남자가 알아서 나타나줬눈뎅…… 왜 혼자서 신경쓰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에에…….”
콕콕. 또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해 클라우디아의 손가락을 치워버렸다. 잔뜩 취하고 힘 조절이 안 돼서 그런지 찌르는 힘이 은근 셌다. 아픈 건 아닌데, 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게 영 거슬렸다.
“프히히히히히.”
취한 클라우디아는 뭐라고 해야 하나, 여러 의미로 대단한 성격이었다. 평소에는 호탕한 쪽에 가깝다면, 지금은 그 사이사이에 여성스러움이 대폭 섞여들어간 느낌.
자꾸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리려 하고, 가슴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오고, 내 뺨이나 턱을 쓰다듬거나 목의 냄새를 맡는 등.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애교를 부리려 하자마자 입이 틀어막혔던 걸 기억하고 있는지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았지만,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탓에 모든 말이 애교나 다름없게 된지라 딱히 의미는 없었다.
방으로 돌아가 클라우디아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덮치듯이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침대를 짚은 두 손 사이에 놓인 얼굴이 두근두근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나 어떻게 되는 거야앙……?”
목소리가 한층 더 간드러지게 꼬였다. 기대감, 긴장, 흥분, 취기. 그 모든 감정이 단어 하나하나에 뚝뚝 묻어났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우우웅…… 잡아먹어주면 안될까아……?”
“그런 말도 쓸 줄 알았어?”
“책에서 봤지이이…… 이럴 때 여자는 아무것도 안하고…… 얌전히 먹히면 된다고오…… 그 편이 남자가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구…… 근데 있지이, 난 그런 조언 없어도 어차피 저항 못 할텐뎅…… 푸히히…….”
대체 무슨 책을 읽었는지 궁금해지는 조언이었다. 미네르바가 파르나리한테 전해줬다던 것도 그렇고, 뭘 위해서 무슨 내용을 적어둔 책들이길래 저런 말이 적혀있는 거지.
떨떠름한 생각을 머리 한 켠에 치워버리고 입을 맞췄다. 꽤 갑작스러웠는지 흐읍, 하고 숨을 들이켰던 클라우디아였지만 곧바로 힘이 풀리며 느슨해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얌전히 먹힐 거라던 말이 진짜였는 듯, 클라우디아는 얌전히 입술을 맞대고 있기만 했다. 하다못해 목을 휘감거나 다리를 꼼지락대지도 않았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알코올 향 섞인 숨결이 훅 넘어왔다. 고작 향기만으로 머리가 살짝 아찔해질만큼 독했다. 혀로 클라우디아의 혀를 밖으로 끄집어내면서 타액을 흘려보냈다.
“으으응…….”
클라우디아는 애교 섞인 비음을 내며 내 타액을 꼴깍꼴깍 받아마셨다. 한차례 타액 전달이 끝나고, 혀를 더 깊숙이 집어넣어 입 안을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맛봤다.
어디를 건드려도 알코올 향밖에 안 느껴지는, 제법 독특한 키스였다.
“흐, 헤? 읍?”
제일 반응이 좋은 장소는 입천장이었다. 클라우디아는 혀가 입천장을 살랑살랑 간질이거나 조금 세게 긁어줄 때마다 몸을 바르르 경련했다.
혀 끝으로 안쪽의 부드러운 입천장을 콕콕 자극해주다가 입술을 뗐다. 취기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반쯤 풀린 눈을 한 클라우디아가 입 근처를 핥았다.
“찌릿찌릿하네에…… 이게, 키스구나…….”
“좋았어?”
“……글쎄에? 잘 모르겠는뎅…….”
풀려버린 표정과 정반대의 대답이었다. 살짝 의아했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그러니까아, 조금만 더 해주면 알 것 같은데에…… 안될까아아……?”
속이 뻔히 보이는 요구였다. 웃으며 다시 입술을 겹쳤다. 조금 적응이 됐는지 이번에는 클라우디아도 적극적으로 혀를 내밀어왔다.
혀 아래쪽을 핥아주며 타액을 흘려보냈다. 꼴깍꼴깍, 클라우디아는 그걸 잘도 받아마셨다. 혓바닥이 마치 먹이를 갈구하는 아기새처럼 내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흐, 히잇?!”
손가락이 스포츠브라나 다름없는 길이의 민소매 너머로 밑가슴을 만지자 클라우디아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다. 혀를 좀 더 단단히 얽고 가슴을 만지는 팔에 힘을 주었다.
“응, 웁……!”
손 끝이 겨드랑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화들짝 놀란 클라우디아가 입술을 떼려 시도했지만, 나는 혀를 꾹 눌러 저지하고 그대로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몸이 이리저리 비틀리기 시작했다.
물론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배 위에 올라타 종아리로 클라우디아의 장골 근처를 꾸욱 조였다.
“으으응……! 흐으응……!”
그러면서 겨드랑이를 더 적극적으로 간지럽혔다. 몸이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으나, 벗어나기엔 어림도 없었다. 클라우디아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나한테 비빌 정도는 아니니까.
한동안 키스를 이어가며 겨드랑이와 옆가슴을 간지럽혔다. 민소매 너머로 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와 옷을 물들였다. 저항이 약간 잠잠해졌을 때쯤 입술을 뗐다.
땀에 젖은 민소매가 가슴에 달라붙어 그 너머의 살결을 비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 첨단의 유두와 유륜도.
“하아, 하앙, 하아아…… 델타, 변태애앵…….”
새빨개진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변태라고 해서, 클라우디아 네가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 건데?”
“…….”
애초에 진심으로 빠져나갈 생각도 없었던 클라우디아가 조용해진 사이, 양 손목을 교차시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방금 전까지 괴롭혀지던 뽀얀 겨드랑이가 드러났다.
그대로 손목이 교차된 부분을 틀어쥐었다. 명목상의 반항이 몇 번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해버리면 너 혼자서 벗어날 수 있어?”
“히이잉, 몰라아아…….”
“것 봐. 그렇게 연약하면서 뭘 하겠다고.”
“여, 연약해애……? 내가아……?”
“그럼 아니야? 지금 나한테 깔려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겨드랑이 실컷 간지럽혀지면서 저항도 못하는데. 이게 연약한 게 아니면 뭔데?”
클라우디아가 약하다니, 은빛 여명 기사단이 듣는다면 어처구니없다 못해 비웃기까지 할 소리였지만, 어차피 취해서 제정신도 아니겠다 그냥 적당히 취향이나 맞춰주려고 꺼낸 말이었다.
“……프히히. 그렇구나아…… 나, 진짜로 아무것도 못하는 허접이구나앙…….”
내 말을 듣고 헤실헤실 웃던 클라우디아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클라우디아…… 이렇게 연약한 여자인뎅…… 델타 오빠가 평생 지켜줄ㅡ 웁, 하읍.”
다시 애교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길래 키스로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클라우디아는 아까 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숨결과 타액을 교환하고 혀를 얽으며 호응했다.
키스는 10분, 혹은 그것보다 훨씬 오래 이어졌다. 숨이 막힌 클라우디아가 살짝 헐떡이기 시작할 때쯤 입술을 뗐다. 입 근처가 타액으로 번들번들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이마에 입을 맞춰 해주었다. 부르르, 몸이 크게 떨렸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귀여운 표정을 지은 클라우디아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있지이…… 잠시만 손 풀어주면 안될까아……? 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에…… 웅?”
“뭔데?”
“나아…… 연약해서 도움이 안되니까앙…… 오, 오빠 기분 좋게 만들어주려고오…….”
적당히 취향에 맞춰주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알코올로 정상적인 상황 판단이 불가능해진 클라우디아의 뇌는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여버린 모양이었다. 다리 힘을 풀고 위에서 내려왔다.
“프흐흐흡…… 고마워엉, 델타 오빠앙…….”
쪽, 클라우디아가 내 뺨에 뽀뽀를 했다. 델타 오빠라니, 이제 나도 모르겠다. 술이 깬 뒤에 자기가 저질렀던 짓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랄 수밖에.
클라우디아는 날 침대 가장자리로 이끌었다. 당기는 팔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순순히 딸려가 주었다. 이끄는 대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약간 벌려진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클라우디아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민소매를 벗어던졌다.
땀에 젖은 은빛 여명 기사단의 정복이 철퍽 소리와 함께 떨어지고, 흉부에 탄력적으로 자리잡은 가슴이 살짝 출렁였다.
머리보다 조금 더 작은 크기의, 평균치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가버린 이클립스의 세계만 아니었더라면 거유라 불리기에 충분할 크기의 가슴. 그 끝에 핑크빛 유두가 단단하게 솟아 있었다.
“입으로 해줄까아……? 아니면 가슴……? 우우웅, 둘 다도 가능할 것 같은데에…….”
“너 원하는대로 해. 아무거나 상관 없어. 네가 이렇게 해 준다는 행동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
“프히히히.”
클라우디아는 이상하게 웃고선 내 제복 바지의 단추를 끄르고 속옷을 벗겼다. 툭, 절반 정도 벗겨진 속옷 위로 반쯤 발기한 자지가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튀어나오는 자지에 턱을 맞을뻔한 클라우디아가 물렁물렁함과 단단함이 반씩 섞인 자지를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이, 이게…….”
그러고는 손 끝으로 자지를 톡톡 건드리다가 핫, 하고 정신을 차리더니 뿌리 부분을 조심스레 감싸쥐었다. 왼손이 먼저, 그 다음이 오른손이었다.
주먹 두 개를 나란히 붙여 감싸쥐었음에도 그 위로 튀어나와있는 귀두를, 클라우디아의 입이 조심스레 머금었다.
“하읍.”
귀여운 소리와 함께 자지 끄트머리가 입 안으로 사라졌다. 귀두가 축축한 점막에 감싸였다. 자극을 받은 물건이 꿈틀 맥동하더니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피가 쏠린 물건은 실시간으로 단단해져 갔고, 주먹을 조금씩 밀어냈다. 손바닥과 손가락이 만들어낸 동그라미가 점점 커졌다.
“파하아…… 더, 더 커졌다아……?”
처음 쥐었을 때보다 명백히 굵어져 있는 기둥을 혀 끝으로 톡톡 건드려 본 클라우디아가 알쏭달쏭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저기이, 오빠아…… 이거 여기서 더 커질 수도 있엉……?”
“아마 아닐걸?”
내 말을 듣고, 클라우디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자지 뿌리와 귀두 끝에 손을 대 길이를 측정하고선 아랫배로 가져갔다.
“우우웅…… 오빠 자지, 클라우디아 몸에 안 들어갈 것 같은데에…….”
꿈틀.
“프히히. 더 커졌당. 오빠 거짓말쟁이이…….”
애교섞인 비음을 내며 아랫배를 꾹꾹 눌러대는 모습에 반응이 오자, 클라우디아가 피시시 웃었다. 솔직히 방금 그건 반칙 아닌가 싶었다.
“거짓말쟁이 자지한테느은…… 벌 줄거양…… 하읍.”
클라우디아가 자지를 다시 입에 머금었다. 한 손으로는 기둥 아랫부분을 문지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기 유두를 꼬집으며 입으로 무언가를 빠는 쪽쪽 소리까지 냈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머리를 더 깊숙하게 밀어넣었다가 켁켁대면서 올라왔다. 잔뜩 찡그린 눈동자가 눈물로 촉촉해졌다. 뭐, 처음부터 목 안쪽까지 밀어넣는 쪽이 비정상인 거니까.
나는 울상을 하고 올려다보는 클라우디아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었다. 베시시,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기둥 뿌리를 자극하는 손놀림이 조금 더 집요해졌다.
클라우디아는 그 뒤로도 열심히 머리를 움직였다. 시간이 갈수록 더 익숙해지는 듯, 손과 입술 사이의 거리가 차츰차츰 좁아졌다. 귀두 끝이 천천히 목 안쪽으로 밀고들어갔다.
입천장을 긁고 지나간 다음 목젖 근처를 툭툭 건드렸다가, 마침내 좁디 좁은 구멍 안쪽까지 찌르자 클라우디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면서도 뿌듯하게 웃었다.
“잘 하고 있네.”
“우우웅…… 프흡.”
꽉 막힌 웃음을 터뜨린 클라우디아가 머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쯔븝쯔븝하는 물소리가 들렸다. 한계까지 벌어진 턱을 타고 침이 뚝뚝 흘러 바닥에 흩어졌다.
연분홍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었다. 칭찬을 받아서 신난 머리가 더 빨리 들락날락했다. 기둥 뿌리부분을 매만지는 손놀림 역시 갈수록 요염해졌다.
나는 약간이나마 차오른 사정감을 참지 않기로 했다. 슬슬 나올 것 같다고 말하자,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훕?!”
목구멍을 향해 정액이 쏟아져나왔다. 클라우디아는 헛기침을 하고 몸을 파들파들 떨면서도 목 안쪽에 정액을 부어넣고 있었다.
하지만 오래 그러고 있기는 버거웠는지 얼마 못 가 머리를 뒤로 빼냈다. 자지는 순식간에 입 안을 흰색으로 물들였고, 밖으로 나오면서도 꾸역꾸역 백탁액을 흩뿌려댔다.
클라우디아는 입을 크게 벌리고 손을 모아 턱을 받친 채 고개를 위로 치켜들어 흩뿌려지는 정액을 가만히 받아내고 있었다. 얼굴 곳곳에 백탁액이 치덕치덕 달라붙었다.
내 자지는 그걸로도 모자라 어깨와 쇄골, 가슴 근처까지 정액 범벅으로 만들고 나서야 간신히 사정을 멈췄다.
“다, 다 됐엉……?”
“됐어.”
“읍, 읍…….”
클라우디아는 입술을 몇 번 오물거리더니 입 안 가득 들어찬 정액을 꼴깍 삼켜버렸다.
“아앙…….”
텅 빈 입이 다가와 귀두 끝을 물고 아직도 요도에서 방울져 흘러나오는 정액을 얌전히 받아마셨다. 자지가 꿈틀꿈틀 맥동하며 요도 안에 남은 정액까지 모두 토해냈다.
“으으, 목에 달라붙어…… 꿀꺽, 하읍…….”
목에 달라붙는다고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손바닥에 고인 정액까지 모두 마신 클라우디아가 얼굴에 손을 뻗었다. 아래로 조금씩 흘러내리는 정액을 손가락으로 긁어 입에 가져갔다.
“도와줄까? 마법으로 깨끗하게 해줄 수 있는데.”
“우웅, 싫어싫어. 내가 할거양…….”
클라우디아는 온 몸으로 내 도움을 거부하고 청소를 이어나갔다.
얼굴에 묻은 정액을 처리하고, 살며시 눈을 떠 쇄골과 가슴에 흩뿌려진 것들까지 모두 정리가 끝나자 비틀비틀 일어선 클라우디아가 몸을 돌렸다.
“잠시만 기다려줘, 오빠…… 클라우디아 씻고 올게엥…….”
“마법으로 해줄 수ㅡ”
“아니아니, 괜찮아…… 나 혼자서도 씻을 수 있어어…… 아무리 연약해도 씻는 건 혼자서 가능하니까아…… 프히히…….”
그리고는 휘청이며 욕실로 향하려다가 뜬금없이 돌핀팬츠를 벗어던졌다. 돌핀팬츠를 들고 돌아온 클라우디아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그걸로 내 자지를 감쌌다.
“프히히…… 나 없는 동안 우리 자지 외로울까봐아…… 그거 마음대로 쓰고 있어도 괜찮으니깡…… 알았지이……?”
연분홍색 인영이 휘청휘청 화장실로 사라졌다. 나는 자지를 감싼 분홍색 돌핀팬츠를 내려다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술에 취해서 그런가, 하는 행동이 한치 앞도 짐작가지 않았다.
클라우디아는 잠시만 기다려달라던 말대로 30초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나타났다. 가까이 다가온 클라우디아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우리 자지…… 나 없는 동안 따뜻하게 잘 있었지이……?”
손가락이 요염하게 돌핀팬츠를 벗기고 자지를 톡톡 건드렸다. 자극을 받은 물건이 껄덕대며 쿠퍼액을 흘리자 뭐가 그리 좋은지 또다시 프히히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다앙…… 안에 들어가려면 작아져야 하는데에…… 왜 안 작아질까아……?”
“겨우 한 번이잖아. 그걸로는 무리지.”
“우웅?”
클라우디아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거 술 깨면 무조건 흑역사 적립 확정이다. 끝날 때쯤에 술을 더 먹여서 기억을 완전히 날려버려야 하나.
‘안 그러면 죽고 싶다고 난리 칠 것 같은데.’
내가 봐도 뒷일이 예상된다면 당사자가 느낄 수치심은 대체 어느정도겠는가.
“괜찮아. 이 상태로도 충분히 들어갈 테니까.”
“아닌데에에…… 클라우디아 그거 못 받아들이는데에…….”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렸다. 안아달라는 듯 팔을 활짝 벌리는 클라우디아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두 손으로 엉덩이를 받쳤다.
벽에 등을 기댄 클라우디아가 한쪽 허벅지를 들어 내 허리를 휘감고, 바닥에서 떨어진 나머지 다리도 똑같이 따라했다. 근육질의 허벅지가 옆구리를 조여왔다.
클라우디아는 내 손에 체중을 싣고 다리를 이용해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으면서 목에도 팔을 둘렀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이 내 흉부에 맞닿아 비벼질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엉덩이를 위로 더 들어올려 질구를 자지 끝에 맞췄다. 약간 질척하게 젖어있는 균열 입구에 귀두를 슥슥 문질렀다. 클라우디아가 달뜬 신음을 내뱉었다.
“이렇게 남자한테 끌어안긴 적 처음인데에…… 이거 진짜 기분 좋다앙…….”
“벌써부터 기분 좋으면 안 되는데.”
“으응?”
팔에 힘을 살짝 풀었다. 클라우디아의 몸이 아래로 내려가며 귀두 끝이 질구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질내로 이물이 비집고 들어오는 감각에 클라우디아가 히긱, 하는 비명을 내질렀다.
“앞으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좋아질 거라서.”
그대로 허리를 찔러올렸다.
“캬흑?!”
동시에 클라우디아의 몸도 아래로 내려앉았다. 귀두가 자궁구를 찌르자 허리를 감싸안은 다리 힘이 느슨해졌다. 체중을 실어서 찌른 것과 다름없으니 충격이 제법 클 것이다.
하지만 괜찮냐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들 항상 괜찮았으니까.
“이, 이거 뭐야아앙…… 기분, 기분 좋아아…….”
내 예상대로였다. 클라우디아는 고통이라곤 조금도 없는 얼굴로 혀 꼬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팔에 힘을 주어 쾌락으로 얼룩진 몸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속삭였다.
“말했잖아. 더 기분 좋아질 거라고.”
“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 히끅?!”
다시 힘을 풀었다. 몸이 아래로 내려앉으며 귀두가 자궁구를 쿡 찔렀다. 클라우디아가 혀 꼬인 신음소리를 냈다. 입술 밖으로 나와 파르르 떨리는 혀에 혀를 가져갔다.
클라우디아는 이런 경험이 익숙하지 않은 듯 숨을 거세게 몰아쉬면서 호흡을 나누었다. 알코올 향이 섞인 숨과 그렇지 않은 숨이 이리저리 오갔다.
제법 단단한 엉덩이가 손바닥에 착 감겨왔다. 마찬가지로 근육질인 허벅지가 허리를 조였고, 단단한 팔뚝이 목을 휘감았다. 입술 사이에서는 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흐읍, 흐으, 흐우으…….”
간헐적인 신음이 울려퍼졌다. 침대에서 관계를 맺을 때처럼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서로 쾌락을 공유하기에는 충분했다.
자궁구를 찔러올리며 한 손으로 유두를 꼬집었다. 꽈아악, 질내가 어마어마한 힘으로 조여들었다. 분명 애액이 줄줄 흘러나와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데도 움직이기가 버거울 지경이었다.
“아, 간다앙…… 갓, 웁. 아흑.”
쾌락으로 잠시 풀어지나 싶던 질내가 절정에 도달하며 곧바로 다시 수축했다. 오르가즘을 느낀 팔다리가 있는 힘껏 내 몸을 감싸고, 절정을 겪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오빠아아…… 클라우디아, 방금 가버렸눈뎅…… 너무, 격ㅡ 앗, 할짝.”
혀 꼬인 소리로 방출되려던 흑역사를 입으로 틀어막았다. 다행히 클라우디아는 맞닿은 입을 떼려 하지 않고 쯥쯥거리며 내 혀를 핥기만 했다.
“슬슬 쌀게.”
“으응…… 클라우디아 안에 싸주세요호…… 응흐읏?!”
정액이 자궁을 두드리자 목소리가 급격하게 높아졌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는지 허리를 감쌌던 고리가 풀렸다. 스르륵, 발바닥이 땅에 닿았다. 입 안에서는 맞닿은 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허리를 안으로 더 힘껏 밀어붙이며 클라우디아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어깨에 걸쳤다.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183cm라는 압도적인 신장은 한쪽 다리로 땅을 딛고 나머지 한쪽 다리를 내 어깨에 거는 체위마저 수월하게 해냈다. 다리가 거의 일자로 뻗자 클라우디아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으극?! 왜, 왜애……?”
아직도 정액을 토해내는 귀두 끝으로 자궁구를 건드려주었다. 의문을 표시하던 클라우디아가 단번에 조용해졌다. 사정이 잦아든 걸 느끼고 허벅지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이거어어…… 이상, 흐아아앙!”
“알아. 더 깊게 들어가지?”
치골이 내 고간과 맞부딪혔다. 귀두 끝으로 자궁구를 콕콕 찔렀다가 질벽을 긁으며 빠져나갈 때마다 클라우디아는 몸을 비틀었다.
피부에 맺힌 땀이 11자 복근을 타고 흘러내렸다. 끌어안은 허벅지에서 단단한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허벅지를 바짝 끌어당기고 오금을 혀로 핥아보았다.
“히이이이이익?!”
곧바로 격렬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왜, 왜애……! 거기, 안 되는데엣……!”
“되고 안 되고는 내가 정하는 거야, 클라우디아. 네가 아니라.”
“싫어어어……! 오빠앗, 그, 마아앙……! 클라우디아, 이상해져어엇……!”
무릎 뒤편이 핥아진다는 어색한 감각 때문인지는 몰라도 질내가 경련하듯 조여들고 있었다. 계속 오금 근처를 핥아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혀를 무릎까지 뻗어보기도 했다.
“하아아앙! 아앙! 그, 흐읏!”
동시에 자궁구를 계속해서 자극당하자 그렇지 않아도 말랑말랑하던 입구가 점점 느슨하게 벌어졌다. 그러다 마침내 완전히 열리며 자지를 제일 안쪽까지 받아들였다.
귀두가 자궁구를 꿰뚫고 자궁 내부로 진입한 순간, 클라우디아가 반사적으로 몸에 힘을 주며 왈칵 애액을 토해냈다.
“흐으으, 흐이이익…….”
애액이 조수로 바뀌는데는 별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클라우디아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다른 한 손으로 새빨개진 얼굴을 가렸으나, 그런다고 접합부에서 흘러넘치고 있는 투명한 액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찌걱찌걱 하는 효과음의 자리를 철벅철벅 하는 효과음이 차지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허리를 힘껏 밀어붙여 자궁에 직접 정액을 토해냈다.
“끄으으으읍?!”
클라우디아가 혀를 빼물었다. 질벽과 자궁구가 자지를 끊어버릴 듯 조여들었다. 느긋하게 허리를 움직이며 자궁구가 꼬물대는 감각을 느꼈다.
1분이 넘게 이어진 사정 끝에 축 늘어져버린 클라우디아를 조심스럽게 받쳐주며 자지를 빼냈다. 이물이 빠져나가자마자 질구가 굳게 다물어졌다.
“히이이, 헤응…… 기, 기분 좋아아앙…….”
“좋았다고?”
“으응…… 완전 좋았어엉…… 사랑해, 델타 오빠아…… 앗?!”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귀두가 엉덩이 구멍을 꾹 눌렀다. 클라우디아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 거기느은ㅡ”
“더 기분 좋아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허리에 힘을 주었다. 자지가 항문을 비집고 들어가며 장벽을 훑었다. 클라우디아의 몸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이 벌벌 떨렸다.
점점 더 깊숙하게 들어가던 자지가 마침내 끝까지 밀어넣어졌다. 새된 비명이 터져나왔다. 기둥이 천천히 뽑혀나오자 클라우디아가 천박한 신음을 흘렸다.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진정해라, 클라우디아!”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나 죽을래! 목 매달고 죽을 거니까 이거 놔!”
“겨우 목 매다는 정도로는 안 죽는 거 아시잖아요! 빨리 그 밧줄 내려놔요! 언니! 언니는 왜 보고만 있습니까!”
“미안. 난 작고 아담하고 연약해서 도움이 못 될 것 같네.”
“개소리 말고 빨리 안 와요?!”
뭐, 결과적으로 술이 기억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외전: 클라우디아 – 전연령판
해당 회차는 19금 회차 ‘외전: 클라우디아’의 전연령 버전입니다.
19금 회차를 감상하실 수 있으신 성인 독자분들은 건너뛰셔도 무방합니다.
눈 딱 감고 술을 들이켰다가 반쯤 인사불성이 되어 비틀비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기사단장들을 뒤로 하고, 클라우디아를 공주님 안기 자세로 품에 안아들었다.
팔다리가 상당히 길쭉한지라 모양이 별로 안 살긴 했어도, 일단은 내 키가 더 큰 덕분에 그럭저럭 안아들 수준은 됐다. 크다고 해봤자 몇 센티미터 수준이긴 하지만.
“프흐흐흐.”
밍기적대며 다리를 꼬물대던 클라우디아가 머리를 내 귓가에 가져오더니 대뜸 웃음을 터뜨렸다.
“왜?”
“신기하잖아아앙…….”
말꼬리가 길게 늘어지고, 목소리에 비음이 섞이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취기가 제법 강하게 도는 듯했다. 부끄럽답시고 도수 183%짜리 술을 반이나 비워버렸으니 예견된 결과다.
그 전에 마셨던 양까지 감안하면 1.5리터 페트병 크기의 병 하나를 클라우디아 혼자 처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한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싶은게에에…… 프흐흡. 솔직히이, 나도 기대 별로 안 했다아? 나 같은 애가아…… 언제 어떻게 이런 자세로 안겨보겠엉…….”
꾸우욱, 목에 감긴 팔의 힘이 조금 강해졌다. 클라우디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해서 프흐흐, 하며 웃어댔다.
복구의 권능을 발동해 난장판인 거실을 정리하고 클라우디아를 안아든 채 방으로 향했다. 그동안 횡설수설하는 소리가 꾸준히 들려왔다.
“내 성격도 성격이고오…… 나 같이 키 크고 힘만 센 여자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있을까 싶었는데에에…….”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중얼거리던 클라우디아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반쯤 풀린 연분홍색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프흡, 그 입에서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콕콕, 손가락이 내 뺨을 찔렀다.
“여기 있었네에?”
콕콕. 다시 한번.
“이럴거며언…… 그냥 마음 졸이지 말고 너 기다릴 걸 그랬나보다앙…… 이렇게 멋진 남자가 알아서 나타나줬눈뎅…… 왜 혼자서 신경쓰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에에…….”
콕콕. 또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해 클라우디아의 손가락을 치워버렸다. 잔뜩 취하고 힘 조절이 안 돼서 그런지 찌르는 힘이 은근 셌다. 아픈 건 아닌데, 뺨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게 영 거슬렸다.
“프히히히히히.”
취한 클라우디아는 뭐라고 해야 하나, 여러 의미로 대단한 성격이었다. 평소에는 호탕한 쪽에 가깝다면, 지금은 그 사이사이에 여성스러움이 대폭 섞여들어간 느낌.
자꾸 고개를 귀엽게 갸웃거리려 하고, 가슴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여 오고, 내 뺨이나 턱을 쓰다듬거나 목의 냄새를 맡는 등.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태연하게 저질렀다.
애교를 부리려 하자마자 입이 틀어막혔던 걸 기억하고 있는지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않았지만,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진 탓에 모든 말이 애교나 다름없게 된지라 딱히 의미는 없었다.
방으로 돌아가 클라우디아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덮치듯이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침대를 짚은 두 손 사이에 놓인 얼굴이 두근두근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나 어떻게 되는 거야앙……?”
목소리가 한층 더 간드러지게 꼬였다. 기대감, 긴장, 흥분, 취기. 그 모든 감정이 단어 하나하나에 뚝뚝 묻어났다.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우우웅…… 잡아먹어주면 안될까아……?”
“그런 말도 쓸 줄 알았어?”
“책에서 봤지이이…… 이럴 때 여자는 아무것도 안하고…… 얌전히 먹히면 된다고오…… 그 편이 남자가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구…… 근데 있지이, 난 그런 조언 없어도 어차피 저항 못 할텐뎅…… 푸히히…….”
대체 무슨 책을 읽었는지 궁금해지는 조언이었다. 미네르바가 파르나리한테 전해줬다던 것도 그렇고, 뭘 위해서 무슨 내용을 적어둔 책들이길래 저런 말이 적혀있는 거지.
떨떠름한 생각을 머리 한 켠에 치워버리고 입을 맞췄다. 꽤 갑작스러웠는지 흐읍, 하고 숨을 들이켰던 클라우디아였지만 곧바로 힘이 풀리며 느슨해졌다.
아무것도 안 하고 얌전히 먹힐 거라던 말이 진짜였는 듯, 클라우디아는 얌전히 입술을 맞대고 있기만 했다. 하다못해 목을 휘감거나 다리를 꼼지락대지도 않았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알코올 향 섞인 숨결이 훅 넘어왔다. 고작 향기만으로 머리가 살짝 아찔해질만큼 독했다. 혀로 클라우디아의 혀를 밖으로 끄집어내면서 타액을 흘려보냈다.
“으으응…….”
클라우디아는 애교 섞인 비음을 내며 내 타액을 꼴깍꼴깍 받아마셨다. 한차례 타액 전달이 끝나고, 혀를 더 깊숙이 집어넣어 입 안을 구석구석까지 꼼꼼하게 맛봤다.
어디를 건드려도 알코올 향밖에 안 느껴지는, 제법 독특한 키스였다.
“흐, 헤? 읍?”
제일 반응이 좋은 장소는 입천장이었다. 클라우디아는 혀가 입천장을 살랑살랑 간질이거나 조금 세게 긁어줄 때마다 몸을 바르르 경련했다.
혀 끝으로 안쪽의 부드러운 입천장을 콕콕 자극해주다가 입술을 뗐다. 취기 때문이 아닌 다른 이유로 반쯤 풀린 눈을 한 클라우디아가 입 근처를 핥았다.
“찌릿찌릿하네에…… 이게, 키스구나…….”
“좋았어?”
“……글쎄에? 잘 모르겠는뎅…….”
풀려버린 표정과 정반대의 대답이었다. 살짝 의아했지만, 의문은 곧 풀렸다.
“그러니까아, 조금만 더 해주면 알 것 같은데에…… 안될까아아……?”
속이 뻔히 보이는 요구였다. 웃으며 다시 입술을 겹쳤다. 조금 적응이 됐는지 이번에는 클라우디아도 적극적으로 혀를 내밀어왔다.
혀 아래쪽을 핥아주며 타액을 흘려보냈다. 꼴깍꼴깍, 클라우디아는 그걸 잘도 받아마셨다. 혓바닥이 마치 먹이를 갈구하는 아기새처럼 내 입술을 톡톡 건드렸다.
“흐, 히잇?!”
손가락이 스포츠브라나 다름없는 길이의 민소매 너머로 밑가슴을 만지자 클라우디아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움츠러들었다. 혀를 좀 더 단단히 얽고 가슴을 만지는 팔에 힘을 주었다.
“응, 웁……!”
손 끝이 겨드랑이를 스치고 지나갔다. 화들짝 놀란 클라우디아가 입술을 떼려 시도했지만, 나는 혀를 꾹 눌러 저지하고 그대로 겨드랑이를 간지럽혔다. 몸이 이리저리 비틀리기 시작했다.
물론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배 위에 올라타 종아리로 클라우디아의 장골 근처를 꾸욱 조였다.
“으으응……! 흐으응……!”
그러면서 겨드랑이를 더 적극적으로 간지럽혔다. 몸이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으나, 벗어나기엔 어림도 없었다. 클라우디아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나한테 비빌 정도는 아니니까.
한동안 키스를 이어가며 겨드랑이와 옆가슴을 간지럽혔다. 민소매 너머로 땀이 축축하게 배어나와 옷을 물들였다. 저항이 약간 잠잠해졌을 때쯤 입술을 뗐다.
땀에 젖은 민소매가 가슴에 달라붙어 그 너머의 살결을 비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가슴 첨단의 유두와 유륜도.
“하아, 하앙, 하아아…… 델타, 변태애앵…….”
새빨개진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변태라고 해서, 클라우디아 네가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잖아?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 건데?”
“…….”
애초에 진심으로 빠져나갈 생각도 없었던 클라우디아가 조용해진 사이, 양 손목을 교차시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방금 전까지 괴롭혀지던 뽀얀 겨드랑이가 드러났다.
그대로 손목이 교차된 부분을 틀어쥐었다. 명목상의 반항이 몇 번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해버리면 너 혼자서 벗어날 수 있어?”
“히이잉, 몰라아아…….”
“것 봐. 그렇게 연약하면서 뭘 하겠다고.”
“여, 연약해애……? 내가아……?”
“그럼 아니야? 지금 나한테 깔려서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겨드랑이 실컷 간지럽혀지면서 저항도 못하는데. 이게 연약한 게 아니면 뭔데?”
클라우디아가 약하다니, 은빛 여명 기사단이 듣는다면 어처구니없다 못해 비웃기까지 할 소리였지만, 어차피 취해서 제정신도 아니겠다 그냥 적당히 취향이나 맞춰주려고 꺼낸 말이었다.
“……프히히. 그렇구나아…… 나, 진짜로 아무것도 못하는 허접이구나앙…….”
내 말을 듣고 헤실헤실 웃던 클라우디아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으로 나와 눈을 마주쳤다.
“클라우디아…… 이렇게 연약한 여자인뎅…… 델타 오빠가 평생 지켜줄ㅡ 웁, 하읍.”
다시 애교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길래 키스로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클라우디아는 아까 전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숨결과 타액을 교환하고 혀를 얽으며 호응했다.
키스는 10분, 혹은 그것보다 훨씬 오래 이어졌다. 숨이 막힌 클라우디아가 살짝 헐떡이기 시작할 때쯤 입술을 뗐다. 입 근처가 타액으로 번들번들했다.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면서 이마에 입을 맞춰 해주었다. 부르르, 몸이 크게 떨렸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귀여운 표정을 지은 클라우디아가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있지이…… 잠시만 손 풀어주면 안될까아……? 해주고 싶은 게 있는데에…… 웅?”
“뭔데?”
“나아…… 연약해서 도움이 안되니까앙…… 오, 오빠 기분 좋게 만들어주려고오…….”
적당히 취향에 맞춰주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알코올로 정상적인 상황 판단이 불가능해진 클라우디아의 뇌는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여버린 모양이었다. 다리 힘을 풀고 위에서 내려왔다.
“프흐흐흡…… 고마워엉, 델타 오빠앙…….”
쪽, 클라우디아가 내 뺨에 뽀뽀를 했다. 델타 오빠라니, 이제 나도 모르겠다. 술이 깬 뒤에 자기가 저질렀던 짓을 기억하지 못하기를 바랄 수밖에.
클라우디아는 날 침대 가장자리로 이끌었다. 당기는 팔에는 힘이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순순히 딸려가 주었다. 이끄는 대로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약간 벌려진 다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클라우디아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민소매를 벗어던졌다.
“입으로 해줄까아……? 아니면 가슴……? 우우웅, 둘 다도 가능할 것 같은데에…….”
“너 원하는대로 해. 아무거나 상관 없어. 네가 이렇게 해 준다는 행동 자체에 의미가 있는 거니까.”
“프히히히.”
클라우디아는 이상하게 웃고선 내 제복 바지의 단추를 끄르고 속옷을 벗겼다.
“그런데 이상하다앙…… 안에 들어가려면 작아져야 하는데에…… 왜 안 작아질까아……?”
“겨우 한 번이잖아. 그걸로는 무리지.”
“우웅?”
클라우디아가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부터 느끼는 거지만, 이거 술 깨면 무조건 흑역사 적립 확정이다. 끝날 때쯤에 술을 더 먹여서 기억을 완전히 날려버려야 하나.
‘안 그러면 죽고 싶다고 난리 칠 것 같은데.’
내가 봐도 뒷일이 예상된다면 당사자가 느낄 수치심은 대체 어느정도겠는가.
“괜찮아. 이 상태로도 충분히 들어갈 테니까.”
“아닌데에에…… 클라우디아 그거 못 받아들이는데에…….”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번쩍 들어올렸다. 안아달라는 듯 팔을 활짝 벌리는 클라우디아를 벽으로 밀어붙이고 두 손으로 엉덩이를 받쳤다.
벽에 등을 기댄 클라우디아가 한쪽 허벅지를 들어 내 허리를 휘감고, 바닥에서 떨어진 나머지 다리도 똑같이 따라했다. 근육질의 허벅지가 옆구리를 조여왔다.
클라우디아는 내 손에 체중을 싣고 다리를 이용해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으면서 목에도 팔을 둘렀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가슴이 내 흉부에 맞닿아 비벼질만큼 거리가 좁혀졌다.
클라우디아가 달뜬 신음을 내뱉었다.
“이렇게 남자한테 끌어안긴 적 처음인데에…… 이거 진짜 기분 좋다앙…….”
“벌써부터 기분 좋으면 안 되는데.”
“으응?”
“앞으로는 이것보다 훨씬 더 좋아질 거라서.”
그대로 허리를 찔러올렸다.
“캬흑?!”
동시에 클라우디아의 몸도 아래로 내려앉았다.
“이, 이거 뭐야아앙…… 기분, 기분 좋아아…….”
내 예상대로였다. 클라우디아는 고통이라곤 조금도 없는 얼굴로 혀 꼬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팔에 힘을 주어 쾌락으로 얼룩진 몸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속삭였다.
“말했잖아. 더 기분 좋아질 거라고.”
“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 히끅?!”
다시 힘을 풀었다. 클라우디아가 혀 꼬인 신음소리를 냈다. 입술 밖으로 나와 파르르 떨리는 혀에 혀를 가져갔다.
클라우디아는 이런 경험이 익숙하지 않은 듯 숨을 거세게 몰아쉬면서 호흡을 나누었다. 알코올 향이 섞인 숨과 그렇지 않은 숨이 이리저리 오갔다.
제법 단단한 엉덩이가 손바닥에 착 감겨왔다. 마찬가지로 근육질인 허벅지가 허리를 조였고, 단단한 팔뚝이 목을 휘감았다. 입술 사이에서는 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흐읍, 흐으, 흐우으…….”
간헐적인 신음이 울려퍼졌다. 침대에서 관계를 맺을 때처럼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서로 쾌락을 공유하기에는 충분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는지 허리를 감쌌던 고리가 풀렸다. 스르륵, 발바닥이 땅에 닿았다. 입 안에서는 맞닿은 혀가 움찔거리고 있었다.
허리를 안으로 더 힘껏 밀어붙이며 클라우디아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어깨에 걸쳤다. 단단한 근육으로 이루어진 허벅지를 끌어안았다.
183cm라는 압도적인 신장은 한쪽 다리로 땅을 딛고 나머지 한쪽 다리를 내 어깨에 거는 체위마저 수월하게 해냈다. 다리가 거의 일자로 뻗자 클라우디아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으극?! 왜, 왜애……?”
허벅지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이거어어…… 이상, 흐아아앙!”
피부에 맺힌 땀이 11자 복근을 타고 흘러내렸다. 끌어안은 허벅지에서 단단한 근육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허벅지를 바짝 끌어당기고 오금을 혀로 핥아보았다.
“히이이이이익?!”
곧바로 격렬한 반응이 되돌아왔다.
“왜, 왜애……! 거기, 안 되는데엣……!”
“되고 안 되고는 내가 정하는 거야, 클라우디아. 네가 아니라.”
“싫어어어……! 오빠앗, 그, 마아앙……! 클라우디아, 이상해져어엇……!”
계속 오금 근처를 핥아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혀를 무릎까지 뻗어보기도 했다.
“하아아앙! 아앙! 그, 흐읏!”
“히이이, 헤응…… 기, 기분 좋아아앙…….”
“좋았다고?”
“으응…… 완전 좋았어엉…… 사랑해, 델타 오빠아…… 앗?!”
클라우디아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거, 거기느은ㅡ”
“더 기분 좋아지려면 아직 멀었는데.”
허리에 힘을 주었다. 본격적인 시작은 이제부터였다.
“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진정해라, 클라우디아!”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나 죽을래! 목 매달고 죽을 거니까 이거 놔!”
“겨우 목 매다는 정도로는 안 죽는 거 아시잖아요! 빨리 그 밧줄 내려놔요! 언니! 언니는 왜 보고만 있습니까!”
“미안. 난 작고 아담하고 연약해서 도움이 못 될 것 같네.”
“개소리 말고 빨리 안 와요?!”
뭐, 결과적으로 술이 기억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